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16일 주일낮 설교 (주께서 나에게 주신 기쁨)
- Details
-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Friday, 21 September 2012 15:43
- Hits: 2693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
9. 16, 2012
本文:시편4:1-8
說敎:崔仁根 牧師
원더걸스, 소녀시대, 2PM 등 한국의 대표적인 가수들을 만들어 내며 K-Pop의 대표라 해도 과언이 아닌 박진영씨가 최근 모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한 고백 하나는 우리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커다란 도전이 되고 있습니다. “나는 내가 잘나서 이렇게 훌륭한 가수들을 만들어 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어떤 절대자가 나에게 이렇게 할 수 있는 지혜와 영감을 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그 분이 누구신지? 그 분을 찾는데 제 인생을 걸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도 자신의 재능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 그 어떤 절대자의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자녀로 자청하는 오늘 우리는 오히려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으니까 말입니다. 진정한 신자라면 사도 바울과 같이 고백해야 합니다.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로다.”고 말입니다. 진정한 신앙생활은 나 자신을 부인하고 우리 삶의 모든 공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기록한 사람은 성군 다윗입니다. 다윗이 다윗 될 수 있었던 가장 놀라운 고백을 오늘 우리는 본문 말씀에서 접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시4:7-8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 다 더하니이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 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
이 말씀은 믿음의 눈으로 보지 않고 그냥 보면 단순한, 매우 좋은 말씀 정도로 보이지만 믿음의 눈으로 깊이 묵상해 보면 하늘 아래 이 보다 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는 말이 없을 정도로 놀라운 말씀이요 고백입니다. 다윗이 그토록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누릴 수 있었던 가장 놀라운 고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그런 놀라운 고백이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다윗의 이와 같은 고백이 우리들의 고백이 되기를 소망하며 다윗과 같은 그런 놀라운 은총을 오늘 우리들도 받아 누릴 수 있도록 오늘 본문 말씀을 가슴에 새겨보고자 합니다. 다윗과 같은 놀라운 고백으로 하나님과 한 발자국 가까워지는 그런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
우리는 인생을 살아오면서 우리들이 누리는 기쁨이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거나 기쁠 수 있는 환경이었기에 가능한 줄 알았습니다. 사실 어떤 경우엔 그렇게 된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기쁨의 축복은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사실을 오늘 말씀을 통해 분명히 배울 수 있습니다. 기쁨의 원동력이 오직 하나님께만 있기 때문입니다.
시16:11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께만 있는 풍성한 기쁨이 우리들에게 임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친히 그 얼굴을 들어 우리들에게 비취실 때 비로소 우리는 그 놀라운 기쁨을 맛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시4:6 여러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 하오니 여호와여 주의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취소서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처럼 물질의 풍성할 때만 느낄 수 있는 기쁨을 신령한 기쁨으로 바꾸고 그와 같은 항구적인 기쁨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누릴 수 있도록 하나님의 은총 입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오늘 말씀이 울리들에게 큰 축복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왜 기쁘게 살지 못하는가?
똑 같은 환경에서도 기쁘게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고통스럽게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기쁘게 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극단적이고도 단순하게 그 해답을 찾는다면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이와 같은 진리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시4:7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이 말씀을 조용히 묵상해 보십시다.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과 “저희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함”을 비교해 보신다면 해답을 쉽게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진정한 기쁨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데 반해 세상적인 기쁨은 물질의 풍성함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기쁨은 영원하고 풍성한데 비해 세상으로부터 오는 기쁨은 일시적이고 육신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다음과 같은 말씀에서 보다 더 구체적인 의미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시30:4-5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지어다 그 노염은 잠간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 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시30:11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 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라는 이 두 말씀을 조용히 묵상해 보면 진정한 기쁨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를 역으로 뒤집어 보면 기쁨이 없는 이유는 하나님이 없기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의 가슴 속에는 진정한 기쁨이 없습니다. 설사 기쁨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일시적인 것일 뿐 또 다시 근심과 걱정이 지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떠나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 사랑하는 제자들을 모아놓고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권면하셨던 것입니다.
