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26일 주일낮 설교 (나에게 날개가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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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Monday, 27 August 2012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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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날개가 있다면!
8. 26, 2012
本文:시편55:1-8
說敎:崔仁根牧師
오래 전 총신신학대학원에 다닐 때 친구 한 명이랑 학교 근처에서 룸메이트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밤늦게 돌아온 친구가 시편 55편 6-7절을 들고 와서 참으로 놀라운 감동을 받았다며 이야기 해 주던 것이 지금도 생생하게 생각이 납니다. 그것은 바로 다윗의 탄식이었습니다.
시55:6-7 나의 말이 내가 비둘기 같이 날개가 있으면 날아가서 편히 쉬리로다 내가 멀리 날아가서 광야에 거하리로다(셀라)
라는 이 말씀은 한 인간의 고통이 얼마나 큰 것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시적인 표현입니다. “나에게 날개가 있다면 멀리 광야에 날아가서 거기서 쉬고 싶다.”는 이 탄식은 비단 다윗만의 고백은 아닐 것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한 번쯤은 있었던 우리 모두의 고백일 것입니다. 그러나 대학원에 다닐 그 때에는 다윗이 당했던 그 고통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그냥 ‘왕이었던 다윗도 한 때는 그토록 큰 고통을 당했었구나’ 하는 정도로 지났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다윗이 도대체 무슨 고통을 당했기에 그렇게도 멀리 광야에 날아가서 혼자 쉬고 싶다고까지 했을까? 하고 찾아보았습니다. 우선 오늘 본문 말씀으로 돌아가 그 요인이 무엇이었는지 참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시55:13-14 그가 곧 너로다 나의 동류, 나의 동무요 나의 가까운 친우로다 우 리가 같이 재미롭게 의논하며 무리와 함께 하여 하나님의 집안에 서 다녔도다
는 말씀으로 미루어 볼 때 다윗을 고통스럽게 했던 장본인은 바로 다윗의 친구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요인은 바로 우리 곁에 가깝게 지나던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이처럼 우리들을 그토록 고통스럽게 하는 요인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로 인해 찾아오는 고통을 어떻게 극복하고 다윗처럼 성숙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지? 이에 대한 해답을 찾아보면서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은혜와 축복을 기다려 보고자 합니다. 말씀에 큰 귀를 기울이고 많은 깨달음과 결단이 있으시기 바랍니다.
나에게 날개가 있다면!
다윗은 모르는 사람도 아닌 자신의 가까운 친구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멀리 광야에 가서 혼자 있고 싶다고 탄식을 할 만큼 큰 고통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을 그토록 고통스럽게 했던 그 배신자는 과연 누구였을까요? 우선 그 배경부터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삼하15:12 제사 드릴 때에 압살롬이 사람을 보내어 다윗의 모사 길로 사람 아 히도벨을 그 성읍 길로에서 청하여 온지라 반역하는 일이 커가매 압 살롬에게로 돌아오는 백성이 많아지니라
여기에서 우리는 “다윗의 모사 길로 사람 아히도벨”이라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다윗을 그토록 가슴 아프게 했던 장본인은 바로 아히도벨이었습니다. 그는 다윗 왕의 책사로서 다윗에게 많은 힘이 되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다윗을 반역하고 일어났을 때 불행하게도 그도 다윗을 배반하고 압살롬의 편에 서서 책사 노릇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다윗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엄청난 아픔을 주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압살롬을 위하여 모략을 꾸미고 충동질 하였는데 그 첫 번째가 바로 다윗왕의 후궁들을 간통하는 것이었습니다.
삼하16:20-22 압살롬이 아히도벨에게 이르되 너는 어떻게 행할 모략을 우리에 게 가르치라 아히도벨이 압살롬에게 이르되 왕의 아버지가 머물 러 두어 궁을 지키게 한 후궁들로 더불어 동침하소서 그리하면 왕께서 왕의 부친의 미워하는바 됨을 온 이스라엘이 들으리니 왕 과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의 힘이 더욱 강하여지리이다 이에 사람 들이 압살롬을 위하여 지붕에 장막을 치니 압살롬이 온 이스라엘 무리의 눈앞에서 그 부친의 후궁들로 더불어 동침 하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로 인해 다윗은 압살롬의 반역에 이은 아히도벨의 배신으로 만신창이가 되고 이루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다윗의 탄식은 바로 이와 같은 배경에서 나온 것입니다.
