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16일 주일낮 설교 (화평이 해답입니다.)
- Details
-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Tuesday, 18 December 2012 09:01
- Hits: 1989
화평이 해답입니다
12. 16, 2012
本文:마태복음5:9
說敎:崔仁根牧師
지난 12월 14일(금요일) 미국 커네티것주 조용한 센디훅 초등학교에서 총기를 든 범인이 들어와 유치원선생이던 자기 어머니를 총으로 쏴죽이고 어린 학생들과 교직원들에게 총기를 난사에 어린 아이들과 어른 27명이 죽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20살의 범인 에덤 란자는 학교에 오기 전에 먼저 아버지부터 사살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왜 그랬는지? 정확한 원인은 아직도 알 수 없으나 부모부터 먼저 사살한 것으로 보아 가정적으로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아무리 그래도 남도 아닌 부모님을 사살하고 순진 무궁한 어린 아이들을 총으로 쏴 죽이는 이런 정도의 인간은 아직 이 땅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은 지난 2007년 버지니아택에서 한인 조승희가 32명을 사살한 사건 이후 미국 내 최악의 총기 흉기난동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이 보다 앞서 지난 주 초에는 오래건주 포틀랜드 몰에서도 범인이 총기를 난사에 샤핑하던 남자와 여자가 그 자리에서 숨지고 젊은 여자 한 사람은 중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 하는 끔찍한 총기 사건이 발생한 바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경고하셨던바 총으로 일어나는 자는 총으로 망한다는 극명한 현실을 지금 우리는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체험하면서 전 미국이 이처럼 순전한 어린 아이들을 대량으로 학살한 사건에 큰 충격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진정한 평화는 없는 것 같습니다. 말세지 말을 맞아 인간들의 가슴에서 사랑이 식어지고 하나님의 말씀이 사라지고 오로지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철저한 이기주의로 팽배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때에 하늘 보좌도 버리시고 구유에까지 낮아지셨던 우리 주님께서 진정 복 받은 사람이 누구인지를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마5:9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아기 예수님께서 이 땅에 탄생하신 거룩한 성탄주일을 한 주간 앞두고 오늘은 이처럼 이 땅에 평화를 주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한 번뿐인 우리 인생을 따뜻한 사랑을 가슴에 안고 예수님처럼 그렇게 모든 사람들에게 평화를 안겨 주는 그런 멋진 Peacemaker(화평케 하는 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그렇게 하시려고 우리 예수님은 그렇게도 잔인한 악당들에게 자신의 소중한 생명도 내 놓으시려고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처럼 아름다운 예수님의 정신인 화평케 하는 자가 될 수 있겠는지? 그리고 그렇게 피스메이커로 살면 정녕 하나님은 어떠한 상급으로 보상해 주시는지? 함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분명하고도 명쾌한 해답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화평이 해답입니다
우리 주변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화평을 깨는 사람은 볼 수 있으나 화평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피스메이커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교회에 문제가 있어 양편으로 갈라져 싸우는 곳에나 부부가 문제가 있어 서로 다투며 돌아서 있는 곳을 중재하려고 들어가 보면 결코 타협점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조금도 양보 하려 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의 유익과 권리만 찾겠다고 핏대를 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연 이러한 모습을 보시는 우리 주님의 마음은 어떠할까요?
