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2일 주일낮 설교 (누구랑 함께 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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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Monday, 03 December 2012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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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랑 함께 하십니까?
12. 2, 2012
本文:요한복음6:66-71
說敎:崔仁根 牧師
지난 11월 27일(목요일) 대한민국 창원시에서 다섯 살짜리 어린 아들이 아빠보고 싶다고 아빠에게 데려달라고 울면서 엄마를 졸랐습니다. 지금 엄마랑 아빠는 이혼 수속을 밟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35살의 엄마는 가뜩이나 미운 아빠를 아들이 보고 싶다고 울면서 보채자 홧김에 사정없이 때렸습니다. 그런데 작은 아이는 그 매를 견디지 못하고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그 엄마는 가게에 가서 가방을 하나 사고 그 가방에다 죽은 아들과 떠오르지 말라고 큰 돌멩이 두 개를 동시에 넣고 버스를 타고 주남저수지에 가서 그 가방을 저수지에 던져 버렸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이것이 다시 떠올라 수사가 시작됐고 결국 이 여인이 범인으로 잡혔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말세라지만 다섯 살 난 자기 아들을 어떻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싶습니다. 앞으로 봐도 뒤로 봐도 지금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이 가까웠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정치적으로나 인간 정서적으로나 사람들의 가치관들을 보면 이 세상에 더 이상의 희망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요한복음 6장은 우리 예수님께서 기적을 베풀어 광야에서 굶주린 백성들 5천 명을 단숨에 먹이신 이야기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렇게 되자 사람들은 예수님을 찾아 산이든 바다든 인산인해를 이루며 따라다녔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 가지는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참 생명과 참 소망에 관해 자신을 중심으로 진정한 복음을 전파하자 다 입을 삐죽이며 돌아섰기 때문입니다.
요6:66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 구절은 “많이 물러가고”라고만 단순하게 기록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예수님과 같이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12제자들만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마지막 남은 제자들에게 물어보셨습니다.
요6:67 예수께서 열 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고 말입니다. 어쩌면 우리 주님의 이와 같은 심정이 오늘 우리 교회를 향하여 가지는 심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요즘 교인들은 ‘어느 교회에 가면 더 유익을 얻을 수 있을까?’ 하고 교회를 Shopping하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분명한 한 가지 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에 가는 것은 교회에서 무엇을 얻을까? 하는 바램이 아니라 이 땅에 오셔서 목숨까지 버리시고 세워주신 교회에서 내가 무엇을 주님께 바쳐드릴까? 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언제까지 목을 빼고 떡이나 얻어먹으러 쫓아다녔던 유대 광야의 가련한 백성들처럼 그렇게 육신만을 위해서 교회에 다니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이 종은 과연 “누구랑 함께 하십니까?” 라는 제목으로 이 시대에 우리는 과연 누구랑 함께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 그 해답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부디 말씀에 마음 귀를 기울이고 진정한 해답을 얻어 육신을 위해 떡을 구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예수님을 만나 영혼을 살리는 기적을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누구랑 함께 하십니까?
최근 조선일보 등 한국의 주요 일간지를 통해서 뭇매를 맞고 있는 교회들이 서울에 있어 ‘이게 마지막이구나!’ 하는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 교회들은 최근 교세를 불리기 위해 희한한 아이디어로 사람들을 유혹하였습니다. 한 대형교회는 고가의 프라이팬이나 전자제품을 내 걸고 교회에 오면 무조건 무료로 준다고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고 또 한 교회는 교회에 오면 한 사람당 5천원을 준다고 했다가 또한 “이 시대에 타락한 교회를 보라!”는 여론의 질타를 당하고 정식으로 사과를 하였습니다. 교회가 이처럼 예수님은 없고 오로지 돈으로 사람을 유혹하고 있으니 세상은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우리 예수님께서 묻고 계시는 것입니다.
요6:67 예수께서 열 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고 말입니다. 교회의 생명은 예배입니다. 누가 과연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릴 수 있습니까? 예수님을 가슴으로 영접하고 그 예수님께서 죄인 하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하셨는가를 믿음의 눈으로 보고 깨닫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만이 바른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어떻게 하든지 교회에 가서 유익이나 얻어보겠다고 하는 육신적인 마음이라면 어떻게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몸과 마음과 시간을 바쳐 예배드릴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하든지 교회에만 끌고 오려고 세상 사람들도 하지 아니하는 돈으로 유혹을 하고 있느니 과연 교회가 그렇게 해서 되겠습니까?
