시애틀빌립보장로교회

-- 성령의 열매맺는 교회 --

Sat11232024

Last update12:00:00 AM

Font Size

Profile

Menu Style

Cpanel
Back You are here: Home 말씀과예배 설교 읽기 화목하라! (2021년 5월 23일 주일낮설교)

화목하라! (2021년 5월 23일 주일낮설교)

화목하라!

 

5. 23, 2021

:마태복음5:21-24

說敎:崔仁根牧師

 

어떤 사람이 자기 가정이 복잡하여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아내와 말다툼하고, 형제는 서로 싸우고, 친척은 서로 욕하는 상태였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고 집안엔 불평만이 가득 찼습니다. 이웃집은 2대의 대가족이 살아감으로 옥신각신하기 쉬울 텐데도 풍파도 없이 언제나 평안했습니다. 아주 감동이 되어 물어봤습니다. "댁은 어떻게 그리 화목합니까? 우리는 언제나 소란스러운데요." 대답은 이상했습니다. "댁은 선한 사람만 한데 모였지만 우리 집은 악한 사람뿐이니까요." 놀라워하는 얼굴을 보고 그 이웃 사람은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댁에서 가령 실수하여 항아리를 깼다고 합시다. 즉시 '누구야, 이런 곳에 분재를 놓아둔 놈은?', '당신은 눈뜬 소경이요?'라고 하게 되지요. 모두 저마다 잘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집에서는 ', 내가 그런 곳에 놓아둔 것이 잘못이었어요.'. '아뇨, 제가 부주의 한 탓이지요.' 하며 모두 자기 자신이 나쁜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집안이 평화롭고 안정이 되지요." 이것이 화목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람은 휴지통이 많이 놓여 있기 때문에 깨끗하게 정리가 된 역 홀을 보고, "나는 우리 집의 휴지통이 되겠다."고 했습니다. 가시 돋친 말, 비꼬는 대답, 냉정한 말대꾸, 이러한 가정의 쓰레기 같은 것들을 모두 자기 마음속에 받아 넣고 집안을 깨끗하게 정리하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욕을 먹어도 미소로 답하고, 빈정거려도 따뜻하게 웃어주는 인간이 되려고 결심한 것입니다. 화목하게 하는 삶에서 하나님의 평화와 기쁨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겸손함과 용납과 사랑에서 화목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화목을 깨뜨리는 역사는 교만과 우월감 또는 열등감과 자기 비하의 감정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화목하게 하는 책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와 화목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너무나도 소중한 의무입니다. 가정의 달 5월이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단위이면서도 가장 소중한 단위가 바로 가정입니다. 가정이 화목하고 행복할 때 부모는 건강하고 자녀는 꿈을 찾아 당당하게 성장하게 됩니다. 화목한 가정이 될 수 있도록 오늘 소중한 말씀을 함께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마음 귀를 기울이시고 화목하는 사람, 화목하는 가정을 만들어 가는데 필요한 큰 은총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화목하라!

(고후5:18-21)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22:21-28)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 청컨대 너는 그 입에서 교훈을 받고 그 말씀을 네 마음에 두라 네가 만일 전능자에게로 돌아가고 또 네 장막에서 불의를 멀리 버리면 다시 흥하리라 네 보배를 진토에 버리고 오빌의 금을 강가의 돌에 버리라 그리하면 전능자가 네 보배가 되시며 네게 귀한 은이 되시리니 이에 네가 전능자를 기뻐하여 하나님께로 얼굴을 들 것이라 너는 그에게 기도하겠고 그는 들으실 것이며 너의 서원한 것을 네가 갚으리라 네가 무엇을 경영하면 이루어질 것이요 네 길에 빛이 비취리라

구약에서나 신약에서 하나님과 화목하라!”는 강력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매우 다양하게 많이 나타나지만 간단하게 한 가지만 들자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으로 배부르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으로 평안하며 그러다가 결국은 그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과 화복하지 못하고 불목한다면 우리들이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들과 같이 이 세상에서 자신의 것이라고 여기는 그것으로 행복하게 살아가리라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오늘 우리들을 깨닫게 하십니다.