인류 최초로 이방인으로서 복음을 받고 성령을 받았던 고넬료의 집으로 부름을 받고 찾아가 진리의 말씀을 전하며 부흥회를 해 주었던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행10:36-38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 곧 요한이 그 세례를 반포한 후에 갈릴리에서 시작되어 온 유대에 두루 전파된 그것을 너희도 알거니 와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 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 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고 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도 베드로의 가슴에 있는 예수님은 화평의 대명사였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께서 전하신 복음은 화평의 복음이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누가 뭐래도 예수님의 제자요 예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한 곳에서라도 우리 주님의 이처럼 소중한 화평이 묻어나고 그렇게 화평을 만들 줄 아는 능력 있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로지 자기 자신의 유익만을 추구하는 그런 작은 자에서 탈피하여 소중한 인생을 이웃과 화평을 만드는데 바치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 받는 그런 멋진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피스메이커가 될 수 있는지? 그 방도를 한 번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말씀으로 자신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이 땅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70억이 넘지만 이를 크게 나누면 단 두 가지 사람들로 나누어집니다. 하나는 육신적인 사람이고 또 다른 하나는 영적인 사람입니다. 육신적인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 곧 이웃이 없습니다. 오직 자기 자신의 유익만을 생각합니다. 우리는 며칠 전에 북한의 김정은이가 로켓을 발사하여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사건을 잘 알고 있습니다. 유엔 안보리의 제재를 받고 있는 중이며 전 세계가 하지 말라고 만류하고 있는 가운데 보라는 듯 로켓을 쏴 올렸습니다. 문제는 세계에서 가장 극심한 가난으로 허덕이는 빈국이면서 아무 소용도 없는 그것 하나 쏴 올려서 자신을 과시하려는 망상에 젖어 9억불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태워버린 것입니다. 그것으로 굶주리는 불쌍한 주민들을 먹였다면 단 한 사람도 배고파 죽는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육신적인 인간의 가장 대표적인 모습입니다. 그러면 영적인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육신적인 사람을 정 반대로 보면 이해가 됩니다. 자신의 유익을 버리고 이웃의 유익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할 줄 아는 사람이 바로 영적인 사람입니다. 이런 영적인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된 자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자요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입니다. 영적인 사람의 대표적인 인물인 사도 요한은 그래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남겨 두었습니다.
요일4: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영적인 사람은 이처럼 사랑을 호소하는 사랑의 사람입니다. 그리고 영적인 사람은 그 속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입니다.
롬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 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게 가슴 속에 하나님의 영이 있는 사람은 지남철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끌어들이고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끌려들어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화평케 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시34:14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지어다
벧전3:11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의 사람 즉, 영의 사람이 되면 이처럼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화평을 이 땅에 나누며 사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아시스의 성자 프란체스코였습니다. 그는 오로지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기도하였습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상처가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심게 하소서
위로 받기보다는 위로하며 이해 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 받기보다는 사랑하며
자기를 온전히 줌으로서 영생을 믿기 때문이니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고 써 주소서
라고 말입니다. 어떻게 이런 삶이 가능할 수 있겠습니까? 그 비결은 오직 하나말씀으로 무장하고 말씀의 인도하심을 받으면 가능하게 됩니다. 우리 모두 그래서 말씀의 사람, 영적인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들도 이처럼 아름다운 피스메이커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들에게 악을 행하고 고통을 심어주고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 준 사람과 화평을 만들어 갈 수 있을까요? 천진난만하게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내 사랑하는 아들딸에게 잔인하게 총부리를 겨누고 대적을 죽이듯 사살한 그런 잔인한 살인마를 용서할 수 있을까요? 이렇듯 용서가 먼저 선험되지 않는다면 결코 그런 인간과 화평을 나눌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다. 하늘과 땅을 만드시고 우리들을 구원하시러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잔인한 인간들은 마치 살인마라도 잡는 것처럼 칼과 몽치를 들고 와서 예수님을 잡아 끌고 갔습니다. 그리곤 말로 다 형언할 수 없는 모욕과 멸시와 천대를 가했습니다. 그리고 끝내는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십자가에 못을 박아 처형하였습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 주님께서 하신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와 같은 잔인한 살인마들을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눅23:34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 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게도 심각한 고통의 순간에도 죄인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시던 우리 주님의 용서는 참으로 오늘 우리들이 본받아야 할 신앙의 근본입니다. 그랬습니다. 이 땅에 화평을 주시기 위해 모든 것을 다 포기하시고 이 땅에 내려오셨던 우리 주님은 이처럼 처절하게 죄인들을 용서하시므로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 인생들을 화평의 복음으로 하나님과 화해를 시켜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이와 같은 우리 주님의 화평의 정신을 이어 받아 원수들을 용서하고 사랑으로 화평을 만들어 가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고 손양원 목사님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여수반란 사건 때 무장공비가 손 목사님의 두 아들 동인이와 동신이를 총으로 쏴 죽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도 잔인한 살인마를 용서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를 양자로 삼았습니다. 그의 딸 동희가 아버지에게 원망어린 투정을 했습니다. “왜 신앙생활을 그렇게 별나게 하십니까? 꼭 그렇게 사랑하는 오빠들을 죽인 살인마를 오빠라고 부르도록 해야 하겠습니까?” 하고 말입니다. 그 때 손 목사님은 어린 딸에게 이렇게 타일렀다고 합니다. “성경에 보면 원수를 용서하라고만 하지 않고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였지 않느냐? 그렇게 원수를 사랑하는 길은 양자로 삼는 길밖에 없는 것이란다.”라고 말입니다.