이 종이 한국에 가서 선배 목사님을 만나 들은 이야기 중에 탈북자 문제가 참으로 교회에서 심각한 수준을 넘어섰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탈북자들이 처음에는 불쌍하고 또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되겠다는 생각에 그들이 오면 우선적으로 그들에게 필요한 생활의 기본을 돕기 위해 적당한 돈을 지급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탈북자들이 그것을 알고 아예 노골적으로 우리들이 몇 명 그 교회에 갈 터이니 한 달에 얼마씩 주겠느냐? 고 흥정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절대로 끝까지 그 교회에 남아서 신앙생활로 영글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교회를 샤핑해서 천원이라도 더 주는 곳이 있다면 당장에 그리고 옮겨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에게 영적인 변화나 신앙의 진정한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경고합니다.
롬8:12-14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 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고 말입니다. 언제까지 우리는 육신의 떡만을 위하여서 육신적인 것을 교회에 와서 구하고 하나님 앞에 나와 구하겠습니까? 우리 예수님은 우리들의 영혼을 구하시기 위해 자신의 육신을 만신창이가 되도록 십자가에까지 내 놓으셨는데 우리는 그런 주님 앞에서 언제까지 육신적인 것만을 추구하며 교회에 다녀야 하겠습니까? 그래서 우리 주님은 단도직입적으로 다음과 같은 말씀을 주셨습니다.
마6:33 너희는 먼저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 희에게 더하시리라
고 말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삶의 우선순위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육신적인 만족을 얻게 되면 그 다음에 영적으로 만족을 주시겠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먼저 영적으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면 그 다음에 육신적인 것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과연 누구와 함께 남은 인생을 걸어가야 하겠는지? 결단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한 채 교회에만 다니는 것은 디베랴 바닷가에서 떡만 먹고 배불렀던 어리석은 사람들처럼 결국은 생명의 주님을 떠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비장한 각오로 새롭게 주님을 만나 그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진정 이 시대의 사명자로 거듭나야 하겠습니다. 이때가 바로 마지막 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은 우리 주님과 함께 동행하기 위해 다음과 비장한 각오를 마음 판에 새겨야 하겠습니다.
우리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우리는 지난 11월 6일 미국 대통령 선거와 우리 워싱턴주 현안들을 결정하는 중요한 투표를 하였습니다. 우리 기독교회연합회에서도 이를 위해 오랫동안 홍보하고 각 교회의 도움을 요청하며 투표를 독려하기도 하고 각 개인들의 사인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끔찍하게 나왔습니다. 52:48로 동성결혼이 합법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었는가 했더니 동성결혼 합법화를 위해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 게이츠를 비롯해서 돈께나 있는 사람들이 천문학적인 돈을 내 놓고 이 법안이 통과 되도록 후원하였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미국의 투표는 불행하게도 누가 선거자금을 많이 확보하느냐에 따라 당락이 결정되어왔습니다. 이번 재선에 성공한 오바마 역시 롬니보다 선거자금 확보에 앞섰기 때문에 틀림없이 승리할 것이라고 모두들 점쳐 왔었는데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돈의 힘이 곧 선거의 힘이라는 공식이 성립된 실제적인 사례입니다. 이렇듯 악을 위해서도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소중한 재산을 내어놓고 협력하는데 선을 위해서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무엇입니까? 미국의 미래와 우리 자손들의 미래를 위해서도 우리는 말로만 외치고 있을 뿐 실제적으로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며 행동으로 돕는데 미흡했다는 지적입니다. 그랬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명령하셨습니다. 누가 예수님을 따를 것이며 그렇게 예수님을 쫓으려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분명한 해답을 제공해 주셨습니다.
