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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25일 주일낮 설교 (평생 감사를 위한 TIP)

평생 감사를 위한 TIP

 

 

11. 25, 2012

本文:민수기12:26-38

說敎:崔仁根 牧 師

 

지난주일 우리는 2012년도 감사주일로 지키며 힘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열매를 준비하고 예물을 준비하고 몸과 마음을 준비하여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기를 소망하며 하나님께 바쳐 드렸습니다. 이 종이 보기에도 그 어느 때보다 온 성도들이 정성껏 하나님을 섬기시는 것 같아 깊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또한 마음을 다하시는 성도님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실로 우리 하나님은 우리들이 이렇게 정성을 다해 하나님께 감사드리기를 원하십니다. 평생을 수많은 죽을 고생을 하며 주님의 손과 발이 되어 살았던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우리 성도들이 힘을 다 해 감사드려야 함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살전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고 말입니다. 이 단순한 말 한 마디가 오늘 우리들에게 엄청난 도전으로 다가옵니다. 솔직히 우리는 범사에 감사드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죽하면 이 종이 지난 주일에 “복 받은 자만이 감사합니다.”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렸겠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바로 밑에서 고생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 손아귀에서 이끌어 내시어 광야에서 다 죽이시는 끔찍한 기사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들은 왜 그렇게도 비참하게 죽었습니까? 그리고 그들의 살아남은 후손들은 왜 광야에서 40년이란 기나긴 세월을 방황하며 고통을 당해야만 했습니까?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감사를 드려야 할 그들이 감사는커녕 하늘의 하나님을 원망하였기 때문입니다.

 

민14:27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을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 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이것이 하나님의 속마음입니다. 그들을 그토록 비참하게 심판하신 하나님의 마음이 바로 여기에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그랬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감사도 보시고 아시지만 우리들의 원망과 불평도 다 들으시고 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단도직입적으로 명령하는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선언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평생을 통해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무조건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농담으로라도 원망하거나 불평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이 종은 감사의 달을 마지막 보내는 오늘 이렇게 범사에 평생을 통해 감사드리며 살 수 있는 Tip을 하나 소개 해 드리려고 합니다. 잘 배워서 평생을 감하하며 살아가는 그런 멋들어진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평생 감사를 위한 TIP

 

사도 바울은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위대한 인물들 중에서 가장 고생을 많이 한 사람입니다. 그의 입으로 직접 고백한 고생만 들어 봐도 보통 사람은 감당하기 어려운 모진 고난들이었음을 직감하게 됩니다.

 