과연 누가 이 세상에서 이토록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순종하며 원수를 사랑하며 화평을 도모하는 사람이 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을 닮아 원수라도 품고 용서하며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 원수를 사랑하게 될 때 비로소 화평의 기적을 만들어 놓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그렇게 하라고 우리 주님께서 하늘 보좌도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셔서 그토록 화평의 모범을 몸소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연인과의 특별한 이벤트도, 가족과의 저녁 약속도 없는 외로운 솔로들은 크리스마스 때문에 ‘심리적 압박’을 겪는다고 합니다. 미혼남녀 3425명(남성 1805명, 여성 1620명) 중 55.4%가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유난히 외롭고 우울하다”고 부정적 기분을 토로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누구든 만나기만 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건 아닙니다. 외로운 크리스마스에도 ‘비호감 친구’는 만나기 싫은 법이기 때문입니다.지난 12월 14일 소셜데이팅 업체인 이츄는 ‘크리스마스를 혼자 보내더라도 함께 하고 싶지 않은 비호감 솔로친구’에 대해 조사한 결과, “지갑에 자물쇠 채운 친구”라는 답이 38.6%로 1위를 차지했다고 밝혔습니다. 아무리 외로와도 구두쇠 같은 사람하고는 함께 하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화평을 만들어 가는 가장 중요한 기본 정신은 나의 유익이 아닌 남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의 유익을 구하게 되면 이웃을 돌아 볼 여유가 없어집니다. 하지만 나의 유익을 포기하게 될 때 비로소 이웃의 유익을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이처럼 남의 유익을 먼저 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자면 생활 속에서 자신의 유익을 과감하게 내려놓을 줄 아는 훈련을 쌓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창세기에서 이처럼 자신의 유익을 내려놓고 서로간의 화평을 중시하던 아브라함을 만나보게 됩니다. 오늘날도 재산을 앞에 놓고 서로 양보하며 화평을 만들어 가는 사람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부자라 할 수 있는 이건희씨 집안의 재산 싸움을 보면서 어렵지 않게 이와 같은 형국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도 돈이 넘쳐나는 재벌들이 서로 돈을 더 가지겠다고 이건희씨와 그 형님이 법정에까지 가면서까지 재산 싸움을 하는 것을 보면 인간의 욕심이 어디까지인지를 짐작해 보게 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재산이 늘어나 조카 롯과 다툼이 발생하게 되자 미련 없이 재산을 나누어 조카에게 떼 주고 원하는 땅을 먼저 차지하라고 양보하였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그는 외롭고 쓸쓸히 박토를 안고 돌아섭니다. 이런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그렇게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닙니다. 화평을 위해 손해를 보겠다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창13:8-11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 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것이 화평을 만드는 자의 가장 근본적인 모습입니다. 손해를 보고 무엇인가 가슴에 맺히는 것이 있어도 참고 인내하는 모습이 바로 그러합니다. 그동안 아브라함은 자식 하나 없이 조카를 친 아들처럼 그렇게 섬기고 사랑하고 풍부하도록 돌봐 주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조카 롯이 늙으신 삼촌에게 먼저 선택권을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일언반구도 없이 소돔 땅을 택하고 먼저 삼촌을 떠나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브라함도 사람인데 왜 서운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성경 그 어디를 보아도 아브라함이 롯에 대해 서운한 마음을 가지거나 미운 마음을 가졌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만큼 아브라함은 화평을 우선시 하였고 인간적인 욕심이나 미움을 가슴에 품지 않았다는 반증일 것입니다. 그랬습니다. 화평은 말은 쉽지만 이루기는 그렇게도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화평을 만드는 피스메이커가 되기를 원한다면 마음속에 욕심을 던져버려야 합니다. 넓은 관용을 가지고 육신적인 기득권을 포기하여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화평을 얻게 되는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화평케하는 자가 받을 복
우리 예수님께서 이렇게 화평케 하는 자들을 위해 놀라운 축복 하나를 준비해 두셨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 받으리라”는 것입니다.
