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6일 주일낮 설교 (성령님이 능력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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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Tuesday, 08 January 2013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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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이 능력입니다!
신년예배
1. 6, 2013
本文:사도행전2:37-47
說敎:崔仁根牧師
사람의 능력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요? 참으로 놀라운 현대 기술 앞에 우리는 스스로 무기력하고 연약함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손에 손에 들려 있는 스마트폰은 사용이 까다롭고 어려워 아예 살 엄두조차 못내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 종도 이 전화를 아예 사지 않으려고 했었으니까요. 그리고 그 전화를 손에 넣고 거의 일 주일은 꼬박 그 전화기에 매달리며 배워야만 간신히 기본적인 기능을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아무 것도 없는 것에서 그것을 만들어 낸 사람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요? 같은 사람이면서도 상상을 초월하는 이와 같은 기술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하늘의 하나님은 과연 어느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계실까요? 여기에서 우리는 오늘 무능한 채로 이 세상을 허비하며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언제 우리들에게 새로운 한 해가 다시 오지 못할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배워야 하고 노력해야 하고 남들처럼 그렇게 능력 있게 이 세상을 정복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올 한 해는 이와 같은 우리들의 삶의 당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고 함께 신선한 변화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말씀을 준비해 보았습니다. 무능함을 자랑하며 살 그렇게 여유 있는 삶이 아니라는 현실을 직시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도태하고 뒤쳐진 사람은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우리 모두 최선을 다해 하나님께서 누구에게나 일반은총으로 주신 24시간의 값진 공간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들에게 능력이 없다면 무한한 능력을 보유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으면 되니까 말입니다. 그래서 2013년도 우리 시애틀빌립보장로교회의 표어를 “성령님이 능력입니다!”로 정하였습니다. 함께 마음 귀를 모으고 능력의 성령님이 어떻게 우리들의 삶에 역사해 주시는지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성령님이 능력입니다!
우리는 복음서의 모든 마지막 부분에서 안타까운 제자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3년씩이나 주님과 함께 살았고 배웠고 보았던 사람들인데도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되자 엄청난 두려움과 무력감에 빠져 저마다 원점으로 되돌아가 초라하게 생활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그들은 인생의 본질이 무엇인지?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말았습니다. 문을 걸어 잠그고 숨어서 불안에 떨고 있던 그들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 나타나시자 유령인 줄 알고 혼비백산했던 그들의 모습은 차라리 불쌍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했던 그들이 사도행전으로 넘어오면서 전혀 다른 사람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 잔인하던 유대인들 앞에 당당하게 서서 그들을 살인마로 몰아붙이고 “너희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우리 예수님을 하늘의 하나님께서 친히 살려내셨다.”고 외칠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행2:23-24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대로 내어준바 되었거늘 너희 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 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전에는 그들을 보기만 해도 도망갔던 그들이 지금은 그들 앞에 서서 당당하게 이처럼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막연하게 외치고 만 것이 아니라 그렇게도 잔인하던 그들을 굴복시켜 항복하게 하고 예수님의 사람들이 되도록 변화를 시켰다는 것입니다.
