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18일 주일낮 설교 (복 받은 자만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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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Tuesday, 27 November 2012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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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받은 자만이 감사합니다
2012년도 감사주일
11. 18, 2012
本文:마태복음13:10-17
說敎:崔仁根 牧 師
솔로몬은 이 세상 그 누구도 하지 못한 진실된 헌신과 사랑으로 하나님을 감동시켜 드리고 엄청난 축복을 받은 대표적인 인물이 되었습니다. 1천 번제라는 감히 보통 사람들은 상상도 하지 못하는 일을 그는 해 냈던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부귀와 영화를 다 가진 그가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정성을 하나님께 쏟아 드렸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놀라운 귀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전무후무한 지혜를 주시고 그가 구하지 아니했던 부귀와 영화와 장수까지 주셨을 때 그는 그것을 그냥 받아 누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또 다시 하나님께 번제와 수은제를 구별하여 드리고 온 백성들로 잔치를 벌여 기쁨을 함께 나누었기 때문입니다.
왕상3:15 솔로몬이 깨어보니 꿈이더라 이에 예루살렘에 이르러 여호와의 언약 궤 앞에 서서 번제와 수은제를 드리고 모든 신복을 위하여 잔치하였 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리 흔하지 않은 단어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수은제”라는 말이 바로 그렇습니다. 이것은 받은 은혜를 감사하여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리는 제사를 일컫는 말로서 “감사제”와 같은 의미입니다. 이렇듯 솔로몬은 1천 번제를 드렸던 인물로, 그것을 받으시고 감동하신 하나님께서 그에게 전무후무한 놀라운 축복을 주셨던 인물로, 또 다시 그 하나님께 감사제를 구별하여 드렸던 인물로 성경은 자세하게 증거해 주고 있고 그는 또한 축복과 감사의 주인공으로 성경에 기록되는 영광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조용히 묵상해 보면 아무나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자신이 누리며 살아가는 삶의 모든 은택이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고백할 줄 아는 사람만이 감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감사하는 사람이 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축복을 고백할 줄 아는 신실한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엄청나게 우리들을 어여삐 여기시고 복을 주셨으나 우리들이 그것을 축복으로 깨닫지 못하고 흘려버린다면 결코 감사로 구별하여 솔로몬과 같이 다시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2012년도 감사주일에는 “복 받은 자만이 감사합니다.”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우리 모두 진정으로 복 받은 성도들이 되어 감사를 넘치도록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리는 그런 멋들어진 성도들이 될 수 있도록 오늘 말씀에 귀를 모아보시기 바랍니다.
복 받은 자만이 감사합니다
우리들이 흔히 쓰는 말 “축복”은 매우 추상적인 단어입니다. 사람마다 느낌이 다르고 고백이 다르고 내용이 다른 것이 바로 이 “축복”이라는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욥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그 엄청난 고난의 순간에도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에게는 그 모든 것들을 다 잃어버린 그 조차도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그러한 극한 상황 속에서도 감사드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지금 우리들이 누리고 있는 축복이 무엇인지부터 다시 점검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아무리 주어도 받은 사람이 감사한 마음으로 그것을 축복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친히 책망하신 성경의 내용입니다.
어느 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러한 비유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어느 농장을 크게 하는 마음씨 좋은 주인이 길을 지나가다가 거기에서 일거리를 찾지 못한 채 빈둥거리고 놀고 있는 사람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루 8시간을 일하면 얼마를 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그 사람을 자신의 포도밭으로 보내어 일하게 하였습니다. 그 다음에 그는 또 놀고 있는 사람을 발견하고 또 그 사람에게 6시간이라도 일하도록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는 일 종료 한 시간을 남겨두고 또 한 사람을 데려다가 일을 시켰습니다. 그리고는 일이 다 끝나자 마지막에 와 한 시간을 일했던 사람부터 임금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주인은 참으로 마음이 따뜻하여서 한 시간 일 한 사람이나 8시간을 일 한 사람이나 동일하게 품삯을 치루어 주었습니다. 그러자 8기간 일 한 사람이 찾아와 항의를 했습니다. “어찌하여 8시간이나 일을 한 나와 단 1시간 밖에 일하지 않은 저 사람을 동일하게 대우를 하느냐?"고 말입니다. 그러자 주인이 되물었습니다."내가 그대와 8시간 일 한 삯을 약속하고 그 약속대로 임금을 치우어 주지 않았느냐? 그 다음 사람들에게 얼마를 주던지 그것은 주인인 내가 알아서 줄 일이지 그대가 간섭할 일이 아니지 않느냐?"고 말입니다. 그랬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모습이 바로 이 8시간 일 한 사람과 같지 않은지?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놀고 있는 나에게 일 할 기회를 주고 거기에 합당하도록 품삯을 주었으면 감사해야 하는데 감사는커녕 불평과 원망을 늘어놓았으니 다음에 그 사람을 그 주인이 다시 불러 일 할 기회를 주겠습니까? 그래서 이 종은 감사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참으로 부족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셨다고 감격할 줄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우리들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하늘의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시기고 축복이라고 하시는 진정한 축복이 무엇인지 오늘 본문에서 그 해답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들도 주님께서 친히 가르쳐 주신 그 복을 받았는지 확인해 보고 그것을 바탕으로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도록 놀라운 변화의 역사를 만들어 보아야 하겠습니다.