마5:9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참으로 이는 놀라운 축복입니다. 이 세상에 그 누구도 줄 수 없는 그런 놀라운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면 실제적으로 어떤 축복을 누리게 될까요? 그것은 이 땅에 있는 우리들의 주변을 살펴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이건희씨의 아들은 이재용씨입니다. 그는 아버지가 삼성의 회장이므로 미국까지 와서 유학을 하고 최고의 환경 속에서 최고의 경영수업을 받은 후 삼성의 후계자로 이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혹자는 말합니다. “삼성가의 사람들은 이 세상의 대통령보다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산다." 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만약 하늘의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면 그 누리는 축복이 어떠하겠습니까? 당장에 하나님의 그 놀라운 능력을 맛보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임재하심으로 만사형통하게 될 것이며 천국의 주인이신 하나님 곁으로 갔을 때는 하늘의 모든 것들을 상속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불행한 것은 어리석은 인생들이 오로지 육신에 젖어 있으므로 말로 다 형언할 수 없는 신령한 축복에 관한 것을 제대로 인식조차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 예수님께서 친히 보장해 주신 축복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므로 이에 대한 상당한 역사가 숨어 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다 주님께서 친히 보장하신 이 놀라운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라도 사는 날 동안 피스메이커가 되도록 최선을 다 해야 하겠습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성탄의 달 12월의 세 번째 주일을 맞았습니다. 성탄은 우리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원수 된 우리 인생들을 하나님과 화평케 하려고 몸으로 희생하시기 위해 친히 구주께서 이 땅에 오신 계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의 최고 최대의 성탄의 사명을 화평케 하는 것입니다. 그 주님을 따르고 섬기는 우리 모든 성도들도 마땅히 주님의 그 정성과 사랑을 배워서 화평케 하는 삶을 살도록 최선을 다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몇 번 다짐하고 힘쓴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의 근본이 육에서 영으로 바뀌어야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신령한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을 하여야 하며 생활 속에서 늘 욕심을 떠나 이웃을 사랑하는 가슴이 따뜻한 사람으로 변화를 입어야만 합니다. 이를 위해서 장기적으로 예수님의 사람이 되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변화된 사람을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실제적으로 이처럼 화평을 만들어 가는 사람이라면 예수님께서 친히 보장해 주신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객관적인 증거를 얻기 위해서라도 화평을 만들어 가는 피스메이커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미움과 다툼이 가득한 증오의 이 세상을 주님의 제자된 우리들이 변화를 만들고 평화를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그렇게 하라고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 주셨고 우리 주님은 친히 그 모진 십자가도 지셨던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받는 우리 모든 복된 심령들은 오로지 삶 속에서 말씀이 실천되는 피스메이커로 우뚝 설 수 있기를 좋으신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 멘
주후 2012년 12월 16일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