마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 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고 말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이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려면 한 가지 분명한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스스로가 죽고 하나님의 의가 살아나도록 희생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끝까지 자기 유익만 추구하지 교회의 유익이나 하나님의 영광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순하게 교회의 대청소 때만 보아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돈 안 내고 볼링하고 놀자 하면 엄청나게 많이 보여도 시간을 만들어 주님의 몸된 교회를 단장하여 교회의 주인이시고 머리되신 예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자 하면 아무도 나오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람들보고 주님을 위해 헌신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몸과 시간과 재산을 바칩시다! 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마음 귀를 열고 우리 주님의 명령을 들어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으라”는 말씀을 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결국 모든 것을 잃고 마는 것입니다. 미국의 대통령이 일어나 “동성결혼은 좋은 것이다”고 선언하고 있는 이 마당에 우리들이 아무리 “그것은 나쁜 것입니다. 성경이 그것을 죄악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고 이친들 악한 세상 사람들에게 대통령보다 더 어필할 수 있겠습니까? 오바마가 그것이 악이고 성경이 금하고 나쁜 것이라는 것을 모르겠습니까? 자기도 딸들을 키우고 있는 아버지요 부모인데 말입니다. 그런데도 왜 그는 그렇게 했을까요? 우리 주님의 명령을 듣지 못해서입니다.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기 싫어서 그런 겁니다. 오로지 어떻게 하든지 대통령에 재선되어야 한다는 인간적 욕심이 앞섰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과 동행하지 못하는 사람은 이렇게 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 결과 선거가 끝나고 한 달도 안 되었는데 지난 금요일에는 시애틀에서 140쌍의 280명의 동성들이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것도 은밀한 장소가 아닌 시애틀 시티 홀에서 말입니다. 그리고 다운타운의 대형 극장을 빌려 대대적인 결혼 파티를 열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것을 가만히 쳐다만 보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악은 점점 더 연합하여 성경도 하나님도 무너뜨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정면 대치하면서도 자신의 재선만을 위해 동성혼도 합헌이라고 선포하고 나선 오바마에게 The Freedom from Religion Foundation(종교로부터의 자유 재단)이라는 단체가 강력하게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미국은 더 이상 기독교국가가 아니다. 그러므로 이번에 재선 취임을 하는 2013년 1월 21일에는 절대로 성경에 손을 올려놓고 선서하지 말라. 그리고 선서에 하나님이라는 말을 반드시 빼라.”는 것입니다. “이제 그대는 재선에 성공했고 더는 대통령 선거에 더 나올 필요가 없으므로 세속적인 미국인들을 끌어안아야 한다.”고 엄청난 압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이와 같은 자신들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재산을 다 내어 놓고 날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옳은 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인데도 우리는 오로지 말로만 성토할 뿐 시간과 재산과 몸을 내 놓고 저들처럼 헌신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떻게 그들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주님은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네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라!” 말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실 때 아름다운 외모도 귀하게 주셨지만 아름다운 외모가 더욱 빛이 날 수 있도록 내면에 “마음”이라는 아주 소중한 선물을 주셨습니다. 이 마음이라는 곳에 우리들의 신앙도 담기고 따뜻한 사랑도 담기고 선한 목적도 담기게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마음에서 진정한 생명이 자라도록 해 두셨습니다.
잠4:23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께서도 명령하시기를 이와 같은 소중한 마음에 근심이 담기지 않도록 하라고 하셨습니다.
요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고 말입니다. 이처럼 우리들이 주님께서 주신 소중한 말씀,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멋들어진 삶을 살아가려면 이처럼 소중한 마음에 근심이 담기지 않고 하나님의 값진 말씀들이 담기고 그 말씀들이 힘이 되고 능력이 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2012년도 한 해를 “성경 말씀이 해답입니다”는 표어를 내걸고 부지런히 말씀을 읽고 듣고 배우는데 헌신해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들의 마음을 예수님의 마음이 되도록 변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부탁한 말씀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빌2:5-8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 자가에 죽으심이라
그렇습니다. 우리 마음에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하겠습니다. 십자가에라도 올라가 죽으시면서 까지도 복종하시던 우리 주님의 그 복종의 마음을 품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비장한 마음으로 무장할 때 우리는 그 어떤 악한 세력들 앞에서도 이길 수 있는 담력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요한복음을 기록했던 사도 요한은 마지막 아마겟돈 전쟁에서 승리하는 사람들에 관해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기록을 남겨 두었습니다.