고후11:23-27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 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 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렇듯 그는 평생을 통해 말할 수 없는 숱한 고난의 길을 걸어갔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지금 우리들에게 명령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입니다. 그의 모든 서신에는 이처럼 감사하라는 말씀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이는 그만의 감사에 대한 놀라운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감사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감사는 그냥 듣기 좋아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멋있자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막연하게 그것이 좋은 것이니까 신자의 구호처럼 하는 것도 더욱 아닙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감사는 그냥 그렇게 쉽게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고난이 연속되면 그 누구를 막론하고 감사는커녕 원망하고 불평하게 되는 것이 우리들의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오죽하면 60만 명 중에 달랑 두 사람만 빼고 모두가 다 그렇게 원망하며 불평하다가 죽었겠습니까? 이는 그만큼 원망과 불평대신 감사한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현실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은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결단해야 합니다. “감사는 우리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므로 어떤 경우에도 감사드려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이 종은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말씀 그대로 감사로 평생을 살아갈 수 있는 Tip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부디 가슴으로 듣고 배워두었다가 사도 바울과 같이 감사드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룰지언정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원망하가다 벌 받는 일이 없도록 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등 뒤에 하나님이 계심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우리들의 일상이 우리들의 계획과 우리들의 방법대로 살아져 가는 줄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결혼도 내가 하고 대상자도 내가 선택하고 자녀도 내가 생산하고 내가 키우며 직장도 내가 구하고 내가 돈을 벌어서 살아가는 줄로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을 들어 성경을 읽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지나 온 우리들의 인생을 회고해 보면 그것이 잘못된 우리들의 착각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 때마다 하늘의 하나님께서 간섭해 주셨고 인도해 주셨고 준비해 주셨다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믿음의 눈이 없으면 모든 것이 자신이 하는 일인 줄로 알아 잘 되면 교만하고 못되면 좌절하게 됩니다. 오늘날 그토록 많은 자살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것 또한 이 범주에 속하는 아주 분명한 현실입니다. 지난 주간에도 월남에서 한국으로 시집왔던 27살의 가정주부가 7살짜리 딸과 3살짜리 아들을 양팔에 안고 18층 아파트에서 뛰어 내려 3사람이 그 자리에서 죽는 끔찍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43살 먹은 남편과 더 이상은 살 수 없어 이혼을 수속하고 있던 참이라고 합니다. 내 인생이 나로 말미암아 행복과 불행이 만들어진다고만 생각하면 이런 극단적인 결론을 내리고 맙니다. [사랑과 행복 그 이상의 결혼이야기]라는 책을 저술한 게리 토마스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성자가 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부부가 거룩한 일치를 이루어 가는 것은 성자가 되는 것보다 3배나 더 어려운 일이다.”라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삶의 현실에서 이처럼 어려운 관계가 부부관계라면 다른 관계는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그러므로 감사는커녕 원망과 불평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들의 현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전부가 저렇게 원망하다가 망한 것이 결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님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분명한 한 가지 진리를 배워야 합니다. 우리들이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 그것이 부부관계이든 부모 자식관계이든 성도 상호간의 관계이든 세상의 어떤 사람들이건 그 모든 관계 뒤에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계신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비록 선택은 내가 했을지라도 그 선택 배후에는 하늘의 하나님이 간섭하셨다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래와 이삭의 아내 리브가를 한 번 생각해 보십시다. 그들은 한결 같이 남편들이 자기들만 살겠다고 자신들은 남의 남자에게 붙들려 가도 ‘우리는 부부가 아니라고 말하라’ 하였던 그런 못난 남편들일지라도 감사하며 평생을 함께 함으로 이삭을 낳을 수 있었고 야곱과 에서를 나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대에 우리들에게 믿음이 필요하고 그 믿음은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고백하게 하고 그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삶의 등 뒤에서 우리들을 간섭하시고 도우신다는 사실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막연하게 우리들이 위로나 받자고 하는 말이 아니라 성경 전체를 통하여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삶을 간섭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 말씀을 통하여 이와 같은 사실을 다시 한 번 더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민14:27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을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 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창22:12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 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 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나님은 우리 눈에 보이지도 않는데도 이처럼 우리들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고 계시면서 우리들의 삶을 간섭하시고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순히 나 혼자 판단하고 결단하고 내 마음대로 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비록 내가 배우자를 택하고 부부가 함께 살면서 자손들을 생산하고 직장과 사업장을 만들어 돈을 벌어 살아간다 할지라도 그 배후에는 눈에도 안 보이는 하나님의 간섭하심과 섭리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순간도 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삶을 직접 챙기신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간에 우리는 그렇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산 사람이 바로 사도 바울이고 욥이었습니다. 그들은 삶의 등 뒤에 하나님께서 서 계심을 분명히 믿었기 때문에 슬프고 즐거운 모든 일을 통하여서 감사하며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이처럼 바울이나 욥과 같이 평생 통해 감사드리며 살고자 한다면 우리들의 삶을 하나님께서 친히 간섭하신다는 사실을 우선적으로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께 감사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들에게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주권사상을 믿는 신앙입니다.

