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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이 주는 교훈 (2024년 9월 29일 주일낮설교)

기적이 주는 교훈

9. 29, 2024

:요한복음6:1-13

說敎:崔仁 牧師

 

오늘 본문에 기록된 52어의 기적은 교회에 다니는 성도라면 거의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많이 알려진 유명한 사건입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기적을 통해 신앙생활의 변화를 만들어낸 성도들은 거의 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에 이와 같은 기적을 기록해 두실 때는 거기에 상응하는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은 하나님의 속 깊은 뜻을 발견하지 못한 채 그저 교회에만 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기적의 내용을 조용히 묵상에 보면 서너 가지의 교훈이 도드라지게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들판에서 굶주리고 있는 사람들의 형편과 처지를 정확하게 들여다보고 계신다는 것과, 언제나 믿음은 없고 명철한 머리로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제자 빌립과, 너무나도 보잘 것 없는 한 어린 아이의 도시락에 불과한 52어라도 예수님께 바쳐드리면 역사가 일어날 줄 믿고 그것을 실제 행동에 옮긴 안드레의 믿음이 바로 그렇습니다.

9월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좋은 교회를 주신 참으로 복된 계절입니다. 9월이 마지막 저물고 있는 오늘 우리는 다시 한 번 더 심기일전하여 또 다른 40년을 향하여 멋지게 도약하는 계기를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특별히 오늘은 40주년 기념으로 단기선교팀이 선교지 태국으로 떠나는 뜻 깊은 주일이기도 합니다. 지난 40년 동안 말할 수 없는 놀라운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가슴으로 감사를 드리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적을 만드는 신앙인으로 거듭나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될 수 있는 놀라운 축복의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온 맘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기적을 만들어가는 복된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성도들에게 기적이 필요함을 알고 계십니다

(6:5)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

기적은 인간의 노력과 힘으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그래서 하늘의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셔야만 되는 놀라운 역사를 말합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는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기적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우리들의 삶의 현실에서 언제나 한계를 느끼며 살아가는 연약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낳은 자식도 마음대로 교육하고 키울 수가 없습니다. 나의 몸 안에서 자라나고 있는 암 세포나 눈에도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하나도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습니다. 나는 선한 마음으로 사랑하나 미워하고 원수 맺는 인간관계 또한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습니다. 새벽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누우며 고생을 하건만 나아지는 생활의 변화도 느낄 수가 없습니다. 남들이 다 잘 살아가니까 나도 살아가겠지 하고 시작한 인생이지만 그것이 그렇게 녹록치 않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됩니다. 무엇 하나 원하는 데로 되는 것이 없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모습 또한 오늘 우리들과 별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좋아서 그가 가르치고 역사하는 모든 것이 궁금해서 들판까지 따라 나갔지만 그곳에는 먹을 것은 고사하고 마실 물조차 없었습니다. 머리 위의 태양은 사정없이 내리 쬐이고 사람들은 많아 어떻게 용신해 볼 수도 없고 목마르고 배고프니 보통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그들에게 그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것이 냉혹한 우리들의 삶의 현실입니다. 내가 아플 때, 내가 외로울 때, 내가 배가 고플 때, 내가 문제가 생겨 밤새도록 한 숨도 자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을 때 과연 이 세상 그 누가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돌아봐 주나요? 앞을 봐도 뒤를 봐도 우리 곁에는 그 누구도 관심을 가지고 돌봐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바로 여기가 우리들이 버티고 있는 이민사회요, 살벌하기만 한 이 세상입니다. 바로 이와 같은 현실이 기적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바로 이와 같은 상황이 우리에게 예수님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와 같은 그들의 사정을 예수님께서 정확하게 파악하고 아신다는 것입니다.