보는 눈이 축복입니다
욥은 오늘 우리들이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끔찍하고도 무서운 고통을 당한 사람입니다. 십 남매와 그 모든 재산을 한 순간에 다 잃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건강마저도 잃어버리고 사경을 헤맬 정도로 엄청난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그의 곁에서 그를 위로해 주어야 할 아내까지도 떠나갔습니다. 친구들이 위로한답시고 와서는 그를 죄인으로 몰아붙였습니다. 그가 가진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한 극한 고통 속에서 그가 고백한 놀라운 고백이 성경에 남아 있습니다.
욥42:5-6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 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 다
라고 말입니다. 그는 그러한 고통을 통하여서 귀로만 듣던 주님을 눈으로 보는 놀라운 축복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주님을 눈으로 보는 것이 축복인 또 다른 이유는 그로 인해 그 하나님 앞에서 진정한 회개를 만들어 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에서 우리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시는 추복 중의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마13:16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가만히 오늘 우리 자신들을 한 번 돌아보십시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복을 주셔서 두 눈으로 온갖 세상만사를 볼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 눈으로 하나님의 기적은 얼마나 보았으며 그 눈으로 하나님의 사랑은 얼마나 보았으며 그 눈으로 하나님의 역사는 얼마나 보았던가? 하고 돌이켜 보면 참으로 소경된 자들에게 부끄럽고 보게 해 주신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다는 사실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단 한 번이라도 이렇게 두 눈으로 삼라만상을 보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가슴으로 뜨겁게 감사해 본적이 얼마나 있었는지?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욥과 같이 진실된 회개를 하지 못하는지도 모릅니다. 베드로가 베드로 되기 전에는 시몬이었습니다. 그는 바다에서 물고기나 잡아 배를 채우며 그렇게 살아가는 참으로 평범한 어부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예수님의 수제자가 되었습니까? 주님을 똑바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물고기만 보던 그의 눈이 예수님의 능력을 보았던 것입니다.
눅5:6-8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를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저희가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라는 말씀과 같이 그가 눈을 뜨고 예수님을 보았을 때 그리고 그의 엄청난 기적과 역사를 보았을 때 그는 비로소 그가 누구신지를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감당할 수 없는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말입니다. 욥과 일맥상통하는 고백을 베드로에게서 지금 듣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주님을 보고 비로소 자신을 보는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친히 선언하신 바와 같이 복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평생을 통하여 감사를 넘치도록 한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들도 이처럼 봄으로 복이 있는 자가 되어 겸손하게 회개하고 감사를 한아름 안고 하나님께 바쳐드리는 귀한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할렐루야!
듣는 귀가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조금은 생소하게 들리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말입니다. 그것도 한두 번도 아니고 여러 번 이와 같이 동일한 말씀을 반복적으로 하셨습니다.
계2: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 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계2:29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계3:6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말씀입니까? 이 세상에 귀 없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그런데도 왜 하나님은 이렇게 “귀 있는 자는”이라는 조건을 내 세우셨을까요? 사람의 말을 듣는 육신의 귀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영적인 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오늘 본문에서 우리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의 의미도 또한 동일합니다.
마13:16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는 말씀은 세상의 모든 소리를 다 듣는 육신의 귀 또한 축복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듣지 못하는 사람들의 아픔과 고충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진정으로 우리들 중에 복이 있는 사람은 그 보다도 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영혼의 귀를 가진 자들이 복이 있다고 선언하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아무도 귀가 있다고 다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이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좋아하고 그 말씀을 들음으로 기뻐하고 그 말씀을 들음으로 믿음을 만들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성도들은 정말 복 받은 분들입니다. 하늘의 하나님도 기쁘시게 해 드리는 믿음이 바로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롬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 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 친히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우리들이 복된 자들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십니다.