 

고난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하는 엄청난 심판과 그들 후손들이 당하는 무서운 고난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 모든 심판과 고난은 하늘의 하나님이로부터 왔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이 당하는 고난은 거의 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특별하신 하나님의 뜻이 계시든, 아니면 우리들이 잘못을 저질러서 오는 심판이든 그 무엇이 되었든지간에 고난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오늘 본문 말씀이요 구약 성경의 위대한 인물 욥과 한나의 경우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당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이 그토록 하나님께 부르짖고 기도하여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시고 그들로 하여금 바로의 악정 밑에서 해방시켜 주었으나 그리고 더 좋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보장해 주셨으나 잠시 당하는 고난과 인간적인 현실을 믿음으로 극복하지 못한 까닭에 끝내는 하늘의 하나님까지도 원망하고 대적하다가 그렇게도 끔찍한 심판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이러한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께 힘을 다해 감사 드렸다면 하나님 앞에서나 인류 역사 앞에서 얼마나 놀라운 축복의 귀감이 될 수 있었겠습니까? 감사 대신 원망과 불평으로 일관했던 그들은 그렇게도 비참하게 망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고통 뒤에 서 계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 고통이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와 뜻으로 그들에게 주어졌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신앙의 자리에서 내려와 순수 인간의 자세로 하나님을 대하였다가 그렇게도 무서운 형벌을 받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역사적인 사건 앞에서 오늘 우리들이 배워야 할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당하게 되는 고통의 배후에는 하늘의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이를 위해서 다음 과 같은 말씀을 한 번 더 묵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삼상1:5-6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니 이는 그를 사랑함이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니 여호와께서 그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 므로그 대적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동하여 번민케 하더라

 

한나는 지금 남편 엘가나의 다른 여자 브닌나로 인하여 밥도 먹지 못할 정도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자신은 아이를 생산하지 못했고 첩으로 들어온 브닌나는 아이를 생산하였기 때문입니다. 한나의 입장에서는 남편도 브닌나도 다 미움의 대상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된 배후가 하늘의 하나님이셨다는 사실은 아무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때에 한나가 취한 선택을 보면 복 받을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기에서 문제를 어떻게 해결 했겠습니까?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문제의 요인을 남편 엘가나나 브닌나에게 두고 미움과 원한으로 그들을 대하였을 것입니다. 만약 한나가 오늘 우리들처럼 그러한 방법과 원한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려 했었다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도 그 가정과 결혼은 깨어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문제의 요인이 하나님으로부터 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문제를 들고 하나님께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처절한 고통을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시도록 간청하였습니다. 참으로 한나는 현명한 여인이었습니다. 정확하게 문제해결을 받을 수 있는 바른 그 길을 그녀는 선택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녀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는지 성경은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삼상1:19-20 그들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여호와 앞에 경배하고 돌아가서 라 마의 자기 집에 이르니라 엘가나가 그 아내 한나와 동침하매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한나가 잉태하고때가 이르매 아들 을 낳아 사무엘이라 이름하였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 였다 함이더라

 

이 얼마나 놀라운 기적입니까? 지금까지 한나는 아이를 잉태하지 못하므로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는 그 문제를 들고 사람에게 나아가지 아니하고 하나님께로 나아갔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도 정확한 해답을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원망이 아닌 믿음으로 고난의 원인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해결한 아름다운 케이스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우리들의 고난의 요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점검하고 하나님께로 나아가서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시도록 기도하고 기다리는 아름다운 심령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르시는 우리들의 고통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 중심으로 인생을 살면 안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낙심하고 절망하며 아우성을 치게 된 가장 근본적인 요인은 각 지파에서 1명씩 대표를 구성하고 12명으로 하여금 마지막 들어가야 할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와 보고한 내용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보고 받은 가나안 땅의 현실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민13:31-33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가로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 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 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 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 와 같았을 것이니라

 

이와 같은 보고를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만 대성통곡하고 말았습니다.

 