(6:5-7)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결단하여야 합니다.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 진정으로 나를 도와주실 분은 예수님 한 분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사업이 망하고 돈이 떨어지고 힘들고 어려울 때 남은 고사하고 형제들에게라도 찾아가 보십시오. “돈 여기 있다. 얼렁 문제를 잘 해결하고 편안하게 살아라.”고 할 형제가 얼마나 있을까요? “저거 또 돈 빌려달라고 왔을 거야. 저거 또 도와달라고 왔을 거야.”하면서 피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훌륭한 형제들도 있겠지만 요즘 세상에서 흔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오늘 우리들이 하박국 선지자처럼 낙심하지 않을 것은 우리들에게는 기적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3:17-19)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영장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하박국은 비록 모든 것이 다 없을지라도 힘의 원천이 되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겠다고 하였습니다. Why Not Me! 오늘 우리들도 이와 같이 우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았으니 낙심 말고 기뻐하는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주님만은 우리들을 외면하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육신적인 가치로는 기적을 만들 수가 없습니다

(6:7)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굶주리고 있는 백성들의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기적으로 그들의 문제를 풀어야겠다고 작정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빌립에게 물어보셨습니다.

(6:5)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왜 예수님은 그 많은 제자들 다 놔두고 오직 빌립에게만 물어보셨을까요? 그 이유를 사도 요한은 친절하게도 6절에서 설명해 주었습니다.

(6:6)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

고 말입니다. 빌립은 이렇듯 예수님 앞에서 믿음을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는 언제나 머리로만 계산하는 육신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14:8-11)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는 말씀과 같이 빌립에게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요한복음 14장은 예수님의 유언과 같은 마지막 말씀입니다. 그 중에서 빌립의 믿음을 위해 할해 된 이와 같이 긴 대목은 참으로 의외입니다. 그만큼 빌립에게는 믿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는 오늘 우리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교회에는 다니고 예배는 드리지만 생활 속에서의 우리들의 가치는 빌립과 같이 너무나도 계산적이고 이성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결코 양보하지 않습니다. 손해 보지 않습니다. 그리고 희생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눈앞에 유익이 있어야 움직입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미국생활의 현실은 바로 시간이 돈이기 때문입니다.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돈을 예수님보다 더 좋아하고 있습니다. 이는 디모데후서 3장에 기록된 말세의 예언과 똑 같습니다. 말세에는 돈을 사랑한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우리들의 이와 같은 현실을 직감하셨으면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까지 하셨겠습니까?

(딤전6:9-12)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예 이렇게 돈을 사랑하는 자들

은 교회의 직분자로 세우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딤전3:1-3)

미쁘다 이 말이여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하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로다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라는 말씀처럼 말입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은 이처럼 믿음에 반하는 육신적인 가치요 예수님의 기적을 배격하는 악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빌립은 예수님께서 그의 믿음을 테스트하시려고 물어본 질문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였습니다.

(6:7)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고 말입니다. 빌립의 이 말을 곱씹어보면 과연 그는 부정적인 사람이고 믿음이 없는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짧은 대답에서 그는 조금씩이라는 말과 부족하다.”말을 서슴 없이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모든 것을 다 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예수님 앞에서 말입니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계산적인 머리나 육신적인 가치로는 전능하신 예수님의 기적을 맛볼 수가 없습니다. 그의 판단대로 한다면 그와 같은 광야에서 돈이 있어도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광야에서 그 많은 사람들을 먹일 수 있는 음식을 마련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남자의 1년 연봉에 해당하는 그만한 돈을 광야에서 마련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에 반하는 육신적인 가치로는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가지려고 합니다. 돈만 있으면 만족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란 착각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사기에 빠지거나 도박에 빠지는 이유도 또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한국에서는 다음과 같은 무서운 사기행각이 발각되기도 하였습니다.

[은퇴한 노령층을 상대로 200여억 원 대의 코인 투자사기를 벌인 조직 일당이 검거됐다.

충북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가상자산인 ‘A코인에 투자하면 큰 수익을 낼 수 있다고 피해자들을 꾀어 투자금을 가로챈 혐의(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조직 회장 A(57)씨를 구속하고, 임원 3명과 지부장 17명을 불구속 상태로 검찰에 넘겼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20212월 무등록 다단계 조직을 설립해 전국 17개 지역에 지사를 두고, 같은 해 9월까지 35000명을 대상으로 202억 원 상당의 투자금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다.

