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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20일 주일낮 설교 (헛되지 않는 수고)

헛되지 않는 수고

 

1. 20, 2013

本文:고린도전서15:58

說敎:崔仁根牧師

 

[신원식 수도방위사령관(중장)은 지난 14일 서울 도곡동의 아파트로 한 할머니를 찾아갔다. 올해 79세의 유정화씨. 1968년 1월 21일 김신조 등 북한 무장공비의 청와대 습격 사건 때 이들을 저지하다 현장에서 숨진 최규식 당시 종로경찰서장의 부인이다. 신 사령관은 "진작에 찾아뵈었어야 했는데…"라며 큰절을 올렸다. 유씨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맞절을 했다. 최 전 서장은 1968년 1월 21일 밤 10시 30분쯤 무장공비 31명이 서울에 침투했을 때 청와대에서 약 300여m 떨어진 청운중학교 후문 근처에서 총에 맞아 숨졌다. 신 사령관은 "최 서장께서 김신조 일당을 일찍 막지 않으셨더라면 청와대를 기습 공격해 엄청나게 큰 혼란이 왔을 것"이라고 했다. 사건 다음 날인 1968년 1월 22일 새벽, 유씨 집에 누군가 찾아와 문을 쾅쾅 두드렸다. 기자였다. 유씨는 "낌새가 이상해 종로경찰서에 전화를 걸었더니 '서장님이 다리에 관통상을 입으셨다'고 하더라"고 했다. 유씨는 "영안실에 안치된 피투성이 남편을 보고서야 꿈이 아닌 현실인 줄 알았다"고 했다. 최 서장 호주머니에선 당시 여섯 살이던 아들 민석씨의 사진이 나왔다고 한다. 이제 51세가 된 민석씨는 "아버지는 업무 때문에 항상 밤늦게 들어와 아침 일찍 나가셨다고 들었다"며 "돌아가셨을 때 할머니와 어머니가 기절했던 것만 생각난다"고 했다. 장례는 국립경찰장으로 치러졌고, 유해는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묻혔다. 1계급 특진(경무관)과 함께 태극무공훈장이 추서됐다. 이듬해엔 청와대 부근 자하문 고개에 동상이 세워졌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와 아내, 아들과 세 딸(7세·4세·1세)에게는 가장의 빈자리만 남았다.]

 

이상은 지난 1월 17일자 조선일보에 게재된 기사의 일부입니다. 내일이면(2012년 1월 21일) 김신조 무장공비일당이 청와대를 급습한 1.21사태 45주년을 맞이하는 날입니다. 그 때 종로경찰서장이었던 고 최규식서장의 목숨을 건 방어가 있었기에 대한민국이 지금까지 안전하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때 만약 방어망이 뚫리고 대통령을 암상하는데 성공하였더라면 이는 생각만 해도 끔찍한 대한민국의 국치일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일개 경찰서장이 목숨을 내 놓고 대항하여 그들을 소탕하였기에 지금의 평화가 보장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때 유일하게 생포되었던 김신조는 지금 목사가 되어 그 때 희생된 유족들을 위해 기도하며 빚값는 삶을 살고 있다고 합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우리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때때로 겪는 위험과 헌신과 수고는 결단코 헛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들에게 단호히 명령하고 있습니다.

 

고전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웃과 나라를 위해 수고해도 그 값이 결코 헛되지 않는 법인데 그 대상이 하늘의 하나님이시라면 얼마나 더 그 수고의 값이 헛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이와 같은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우리들에게 주어진 삶을 실로 값지고 아릅답게 유지하기 위해 영원히 남을 수고를 아끼지 않는 그런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그 수고의 값이 결단코 헛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늘 상급으로 충만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헛되지 않는 수고

 

우리는 지난 주말 3일 동안 계속된 전교인 수련회를 통해서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고 또 한 가족 됨의 사랑을 유감없이 나누었습니다. 이 세상 그 어느 곳에서도 연로하신 어른들과 세 살짜리 어린아이가 함께 어우러져 말씀을 배우고 개임을 하며 하나가 되어 복된 시간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그런 곳은 없습니다. 참으로 교회가 좋은 것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강한 인상과 느낌을 우리 모두 가질 수 있었던 귀한 수련회였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이를 위해 헌신하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진정 교회를 위해 이웃들을 위해 하나님의 일을 하는 주의 종들을 위해 헌신하고 수고하는 삶은 아름답고 복된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크게 두 가지의 수고가 있습니다. 육신을 위한 수고와 영혼을 위한 수고가 그렇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 이처럼 수고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수고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타락한 인생들이 받은 심판이기 때문입니다.

