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신앙을 계승하라!
4. 7, 2024
本文:사도행전4:32-37
說敎:崔仁根 牧師
부활신앙은 신앙생활의 꽃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성도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믿음입니다. 이와 같은 믿음이 없다면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기독교가 세상에 있는 종교와 다른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이와 같은 부활의 역사를 믿는 신앙집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종교는 육신을 입고 있는 이 세상에서의 축복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우리 기독교는 이 세상과 다음 세상을 함께 아우르는 미래지향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놀라운 역사를 만들어 내는 근본이 바로 부활신앙입니다. 그리고 우리 성도들이 비록 이 세상에서는 고난을 당하고 때로는 죽임을 당한다 할지라도 굴하지 아니하는 것은 죽어도 다시 사는 부활신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놀라운 계절이 바로 지난주일 지킨 부활절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절은 단순한 절기행사가 아닌 최고의 신앙을 확인하고 고백하는 연중 가장 소중한 때인 것입니다. 바로 이런 때에 오늘 우리들도 초대교회 성도들이 어떻게 부활신앙을 견지하고 또 계승하였는지 함께 살펴보면서 도전 받아야 하겠습니다.
기도에 전념하였습니다
(행1:12-14)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와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들어가 저희 유하는 다락에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40일 동안 같이 동거하시다가 마침내 하늘나라로 승천하셨습니다. 그렇게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당부하신 말씀이 하나 있었습니다.
(행1:4)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는 말씀이 그랬습니다. 사실 예루살렘에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잔인한 유대인들과 로마병정들이 들끓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감추기 위해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갔다.”고 거짓 선동까지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그들을 두려워하여 예루살렘을 떠날 것을 예견하셨던 것입니다. 실제로 엠마오로 도망갔던 두 제자도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살벌한 때에 예수님은 그들에게 당부하셨던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님이 임하실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입니다. 이제 제자들에게 한 가지 숙제가 남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예루살렘을 떠나지 아니하고 잔인한 유대인들의 칼날을 피하는 길을 찾아야 하는 것이 그것이었습니다. 이 때 그들이 선택한 최선의 방법은 바로 “기도”였습니다. 사실 그들은 기도에 매우 나태하였던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도 자주 산에 혼자 오르시고 밤이 맞도록 기도하시는 모범을 보여주셨건만 그들은 전혀 그와 같이 기도에 동참하지 못하였습니다. 더군다나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에 두고 피가 땀방울이 되어 떨어지도록 기도하시는 동안 기도는커녕 아예 졸며 자고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마26:40-41)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달라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이후 그들은 전에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기도의 열정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그들은 그렇게 기도에 전염하며 부활신앙을 계승해 나갔습니다.
(행2:42)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와 같은 그들의 모습이 오늘 우리들이 본 받아야 할 부활신앙을 계승하는 소중한 길입니다. 기도에 전념하고 기도에 올인하여야 합니다. 그 길 밖에는 이 악한 세상에서 자신을 지키고 믿음을 보존할 수 있는 방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성령 충만을 받았습니다
(행2:1-4)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오늘 우리들이 성경 속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을 객관적으로 들여다 볼 때 참으로 그들의 모습은 연약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단순하게 보더라도 그들은 예수님께서 기도하고 계실 때 졸며 자고 있었고, 예수님께서 끌려가실 때 부인하고 도망 가버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에는 그 사흘 동안도 기다리지 못하고 원점으로 되돌아가 물고기나 잡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그렇게도 연약하고 무능한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을까요? 그 이유는 오직 하나, 성령 충만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은 제아무리 잘나도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가 없습니다. 신앙생활과 영적인 승리는 육신이 아니라 성령님의 충만으로 무장하여야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제아무리 좋은 자동차라도 개스를 넣지 않고는 단 1m도 움직일 수 없는 이치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도 무능한 제자들에게 당부하셨던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약속한 성령님을 기다리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그 말씀을 순종하여 다 함께 모여 기도하면서 성령님이 임하실 그 날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열흘이 지났을 때 비로소 말로만 들었던 성령님의 강림과 임재를 체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것이 부활신앙을 계승할 수 있는 전무후무한 능력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깊은 깨달음을 가져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돈이 많다고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학, 박사 학위를 가지고 남다른 높은 지식을 가졌다고 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세상에서 출세하고 모든 사람들이 알아주고 추앙하는 성공한 인물이 되었다고 가능한 것 또한 아닙니다. 오히려 이와 같이 남이 가지지 못한 잘난 것들 때문에 더 예수님과 멀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죽하면 예수님께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구명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하셨겠습니까? 이 세상을 이기고 영적으로 승리하며 부활신앙을 계승해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하나, 성령 충만 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천국으로 가시자 말자 이렇게 성령님을 보내주셨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와 같이 성령 충만으로 무장하여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 힘이 아닌 오직 성령님의 힘으로 부활신앙을 계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피상적이었던 신앙이 실제적인 신앙으로 바뀌었습니다
(행2:44-47)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이제 제자들의 신앙생활은 통째로 달라졌습니다. 막연하게 예수님만 따라다니던 신앙이 아니라 독립적으로 저마다 예수님의 분신이 되어 초대교회를 세워나가는 위대한 인물들로 변화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능력은 오직 하나 성령 충만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면전에서 부인하고 맹세하고 저주까지 하고 떠났던 베드로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잔인한 유대인들 앞에서 “너희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그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다시 살려내셨다.”고 외칠 정도였으니 어느 정도로 변했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런 베드로가 설교 한 번 하고 나니 3천 명이나 회개하고 돌아왔습니다. 이것이 과연 며칠 전 예수님의 부활과 성령 충만을 받지 못했을 때에 꿈에라도 가능한 일이었겠습니까? 바로 이것이 피상적인 신앙에서 실제적인 신앙으로 변화한 베드로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구체적으로 예수님 부활 이후, 성령 충만을 받은 초대교회의 변화된 모습이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