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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k You are here: Home 말씀과예배 설교 읽기 2012년 11월 11일 주일낮 설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2012년 11월 11일 주일낮 설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11. 11, 2012

本文:누가복음17:11-19

說敎:崔仁根 牧 師

 

 

 

오늘 본문 말씀을 조용히 묵상해 보면 우리 주님께서도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에 보답하고 감사하기를 원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눅17: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 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는 말씀 속에서 이와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 은혜 입은 성도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와 본문의 이방인과 같이 사례하고 인사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총 입었던 한 시인은 다음과 같이 탄식하였습니다.

 

시116:12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라고 말입니다. 이는 비단 하늘의 하나님만 원하시는 일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 평범한 인생들도 정성을 다해 사랑하고 도와주고 섬겨주었을 때 그와 같이 은총을 입은 사람들로부터 헛말이라도 “감사합니다.”는 말 한 마디쯤은 듣기를 원하고 있음을 우리 작은 인생의 경험을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굳이 표현은 하지 않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서 서운함을 느끼고 심지어는 배신감 같은 것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은총을 입었을 때 따뜻한 마음을 모아 감사할 줄 아는 그런 아름다운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한국방문을 마치고 돌아 올 때 마침내 비행기가 시택 공항에 도착하고 그 지루했던 비행기에서 내릴 때 반드시 경험하는 기분 나쁘지 않는 한 모습이 있습니다. 문 입구에서 또 문밖에서 승무원들이 따스한 미소로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하는 인사가 바로 그렇습니다. 실제로 감사해야 할 사람은 바로 모든 승객들인데도 그들은 그렇게 인사하고 끝까지 섬기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피곤한 몸과 마음에 단비처럼 아름다운 모습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들이 이 세상 살아가면서 모든 삶의 영역에서 이처럼 서로 따뜻한 마음을 감사로 주고받으며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이 세상이 아름답고 멋들어지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감사절을 주시고 그 때만이라도 감사를 생각하고 표현하도록 하신 것 같습니다. 감사 주일을 한 주 앞두고 우리들의 감사생활은 과연 어떠한지? 다음과 같은 말씀의 거울에 비추어 보고 새롭게 변화 받는 복된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어느 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열 명의 문둥병자들이 부르짖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들은 합창이라도 하듯이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소서!” 라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두 말 하지 않으시고 단번에 그들의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렇게도 저주스럽던 문둥병에서 그들은 순간에 깨끗함을 받고 나았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에 사마리아 사람인 한 사람이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님께로 달려 와서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사례하였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그 사람에게 하시는 말씀이 오늘 본문에 남아 있습니다.

 

눅17:17-18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 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 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주님의 이와 같은 말씀 속에서 우리는 주님의 마음이 서운하고 안타까우셨던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감사를 잊은 사람들 때문에 우리 주님의 마음이 안타깝고 서운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주님의 이와 같은 마음을 잘 알고 깨달아서 우리들의 삶에서만은 이렇게 주님 마음을 서운케 해 드리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주님의 축복된 역사를 맛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눅17: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하시더 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주님의 이 한 마디 말씀만 들을 수 있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복되고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감사의 계절에 이처럼 주님의 은총을 덧입을 수 있도록 감사생활의 3단계를 공부해 보려고 합니다. 잘 듣고 깊은 깨달음과 축복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입고도 감사하지 않는 사람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주님을 서운하게 했던 아홉 사람들을 바라봅니다. 그들은 문둥병으로 숱하게 고통당하며 살아왔던 불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주님 앞에서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 하고 부르짖기에 사랑 많으신 우리 주님께서는 단 한 마디의 조건도 없이 그들을 순간에 깨끗하게 고쳐 주셨습니다. 그들은 참으로 평생을 통해서도 다 못 갚을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주님께로 돌아와 말로라도 감사를 드리지 못한 채 사라져 갔습니다. 바로 이와 같은 사람들이 “은총을 입고도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객관적으로 우리들이 보더라도 ‘어떻게 사람들이 저럴 수 있을까?’ 싶은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오늘 예배드리는 우리들 가운데서도 이와 같은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데서 오늘 우리들이 긴장하고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하겠습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그곳에도 우리 주님은 서 계시고 모든 것을 보시고 느끼시고 판단하시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우리 사회에서도 고립되고 함께 어울려지지 못한 채 왕따를 당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다 같이 섞여 사는 것 같아도 사랑 받을 짓을 하는 사람이라야 사랑 받고 살지 모든 사람이 다 사랑 받으며 행복하게 사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아이들도 그렇게 감사할 줄 알고 인사할 줄 아는 아이로 키우지 못하면 사회생활에서 소외되고 낙인이 찍힌 채 그렇게 인생을 서글프게 살아가게 된다는 사실을 어려서부터 가르치고 배우게 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아홉 사람들의 몰염치한 모습은 그들이 죽은 지 2천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성경에 기록된 채 오고 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여지고 있는 것만 보아도 그릇된 어리석은 삶의 흔적이 얼마나 무서운지 넉넉히 알 수 있습니다.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의 어리석음이 수천 년을 걸쳐 전해지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말세의 인간들의 모습이 바로 이처럼 감사를 모르는 몰염치한 모습으로 변하게 된다고 예언해 두셨기에 오늘 우리들도 이처럼 악한 말세의 영향으로 감사를 잊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렵습니다.