시55:6-7 나의 말이 내가 비둘기 같이 날개가 있으면 날아가서 편히 쉬리로다 내가 멀리 날아가서 광야에 거하리로다(셀라)
여기에서 우리는 몇 가지 인생의 좋은 교훈을 얻게 됩니다. 그것을 함께 찾아 마음에 새기면서 우리들의 인생길에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람에게는 날개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다윗 왕은 엄청난 고통가운데서 한 가지 가정을 놓고 사모하였습니다. 그것은 “나에게 비둘기 같이 날개가 있다면...”이라는 말에서 분명해지듯이 “날개가 있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날개만 있다면 그 고통의 자리에서 떠나 멀리, 배신자들의 그림자조차도 일렁이지 못하는 그런 광야에 날아가서 쉬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를 못했습니다. 날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우리 인생들에게 날개를 주시지 않았을까요? 고통의 날에 날개로 멀리 날아가서 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고통의 날에 생각하고 기도하도록 우리 인생들을 만들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전7: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하나님이 이 두 가지 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 셨느니라
약5:13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찌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우리는 고통의 날에 다윗과 같이 날개를 사모할 것이 아니라 깊은 생각과 기도로 문제의 근본을 찾아 해결하려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들을 만드신 하나님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삶의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고통의 문제를 사람의 방법으로 해결하려다 더 큰 고통을 만들어 내는 어리석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문제가 발생하면 교회를 떠나는 것이 그렇습니다. 직장에서 근무를 하다가 문제가 발생하면 사직서를 내고 회사를 떠나는 것이 그렇습니다. 가족들 간에 문제가 발생하면 이사를 가는 등의 방법으로 가족들을 떠나는 것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 짧은 인생의 경험으로 볼 때 그러한 방법이 결코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못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라.”고 말입니다.
마18: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는 말씀과 같이 우리들의 고통의 문제는 우리 스스로 풀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하나님께서 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기도하라”고 그 정확한 방법론을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솔하게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있지도 않는 날개를 달고 고통의 현장을 떠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문제가 일어난 그 현장에서 깊은 생각과 기도로 해결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바로 고통을 주시는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22일 수요일 저녁 여의도 백주대로에서 칼부림을 벌여 무고한 시민 네 사람이 피투성이가 되는 테러가 일어났으며, 일주일 전 15일 수요일에는 충남 서산에서 엣 직장 동료에게 엽총을 난사해 한 명이 죽고 두 명이 중상을 입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이들은 한결같이 직장에서 상사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거나 관계가 악화되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다 만들어 낸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한결같이 살인 및 살인미수로 평생을 사회에서 격리된 채 감옥에서 보내야만 하는 더 큰 고통을 만들고 말았던 것입니다. 특별히 여의도에서 칼부림으로 테러를 저질렀던 30살의 김 모 씨는 직장 상사와의 관계가 악화되어 직장을 그만 두고 다른 직장을 찾았으나 제대로 취직이 되지 않자 2년 여 만에 카드빚 4천만 원을 진 신용불량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 모든 일이 자기를 괴롭힌 직장 상사 때문이라고 판단한 그는 그 때마다 숫돌에 칼을 갈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결국 그를 찾아가 온 몸에 수차례 칼로 찌르고 주변에 있던 다른 직장 동료들에게도 칼부림을 부리고 도망가다가 마주친 주민 두 사람에게도 칼을 휘둘렀던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분부하신 대로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고 고통의 날에는 기도하면서 문제를 풀어나갔다면 결코 이처럼 끔찍한 또 다른 고통을 만들어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함부로 고통을 떠나 스스로 해결하려는 날개를 우리들에게 주시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멀리 날아갈 날개를 찾지 말고 깊은 생각과 기도로 인생의 문제를 하나님께 맡겨드리며 진정한 자유를 찾아나서는 현명한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주신 최고의 축복입니다
사람이 한 세상을 살아가려면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등지고 사탄 마귀와 짝한 인생의 길은 그렇게 되도록 이미 심판을 받아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욥기라는 성경에는 인생의 가는 길이 차라리 고통 그 자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욥5:7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나니 불티가 위로 날음 같으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불티가 위로 날음과 같이 인생의 가는 길에도 정처 없는 고난의 연속이라는 뜻일 것입니다. 이러한 고통의 때마다 사람을 원망하며 삶을 자포자기 한다면 결국 우리는 인생을 살아보지도 못한 채 망하고 말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들의 고통스러운 삶의 현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셨던 하나님은 그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약5:13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찌니라
는 말씀과 같이 고난당할 때는 무조건 하나님을 찾아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친히 주신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성군 다윗은 정확하게 고난의 해결책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발견한 그 유일한 해결책은 바로 하나님의 뜻과 일맥상통하는 “기도”였습니다. 그가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었던 가장 아름다운 숨은 덕목을 지금 우리는 보고 있는 것입니다.
