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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을 해석하라! (2021년 7월 4일 주일낮설교)

고난을 해석하라!

 

7. 4, 2021

:창세기45:1-8

說敎:崔仁

 

욥기서를 통해서 우리는 인생들이 이 땅을 살아가면서 당하게 되는 고난을 절절하게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고난을 오직 믿음 하나로 흔들림 없이 이겨내는 욥의 모습과 그와 같은 그에게 아낌없이 보상하시는 하나님을 또한 만나보게 됩니다. 비록 고난을 감당하기가 어렵지만 끝내 이겨내게 될 때 그만큼 하늘의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고 고난을 극복한 당사자에게 축복이 되는 것 또한 깨달을 수 있습니다. 사실 고난 앞에 선 사람을 바라보며 우리는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게 되고 또한 그 사람의 신앙의 정도를 가늠할 수가 있습니다. 사람이 많이 배우고 경험하며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 또한 이와 같은 고난에 빠지게 될 때 의연하게 대처하고 더 성숙한 사람됨으로 거듭나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난이란 그만큼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공기처럼 함께 하는 삶의 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5:7)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나니 불티가 위로 날음 같으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렇듯 인생은 곧 고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고난은 그 누구도 비켜갈 수 없는 삶의 한 부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욥과 같이 갑자기 닥치는 고난을 의연하게 대처해 나갈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난을 보는 눈부터 다시 떠야 합니다. 거의 대분의 사람들은 고난이 닥치게 되면 그 고난의 요인을 타인에게 돌리기 쉽습니다. “너 때문에!”라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통해서 좋은 사람을 얻기는커녕 오히려 좋은 사람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암에 걸려 투병하는 생의 극한 상황 속에서도 이혼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서로 탓을 하다가 원수가 되고 급기야는 영원히 돌아서고 말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형들에 의해 애굽이라는 타국에 종으로 팔려갔던 억울한 사람 요셉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요셉은 훗날 그 형들을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그 형들을 탓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와 같은 형들을 위로하였습니다.

(45:5)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고 말입니다. 어떻게 요셉은 아버지 몰래 자신을 타국으로 팔아버리고 아버지에게는 짐승이 먹어버렸다고 거짓 보고한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그 형들을 이렇게도 관대하게 대할 수가 있었을까요? 그는 그가 당한 고난을 정확하게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애굽에 보내신 분이 형들이 아니라 하늘의 하나님이셨다는 사실을 그는 알았던 것입니다. 이렇듯 오늘 우리들도 우리들에게 닥친 고난을 남 탓으로 돌리지 말고 정확하게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인생의 소중한 동반자들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하늘의 축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욥과 같이 고난을 이긴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고난을 당당하게 이겨내는 능력 있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려면 우리들의 삶에 공기처럼 찾아드는 고난에 관한 진리부터 배워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이에 관한 귀한 말씀을 통해서 요셉과 같이 넘치는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이 고통을 줍니다

(37:18-20)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서로 이르되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 꿈이 어떻게 되는 것을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

(37:28)

때에 미디안 사람 상고들이 지나는지라 그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 올리고 은 이십 개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매 그 상고들이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

(왕상2:5-6)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내게 행한 일 곧 이스라엘 군대의 두 장관 넬의 아들 아브넬과 예델의 아들 아마사에게 행한 일을 네가 알거니와 저가 저희를 죽여 태평시대에 전쟁의 피를 흘리고 전쟁의 피로 자기의 허리에 띤 띠와 발에 신은 신에 묻혔으니 네 지혜대로 행하여 그 백발로 평안히 음부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

우리는 우리들이 시시때때로 당하는 고난이 과연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부터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정확한 진단이 있어야 올바른 처방을 받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소개해 드린 말씀들을 통해 그 말씀의 주인공들을 살펴보면 고난은 의외로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요셉을 애굽에 팔아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게 했던 사람들은 다른 이들이 아닌 형제들이었습니다. 다윗에게 죽을 때까지도 잊을 수 없도록 큰 고통을 주었던 사람은 다윗이 가장 믿었던 장군 요압이었습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우리들이 당하는 고통은 거의가 다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남도 아닌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족들이나 사람들로부터 그 엄청난 고난을 당하게 되는 것일까요? 여기에는 여러 가지 하나님의 크신 뜻이 계시겠지만 가장 성경이 증거하는 분명한 이유는 사람을 믿고 의지하지 말라!”는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146:3-5)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2:22)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

(7:5)

