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27일 주일낮 설교 (기쁘게 사는 것이 능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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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Wednesday, 30 January 2013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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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쁘게 사는 것이 능력입니다
1. 27, 2013
本文:빌립보서4:1-7
說敎:崔仁根牧師
J. F. Kennedy 전 미국 대통령은 이 세상에 진실된 것 3가지가 있는데, 하나님과 인간의 부패와 웃음이 바로 그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참으로 공감이 가는 말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부패는 흔들릴 수 없는 인류 역사의 진실입니다. 그러나 웃음은 우리 모두가 만들어 갈 수 있는 부분이고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고도의 능력일 것입니다. 사람의 짧은 한 평생을 그렇게 웃고 살수만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요? 하지만 이는 전혀 불가능 할 것 같은 일입니다. 이 험한 세상에서 어떻게 날마다 기쁘게만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지금 그렇게 살라고 명령하십니다.
빌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 말씀은 적당하게 그냥 사는 날 동안 기뻐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항상 기뻐하라”고 명령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와 같은 명령은 어쩌다가 오늘 본문에만 기록된 것이 아닙니다. 이와 똑 같은 말씀을 하나님은 또 다른 곳에서도 말씀하고 계십니다.
살전5:16 항상 기뻐하라
성경에서 이 보다 더 짧고 강한 절은 아마도 없을 것 같습니다. 단 두 마디로 형성된 이 짧은 한 소절이 담고 있는 의미는 실로 엄청납니다. 이 세상에 그 누가 이처럼 항상 기뻐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런데도 하나님은 명령하고 계시니 이것이 오늘 우리 모든 성도들의 숙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종은 하나의 결론을 얻었습니다. 우리들이 할 수 없는 이 어려운 명령을 하나님께서 친히 하시는 것은 그것이 바로 우리 모든 성도들의 복된 삶이기 때문일 거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하고자 하면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도 얻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할 수 없는 것을 하라고 몇 번씩이나 거듭 명령하실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종은 하나의 해답을 찾아냈습니다. 만약 할 수 없는 그것을 우리들이 하게 된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 성도들의 능력이요 축복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나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실천하는 것은 아닙니다. 최소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는 능력 받은 성도입니다. 무엇이 능력입니까? 성령님이십니다. 바로 성령님이 능력이십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의지와 지식과 경험으로 불가능한 일들을 하나님의 능력이신 성령님은 가능케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열매는 “희락”인 것입니다(갈라디아5:22참조). 오늘은 우리들의 짧고 허망한 삶을 기쁘고 즐거울 수 있도록 기쁘게 살 수 있는 능력을 받아보고자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기쁘게 사는 것이 능력입니다”는 제하의 말씀을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모쪼록 마음 귀를 기울이시고 풍성한 은혜와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기쁘게 사는 것이 능력입니다
우리는 지난주일 이 세상에서 가장 풍성한 지혜와 부귀영화를 많이 누렸던 솔로몬의 삶을 잠시 살펴보았습니다. 그는 오늘날 우리들이 가장 선호하고 부러워하는 모든 것을 다 가지고 한 평생을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는 풍성한 삶을 살았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말년에 남겨 둔 인생에 대한 탄식을 들어보면 실로 섬뜩할 만큼 무섭습니다. 다시 한 번 더 솔로몬이 남겨 둔 인생에 관한 탄식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전2:1-2 나는 내 마음에 이르기를 자 내가 시험적으로 너를 즐겁게 하리니 너 는 낙을 누리라 하였으나 본즉 이것도 헛되도다 내가 웃음을 논하여 이르기를 미친 것이라 하였고 희락을 논하여 이르기를 저가 무엇을 하는가 하였노라
이렇듯 솔로몬은 인생 말년에 탄식하기를, “웃음은 미친 것이라 하였고 희락은 저가 무엇을 하는가?”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단적으로 그의 인생이 실패하였다는 뜻입니다. 웃음과 희락을 상실해 버린 인생, 그것이 바로 망한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런 인생을 보시면서 오늘 우리들에게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라”고 말입니다. 그만큼 복된 인생은 기쁘게 사는 것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솔로몬과 같이 우리들이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지고 누린다 할지라도 기쁨이 없고 희락이 없다면 그 삶은 망한 삶이요 실패한 삶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짧디 짧은 인생을 기쁘고 즐겁게만 살아갈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누가 뭐래도 성공한 삶을 사는 것이요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산 것이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살아간 사람일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솔로몬과 같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지니고 누려도 그 마음에 기쁨이 없다면 그런 삶은 망한 삶이요 어리석은 삶이요 실패한 삶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우리는 오늘 하나님께서 친히 명하신 그대로 “항상 기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배워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길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이에 관한 해답을 얻으려고 하나님 앞에 머물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 있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건성으로 읽거나 들으면 거의 실천 불가능한 말씀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렇게도 죄악이 많고 사고도 많으며 질병 또한 넘쳐나는 이 땅에서 항상 기쁘게 살아간다는 것이 가능이나 하겠습니까? 그런데 조용히 오늘 말씀을 묵상해 보면 한 가지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주 안에서”라는 조건적인 말씀입니다.