(22:23-25)

네가 만일 전능자에게로 돌아가고 또 네 장막에서 불의를 멀리 버리면 다시 흥하리라 네 보배를 진토에 버리고 오빌의 금을 강가의 돌에 버리라 그리하면 전능자가 네 보배가 되시며 네게 귀한 은이 되시리니

참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너무나도 단순하고 분명하지 않습니까? 여기에는 그 어떤 설명이나 해석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말씀 그대로가 너무나도 명확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오직 하나님! 바로 이것을 극명하게 전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렇게도 오늘 우리들이 좋아하는 이 세상의 그 모든 것에서 돌이켜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면 하나님은 모든 것을 불문에 붙이고 오늘 우리들을 다시 흥하게 하겠다.”고 약속해 주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보배를 진토에 버리고 오빌의 금을 강가의 돌에 버리면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들의 보배가 되어주시고 고귀한 은이 되어주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 이렇게 하여서 하나님과 화목하고 하나님께서 친히 주시는 금은보화로 멋진 인생을 한 번 살아가 보십시다!! 그래서 하나님은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메시지를 던져 주시고 계십니다. “하나님과 화목하라!”고 말입니다.

사람들과 화목하라!

(5:21-24)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건강을 주시고 재물을 주시고 믿음을 주셔서 복을 누리게 하시는 것은 그것으로 하나님을 대신하여 가난한 사람들과 외로운 사람들과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나누며 섬기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말씀을 제대로 깨닫고 실천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은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 이것이 진짜라는 것을 방금 읽어드린 마태복음 5장에서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과 함께 살아가라고 붙여주신 이웃들에게 욕을 하거나 미워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시고 지옥 불에 들어가게 하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최고로 명령하신 예배와 제사를 드리는 것보다 먼저 이웃들과 화목하기를 더 원하신다고 까지 하셨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우리들과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에게 얼마나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지 이해가 갈 것입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이렇게 이웃들에게 잘 하는 것이 곧 예수님께 잘 하는 것이라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

(25:34-40)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면 이웃들과는 아무렇게도 해도 되는 줄로 착각하며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엄청난 잘못입니다. 이웃을 빼놓고는 십자가가 형성되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들의 생각이 잘못 된 것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디 이웃들과 원수 맺지 말고 이웃들을 험담하지 말고 이웃들을 잘 섬기며 이웃들과 화목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없이는 결단코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들로 하여금 서로 화목하게 하시려고 하신 거룩한 희생을 망각한 행위가 되기 때문입니다.

(5:10-11)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9:50)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우리들은 서로 화목하되 소금과 같이 영원히 변치 않는 믿음과 사랑으로 해야 하며 순간도 이웃을 해하거나 원수로 삼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이웃들과 화목하지 못한 자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지옥 불로 다스리겠다고 선언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웃 교회에서 원로가 된 목사님의 고백입니다. 그 분이 원로가 되기 전에 마지막 당회를 열었는데, 여러 장로들 가운데서 가장 늦게 장로가 된 막내가 원로가 되는 것을 막아서며 은퇴하면 그만이지 원로는 왜 해야 하느냐며 길길이 반대를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면 선임 장로가 나서서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우리들이 마지막까지 우리들을 위해 헌신하신 목사님을 잘 모셔야 한다고 바로 가르쳐야 하는데 단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모르는 척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 목사님은 말년에 교회를 산다고 자신의 모든 재산을 다 털어 헌금을 하여 은퇴하고 나면 집 페이먼트도 어려운데 그 한 장로가 극단적으로 방해하는 바람에 제대로 된 은퇴금도 받지 못하게 되어 지금도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반대했던 그 장로는 우리 지역에서 호텔을 하고 있었고 그 호텔 식당에서 옛날 우리교회 부목사님의 사모님이 일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렇게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사장이라는 그 사람이 너무나도 못되게 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그것을 팔고 작년 2월에 다른 지역에서 엄청 더 큰 호텔을 인수하였는데 그만이야 작년 3월부터 시작된 코로나 사태로 결국 망하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이렇게도 극명하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웃들에게 악을 행하는 자들을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부디 이웃들과 화목하고 특별히 하나님의 종들에게 잘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대를 이어가며 하나님의 풍성한 축 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과 화목하라!