행2:40-42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 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어떻게 이와 같은 놀라운 역사가 가능할 수 있었을까요? 바로 이것이 오늘 우리들이 배우고자 하는 능력입니다. 이것이 바로 올 한 해 동안 우리들이 닮아가고 변해가야 할 소망입니다. 우리 힘으로는 전혀 불가능한 그것을 하늘의 하나님은 얼마든지 가능하게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능력 그 자체입니다
사도행전을 다른 이름으로는 성령행전이라고 부릅니다. 그만큼 성령님의 놀라운 능력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서도 사도행전은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시작하며 전체 내용의 서론 격으로 선포해 주고 있습니다.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예루살렘과 온 유대 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고 말입니다. 성령님이 임하시게 되면 우리가 권능을 받게 된다고 선언한 놀라운 말씀입니다. 권능이 무엇입니까? 권세와 능력입니다. 이처럼 놀라운 권세와 능력이 어디에서 온다고 하십니까? 바로 성령님으로부터 온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은 그 자체가 엄청난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신구약성경에서 창세기 1:1의 말씀을 믿지 못하면 성경전체를 믿지 못하는 것처럼 사도행전에서 이와 같은 성령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면 사도행전 전체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를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사도행전은 성령님의 능력으로부터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기록된 능력이라는 말은 원래 δυναμιs(듀나미스)로서 ‘엄청난 힘’과 ‘기적’을 일컬을 때 사용되어지는 말입니다. 그래서 영어의 dynamite가 바로 이 헬라어의 듀나미스에서 왔던 것입니다. 이처럼 엄청난 능력이 바로 성령님으로부터 온다는 말씀입니다. 성령님의 능력은 남자를 모르는 처녀의 몸에서 예수님께서 잉태되도록 역사하실 정도입니다. 이는 거의 인간의 이성과 경험으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런 엄청난 것입니다. 우리 모두 희망찬 2013년 새해에는 이와 같은 놀라운 능력을 덧입기를 소망합니다. 그렇다면 성령님의 이처럼 놀라운 능력이 구체적으로 우리들에게 어떻게 임하고 나타나는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성령님은 위로의 능력으로 우리들에게 다가오십니다
지난 3일 목요일 밤에 호주에서 걸려 온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호주에는 조카가 살고 있기에 새해 인사를 하는가 보다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기본적인 새해 인사와 덕담이 끝나자 말자 청천병력과도 같은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아버지가 말기 암이랍니다.” 그의 아버지는 바로 제 동생입니다. 하나 밖에 없는 남동생이 말기 암이라니! 그것도 다른 곳으로 이미 전이가 되어 매우 심각한 상태라니! 새해에 듣는 소식치고는 너무나도 끔찍한 것이었습니다. 그 동생은 아무도 믿지 않던 집안에서 온갖 핍박과 서러움을 받으며 이 종이 신학을 하는 것을 두 눈으로 본 증인입니다. 집안 모두가 날 미워하고 핍박하고 욕해도 그 동생은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동생이 차마 형을 욕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라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동생은 이 종을 보고 감동을 받아 저도 믿고 이 종을 따라 신학대학으로 가서 목사가 된 것입니다. 평생을 충청북도 제천 시골교회에서 가난한 성도들과 함께 힘들게 목회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니 참으로 마음 아프고 가슴이 씨립니다. 나도 이렇게 아픈데 본인은 얼마나 충격이고 또한 마음이 아플까 싶어 그것이 또 다른 아픔이 되어 고통스럽습니다. 이미 고인이 되신 고 옥성호집사님께서 뜻밖에도 병원에서 ‘말기폐암입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아내도 아들과 딸도 다 눈에 보이지 않고 그저 머리가 하얗게 비어지더라.”고 하시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하지만 옥집사님은 바로 그날 저녁에 수요예배에 출석하면서 믿음으로 자신을 다잡고 천국 가는 순간까지 평안하게 천국을 소망하는 놀라운 역사를 이 땅에 남기고 가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놀라운 변화였던 것입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요? 성령님이 우리 마음에 찾아오시면 이렇게 가능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성령님을 다른 이름으로는 “保惠師(보혜사)”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요14:26-27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 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 리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님은 그 엄청난 능력으로 우리들을 찾아오셔서 견딜 수 없이 아픈 마음을 평안하게 인도해 주십니다. 그렇게도 불안한 우리들의 삶을 안전하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험한 이 세상에서 끊임없이 놀라고 다치고 상처 입은 우리들의 삶에 성령님을 모셔야 합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줄 수 없는 새로운 평안을 우리 성령님은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복된 한 해를 이처럼 소중하신 성령님과 함께 평안으로 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성령님은 우리들을 도와주십니다
험한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꼭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음을 체험하게 됩니다. 하지만 마땅한 도움을 제 때에 받지 못해 인생이 슬프고 고통스러우며 끝내는 소중한 생명을 잃게 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오죽하면 먼 산을 바라보며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하며 탄식한 시인이 있었겠습니까?