빌4:4 주 안에서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이 말씀에서 우리는 밑줄 친 “주 안에서”라는 단서를 발견하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중요한 Key Point입니다. 주님 밖에서는 결단코 항상 기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만약 주님 안에 있다면 이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실제적으로 그렇게 산 사람이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사도 바울은 “주 안에서”라는 말씀을 매우 중요하게 사용하는 인물입니다. 그의 서신 대부분이 이 말씀으로 가득 차 있는 것만 보아도 그가 이 말씀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는 사람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는 그의 모든 서신에서 “주 안에서”라는 말을 무려 40번이나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삶은 온전히 “주 안에서”만 가능하였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그는 다음과 같은 놀라운 고백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빌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 말씀에서 우리는 사도 바울이 얼마만큼의 가능성을 주님 안에서 찾고 있었는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이 세상 그 누구라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선언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사도 바울은 이처럼 성경에 못을 박듯이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 비결이 바로 “주 안에서”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우리 힘으로는 이 험한 세상을 기쁘게 살아갈 수 없지만 우리들이 만약 주님 안에 머물고 있다면 이는 가능한 것입니다. 주님 안에는 기쁨이 충만하기 때문입니다.
시16:11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근본적으로 기쁨이 넘쳐나는 이와 같은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이라면 기쁘게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잔치 집에 가면 기쁨이 넘쳐납니다. 다소 우울한 일이 있었고 근심되는 일이 있었을지라도 잔치 집에 가면 전체적으로 기쁨과 덕담이 넘쳐나는 그 분위기 속에서 저절로 기쁜 마음을 가지고 함께 즐거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이와 비슷한 실례가 있는데 바로 세례 요한이 가진 놀라운 가치관입니다. 우리들이 익히 잘 아는 바와 같이 세례 요한은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이 세상에 태어나신 분입니다. 거의 같은 때에 세례 요한도 예수님도 같이 공생애를 시작하시어 활발하게 활동하실 때입니다. 하루는 요한의 제자들이 몰려와서 보고를 합니다. “선생님, 예수님이라는 분이 나타나서 세례를 주는데 선생님을 따르던 무리들이 다 그리로 가서 세례를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께로 오는 자들이 거의 없어졌습니다.”고 말입니다. 사람이라면 이 정도의 보고에 마음이 흔들리게 됩니다. 그것이 보편적인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오죽 하면 한국 속담에 “사촌 논 사면 배가 아프다”고 하였겠습니까? 이 종도 시애틀지역에 교회를 개척하고 1년도 채 안 되어 2백 명이 넘게 모여들자 가장 이 종을 싫어하고 노골적으로 욕을 하고 다니는 사람은 바로 같은 동역자들인 목사들이었습니다. 말로는 그렇게 합니다. “시애틀에서 최목사님 만큼 설교 잘하는 사람이 누가 있어?” 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설교는 잘 한다고 하면서 자기 교회에 설교하라고 세우는 사람은 없습니다. 공연히 불렀다가 자기 설교와 비교되면 안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자기 교회 성도들이 행여 최목사를 따라 가버리면 어쩌나 하는 불안이 있는거지요. 그러나 세례 요한이 이와 같은 보고를 받고 대답하는 말씀을 들어보면 오늘 우리들이 얼마나 잘못된 가치를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는지 깨닫게 됩니다. 먼저 다음과 같은 말씀부터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요3:26-30 저희가 요한에게 와서 가로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강 저편에 있던 자 곧 선생님이 증거하시던 자가 세례를 주매 사람이 다 그에 게로 가더이다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바 아니 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나의 말한바 나는 그리스도 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거할 자는 너 희니라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 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그는 흥하여 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특별히 29절 말씀을 다시 한 번 더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요3:29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 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우리는 오늘 세례 요한의 이와 같은 말씀을 평생 가슴에 새겨 두어야 하겠습니다.