시55:1 하나님이여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내가 간구할 때에 숨지 마소서
시55:16-17 나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로다 저녁 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
이 단순한 한 마디의 말씀은 다윗이 고통의 때를 어떻게 극복해 갔는지를 대변해 주는 가장 대표적인 말씀으로 성경에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랬습니다. 다윗의 일생을 보면 참으로 많고도 많은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그가 고통의 때에 기록해 둔 시편 22편의 말씀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그 모든 고통을 이기고 끝내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는 특별하신 사랑을 받으며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고통의 문제를 해결할 줄 아는 비법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였습니다.
시16:1-2 하나님이여 나를 보호하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내가 여호와께 아 뢰되 주는 나의 주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는 말씀처럼 그는 왕이었지만, 그는 골리앗도 무너뜨린 위대한 용사였지만 어린 아이와 같이 순전하게 그렇게 하나님께 기도하며 매달리는 특별한 매력을 지닌 하나님의 사람이었기에 그 무서운 모든 고난의 때를 이겨내고 승리하는 큰 자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이 세상의 모든 권세를 다 가진 사울 왕으로부터 시기를 받아 수많은 날들을 그 서슬 퍼런 시기의 칼날을 피해 다녀야 하는 끔찍한 고통을 당해야만 했었고, 천신만고 끝에 생명을 부지하고 왕위에 올랐으나 남도 아닌 아들의 반역으로 또 다시 왕위에서 쫓겨나 도망 다녀야 하는 비참한 세월을 보냈어야 했으며, 하늘처럼 믿었던 신하들의 배신으로 또 다시 인생 말년에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해야만 했던 비운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와 같은 환경에 굴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친히 제공해 주신 기도라는 비장의 무기로 끝끝내 고난을 이겨내고 승리하는 멋진 인물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에게 그 어떤 고통의 때가 닥친다 할지라도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하지 아니하고 다윗과 같이 겸손히 하나님께 찾아나가 기도로서 문제를 해결할 줄 하는 우리 모든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친히 제정해 주신 방법일진데 반드시 다윗과 같이 승리하는 아름다운 결과를 얻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할렐루야!