(벧전2:9-11)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과연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성도들은 어떤 존재들입니까?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실한 존재감을 인식하지 못하게 되면 자기 자신과 결코 화목할 수가 없습니다. 의외로 자기 자신에 대해 불만족하거나 반대로 너무 자만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풍조가 우리들을 그렇게 비참하게 하거나 혹은 우월하게 만들어 가도록 변화시켜 가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은 도무지가 비정상적으로 변질되어가고 있습니다. 사람을 인격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얼굴과 몸만 보고 사람의 가치를 오로지 재물의 능력에다 맞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리가 유난히 크고 키도 170이 넘으며 덩치가 제법 크게 태어나 늘 자기 자신의 신체에 큰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던 아가씨가 거래처 직원과 자주 만나다가 정이 들었는데 한 번은 술을 먹고 함께 잠자리까지 하게 되어 그만 이야 아기가 들어서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 뜨겁게 사랑하는 일도 없이 아기로 인해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시어머니와 시누가 대놓고 너는 여자가 아니다. 너는 하마다. 그런 몸으로 남편의 사랑을 받으려고 하느냐? 너는 네 남편이 바람을 피워도 할 말이 없을거다.”는 등의 몹쓸 비난을 끊임 없이 해 댔습니다. 그녀는 견디다 못해 친정 엄마를 찾아가 나를 왜 이렇게 낳았느냐?”고 항의하며 대성통곡까지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다 결국은 남편이 떠나고 혼자서 아들 셋을 키우며 엄청나게 고생을 하였다는 사연을 읽어보았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 세태의 단면입니다. 자신의 외모로 인해 기쁨을 상실하고 컴플랙스를 안고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의외로 우리 주변에 많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 자신과 화목하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너는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보다 천 배, 만 배 더 위대하신 하늘의 하나님께서 친히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놓으실 만큼 사랑하시고 또 친히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불러 주셨습니다. 이와 같은 놀라운 사실은 믿음이 없이는 결코 알 수가 없는 엄청난 비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단도직입적으로 선포하십니다.

(벧전2:11)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고 말입니다. 불행하게도 오늘날 한국에서는 남보다 공부를 못해 좋은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못생기고 뚱뚱하다고, 가난하고 돈이 없다고, 사업에 실패하여 세상에서 무시를 당한다고......,“ 소중한 생명을 포기하고 자살사이트까지 만들어 죽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동반자살까지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릅니다. OECD가운데 자살률이 가장 높아 하루에도 50여명이 자살하고 있다니 하나님의 은혜가 절실히 필요하다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육체로만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는 영혼도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오늘 말씀을 듣는 우리 모두는 우리 자신들이나 이웃에 대해 더 이상 육신적으로만 보고 판단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그 속에 하나님께서 친히 함께 하시는 더 소중한 영혼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소중한 자아를 학대하는 어리석은 우를 범하지 않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의 풍조를 쫓아 가장 소중한 인간의 가치를 단순하게 육신만 바라보고 판단하는 것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어리석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리석은 인간들이 이렇게 육신적으로 살아갈 줄을 미리 내다보시고 다음과 같이 하나님의 속마음을 드러내 주셨던 것입니다.

(삼상16: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고 말입니다.

한국의 한 골프선수가 지난 3PGA 경기에서 마지막 나흘 째 퍼팅이 잘 안 되자 화가 나서 그만 퍼터를 부셔버렸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홀은 퍼터가 없으므로 드라이버로 퍼팅을 해야만 했습니다. 이 장면이 전 세계로 생중계 되는 TV에 비춰져 욕을 먹었습니다. 자신과도 화목하지 못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아름다운 화목의 관계를 유지할 수가 있겠습니까?

레오날드 다빈치는 몹시 미워하는 원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위대한 그림을 그릴 때 그 원수의 얼굴을 그리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최후의 만찬"이란 작품에서 배신자 가롯 유다의 얼굴을 그 원수의 얼굴로 그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그리려고 하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그릴 수가 없었습니다. 마침내 그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증오심이 자기 예술을 망쳐 놓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 원수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용서한다고 고백하고 화해를 요청했습니다. 그랬더니 그제야 고귀한 영감이 떠오르고 힘 있게 예수님의 얼굴을 그릴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Add comment


Security code
Refre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