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는 말씀을 말입니다. 이 말이 무슨 뚯입니까? 비록 자기에게로 오던 제자들이 다 예수님께로 몰려가버린다 할지라도 나는 그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기쁨이 충만하겠다는 뜻입니다. 세례 요한의 이와 같은 가치와 믿음을 가진 자라면 사도 바울이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의 의미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분과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기쁨의 요인이 된다는 이 말씀은 참으로 오늘 우리들에게 도전이 됩니다. 진정한 기쁨의 요인이 어디에 있는지 단적으로 증거해 주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바로 이와 같은 기쁨을 소유하는 복된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최근 우리는 김주희집사님과 조윤경집사님을 봅니다. 특별히 조윤경집사님은 어린 나이에 첫 애기를 낳고 혼자서 얼마나 힘이 들까 싶어 “힘들지 않아요?”하면 언제나 미소와 기쁨이 가득한 모습으로 동일하게 대답합니다. “아니요, 너무 좋아요”라고 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두 집사님은 새로운 생명과 함께 하는 기쁨이 모든 삶의 힘들고 어려운 문제를 삼켜버리고 있기 때문에 힘들어도 힘들지 않고 고달파도 고달픔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와 같은 원리입니다. 우리들이 만약 모든 것을 다 가지고 계시는 좋으신 우리 주님과 함께 한다면 우리들의 인생이 바로 이렇게 기쁨으로 가득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 있는 자들은 기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성령님의 능력이 기쁨을 만들어 줍니다
올해는 우리 미국에 유난히도 Flu가 극심하게 유행해서 많은 사람들이 고열과 기침 구토를 호소하며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연학한 노약자들은 폐렴으로 발전하여 150여명이 생명을 잃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백신을 맞고 예방에 힘을 쓰는 바람에 백신이 동이 나고 사람들이 밀려 최소한 한 시간 이상 줄을 서서 기다려야만 하는 진풍경을 연출해 냈습니다. 왜 예방 주사를 맞습니까? 미리 몸속에 병원균을 소량 넣어서 면역을 생기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닙니까? 꼭 같은 원리로 우리들의 눈에도 안 보이는 성령님이 우리 속에 들어와 계시면 그 분이 우리들의 마음을 다스려 주시고 위로해 주시고 평안케 해 주시기 때문에 육신의 문제를 넘어 영혼의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하게 되면 기쁨이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요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영 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행9:31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 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롬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는 말씀들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감기가 유행할 때는 예방 주사를 맞듯이 우리들의 삶에 기쁨을 만들어 내려면 기쁨의 요인이 되시는 성령님을 모시고 도우심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 충만히 받았던 초대교회의 성도들의 모습을 보면 과연 성령님의 역사가 어느 정도인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행2:44-47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 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 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무슨 더 말씀을 드릴 수가 있겠습니까? 이는 체험입니다. 성령 충만히 받고 자신의 모든 재산을 내 놓을 정도라면 그 속사람의 여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렇게 하는 삶의 뒤안길에 어떠한 기쁨이 가득하게 되는지? 두 말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해본 사람만이 느끼는 기쁨이요 축복이요 기적 그 자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은 기쁨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음악가 중에서 Franz Joseph Haydn이라는 위대한 인물이 있습니다. 그는 그 누구보다도 기쁨에 가득 찬 곡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는 100개 이상의 심포니와 80개 이상의 현악 4중주, 50이상의 소나타와 Creation과 Seasons이라는 놀라운 오라토리오를 작곡해 냈는데 그 모든 곳에서 기쁨과 소망이 넘쳐나는 특유한 재능을 발휘하였습니다. 그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작곡을 시작할 때 그리고 작곡하는 도중 늘 성령님을 의지합니다. 그렇게 하면 내 마음에 기쁨이 충만하게 됩니다. 마치 악보가 춤을 추듯 내 마음도 기쁨으로 넘쳐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이니 듣는 이에게도 동일하게 기쁨이 넘쳐나게 되는 것이지요.”라고 말입니다. 이렇듯 기쁨에는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기쁨의 영이신 성령님이 바로 그 해답입니다.