 

창3: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을 밟고 사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를 막론하고 이처럼 수고하여야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 많으신 우리주님은 그와 같이 평생을 수고하여야만 겨우 먹고 사는 우리 인생들을 따뜻한 음성으로 부르셨던 것입니다.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 라

 

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처럼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수고의 문제는 우리 모든 인생들의 현실인 것입니다. 그래서 서양 격언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 "Nothing can be done without effort." 이 말의 의미는, “노력 없이 되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뜻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수고하고 얻은 것일지라도 결국은 무의미 하고 허무하게 끝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모든 인생들의 허무한 결론입니다. 오늘은 이와 같은 수고에 관한 말씀을 중심으로 우리들의 삶에 시애틀 안개처럼 드리워진 수고의 문제를 정리하고 진정 헛되지 않는 수고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타락하므로 부여 받은 수고의 허무함에서 해방될 수 있는지? 그 방안을 찾아 은혜 받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인생의 모든 수고는 다 헛됩니다

 

우리는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인생들이 평생을 통하여 수고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수고하여만 먹고 살 수 있게 된 배경 또한 배웠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평생을 두고 하는 수고라면 그 결과라도 아름답고 보람되어야 할 터인데 성경은 그와 같은 모든 수고가 끝에는 다 헛되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전1:12-14 나 전도자는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마음을 다하며 지혜 를 써서 하늘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궁구 하며 살핀즉 이는 괴로 운 것이니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사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 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이는 왕 솔로몬이 인생 말년에 고백한 탄식입니다. 왕으로서 평생을 보낸 사람이 그 삶의 결국을 이렇게 ‘헛되도다’고 선언하였다면 그 외에 모든 사람들이야 들어보아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우리 인생들의 부인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이제 보다 더 구체적인 인생의 헛된 수고를 다음에서 증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전2:1-11 나는 내 마음에 이르기를 자 내가 시험적으로 너를 즐겁게 하리니 너 는 낙을 누리라 하였으나 본즉 이것도 헛되도다 내가 웃음을 논하여 이르기를 미친 것이라 하였고 희락을 논하여 이르기를 저가 무엇을 하는가 하였노라 내 마음이 궁구하기를 내가 어떻게 하여야 내 마음 에 지혜로 다스림을 받으면서 술로 내 육신을 즐겁게 할까또 어떻 게 하여야 어리석음을 취하여서 천하 인생의 종신토록 생활함에 어떤 것이 쾌락인지 알까 하여 나의 사업을 크게 하였노라 내가 나를 위하 여 집들을 지으며 포도원을 심으며 여러 동산과 과원을 만들고 그 가 운데 각종 과목을 심었으며 수목을 기르는 삼림에 물주기 위하여 못 을 팠으며 노비는 사기도 하였고 집에서 나게도 하였으며 나보다 먼 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보다도 소와 양떼의 소유를 많게 하였으 며 은금과 왕들의 보배와 여러 도의 보배를 쌓고 또 노래하는 남녀와 인생들의 기뻐하는 처와 첩들을 많이 두었노라내가 이같이 창성하 여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보다 지나고 내 지혜도 내게 여전하여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 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이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분복이로다그 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

 

이렇듯 솔로몬은 자신이 어떻게 수고하고 무엇을 얻었으며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자세히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그는 많은 부귀와 영화를 얻어 그것으로 자신의 삶을 윤택하고 즐겁게 해 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술로서 육신의 기쁨을 추구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많은 노래하는 남녀를 거느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여인들을 처와 첩으로 두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지간에 그의 마음이 원하면 그것을 다 얻었고 또한 누려보았습니다. 그러나 윗글의 마지막 밑줄 친 부분에서 분명하게 정리되어 있는 바와 같이 그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었다고 선언하고 말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솔로몬이 누렸던 그 정도면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선호하고 또 목적하는 바이기에 엄청 행복하고 또 보람도 있었을 것 같은데 인생의 끝자락에서 솔로몬은 왜 이렇게도 처절하게 헛됨을 고백하고 말았을까요? 해답은 예상외로 단순합니다. 그와 같은 삶이 결국은 육신적인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간단명료하게 다음과 같은 선언으로 이와 같은 삶의 결론이 무엇인지 기록해 두었습니다.