 

딤후3:1-2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 며 감사치 아니하며거룩하지 아니하며...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말세에는 이처럼 감사를 잊은 자들과 끝까지 하나님께로 나아와 감사드리는 자들로 구별이 되며 이와 같은 모든 것들을 종합하여 하나님께서는 친히 양과 염소로 분류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하나님의 구원을 누리는 매우 중요한 첩경이 되는 것입니다.

 

시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 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는 말씀이 우리들에게 아름다운 교훈으로 남아 있습니다. 역으로 말하면 감사가 없는 자들은 결단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하며 하나님의 구원을 맛보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이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말씀입니까? 하나님은 우리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떻게 하나님께 감사드리는지? 일일이 다 기억하고 계시기 때문에 오늘 본문 말씀처럼 감사를 드리지 못하는 자들을 안타깝게 찾으시는 것입니다.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고 말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안타깝게 감사치 않는 자들을 막연히 찾으시기만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또한 성경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엄청난 이적과 기적으로 죽을 목숨도 살림 받았던 히스기야 왕이 하나님의 그 놀라운 은혜를 보답하여 감사치 않자 하나님은 마침내 그를 심판하시기에 이르렀던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대하32:25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저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게 되었더니...

 

라는 말씀이 그 생생한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은 역사적인 이 모든 사건들을 중심으로 은혜 입고 감사를 잊어버리는 그런 어리석은 삶을 살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며 깊은 깨달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은총을 받았을 때만 감사하는 사람

 

오늘 본문은 감사치 않는 아홉에 비해 참으로 아름답게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 감사하는 한 사람의 사마리아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눅17:15-16 그 중에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 저는 사마리아인 이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얼핏 보면 매우 훌륭한 것 같으나 그는 주님으로부터 문둥병을 고침 받았기 때문에 나아와 감사를 드린 조건부 감사자에 불과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평생을 살아오면서 이번 외에 감사드렸다는 기록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들은 은총이 없을 때는 감사하지 못하는 기적과 이적을 체험하거나 하나님의 은총을 확인한 경우에만 감사를 드리는 자들인 것입니다. 역으로 이런 사람은 스스로 판단하기에 하나님의 은총을 체험하지 못하거나 어려운 일이 닥치게 되면 도리어 원망하고 불평하게 되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은 부류에 속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학대 받던 애굽에서 드디어 해방되어 나올 때는 얼마나 감격하며 기뻐하였습니까? 그러하다가 홍해가 가로막히자 순간에 돌변하여 원망하며 불평하며 야단을 떨었습니다. 그러다가 기적 같이 그 홍해를 마른땅 같이 건너게 되자 또 감격하고 기뻐하다가 마라에서 물이 쓰자 또 원망하고 므리바에서 물이 없자 원망이 극에 달하였습니다. 그렇게 하기를 그들은 열 번이나 하나님을 원망하며 하나님께 욕을 돌려드리다가 결국은 광야에서 다 죽는 끔찍한 심판을 받고 말았습니다. 훗날 사도 바울은 이것을 거울로 삼고 두려워하며 우리는 원망하지 말자고 호소하였습니다.

 

고전10:10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진정한 감사는 때를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한결같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이 풍랑 인연하여서 더 빨리 갑니다”고 노래하는 전천후적인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오늘 본문의 문둥병자와 같이 조건부 감사로 진정한 감사를 드리는 냥 어리석게 하나님을 섬겨오고 있습니다. 그 유명한 요나조차 그랬었다면 오늘 우리들이야 더 무슨 기대를 할 수 있겠습니까?

 

욘4:6-9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 넝쿨을 준비하사 요나 위에 가리우게 하셨으니 이는 그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 괴로움을 면케하려 하심 이었더라 요나가 박 넝쿨을 인하여 심히 기뻐하였더니 하나님이 벌레 를 준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 넝쿨을 씹게 하시매 곧 시드니라 해 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준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쬐매 요나가 혼곤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 넝쿨로 인하여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 지라도 합당하니이다

 

요나는 이처럼 조건부로 기뻐하고 감사하다가 조건이 사라지자 죽기까지 성내며 원망하고 불평하였던 인물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하는 성도들이 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결코 믿음에서 나오는 진득한 감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

 

사람이 사노라면 항상 좋은 일만 만나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아무리 하나님을 잘 믿고 섬겨도 자연적인 재난이나 사람으로 인한 인재를 만나 고통을 당하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 어떤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크신 뜻이 계실 줄 믿고 무조건 감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은 진짜 신자로 인정하시고 풍성한 축복으로 보상해 주십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성경 속의 주인공 욥입니다.