너희는 이웃을 믿지 말며 친구를 의지하지 말며 네 품에 누운 여인에게라도 네 입의 문을 지킬지어다

는 말씀들은 한결 같이 사람을 의지하지 말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미도 각 말씀 속에서 다 설명이 되었지만 가장 근본적인 것은 바로 인간이란 존재 자체가 능력의 한계가 있고 이기주의라 결국에는 고통을 안겨다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이 아닌 하나님을 기대하고 의지하며 바라야 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 세상에는 우리의 위로가 없습니다

(39:11-20)

그러할 때에 요셉이 시무하러 그 집에 들어갔더니 그 집 사람은 하나도 거기 없었더라 그 여인이 그 옷을 잡고 가로되 나와 동침하자 요셉이 자기 옷을 그 손에 버리고 도망하여 나가매 그가 요셉이 그 옷을 자기 손에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감을 보고 집 사람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보라 주인이 히브리 사람을 우리에게 데려다가 우리를 희롱하게 하도다 그가 나를 겁간코자 내게로 들어오기로 내가 크게 소리 질렀더니 그가 나의 소리 질러 부름을 듣고 그 옷을 내게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갔느니라 하고 그 옷을 곁에 두고 자기 주인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려 이 말로 그에게 고하여 가로되 당신이 우리에게 데려온 히브리 종이 나를 희롱코자 내게로 들어 왔기로 내가 소리 질러 불렀더니 그가 그 옷을 내게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갔나이다 주인이 그 아내가 자기에게 고하기를 당신의 종이 내게 이같이 행하였다 하는 말을 듣고 심히 노한지라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넣으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삼하19:4-7)

왕이 얼굴을 가리우고 큰 소리로 부르되 내 아들 압살롬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니 요압이 집에 들어가서 왕께 말씀하되 왕께서 오늘 왕의 생명과 왕의 자녀의 생명과 처첩들의 생명을 구원한 모든 신복의 얼굴을 부끄럽게 하시니 이는 왕께서 미워하는 자는 사랑하시며 사랑하는 자는 미워하시고 오늘 장관들과 신복들을 멸시하심을 나타내심이라 오늘 내가 깨달으니 만일 압살롬이 살고 오늘 우리가 다 죽었더면 왕이 마땅히 여기실 뻔 하였나이다 이제 곧 일어나 나가서 왕의 신복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말씀하옵소서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옵나니 왕이 만일 나가지 아니하시면 오늘 밤에 한 사람도 왕과 함께 머물지 아니할지라 그리하면 그 화가 왕이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당하신 모든 화보다 더욱 심하리이다

우리는 위의 이 두 말씀 속에서 인생의 처절한 현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처음에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들어갔을 때 보디발의 집이 엄청난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으로 인해 그 집안에 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39:1-6)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그를 사니라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요셉이 그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으로 가정 총무를 삼고 자기 소유를 다 그 손에 위임하니 그가 요셉에게 자기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주인이 그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임하고 자기 식료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준수하고 아담하였더라

여기에서 우리는 요셉이 머무는 곳의 주인이 요셉이 어떤 사람이며 왜 자신이 요셉으로 인해 복을 받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아내가 요셉을 모함해서 요셉을 비난할 때에 보디발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요셉을 곧바로 감옥에 보내버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39:19-20)

주인이 그 아내가 자기에게 고하기를 당신의 종이 내게 이같이 행하였다 하는 말을 듣고 심히 노한지라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넣으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바로 이것이 냉철한 우리들의 삶의 현실입니다. 이 세상에는 자비가 없습니다. 불쌍히 여김도 없습니다. 오직 나타난 그것만 보고 판단합니다. 이것은 요셉의 경우에만 해당 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왕으로 모시고 평소에는 굽실거리던 장수들도 마찬가지로 한 순간에 냉혈인이 되고 마는 것을 다윗의 케이스를 통해 너무나도 분명하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아들 압살롬이 배신하고 반역을 하여 고통을 주었다고 해도 아버지는 그 아들이 불쌍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아버지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신했던 아들 압살롬이 죽자 아버지 다윗은 너무나도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어쨌든 아들이 죽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죽은 아들 앞에서 가슴 아프지 않을 아버지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지만 신하요 장수였던 요압은 그와 같은 다윗 앞에서 협박을 하기 시작합니다.