인생의 무거운 고통을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다윗이 그렇게 위대한 역사적인 인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과 인생을 함께 산 믿음의 비밀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 세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그런 인물이 아닙니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도 그는 왕도 무서워 떠는 거장 골리앗 앞에 선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막대기 하나를 들고 드라마 찍듯 골리앗 앞에 서자 골리앗이 코웃음을 치면서 다윗에게 물었습니다. “넌 내가 강아진 줄 아느냐?”고 말입니다. 다윗은 어디에서 그와 같은 놀라운 용기가 나올 수 있었을까요? 이스라엘의 온 군사들이 다 겁을 먹고 사울 왕까지도 두려워하는 그 큰 용사 앞에 막대기 하나를 들고 마주 섰다는 사실은 실로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음에 기록된 다윗의 믿음을 묵상해 본다면 다윗이 헛된 만용을 부린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삼상17:33-37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기에 능치 못하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 다 윗이 사울에게 고하되 주의 종이 아비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서 새끼를 움키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 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 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나이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없는 블레 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또 가로 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 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이렇듯 다윗의 믿음은 어려서부터 체험적으로 쌓여왔던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위험과 고통 앞에서도 당당하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헤치고 나갈 수 있는 믿음, 바로 그것을 다윗은 터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통, ‘만약에 내게 날개가 있다면 이 고통의 현장을 떠나 저 멀리 광야에 날아가서 쉬고 싶다.’고 할 만큼 엄청난 고통 앞에서도 다음과 같이 당당하게 선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시55:22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 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
고 말입니다.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는 이 말은 다윗이 고통의 때에 어쩌다가 한 말이 아닙니다. 이것은 바로 다윗 자신의 확신이요, 철학이요,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시37:5-6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는 말씀과 같이 그의 신념은 이처럼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누가 맡길 수 있습니까? 믿는 사람만이 맡길 수 있습니다. 변호사를 믿으니 그 엄청난 사건도 그렇게 많은 돈을 지불하면서 맡기는 것입니다. 의사를 믿으니 그렇게 많은 돈을 주면서 자신의 온 몸과 생명까지도 맡기는 것입니다. 은행을 믿으니 그렇게도 힘들게 번 돈을 미련 없이 갖다 맡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을 믿으니 우리들의 삶과 고통을 그 하나님께 맡겨야 되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실로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자들이요 불신자들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들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우리들의 삶을 맡기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렇게 믿고 맡기는 자들은 다윗과 같이 그 모든 삶을 책임지고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다윗이 오늘 우리들을 향하여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버리라”고 단호하게 명령하는 이유도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책임지고 해결해 주심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린 아이들을 키워보았습니다. 철없는 아이들은 온전히 부모를 믿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스스로 걱정하지 않습니다. 운동화 살 것 때문에 밤잠을 설치며 고민하지 않습니다. 학원비 낼 것 때문에 밤새도록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냥 엄마한테 말하기만 하면 됩니다. “엄마, 나 운동화 다 떨어졌어. 엄마, 내일까지 학원비 가져오래.” 그러면 끝입니다. 지금까지 말씀 드린 모든 내용이 이 한 마디 속에 다 들어 있습니다. 우리들의 인생 여정에 닥치는 숱한 고통과 고난의 때에 아이들처럼 그냥 하나님께 나가서 말씀드리고 그 하나님께서 능히 해결해 주실 줄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서 성군 다윗이 보여 준 단순하면서도 비범한 믿는 삶의 비법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와 같은 단순논리로 신앙생활의 새로운 장을 열어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곧 우리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인생의 먼 여정에는 누구 한 사람 예외도 없이 고통과 고난의 날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고난과 형통을 통해 내일을 알지 못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인생 인도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고통을 탓하고 있는 못난이가 되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은 날개 타령이나 하고 있지 말고 벌떡 일어나 문제를 직시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청하는 지혜로운 믿음의 사람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 힘든 고통을 통하여서 우리들에게 주시려는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의 역사가 내일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을 정복해 나온 위대한 인물들 중에서 이처럼 고통의 터널을 지나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들도 우리들의 자손들도 나약하지 않도록 강인하게 키우고 훈련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귀히 쓰시는 다윗과 바울을 고통의 터널 속에서 연단하셨던 것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스스로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말고 다윗과 같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맡기는 놀라운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들로 하여금 그러한 믿음을 갖게 하시려고 때를 따라 고통을 주시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고통을 당할 때 마다 욥과 같이 의연하게 대처하고 다윗과 같이 기도의 불을 지펴서 끝내 정금같이 단련되어 나오는 멋들어진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모쪼록 오늘 하나님께 정성을 바쳐 예배드리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은 고통을 통해 더 큰 축복을 맛보는 그런 멋들어진 기도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좋으신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리는 바입니다. 아멘
주후 2012년 8월 26일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