요15:9-11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 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 만하게 하려함이니라
고 말입니다. 이 요한복음 15장은 포도나무 비유입니다. 다시 말해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는 것 같이 우리들도 예수님께 꼭 붙어 있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주님께 꼭 붙어 있는 결과가 무엇입니까? 11절에 밝히 기록된 대로 주님의 기쁨이 우리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쁨의 본질이신 예수님께 붙어 있어야만 우리들이 비로소 기쁨을 누리게 된다는 이 단순한 진리를 오늘 우리는 배워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탄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4:2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변하여 욕되게 하며 허사를 좋아하고 궤휼을 구하겠는고(셀라)
시4:4-5 너희는 떨며 범죄치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 다(셀라)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뢰할지어다
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미련한 자들에게는 우매한 것 같이 보이지만 이 말씀이 바로 진정한 기쁨을 얻는 해답입니다. 주님을 떠나면 안 됩니다. 주님을 떠나면 그 자체가 세상이요 죄악이요 슬픔과 고통입니다. 한 때 선민으로서 그렇게 하나님의 은총을 덧입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 범죄함으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갔던 백성들이 슬픔과 눈물에 젖어 부른 탄식이 시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137:1-5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사 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케 한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 이로다 우리가 이방에 있어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꼬 예루살 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 재주를 잊을지로다
이 얼마나 기가 막히는 탄식입니까? 하나님을 섬기던 그 놀라운 수금타는 솜씨로 세상에 빠져 범죄하다가 결국에는 나라를 빼앗기고 머나먼 타국으로 포로로 잡혀가 곤역을 치를 때 자신들을 잡아간 악랄한 죄인들이 하나님께 드려야 할 노래를 불러라고 억압하니 차라리 수금타는 재주를 잊어버렸더라면 이러한 치욕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 탄식은 참으로 눈물겹도록 안타깝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기쁨을 잃어버리고 이처럼 눈물로 탄식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순간이라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도록 우리 마음을 하나님께로 붙잡아 매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은혜 입었던 성도들은 노래했습니다. 찬송가 500장의 가사입니다.
주 떠나가시면 내 생명 헛되네 즐겁고 슬플 때 늘 계시옵소서
기쁘고 기쁘도다 항상 기쁘도다 나 주께 왔사오니 복 주옵소서
라고 말입니다. 두 말할 나위도 없이 기쁨의 원천은 주님이심을 노래한 놀라운 고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떠나면 안 됩니다. 베드로와 같이 빈 배의 슬픔과 고통만이 기다리고 있는 곳이 죄악된 세상이이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기쁨은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은 한결같이 다 기쁘게 살기를 원합니다. 단 한 사람도 슬프고 고통스럽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쩌면 기쁘고 즐겁게 살고 싶은 것은 모든 인류의 소망이자 본능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게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기쁨을 얻는 방법과 길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기록했던 다윗은 최소한 기쁨의 원천이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그 길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시4:6 여러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 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취소서
다윗은 선언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냐?”고 묻고 있으니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에게 얼굴을 들어 비취주시고 진정한 선을 보여주십시오.” 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선포합니다.
시4:7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 다 더하니이다
라고 말입니다. 이는 참으로 놀라운 발견입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이렇게 고백하지 못한 그것을 다윗은 지금 만 백성들 앞에서 당당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선은 하나님께 있고 그 하나님께서 얼굴을 향하여 드시면 우리들이 이 세상 그 어떤 보물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그 놀라운 기쁨을 누리게 된다고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쁨을 누리는 정확한 해답입니다. 참 기쁨은 오직 하나님께로 부터만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왕이지만 이 세상의 부귀영화로 기쁨을 찾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을 찾았던 것입니다. 기쁨의 원천이신 그 하나님만 진정한 축복이라고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직 그 하나님을 자기 앞에 정중하게 모셨던 것입니다. 그의 그와 같은 놀라운 고백과 삶이 다음과 같은 말씀 속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습니다.
시16:1-2 하나님이여 나를 보호하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내가 여호와께 아 뢰되 주는 나의 주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시16:7-8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심장이 나를 교훈하도 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이렇게도 단순하면서도 평범한 진리가 기쁨을 안고 살아가는 유일한 길인데도 이렇게 고백하고 이렇게 살아간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될 수 있었고 그로인해 독생자 예수님께서 이 땅에 태어나시는 위대한 역사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복된 자가 되어 신약성경을 여는 거룩한 인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마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무엇이 다윗으로 하여금 이토록 놀라운 역사적인 인물이 되는 은총을 누릴 수 있게 했습니까? 바로 하나님이 기쁨의 원천이시고 그 하나님만이 이 세상의 그 어떤 부귀영화보다 더 존귀하신 분이심을 알고 고백하고 모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사울의 그 무서운 칼날을 무서워 떨지 않았으며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해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믿었던 신하 요압의 반역이나 시므이의 지독한 저주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의 가슴 속에는 하나님께서 친히 넣어 주신 “거룩한 기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비밀입니까? 이 얼마나 범상한 사람이 상상도 하지 못한 엄청난 무기입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를 언제나 생명 싸게 안에 품고 보호하시고 그를 위해 모든 사랑과 부귀와 권세를 아낌없이 쏟아 부어 주셨던 것입니다. 다윗이 누렸던 그 엄청난 축복의 비결은 오직 하나 기쁨의 원천이신 하나님을 똑 바로 아는 것이었습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 말씀을 따라 살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이 마지막 때에 누릴 수 있는 가장 분명한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계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우리들이 그토록 성경 말씀을 중심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개스 없는 자동차가 무용지물이고 배터리 없는 스마트폰이 무용지물이듯이 예수님 없는 교인들은 결국 그렇게 무용지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이신 예수님을 가슴으로 모시고 그 예수님과 함께 기쁨과 기적을 만들어 가는 다윗과 같은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고 성경 말씀이 증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73:28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하리이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들을 안전하게 보호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속에 기쁨을 넣어 주시고 우리는 그 하나님을 영원하신 왕이요 또 아버지로 섬기면 그곳이 바로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이 땅에서도 천국을 누릴 수 있도록 평안으로 보호해 주시고 죽어서는 천국에서 영원복락을 누리게 해 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 8절의 말씀입니다.