(삼하19:4-7)

왕이 얼굴을 가리우고 큰 소리로 부르되 내 아들 압살롬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니 요압이 집에 들어가서 왕께 말씀하되 왕께서 오늘 왕의 생명과 왕의 자녀의 생명과 처첩들의 생명을 구원한 모든 신복의 얼굴을 부끄럽게 하시니 이는 왕께서 미워하는 자는 사랑하시며 사랑하는 자는 미워하시고 오늘 장관들과 신복들을 멸시하심을 나타내심이라 오늘 내가 깨달으니 만일 압살롬이 살고 오늘 우리가 다 죽었더면 왕이 마땅히 여기실 뻔 하였나이다 이제 곧 일어나 나가서 왕의 신복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말씀하옵소서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옵나니 왕이 만일 나가지 아니하시면 오늘 밤에 한 사람도 왕과 함께 머물지 아니할지라 그리하면 그 화가 왕이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당하신 모든 화보다 더욱 심하리이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것은 예나 지금이나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잠시 왕이 아들의 반역에 쫓겨 왕의 권위가 떨어지게 되자 평소에 그렇게도 왕을 섬겼던 충신 요압이 이렇게도 순식간에 돌변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당했던 치욕은 상상을 초월하였던 것입니다. 그가 오죽 잊을 수 없는 치욕을 당하였으면 죽기 전에 솔로몬에게 유언으로까지 남기면서 그런 자 요압을 백발로 무덤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고 명령하였겠습니까?

(왕상2:5-6)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내게 행한 일 곧 이스라엘 군대의 두 장관 넬의 아들 아브넬과 예델의 아들 아마사에게 행한 일을 네가 알거니와 저가 저희를 죽여 태평시대에 전쟁의 피를 흘리고 전쟁의 피로 자기의 허리에 띤 띠와 발에 신은 신에 묻혔으니 네 지혜대로 행하여 그 백발로 평안히 음부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요셉이나 다윗만 겪는 삶의 한 부분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겪어야 하는 삶의 현실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절대 의지 할 대상이 없고 고통당하는 우리들에게 진정한 위로를 줄 자가 없다는 사실이 바로 참담한 우리들의 현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고통 중에 부르짖는 성도들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시는 것입니다.

(33:2-3)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의 말에도 고통을 당할 때 비로소 사람을 알 수가 있다.’고 합니다. 진정한 사랑인지, 진정한 우정인지, 고통을 당해보면 사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가 되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하나님께서도 우리들이 어려움을 당할 때 더욱 가까이 하시고 친히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고통이 변하여 축복이 되는 때가 찾아옵니다

(41:38-43)

바로가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신에 감동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얻을 수 있으리요 하고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너는 내 집을 치리하라 내 백성이 다 네 명을 복종하리니 나는 너보다 높음이 보좌뿐이니라 바로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로 애굽 온 땅을 총리하게 하노라 하고 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사슬을 목에 걸고 자기에게 있는 버금 수레에 그를 태우매 무리가 그 앞에서 소리 지르기를 엎드리라 하더라 바로가 그로 애굽 전국을 총리하게 하였더라

(42:12-15)

여호와께서 욥의 모년에 복을 주사 처음 복보다 더하게 하시니 그가 양 일만 사천과 약대 육천과 소 일천 겨리와 암나귀 일천을 두었고 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낳았으며 그가 첫째 딸은 여미마라 이름하였고 둘째 딸은 긋시아라 이름하였고 세째 딸은 게렌합북이라 이름하였으며 전국 중에 욥의 딸들처럼 아리따운 여자가 없었더라 그 아비가 그들에게 그 오라비처럼 산업을 주었더라

아무리 죽을 것 같은 고통도 영원히 가는 법이 없고 죽을 만큼 행복한 순간 또한 영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인도하시는 방법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불행과 행복이 교차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7: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형통하다고 자만하지 말아야 하며 오늘 곤고하다고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두 가지를 늘 교차시키심으로 인생들로 장래 일을 헤아리지 못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고통의 때가 있었다면 반드시 내일을 형통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요셉은 고통이 끝나고 형통한 날을 맞아 애굽의 총리대신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욥은 갑절의 축복으로 보상을 받았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이처럼 오늘 우리들의 삶도 고통에만 머물러 있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진정한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3:25-33)

무릇 기다리는 자에게나 구하는 영혼에게 여호와께서 선을 베푸시는도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사람이 젊었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으니 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 주께서 그것을 메우셨음이라 입을 티끌에 댈지어다 혹시 소망이 있을지로다 때리는 자에게 뺨을 향하여 수욕으로 배불릴지어다 이는 주께서 영원토록 버리지 않으실 것임이며 저가 비록 근심케 하시나 그 풍부한 자비대로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니라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요셉과 같이 우리들에게 임하는 고난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을 원망하지 않고 믿음을 지켜서 하나님 아버지의 풍성한 축복을 대를 이으며 누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령한 능력으로 고난과 고통도 해석하여 축복의 지름길을 만들어 가는 진정 믿음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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