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19일 주일낮 설교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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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Tuesday, 21 August 2012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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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8. 19, 2012
本文:전도서7:8-14
說敎:崔仁根牧師
인생을 살다보면 참으로 형통한 때가 있는가 하면 슬프고 곤곤한 때도 닥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형통한 때야 기뻐하고 즐거워하면 되겠지만 슬프고 고통스러울 때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에 대해 하나님은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우리들에게 다가 오십니다.
전7: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 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 셨느니라
고 말입니다. 슬프고 고통스러운 날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에 대한 아주 놀라운 해답이라 하겠습니다. 그것은 바로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짐승과 달리 [생각]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을 잘 활용하면 우리 인생의 무서운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바른 생각은 곧 바른 인생을 만들어 가는 가장 중요한 길로 하나님께서 친히 보장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한 스텝 더 업그레이드해서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우리 성도들의 인생을 안내해 주고 있습니다.
히12:1-3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 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 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 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 으신 자를 생각하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생각의 구체적인 내용을 기록해 둔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온갖 삶의 아름다운 모범을 보여주신 예수님을 생각하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렇듯 곤고한 날에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무엇을 구체적으로 생각하며 곤고한 날의 슬픔과 고통을 이겨내야 하겠습니까? 오늘은 바로 이와 같은 대 전제를 가슴에 품고 생각하면서 고통의 문제를 극복해 가는 참 지혜로운 성도들이 될 수 있도록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도록 하겠습니다.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오늘 본문을 가만히 묵상해 보면 우리 인생의 가는 길에는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이 찾아오는데 그것을 주시는 분은 바로 우리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전7: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 셨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여기에서 밑줄 친 말씀을 조용히 묵상해 보십시다. 무슨 의미로 우리들에게 다가옵니까? 이 두 가지, 즉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을 우리들의 삶에 병행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 분명해집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의 의미는 또 무엇입니까? 우리들과 아무런 상관없이 저절로 형통과 곤고가 우리들 앞에 찾아온다는 말씀입니까? 그건 절대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인생이 아니고 하나님의 로버트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삶을 관찰하시고 도우시고 심판하시는데 각자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형통한 축복을 받게 되고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육신에 젖어 자기 마음대로 살아간다면 고통 받을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만한 멋진 삶을 살아 형통하게 될 때에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인생을 잘못 살아 곤고하게 되었다면 왜 그렇게 되었는가를 곰곰이 생각하여 그 길에서 돌아서고 회개하고 새롭게 되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다음 말씀을 상대적으로 비교해 보신다면 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잘 알게 될 것입니다.
수1: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 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롬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형통한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들의 삶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인도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하나는 형통한 삶이고 다른 하나는 곤고한 삶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삶의 결과는 바로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오늘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지난날의 아름다웠던 추억만 기억하고 지금의 비참함을 탄식하는 그런 식의 인생은 지극히 미련한 삶이라고 성경이 단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7:10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지 말라 이렇게 묻는 것이 지혜 가 아니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이라는 이때를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인생을 살아간 다음 오늘을 추억하면서 행복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난 주일에 끝난 제30회 런던 올림픽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금메달 13개로 세계 5위를 차지한 우리나라의 비약적인 발전을 가슴 부듯하게 또한 자부심을 가집니다. 그 뒤에는 금메달을 목에 건 자랑스런 건아들을 또한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중에서도 시골 비닐하우스에서 살면서도 현실에 굴하지 아니하고 피눈물 나는 노력과 투지로 세계무대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양학선 선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는 얼마나 가난한 집안에서 자라났는지 지금도 그의 부모님은 시골 비닐하우스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그가 대한민국 체조 역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땄으니 얼마나 피눈물나는 노력을 했겠는지 능히 짐작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우건설에서는 그와 그의 부모님을 위해 집을 지어주겠다고 나섰고 모 기업 회장은 5억 원을 내 놓았으며 대한체조협회에서는 1억 원의 포상금까지 내 놓아 한 순간에 일확천금을 손에 쥐는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형통”이라는 복입니다. 그만큼 노력했고 그만큼 심었고 그만큼 커다란 업적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받는 축복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단언하십니다.
갈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하든지 형통이라는 축복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그런 멋진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공평하시고 공의로우신 분이시니까 반드시 우리들의 삶에 형통이라는 축복으로 보상해 주실 것입니다.