이들은 자신들이 하는 사업에 투자하면 일명 ‘A코인1원에 1개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회원을 모집했다. 이 코인은 이들이 자체적으로 개발한 휴대전화 앱과 홈페이지에서만 받고 확인할 수 있었으며, 회원 간 거래만 가능했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100만 명의 투자자가 모이면 해당 코인이 가상화폐 거래소에 상장되고, 그러면 2000배 이상 가치가 오른다.”는 이들의 말을 철썩 같이 믿고 투자를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또 사람들을 더 데려오면 신규 투자금의 8%를 수당으로 지급해 주겠다고 꾀어 투자자를 빠르게 모았다.](2024926일자 조선일보에서 발췌)

이렇듯 육신적인 가치는 언제나 돈과 연관을 갖고 그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지극히 세상적인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로 살기를 원하는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되 부족한 것은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영위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행동하는 믿음이 기적을 만들어 냅니다

(6:8-9)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그런데 뜻밖에도 빌립이 이처럼 육신적인 대답으로 예수님을 실망시켜드리고 있는 상황에서 안드레가 어린아이의 도시락인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들고 예수님께 올려드리는 귀한 행동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것으로 기적을 베푸시고 5천 명의 남자들을 먹이시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셨던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행동하는 믿음이 기적을 만들어 놓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천 마디의 믿는다는 말보다는 한 번의 행동하는 믿음이 오늘 우리들에게 필요한 이유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들이 이처럼 단순한 역사를 만들어 놓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들의 연약한 믿음입니다. 주님 손에 올려드리는 것보다 작아도 내 것으로 살아가려는 육신과 그것을 주님께 드린다고 해서 무슨 큰 역사가 있겠느냐는 불신이 매일처럼 그렇게 자신의 방법대로 인생을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안드레는 우리들과 똑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어린아이의 초라한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이렇게도 많은 사람들에게 무슨 유익을 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 바로 안드레의 생각이었고 판단이었기 때문입니다.

(6: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안드레는 그런 생각 때문에 주님 손에 올려드리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그것을 주님께 올려드렸더니 그의 생각과 믿음을 초월하여 기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천 번의 믿는다는 말 보다는 안 믿는다고 말할지라도 행동으로 주님 손에 올려드리는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행위실천의 사도 야고보는 행동하지 못하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단언하였던 것입니다.

(2: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고 말입니다. 오늘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의 하는 말을 들어보면 예수님도 부러워하실 만큼 믿음이 좋습니다. 말을 얼마나 잘 하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들은 행동하지 않습니다. 몸으로 봉사하지 않습니다. 정성을 다해 헌금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자신의 유익만을 추구하고 헌신하거나 희생하지 않습니다. 바로 이와 같은 교인들을 향해 야고보는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행동하지 못하는 믿음은 그 자체로 죽은 것이라.”고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바로 여기에서 도전을 받아야 합니다. 내 생각에는 안드레의 말과 같이 별 볼일 없는 것 같아도 믿음으로 그것을 주님 손에 올려드리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행동하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종은 20대 초반의 전도사 시절에서부터 이와 같은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어떤 것이든 내가 붙잡고 있지 말고 주님께 올려드리면 나의 생각과 가치를 초월하여 기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래서 아주 보잘 것 없는 헌금이라도 정성을 다해 내 주머니에 두지 않고 주님 손에 올려드렸고, 도저히 해결될 것 같지 않는 심각한 문제도 내가 붙들고 있지 않고 주님 손에 올려드렸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오늘날 까지 우리 주님은 이 종의 이와 같은 믿음을 헛되게 여기지 아니하시고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고 모든 문제를 해결하여 주셔서 반세기가 넘는 이 순간까지도 무엇 하나 부족하지 않도록 역사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적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이와 같은 진리를 깨닫고 밥을 먹고 소화를 시켜 에너지를 만들 듯이 말씀을 먹고 에너지가 되도록 소화를 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주님 손에 올려드리고 주님께서 52어의 기적을 만드시도록 맡겨드려야 합니다. 이것만 생활이 되면 우리들과 우리 자녀들의 삶은 하나님께서 친히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처럼 주님 손에 올려드리는 행동하는 믿음이 그 어느 때보다 지금 필요합니다. 우리들에게는 완성하여 마지막 때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비전 프로젝트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지혜와 경험과 방법이 아닌 주님 손에 올려드리는 기적 그 자체로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의 역사로 완성해나가야 하겠습니다. 부디 주일이니까 듣는 말씀이라 치부하지 말고 오늘 본문의 말씀을 거울삼아 진정한 기적을 이루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은 바로 이와 같은 말씀을 들을 때 생겨나고 그와 같은 믿음으로 행동할 때 우리 모두가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 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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