민14:1-3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백성이 곡하였더라 이스 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어 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 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그랬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들의 이와 같은 모습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사람의 판단으로 보았을 때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과 같이 망하지 않았던 여호수아와 갈렙의 의견을 한 번 들어 보십시다. 똑 같이 보고 듣고 왔는데도 그들은 전혀 다른 보고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민14:6-9 그 땅을 탐지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그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 일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 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 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 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 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똑 같은 모습을 똑 같이 보고 왔으나 10명과 이 두 사람의 차이는 하늘과 땅이었습니다. 무엇이 이렇게도 극명한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내었습니까?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사람을 보는 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을 보는 믿음이 이와 같은 서로 다른 극단을 만들어 놓았던 것입니다. 그 결과는 참으로 참담할 만큼 서로 다르게 나타났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사람을 보았던 그들은 다 죽었고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보았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살아서 그들을 인도하는 지도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들의 인생을 이처럼 사람의 눈으로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안 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우리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우리 인생의 모범이신 예수님께서는 과연 어떠한 상황에서 감사를 드렸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마11:25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 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 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지금 우리 예수님께서 드리신 감사를 보게 됩니다. 하지만 이 말씀 하나만 보면 우리 예수님께서 어떠한 상황에서 감사를 드리셨는지 잘 알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의 배경을 다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많은 이적과 기적을 베푸셨는데 이상하게도 거기에서 가장 열매가 나타나지 않아 예수님께서 그들을 엄청 심판하셨습니다.

 

마11:20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신 고을들이 회개치 아니하므로 그 때 에 책망하시되...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 배경은 예수님께서 가장 많은 권능을 베푸셨는데 열매는 가장 적었던 바로 그 때였습니다. 그랬습니다. 우리 예수님의 감사는 열매가 가장 없는 비참한 상황이었을 때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사람들이 보는 관점과 하나님께서 보시는 관점의 차이인 것입니다. 언제나 우리 인생들의 판단과 가치는 하나님께 미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관점에서 현실과 미래를 내다보고 무조건 감사드리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우리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이라는 그림을 너무나도 잘 압니다. 그 그림은 1491년 로마 교황청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 부탁하여 그린 벽화였습니다. 현재 이탈리아 밀라노에 소장되어 있는 이 그림은 장장 7년 동안 그려진 유명한 것입니다. 예수님과 11제자들의 실제와 비슷한 모델을 찾아 그들을 그리는데만 6년이 걸렸고 마지막 가룟 유다를 그리기 위해서 또 다시 1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가룟 유다의 모델을 구하기가 그리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로마 시장이 가장 흉악한 살인마들만 수용되어 있는 지하 감옥에서 모델을 찾을 수 있도록 특별한 기회를 주었습니다. 다빈치는 그 속으로 들어가 마침내 가룟 유다를 대신할 수 있는 모델을 찾아냈습니다. 그런데 그 모델이 다빈치를 보고 물었습니다. “선생님, 저를 모르시겠습니까?”, “누구신지? 전혀 모르겠는데요.” “몇 년 전 선생님께서 저를 예수님의 모델로 그리셨는데도 저를 모르시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생의 한계요 감사를 모르고 사는 인생의 결말인 것입니다. 어떻게 한 사람이 예수님의 모델도 되고 가룟유다의 모델도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인생은 결코 믿음의 대상이 될 수 없고 사람을 만족하게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감사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의 은총으로 구원을 받아야 제대로 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평생을 감사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도 하지만 그 길만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하나님의 은총을 덧입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과 같이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이 단순한 Tip을 가슴에 새기고 사는 날 동안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그런 멋들어진 심령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로서 감사의 달 11월이 저물어 갑니다. 감사의 달만 감사하는 자들이 되지 않도록 오늘 말씀을 품고 평생을 통해 감사하며 살아가는 멋진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자면 무엇보도다 먼저 우리들의 등 뒤에 하나님께서 서 계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교만하지도 않고 낙심하고 좌절하지도 않으며 묵묵히 하나님께 감사드릴 줄 아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당하는 숱한 인생의 고난이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주어진다는 사실도 또한 믿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고난을 통하여 사람을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께로 더 나아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가슴에 모신 신자로서 사람을 보지 말고 하나님을 보는 신령한 눈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언제나 여호수아와 갈렙을 생각하고 그렇게 다수에 휩싸이지 아니하고 소수라도 진리를 선택할 줄 아는 담대한 신앙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우리는 평생을 통해 감사하며 살 수 있는 멋쟁이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받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우리 모든 성도들은 이와 같은 준비로 감사제를 드리고 넘치는 축복을 누리시는 그런 멋진 성도들이 되시기를 좋으신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 멘

 

주후 2012년 11월 25일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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