마13: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 보는 것들 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 지 못하였느니라
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내일 고 진우량 권사님의 장례식에 참석하게 됩니다. 진우량권사님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들과 같이 이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기뻐하셨던 권사님이셨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도 소중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십니다. 이 세상을 떠나셔서 이 자리에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은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들이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과 함께 성전에 머물며 예배드리는 이 순간이 가장 복 받은 증거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진정 이 마지막 때에 누가 복된 자들인지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분명하게 증거해 주었습니다.
계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고 말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때에 진정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으로 무장되지 못한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똑 같은 귀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귀를 세상의 말과 저주의 말에만 기울이고 진리에서 돌이켰기 때문입니다.
딤후4:3-4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 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힘써야 합니다. 주님께서 복되다 하신 자들만이 복된 자들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복된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진 자라 하셨으니 힘을 다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 우리들의 마음 귀를 기울이고 진정으로 이 마지막 때에 복된 성도들이 다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 귀한 말씀을 들을 수 없는 때가 언제 찾아올는지 아는 이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깨닫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이 마지막 때에 복 있는 사람이 있으니 신령한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와 마음 귀를 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바로 그런 복된 자들이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조용히 다시 한 번 더 묵상해 보면 복이 있는 또 하나의 사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깨닫는 사람”입니다.
마13:14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마13:18-19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운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가에 뿌리운 자요
마13:23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결실하여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이 말씀들을 종합해 보면 깨닫는 것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요 그렇게 깨닫지 못하는 자들은 버림받은 자들이요 사탄 마귀의 지배를 받는 자들이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들은 곧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로 열매를 맺히게 된다고 하셨으니 바로 그렇게 깨닫는 자는 복을 받은 자들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우리는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복음서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들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그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는 그리 많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 같이 들었는데도 그들은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사람이 되지 못하였고 주님을 두 눈으로 보고서도 배척하는 불행한 사람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다음과 같은 말씀이 그 대표적인 실례입니다.
마13:53-58 예수께서 이 모든 비유를 마치신 후에 거기를 떠나서 고향으로 돌 아가시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저희가 놀라 가로되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뇨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 냐 그 모친은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즉 이 사람 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뇨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 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고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인하여 거기 서 많은 능력을 행치 아니하시니라
불행하게도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받고 엄청 놀랐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의 그 지혜와 능력을 몸으로 친히 체험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그렇게 주님의 지혜와 능력의 말씀을 듣지 않았을 때보다 더 주님을 배척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현실입니까? 그러므로 우리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깨닫는 자들이 복이 있느니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들어도, 아무리 눈을 똑바로 뜨고 쳐다보아도 깨닫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마음이 변하고 말이 변하고 행동이 변해야 합니다. 주님의 능력을 보고 깜짝 놀란 베드로가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자신이 그 분 앞에서 얼마나 큰 죄인인 줄 깨닫고 재발 떠나달라고 호소하였던 것처럼 자신을 발견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는 그 분의 말씀에 굴복하고 생명처럼 여겼던 배와 그물을 다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나섰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행동하는 신앙이요 깨달음이 있는 역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엄청난 축복을 깨닫지 못하면 결단코 감사드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축복 받은 사실을 깨닫는 자들만이 드릴 수 있는 놀라운 축복의 반사작용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은 2012년도의 추수감사 주일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감격하고 사례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본 사람이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사람이요 하나님의 그 놀라운 말씀을 듣고 깨달은 자들임을 분명하게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복 받은 사람들이 아니면 그 하나님 앞에 정성 모은 감사를 결단코 드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감사드리는 자가 되기 전에 먼저 복 받은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봄으로 복된 자가 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음으로 복된 자가 되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주시고 구원주시고 생명주시는 하나님 앞에 감사할 줄 아는 진정 복된 자들로 거듭나야 하겠습니다. 우리 그렇게 하라고 오늘도 귀한 말씀으로 우리들의 영혼을 일깨워주시고 하나님 앞에서 진정한 감사제를 드리는 삶으로 변화를 주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우연히 우리 앞에 있지 않음을 깨닫게 될 때 비로소 그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인 것을 알 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감사예배와 감사예물을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리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은 먼저 하나님의 복 받은 백성들이 되시고 그 은혜에 감격하여 감사로 제사 드리는 솔로몬과 같은 놀라운 백성들이 되시기를 좋으신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 멘
주후 2012년 11월 18일 감사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