시121:1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이 삶 속에서 체험하고 있는 바와 같이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청할 대상도 도와 줄 사람도 이제는 만나기 어렵습니다.
최근 인도에서 일어난 한 사건이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고 모든 매스컴을 통해 큰 비난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버스를 타고 귀가하던 한 소녀가 버스 안에서 집단으로 성폭행을 당하고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치료 중 결국 숨진 사건이 바로 그것입니다. 버스 안에는 틀림없이 다른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운전수도 있고 다른 승객들도 있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한 여린 소녀가 집단 성폭행을 당해 목숨을 잃을 정도가 될 때까지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는 사실이 세계적인 질타를 받은 것입니다. 이것이 인도에서만 있는 일이 아닙니다. 지난 달 뉴욕지하철 역에서 일어났던 한인 사망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선로에 떨어진 노인이 버둥대고 기어 올라오려고 그렇게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도 어느 한 사람 손 내밀어 도와주는 사림이 없었습니다. 그는 결국은 혼자서 올라오려고 버둥대다가 달려오는 기차에 치어 죽고 말았습니다. 실로 이와 같은 고통을 당해 본 사람이라면 이 시인의 절박한 하소연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눈을 들어 산을 보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라는 탄식소리를 말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들의 현실입니다. 그런데 이 시인은 다시 선언하듯 고백합니다.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고 말입니다.
시121:2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참으로 놀라운 발견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외면하고 나를 버려도 하늘의 하나님은 반드시 나를 돕고 나의 동반자가 되어 주십니다. 이것을 믿고 고백할 수 있어야 신자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이처럼 험한 세상에 오셔서 굶주리시고 사탄마귀에게 시달리며 힘드실 때 그 누구도 그를 도와주지 못했지만 하늘의 하나님께서 성령님과 천사들을 보내시고 친히 도우시는 놀라운 체험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마4: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 사
마4: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하늘의 하나님이신 우리 주님도 이처럼 도우심을 받으시는데 오늘 우리들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사모해야 하고 또한 기대해야 합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때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보내시고 도와주시기를 말입니다.
성군 다윗은 이처럼 놀라운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하고 실질적으로 삶의 놀라운 위안을 받았던 인물입니다.
시23:4-5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 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 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그것이 사람이든 하늘의 하나님이시든 우리는 실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힘들고 어려울 때 도움이 되는 사람이면 그 사람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일 것이고 하나님이시라면 더 더욱 우리들의 아버지요 구세주가 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과 같이 우리는 생활 속에서 진정한 도움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도움으로 삶이 새롭게 변화되고 축복이 되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시대에 진정 복된 사람이 누군가를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남겨 두셨습니다.
시146:5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고 말입니다. 이렇듯 성령님은 소리 소문도 없이 우리 곁에 머무시며 우리들의 모든 상황을 도우시고 함께 하시는 참 좋은 우리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이처럼 놀라운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올 한해도 행복하고 풍성한 삶이 되시기를 우리 좋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성령님은 우리 삶을 풍성케 하십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현대사회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놀라운 역사를 매우 자연스럽게 진행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행2:44-47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 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 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 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는 말씀이 바로 그렇습니다. 어떻게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물건을 서로 함께 사용하며 자신의 재산을 다 팔아 서로 나누어 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어떻게 날마다 교회에 나와 모일 수가 있겠습니까? 그 결과 그들은 과연 어떻게 되었습니까? 가난하여졌습니까? 비참하여졌습니까? 서로가 원망과 불평으로 가득하게 되었습니까? 전혀 아닙니다. 더 풍성하고 더 기쁘고 더 행복하였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더 본문으로 돌아가 그와 같은 사실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행2:46-47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 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 라
그들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한 마음으로 성전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함께 먹고 함께 노래하고 함께 기쁨을 누렸습니다. 그 결과 믿는 사람이 날마다 성전에 더 모여 번창하고 부흥하고 풍성하여졌습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요? 성령님이 역사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령님만 함께 하시면 이 보다 더 큰 일도 가능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들에게 이것을 가르쳐 주고 교훈해 주십니다. 이것이 사람의 상식을 넘어서는 기적인 것입니다. 마음은 나눌수록 따뜻해지고 재물은 나눌수록 풍성해지며 사람은 모일수록 기적이 일어나는 것, 이것이 바로 초대교회의 놀라운 성령님의 역사였던 것입니다. 어린 소년의 도시락에 불과했던 보리 떡 5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예수님께 드려졌을 때 5천명이 배부르고 12광주리에 가득하였던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그 옛날 도시락을 가져가지 못했을 때 더 풍성하고 배불렀던 추억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친구의 도시락 뚜껑 하나를 빌려 이 친구 저 친구들로부터 조금씩 얻었는데도 밥과 반찬이 도시락을 가지고 갔을 때보다 더 풍성했던 추억을 말입니다. 성령님의 역사가 바로 이와 같은 것입니다.