기쁘게 살아갈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
이제 우리는 주 안에서와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으면 기쁘게 살아갈 수 있다는 원론적인 진리를 공부해 보았습니다. 이제는 우리들의 생활 속에서 기쁘게 살아갈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공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믿음은 모두의 것이 아니고 모든 사람들이 다 예수님과 성령님의 은총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현실 속에서 우리들이 함께 변화를 만들어 갈 수 있는 방안을 또한 공부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평생을 의사로서 또는 저술가로서 또는 실제적인 인간들의 임종을 지켜보면서 터득한 한 전문인의 조언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Elisabeth Kübler Ross라는 여인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이 사람은 정신과 의사요 저술가로 전 세계인들에게 숱한 삶의 조언을 주는 인물로 유명합니다. 20권이 넘는 저술을 통해서 사람의 마지막 순간은 결국 죽음이라는 전제를 앞세워 살아 있을 때 바로 살아야 한다는 주장을 펴 오고 그 중에서도 “인생수업”이라는 책을 통하여서 수많은 사람들의 마지막 임종을 종합하여 삶과 죽음을 대비시켜 우리들의 삶을 윤택하게 인도하는 분으로 유명합니다. 이 사람이 이 땅에 살아 있는 동안 기쁘게 살아가는 방법을 3가지로 요약해 주었습니다.
①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라
우리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진정으로 자유하지 못하고 기쁘지 못하고 늘 긴장하며 그렇게 힘들게 살아갑니다. 그와 같은 삶의 요인은 우리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지식이 없으면 없는 대로 ‘나는 많이 배우지 못해서 아는 것이 없습니다’하고 자신을 공개해 버리면 이 부분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자유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잘못이 있으면 있는 대로 더러우면 더러운 대로 그렇게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절대 그렇게 살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 반대로 살아갑니다. 있는 척, 깨끗한 척, 잘 믿는 척, 거룩한 척... 평생을 그렇게 살다보니 자기 자신에 대해 스스로 혐오하게 되고 실망하게 되어 기쁨은커녕 늘 불만 속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말고 털어버리고 있는 그대로 자신 있게 과감하게 살아가야 진정 기쁨과 보람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② 현재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라
인생에서 “현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영원히 나에게로 돌아올 수 없습니다. 미래는 아직 우리에게 도래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코 우리들의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현재가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과거에 사로잡혀 현재를 망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한 환상이나 두려움으로 지금이라는 시간을 허비하게 됩니다. 그렇게 살면 결코 기쁘게 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이라는 순간을 즐기고 만끽할 줄 하는 삶의 지혜를 터득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긴 인생 여정은 결국 지금이라는 한 점이 모아져서 평생이라는 선을 만들어 내게 된다는 사실을 순간도 잊어버리지 말고 지금이라는 순간을 멋들어지게 살아갈 줄 알아야 진정 인생을 잘 살 줄 아는 지혜자가 되는 것입니다.
③ 사랑하라
인생은 그 누구도 혼자서 살아가지 않습니다. 크게는 하나님이라는 절대 조물주와 관계를 맺게 되고 작게는 살아가는 동안 만나는 숱한 사람들과 연관을 가지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그르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보다 돈과 권세와 명예를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얻기 위해 사람을 팔고 사람을 이용하고 사람과 원수를 만들어 갑니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들은 그 모든 것을 얻었다 할지라도 솔로몬과 같이 그것 때문에 비참한 생을 보내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반대로 살아야 합니다. 사람을 얻기 위해 돈을 버리고 권세를 버리고 명예를 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의 행위인 것입니다. 그렇게 인생을 사람과 하나님과의 사랑으로 연결시켜 살아갈 수만 있다면 세상에서 귀하게 여겼던 돈과 권세와 명예는 덤으로 얻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렇게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될 때 그 인생에는 기쁨과 소망이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희망찬 2013년 새해가 어느 덧 1월의 끝자락에 와 있습니다. 세월이 빠르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인생을 걱정하고 염려하고 미워하고 다투며 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 누구보다 더 기쁘고 활기차게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삶을 아무나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엄청난 능력이 있어야 그렇게 복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 능력이 우리 주님께 있고 성령님께 있으며 인생을 먼저 살아 보신 선배들에게 있음을 오늘 우리는 분명하게 배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는 날까지 배워야 하고 깨달아야 하고 결단하고 변화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한 번밖에 없는 소중한 우리들의 삶을 솔로몬과 같이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깨닫는 자는 복되다고 하셨고 깨닫지 못하는 자는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주신 이 말씀을 깊이 마음에 새기고 그 누구보다 더 기쁘고 행복하게 남은 인생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우리 그렇게 하라고 하나님께서 특별히 2013년 올 해에는 성령님을 능력으로 주셨습니다.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성령님의 크신 능력을 힘입어 기쁘게 살아가는 진정한 행복자가 되시기를 좋으신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아 멘
주후 2013년 1월 27일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