 

롬8:12-14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 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고 말입니다. 해답이 나왔습니다. 육신입니다. 육신대로 살다가 저주 받고 수고하게 되었는데 그 수고의 대가로 얻은 것을 다시 육신으로 돌아가 육신에 유익하도록 살면 그 결국이 비참하고 허무하게 되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입니다. 인생들을 만드시고 심판하시는 분이 분명하게 살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육신대로 살면 안 되는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오늘날 많은 인생들이 이처럼 단순하면서도 분명한 진리를 깨닫지 못한 채 끝까지 솔로몬처럼 헛된 수고를 하며 헛된 인생을 낭비하다가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가서야 깨닫게 되니 비극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분명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그 어떤 부귀영화도 육신대로 살면 그 끝에 가서 후회하며 헛되고 어리석었음을 탄식하며 죽어 가야 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을 위한 수고는 반드시 헛되다는 사실을 순간도 잊어버리지 말고 영혼을 위한 똑바른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인생의 끝자락에 후회하지 않는 복된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헛되지 않는 수고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처럼 비참한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헛되지 않는 수고가 있음을 가르쳐 줍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고전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참으로 이는 놀라운 반전이라 아니할 수 없는 귀한 말씀입니다. 솔로몬 왕이 온갖 부귀영화로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더 화려한 삶을 살고 나서 그 모든 것들이 다 헛되다고 탄식한 것에 정면 반박이라도 하듯 그는 이렇게도 분명한 진리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결국 무엇입니까?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이십니다. 영혼을 위한 삶입니다. 수고는 수고로되 무엇을 위한 수고인가가 관건입니다. 솔로몬은 불행하게도 모태신앙으로 이 땅에 태어났으나 신앙은 시늉뿐 마음은 하나님과 멀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도 믿음이 좋아 평생을 하나님과 함께 하며 온갖 기적과 축복으로 다복하게 살았던 아버지 다윗 왕의 말씀과 유언까지도 그는 뭉개버리고 오직 자신의 육신만을 위해서 스스로 고백하였던 바와 같이 술과 여자와 세상의 쾌락으로만 만족을 얻으려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그토록 비참하고 헛된 삶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의 아버지의 유언이라도 따라 순종하였더라면 그토록 헛된 수고는 하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왕상2:1-3 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매 그 아들 솔로몬에게 명하여 가로되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의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 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릇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이것이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수고를 하며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친히 그 삶을 형통하게 해 주실 것이라는 약속과 축복의 말씀이 아닙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은 무엇으로 인생의 형통을 기대했습니까? 술과 여자와 부귀영화로 낙을 찾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그토록 비참한 존재가 되었고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왕상11:6-11 솔로몬이 여호와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여 그 부친 다윗이 여호와 를 온전히 좇음같이 좇지 아니하고 모압의 가증한 그모스를 위하 여 예루살렘 앞산에 산당을 지었고 또 암몬 자손의 가증한 몰록을 위하여 그와 같이 하였으며 저가 또 이족 후비들을 위하여 다 그 와 같이 한지라 저희가 자기의 신들에게 분향하며 제사하였더라 솔로몬이 마음을 돌이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 와께서 저에게 진노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일찌기 두 번이나 저에게 나타나시고 이 일에 대하여 명하사 다른 신을 좇지 말라 하셨으나 저가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시되 네게 이러한 일이 있었고 또 네가 나의 언약과 내가 네게 명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결단코 이 나라를 네 게서 빼앗아 네 신복에게 주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이 말씀을 크게 가슴에 새기고 거울로 삼아 솔로몬과 같이 육신을 위한 삶을 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우선 눈앞에 있는 유익에 눈이 멀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날에도 하나님 앞에 나오지 아니하고 세상에서 돈과 사람을 위해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이 솔로몬과 전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 부귀영화를 누린다 해도 인생의 결국에는 솔로몬과 같이 후회하고 말 것이 뻔 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우선시하고 중요하게 여겨 사랑과 헌신으로 섬기는 삶을 살아야 사도 바울과 같이 후회하지 아니하는 복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사도 바울과 솔로몬은 서로 엄청 대비되는 삶을 산 인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솔로몬은 초기에 하나님을 지극정성으로 섬겨 큰 복을 받았고 그 복으로 인해 다시 세상으로 나가 하나님의 버림을 받은 인물이었고, 사도 바울은 초기에 하나님과 정면으로 대적이 되어 하나님의 신실된 종들을 죽이는데 암장 섰던 살인마였으나 나중에 예수님을 똑바로 만나 그 주님을 위해 소중한 생명도 아깝다 하지 않고 헌신하다가 끝끝내 그 하나님을 위해 순교하였던 인물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약속하신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인도하는 자는 하늘의 별과 같이 영원히 비취리라’는 말씀대로 영원히 추앙 받는 헛되지 않는 수고를 한 대표적인 인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과연 누구를 닮아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까? 사도 바울과 같이 주님을 위해 헌신하고 수고하여 헛되지 않는 삶을 살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야만 우리들도 인생 마지막 노을에 서서 솔로몬처럼 후회하지 않는 멋들어진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와 같은 인물이 우리 미국 땅에도 있었습니다. 솔로몬과 같이 좋은 배경 넘치는 축복을 받았으나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하지 못한 채 세상으로 돌아갔으나 세상에서 오히려 실패한 위인이 되어 차라리 처참한 나락에서 예수님을 만나 이 세상 그 어떤 삶보다 더 값지고 아름다운 역사를 만들어 냈던 인물이이기에 잠기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974년 여름 멕스웰 연방교도소에 수감된 23226번 죄수, 재선된 닉슨 대통령을 탄핵으로 몰고 갔던 워터게이트 사건의 주범, 명문대학을 나온 변호사, 해병대 장교출신, 닉슨의 최측근 실세로, “닉슨을 재선에 성공시키는 일이라면 할머니라도 밟고 가겠다.”던 추진력 있는 명 해결사, 더러운 술수의 달인, 사악한 천재, 그 사람이 바로 촬스 콜슨이라는 인물입니다. 그러던 그는 결국 미국 백악관에서 감옥으로 추락하는 인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기독교가 배경인 국가에서 태어나 주일이면 성실하게 예배를 드리는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 교회의 소속원으로 교인의 의무를 다하는, 누가 뭐래도 명실상부한 기독교인이었지만, 그러나 그는 솔로몬과 같이 속사람은 기독교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오로지 권력과 지위와 명예를 얻기 위해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아낌없이 던져버렸던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그 모든 것을 얻었지만 결국 순간에 그 모든 것들을 다 잃어버리고 감옥소라는 인간이 갈 수 있는 마지막 나락에 떨어졌을 때 비로소 그는 무엇이 소중하고 무엇이 덜 소중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모든 것을 잃고 감옥에 들어가서 가장 소중한 것을 되찾았던 인물이 된 것입니다. 그는 감옥에서 비로소 구원과 생명이신 예수님을 똑바로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가 남긴 Born Again(거듭남)이란 책에서 그는 그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는 새롭게 만난 주님과 함께 남은 삶을 온전히 주님께 바쳐드린다는 각오 하에 사도 바울과 같이 헛되지 않는 수고에 그의 모든 것을 다 바쳤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Prison Fellowship이라는 교도소선교회를 만들고 지난 35년간 십자가의 예수님을 전하면서 그의 소중한 삶을 바쳤던 것입니다. 살인범, 마약딜러, 무장강도, 성폭행범, 온몸을 문신으로 채운 잔인한 죄수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의 잔인한 눈에서 회개의 눈물을 흘리게 만들어 예수님을 영접케 하는 참으로 위대한 수고를 아끼지 않으며 그의 전 생애를 불태웠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지난 4월 21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눈물 없는 천국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헛되지 않는 수고”인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예견하였던 사도 바울은 오늘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이 강력하게 명령합니다.