수1: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 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곤고한 날에는 생각해야 합니다
사람이 한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때로는 잘못도 저지르게 되고 그릇된 길로 빠지게도 됩니다. 우리들은 완전한 신이 아니고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수요일 우리들이 살고 있는 시애틀 근교에서 비단뱀을 기르고 있던 주민이 실수하여 비단뱀이 도망을 갔다고 경찰에 신고하였습니다. 그러자 경찰과 동물전문관리인들이 인근 주변을 뒤지고 난리법석을 떨었습니다. 그 비단뱀이 얼마나 무서운지 악어도 잡아먹을 정도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그 비단뱀이 도망간 주변이 발칵 뒤집힌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사실은 그렇게도 무서운 비단뱀을 애완용으로 집에서 키우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양한 우리 인생들의 단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처럼 실수를 하던 고의로 하던 문제를 만들어 내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명령하고 계십니다.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고 말입니다. 이는 참으로 심오하고 놀라운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귀한 말씀입니다. 우리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본심은 잘못한 우리들을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 잘못한 우리들이 새롭게 변화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하고 잘못할 수 있다는 것을 하나님도 인정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곤고한 날을 만들지 말라”고 하지 않으시고 행여 잘못하여 곤곤한 날을 만들었을지라도 “생각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해결책을 찾으라는 뜻입니다. 지난 8월 16일자 조선일보에 난 기사 하나를 참고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과연 우리는 이와 같은 기사를 접하면서 우리들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겠는지? 거울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고등학생 때 지적 장애 여중생 집단 성폭행에 가담한 학생이 올해 성균관대학교에 입학한 사실이 밝혀져 학교측이 진상 조사에 나섰다. 이 학생은 작년 말 성균관대 입학사정관제 리더십 전형에 지원하면서, 성폭행 혐의로 법원에서 '소년보호' 처분을 받은 사실을 숨긴 채 '봉사를 많이 한 학생'이라는 내용이 담긴 교사 추천서와 자기소개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 측은 입학사정관제 전형에 필요한 학생의 주요 이력이 지원서에 누락돼 있었던 것은 대학을 속인 행위로 보고 있다. 성균관대는 진상 조사에 이어 위원회를 열고 이 학생에 대한 조치를 결정할 예정이다. 조사 결과에 따라 입학 취소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 대학이 재학생의 고교 시절 이력과 허위 추천서를 문제 삼아 입학 취소 등을 검토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16일 성균관대와 교육 당국 등에 따르면 이 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A씨는 지난 2010년 지방의 한 도시에서 벌어진 고교생 10여명의 지적 장애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연루자 중 한 명이다. A씨 등 10여명은 지적 장애 여중생 B양을 한 달간 집단 성폭행한 혐의로 수사를 받았다. 당시 경찰은 "피해 학생이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았다"며 불구속 수사를 했고, 법원은 "피해 학생 집안과 합의가 이뤄졌으며 피해자 가족이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소년보호 처분을 내렸다. 이에 장애인 단체 등이 "처벌이 너무 약하다"고 반발했다.성균관대는 최근 인터넷에서 'A씨의 입학 사실'이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을 알게 됐으며, A씨가 대학에 지원하는 과정에서 대학을 속인 혐의가 짙어 조사를 하기로 결정했다.성균관대 관계자는 "A씨가 2012학년도 성균관대 리더십 전형 지원 당시 대학에 제출한 교사 추천서에서는 재학 시절 봉사를 많이 한 학생, 봉사왕 등으로 묘사돼 있었다"면서 "학생에 대한 추가 자료가 제공되지 않는 상황에서 대학에서는 교사 추천서에 의지해 입학 전형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A씨가 고교 때 한 봉사 활동 중 소년보호 처분에 따른 사회봉사 활동이 포함돼 있는지에 대해서도 학교 측은 파악 중이다. 성균관대는 A씨와 A씨의 모교에 ▲학교에서는 어떻게 추천서를 썼는지 ▲자기소개서 내용은 맞는지를 묻고 소명을 듣기로 했다. 성균관대 관계자는 "의도적으로 이력을 속이고 스펙을 과장한 것이 확인되면 대학에서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무엇입니까? 인생은 결단코 적당하게 그렇게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 주는 모습입니다. 많은 네티즌들은 학교의 교사가 학부형의 부탁과 청탁을 받고 그러한 불량한 학생을 봉사를 많이 한 모범생으로 둔갑시켰을 것으로 믿고 그와 같은 부모님이나 그와 같은 스승을 둔 그 학생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불행하고 못난 사람이라고 비난을 퍼붓고 있습니다. 무엇인 문제였습니까? 자신이 행한 일을 깊은 생각으로 새롭게 변화를 만들지 못한 채 숱한 인간적인 방법으로 어떻게 하든지 사람을 속이고 목적만 달성하면 된다는 그릇된 사고가 이처럼 온 세상이 다 알아버리는 비참한 결과를 만들어 놓고 만 것입니다. 이제 이 학생은 이렇게 자신의 부끄러운 행동이 온 세상에 다 들어나고 말았으니 어떻게 다시 인생을 출발하고 대학으로 진학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은 엄히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생각해야 하겠습니까?