시4:8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
이 말씀을 조용히 묵상해 보면 심장이 뜨겁게 고동쳐 옴을 느끼게 됩니다.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는 이 말씀이 우리들의 가슴을 뛰게 하고 설레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다윗이 평생을 통해 경험한 하나님을 단 한 구절로 고백한 놀라운 선언입니다. 혹자는 말했습니다.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을 단 한 번 만이라도 체험해 본 사람이라면 그 하나님의 그 놀라운 사랑을 순간도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종도 교회 개척 초기에 참으로 많은 곤역을 당하였습니다. 스무 살에 전도사가 되어 성직자로 입문한 한 후 종의 가족들 외에는 말로라도 종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이 살벌한 이민 땅에 와 보니 사람의 기본도 되어 있지 않은 교인들이 그렇게도 악랄하게 이 종과 교회를 괴롭혔습니다. 성도들이 이 좋을 아파트까지 데려다주고 방에 무사히 들어가는 것을 보고서야 떠날 정도였으니 그들이 얼마나 악했는지 짐작이 갈 것입니다. 그들은 교회를 책임지고 있는 이 종을 제거해야만 우리 교회를 차지할 수 있을 줄 알고 종을 그렇게 악한 방법으로 제거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그토록 살벌하게 이 좋을 제거하려는 악한 이들이 온갖 악한 방법으로 해코지를 하는데도, 이 좋은 단 한 밤도 잠을 자지 못한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평안하게 그렇게 포근하게 단잠을 잘 수 있었다는 사실은 당시 상황으로는 전혀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불안해야 하고 두려워해야 하고 잠을 이루지 못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 종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밤마다 단잠으로 평안을 누렸습니다. 그 때 이 좋은 확신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이구나!” 하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이 고백한 “나를 안전하게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는 이 말씀은 진리입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은 이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다윗은 이것을 체험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믿었고 확신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끝까지 그를 생명 싸게 속에 품으시고 보호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 고백하였습니다.
시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 다
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는 다윗만의 고백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체험하였던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동일하게 고백할 수 있는 하나님의 동일하신 방법입니다. 그래서 다윗의 아들 솔로몬 또한 그의 아버지와 똑 같은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시127:1-2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 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너희 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 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라고 말입니다. 옳습니다. 맞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들의 보호자시요 우리들을 지키시는 자시요 우리들을 안전하게 거하게 하시는 전능자이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이와 같은 하나님을 가슴으로 고백하고 그 하나님의 넉넉한 품으로 피하여야 하겠습니다. 이 험악한 세상에서 오직 우리 하나님만이 우리들을 지켜주시는 유일하신 전능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시121:5-6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 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 리로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기쁨이 없는 삶은 신자의 삶이 아닙니다. 기쁨이 없는 삶은 하나님의 축복 받은 삶이 아닙니다. 주의 전에서 한 날이 궁궐에서 천 날 보다 낫다고 선언한 믿음의 선각자들의 고백이 아닐지라도 우리는 주님의 전에서 기쁨을 얻고 주님을 섬기므로 기쁨을 누리는 그런 멋들어진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 그렇게 하라고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까지 내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는 길이 단순하게 우리들의 선행이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기쁨을 넣어주셔야만 가능하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윗과 같이 하나님께만 기쁨과 소망이 있는 줄 알고 이 세상 그 어떤 것보다도 더 하나님을 귀하게 여기고 그 하나님을 가슴에 모시는 믿음의 열정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속마음을 이미 우리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을 것이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라”(잠8:17)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공은 이제 우리들에게 넘어 온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께만 있는 기쁨을 우리들이 받아야 되는 것이 바로 그렇습니다. 오늘 말씀을 받고 하나님을 섬겨 예배드리는 우리 모든 성도들은 이처럼 바른 길을 배운 대로 실천하여서 다윗과 같이 기쁨과 평안을 누리는 그런 멋들어진 성도들이 되시기를 좋으신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아멘
주후 2012년 9월 16일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