 

욥1:21-22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 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욥이 언제 이와 같은 온전한 감사를 하나님께 드렸습니까? 그의 사랑하는 10남매가 순간에 다 죽었을 때였습니다. 그의 엄청나던 재산이 한 순간에 다 잿더미가 되고 말았던 때였습니다. 그의 건강하던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죽음 직전에까지 내려갔던 때였습니다. 그러한 때에 욥은 이렇게 고백하고 이렇게 감사하고 이렇게 찬송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기독교가 말하는 감사요 성경이 증거하는 감사요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감사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 감사의 계절에 가슴에 새기고 본받아야 할 진정한 감사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욥을 인하여 하나님께서 사탄과 마귀들 앞에서 당당하실 수 있었으며 유구한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욥의 변찮는 믿음과 감사를 하나님께서 친히 인정하셨기 때문에 사탄 마귀의 그 간약한 계획을 아시면서도 욥을 사탄 마귀 앞에 내 놓으셨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욥은 하늘의 하나님께서 친히 보증하셨던 그런 든든한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인정하시고 든든하게 믿어주시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려면 무엇보다도 욥과 같이 전천후적인 범사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인천에 있는 모 교회의 목사는 매주일 설교 전 기도시간에 날씨에 대한 감사기도를 잊지 않고 드립니다. "화창한 날씨를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적당한 비를 주셔서 대지를 적시어 주시듯 오늘은 성령의 단비를 내려 주실 줄 믿사오니 감사합니다." 교인들이 매주일이면 듣는 "날씨에 대한 감사기도"이기 때문에 누구나아는 사실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장마철 어느 주일 날 11시에 예배가 시작되기 1시간 전부터 엄청난 장대비가 쏟아졌습니다. 계속 쏟아진 비 때문에 11시 10분이 지나도 3백 명쯤 모이는 교우들이 50명밖에 모이지 않았습니다. 교인들은 "오늘도 우리 목사님이 날씨에 대한 감사를 드릴까?" 하고 제각기 입을 모아 한마디씩 합니다. 드디어 기도 시간이 되었습니다. "날씨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일 년 52주 동안 오늘 한 주일만 장대비를 주신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매주일 이런 비를 주시면 저희들은 어떻게 기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러 올 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아름답지 않습니까? 이 보다 성도들에게 범사에 감사함을 보여주는 기도도 없을 것이니까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감사를 쉬지 않는 것은 축복 받은 자들만이 할 수 있는 놀라운 은혜입니다. 하지만 감사를 모르는 자는 제 몸을 불살라 바쳐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셰익스피어는 말했습니다. "감사할 줄 모르는 자식을 갖는 것보다 독사에게 물리는 것이 훨씬 낫다." 고 말입니다. 다음 주일은 감사주일로 지키는 날입니다. 우리 모두 진정한 감사를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을 진심으로 기쁘시게 해 드리겠다는 간절한 바램으로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감사를 드리는 욥과 같은 신자가 되십시다. 우리가 가진 것 중에 하나님으로부터 받지 않은 것은 단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감사의 계절 11월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마침내 다음 주일은 주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며 은혜의 자리에 동참하게 되는 성례식과 더불어 2012년도 감사주일로 지깁니다. 우리들의 마음에 고통스러운 일도 남아 있고 근심스러운 일들도 없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이 불경기에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고 굶주리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수 많은 재난과 사고와 사건 속에서도 하나님은 우리들의 가정과 교회를 지켜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들의 마음이 감사로 넘쳐나서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고 고백하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드리고 마음 깊이 감사드리는 기쁨이 충만하기를 소망합니다. 촛불을 감사하면 전깃불을 주시고 달빛을 감사하면 태양빛을 주시는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엄청난 축복을 받고서도 감사할 줄 모르면 주님께서 서운해 하시면서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고 물으실 것입니다. 받았을 때만 감사드리면 너무 하나님 앞에 속 보이며 작은 자로 여기지지 않겠습니까? 아무런 조건 없이, ‘내가 받은 모든 것은 다 주님으로부터 왔습니다.’고 고백하면서 욥과 같이 변함없는 감사로 하나님을 섬기면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아시고 욥에게 보상하셨던 것처럼 반드시 보상하시며 다가오실 것인 즉 평생을 통해 범사에 감사하는 그런 멋진 신앙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친히 구원을 보여 주실 것이므로 오늘 예배드리는 우리 모든 성도들은 이처럼 감사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진정 멋들어진 성도들이 되시기를 우리 좋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 멘

 

 

주후 2012년 11월 11일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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