전7:13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이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인생은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존재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처럼 짧은 한 평생을 고난과 역경 속에서 보낸 사람도 보기 드물 것입니다. 그는 평생을 결혼도 하지 않는 채 따뜻한 가족들의 사랑 한 번 받아보지 못하고 그렇게 강과 산과 들에서 맹수들과 악한 원수들의 공격을 피해가면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러한 그가 인생 마지막 순교를 앞두고 쓴 로마서에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고백으로 남겨 두었습니다.
롬8: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고 말입니다. 그는 최소한 인생이 살아가면서 당하는 고난을 장차 천국에서 누릴 축복과 영광에 묻고 갔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생각과 관점의 차이입니다. 자신이 당하는 고통을 억울해하고 원망하고 절망하게 되면 인생을 올바로 살아갈 능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하지만 바울처럼 장차 나타날 하나님의 영광을 기대하며 극복하게 되면 고난을 오히려 유익으로 삼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그렇게 고난을 많이 받으면서도 그것을 오히려 축복으로 알고 이겨내는 비결을 터득하였던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다음 두 말씀에서 확증이 되고 있습니다.
빌4:10-12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 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 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 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고전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내게 주신 그 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 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이 말씀을 조용히 묵상해 보면 사도 바울은 생각이 깊은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누구를 원망하는 법 없이 오직 하나님께서 선하게 인도하실 것을 믿고 자족하기를 배우고 그렇게 위대한 역사를 만들어 놓고도 자신이 잘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고백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는 과연 무엇을 생각해야 하겠습니까? 바울과 같이 깊은 생각의 소유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어려움과 고난의 때에는 깊이 회개하고 근신하고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해야 하겠다는 굳은 결심을 가지는 그런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잘 되고 형통하여도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축복이요 은혜라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려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는 말씀의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만 곤고한 날이 지나가고 형통한 날이 도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완전하지 못하고 잘못을 범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와 같은 잘못을 통하여서 더욱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하나님의 긍휼을 입게 된다면 그 잘못은 곧 축복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119:67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 나이다
라고 말입니다. 어렵고 힘든 일을 만나 주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자기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전능자에게 의지하게 된다면 그와 같은 곤고한 날이 반드시 축복과 형통한 날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인도하시는 것이 사랑 많으신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힘든 세상을 살아가면서 때로는 형통한 날도 있지만 곤고한 날들이 더 많다는 사실을 삶의 경험을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와 같은 곤고한 날 때문에 인생 전체를 망가뜨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우리 주변에서 우리는 이와 같은 안타까운 사람들을 너무나도 많이 만나게 됩니다. 이제 우리 무두 형식적으로 교회에 나오지 말고 실제적으로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여 곤고한 날에 하나님의 은총을 덧입을 수 있도록 생각이 깊은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노력하지만 인간의 능력은 한계가 있는 법이므로 절대자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을 우리들에게 소개하실 때 “우리를 도와 줄 하나님”이라고 하셨던 것입니다(이사야 44:2참조). 따뜻한 가슴으로 우리들을 기다리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들의 생각만 바꾸면 얼마든지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 그렇게 하라고 하나님은 소중한 진리의 말씀을 우리 앞에 두셨고 그 말씀을 가르치고 인도할 신실한 주의 종들을 또한 보내 주십니다. 믿음의 눈을 열고 이와 같은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랑을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연약함을 솔직히 고백하여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을 줄 아는 참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모쪼록 오늘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온 정성을 모아 예배드리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은 곤고한 날에 생각하며 형통한 날을 기대하는 그런 귀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좋으신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아 멘
주후 2012년 8월 19일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