계16:15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 다
라고 말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않는 자가 복이 있고 승리하는 성도들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옷은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어린 양 예수님을 맞이할 때 입는 세마포 흰옷이니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죄 용서를 받고 깨끗이 씻음 받은 성도들만 입을 수 있는 의의 새 옷인 것입니다. 누가 과연 이처럼 깨끗한 의의 옷으로 단장하고 자신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않는 복된 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눈에도 보이지 않는 속사람의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으로 단장되어 있는 성도들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시대는 불순종의 시대요 불신앙의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결코 진리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앞서 말씀 드린 대로 이 시대의 교인들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유익만을 찾아 교회를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자신들에게 유익이 없거나 찔리거나 마음이 상하면 가차 없이 교회를 떠나고 예수님을 떠납니다. 이러한 자들에게 예수님의 마음이 있겠습니까? 자기 자신을 희생시킬 용기가 있겠습니까? 전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우리 예수님의 복종하시던 마음, 죽음이라도 불사하고 오로지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이루어 드리시던 그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 길만이 의의 흰옷을 입고 마지막 전쟁 아마겟돈을 이기는 승리자가 될 수 있는 외길이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영생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떡을 먹고 배불렀던 그 모든 사람들이 다 예수님을 떠나갔습니다. 더 이상 그들의 육신에 예수님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편단하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인생들의 현주소입니다. 유익이 있으면 벌 떼 처럼 달라붙어도 유익이 없다 싶으면 순식간에 떠나가는 현실주의자들이 바로 오늘 인생들의 모습입니다. 그렇게 주님의 떡을 먹고 왕으로 추대하겠다고 따르던 그들이 생명에 관한 진정한 진리를 선포하시자 그만 다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 때의 상황을 다음 말씀에서 잠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요6:60-63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 냐 한대 예수께서 스스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수군거리는 줄 아시고 가라사대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그러면 너희가 인 자의 이전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볼 것 같으면 어찌 하려느냐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이 짧은 한 말씀만 보아도 그들과 예수님의 관심이 서로 다는 곳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육신적인 것이었고 예수님의 관심은 그들의 영혼에 관한 것이요 생명에 관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남은 열 두 제다들에게 물어 보셨습니다. “너희들도 가려느냐?”고 말입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참으로 놀라운 대답을 하여 예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해 드렸습니다.
요6: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가오리이까
라고 말입니다. 그랬습니다. 다행히도 베드로는 그의 관심사를 주님께서 원하시는 그대로 “영생”에 두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의 관심사도 바로 이렇게 “영생”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 누구도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지 못합니다.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우리는 다 죽어야 합니다. 그 때, 임종 시에 관심을 갖지 말고 지금부터 우리들의 영원한 생명 곧 영생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바로 이 영생을 우리들에게 주시려고 우리 주님께서 하늘 보좌도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셨고 또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영생을 확보해 놓지 못한 삶은 이 세상에서 그 무엇을 누린들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 등장했던 사람들을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예수님이 더 이상 별 볼 일이 없다고 판단하고 떠나갔던 사람들도 있고 그래도 예수님이 영생의 근본이시니 결코 떠날 수 없다고 끝까지 주님과 함께 했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선택하였던지간에 오늘 우리들이 생각해 보면 지금은 다 이 땅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선택했던 그 사람들이 참으로 현명하였다는 결론을 얻게 됩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작은 유익보다 영원한 생명을 선택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지금은 육신적으로 살아서 어떻게 하든지간에 육신의 유익을 추구하며 살지만 세월이 조금 더 지나고 나면 지금 우리들이 선택했던 그 모든 육신적인 것들이 과연 올바른 선택이었는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적인 것보다는 영적인 생명을 취하는 것이 훨씬 더 낫다는 결론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혜가 필요하고 주님의 도우심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게 사람을 믿고 의지하고 사랑하고 그 사람 때문에 행복하고 그 사람 때문에 상처입지만 그 사람은 결국 단 한 사람 예외도 없이 우리 곁을 떠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들과 끝까지 함께 해 주실 분은 이 땅에서 오직 한 분 뿐이십니다. 그 분이 바로 임마누엘로 우리 곁에 성탄하신 예수님이십니다. 부디 그 존귀하신 분과 함께 남은 삶을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그 분이 바로 영생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성탄의 달 12월을 맞았습니다. 형식과 연래행사로서의 성탄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예수님과 함께하는 성탄절이 될 수 있도록 말씀을 준비해 보았습니다. 이 마지막 때에 우리는 우리들에게 영생을 주시려고 친히 구유에 나신 예수님과 함께 하는 진정한 신앙생활을 회복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무엇보다도 주님께서 친히 제시해 주신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의 근본을 좇아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우리 스스로를 부인하고 주님께서 주신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마음의 근본을 바꾸고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주님의 마음을 품게 되면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진정한 목적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영생을 취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셨던 것입니다. 부디 이 복된 성탄의 계절에 주님과 함께 하는 귀한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마음을 모아 하나님께 감사와 예배를 올려드리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은 이와 같은 믿음의 변화로 하나님께는 영광을, 사는 날 동안에는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시는 그런 멋진 성도들이 되시기를 좋으신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 멘
주후 2012년 12월 2일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