 

고전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고 말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들에게 주어진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아직도 솔로몬과 같이 어리석은 세상에 빠져 하나님 주신 소중한 시간들을 헛된 수고를 위해 살아가겠습니까? 아니면 사도 바울과 같이 촬스 콜슨과 같이 헛되지 않는 수고를 위해 주님과 함께 헌신하는 멋들어진 인생을 살아가시겠습니까? 이제는 결단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우리들에게 더는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는 사실을 우리 스스로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더 사도 바울의 결단을 참고로 마음에 새기기를 원합니다.

 

행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 니하노라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희망찬 2013년 새해를 맞아 축복새벽기도회와 28차 전교인 수련회를 통하여서 우리는 참으로 성령 충만한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제는 결단하고 새로운 역사를 위해 손에 손 잡고 벌떡 일어나야 할 때입니다. 마음을 결단하고 비장한 각오를 가지고 새로운 삶을 향해 용기를 내야 할 때입니다. 또 한 번 더 망설이며 이렇게도 많은 은혜와 축복을 주신 하나님 앞에서 머뭇거린다면 하나님께서 참으로 실망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사도 바울과 같이 이 마지막 때에 한 목숨을 다 내놓고서라도 주님의 손발이 될 비장한 각오를 다져야 하겠습니다. 주님을 위한 우리들의 값진 수고는 결단코 헛되지 않을 것임을 우리가 이제는 밝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고 여전히 솔로몬과 같이 세상과 세상의 부귀영화나 꿈꾸고 머뭇거리고 있다면 그것을 비록 얻었다 할지라도 그것 때문에 망하는 불행한 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헛되고 헛되다고 탄식하던 솔로몬을 만나지 않더라도 우리 스스로 헛되고 허무한 것이 인생이라는 사실을 가슴이 저리도록 깨닫게 될 날이 본명 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사도 바울과 같이 비장한 각오와 결단으로 결코 헛되지 않는 선한 수고를 위해 남은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모쪼록 축복된 새해를 맞아 기도하고 훈련 받은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은 받은 은혜를, 거저주신 하나님께 되돌리며 결코 헛되지 않는 수고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시기를 좋으신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 멘

 

주후 2013년 1월 20일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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