초대교회에 최초로 이방인이 회개하고 돌아와 놀라운 성령의 역사를 만들어 냈던 고넬료 사건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0장에 그에 관한 기록이 낱낱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어떻게 살았습니까?
행10:1-3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 을 많이 구제하고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하루는 제 구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가로되 고넬료야 하니
이렇듯 그는 자기 자신만 아니라 온 집으로 더불어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백성들을 많이 구제하고 항상 하나님께 기도하는 신앙에 투철한 사람으로 멋들어지게 살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많이 구제하고” 라는 말은 참으로 오늘 우리들이 본받아야 할 중요한 대목입니다. 이렇게 나누어 주니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그에게 보내주셨던 것입니다.
행10:44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처럼 초대교회의 성령님의 역사를 보면 없어도 나누면 풍족하여졌고 사모하면 메마른 가슴도 뜨거워졌으며 이웃을 섬기면 자신이 풍성하게 복을 누리게 되는 놀라운 기적을 볼 수 있습니다. 한결 같은 이 놀라운 역사의 배후에는 바로 성령님이 계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이제는 성령님의 이끌림을 받는 삶으로 복을 받아 우리들도 나누고 흩어주고 함께하는 이런 놀라운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의 삶을 행복으로 바꾸어 주고 이웃들에게 소망을 주며 하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놀라운 기적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복된 새해에 우리들의 마음이 이처럼 훈훈하고 성령님으로 충만해지는 그런 놀라운 축복으로 채워지기를 소망합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희망찬 2013년 새해 첫 주일예배를 맞아 “성령님이 능력입니다”는 제하의 말씀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과연 이 시대에는 능력이 제일입니다. 그렇게도 불경기가 계속되고 취업난이 심각하지만 능력 있는 사람은 찾지 못해 안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무능한 자는 그 어디에도 발 디딜 곳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우리는 남을 위로 할 수도 위로 받을 수도 없는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성령님은 위로의 영으로 우리들과 함께 해 주시고 사람이 어찌할 수 없는 아픔과 슬픔을 위로해 주십니다. 그리고 이 시대는 너도나도 무정하여져서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삭막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성령님은 진정으로 우리들과 함께 하시고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 손이 모르게 우리들을 도와주십니다. 우리 가정을 지켜주시고 밤에 잠을 자게 하시며 숱한 사고와 질병 속에서 우리들을 보호하시고 도와주십니다. 무엇보다도 성령님은 우리들의 마음을 풍성케 하시고 줌으로서 받을 수 있는 놀라운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영육간의 삶을 윤택하고 풍성케 해 주십니다. 그리고 돈만이 우리들의 삶을 풍족케 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하시고 돈 보다 더 풍성한 축복이 무엇인가를 알게 해 주십니다. 고넬료와 같이 우리 모두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 현실적인 육신의 삶보다 더 신령한 삶을 추구하는 그런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그 어느 해 보다 더 행복하고 풍성한 삶을 누리며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이웃들에게는 소망이 되는 그런 멋들어진 한 해를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신년예배로 하나님께 구별된 예배자로 우뚝 선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에게 우리 하나님만이 주시는 풍성한 은혜와 축복이 가득하기시를 좋으신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아 멘
주후 2013년 1월 6일
신녀주일 예배 설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