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03일 주일낮 설교 (희망을 버리지 마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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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Wednesday, 06 March 2013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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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버리지 마시오!
3. 3, 2013
本文:요한복음5:1-9
說敎:崔仁根牧師
캘리포니아의 남쪽 작은 마을에 11명의 자녀들이 우글거리는 가난한 한 흑인 가정이 있었습니다. 정부가 제공해 주는 푸드 스탬프로 근근이 끼니를 이어가고 있는 참으로 비참한 가정이었습니다. 그 중에 Griffith Joyner라는 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가난과 궁핍 속에서 이 소녀는 늘 열등감에 사로잡혀 우울증 환자와 같이 혼자서 지냈습니다. 아무런 꿈도 내일에 대한 기대도 없이 그냥 학교에만 왔다 갔다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때에 그녀가 다니고 있는 초등학교에 흑인 영웅으로 떠오르고 있던 권투 챔피언 Suger Ray가 방문했습니다. 문자 그대로 학생들은 열광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리피스 조이너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책상 아래로 눈을 깔고 혼자만의 공상에 잠겨 있을 뿐이었습니다. 슈거는 수업을 끝내고 그 소녀에게로 다가갔습니다. “얘야, 어디 아프니?”, “다 싫어요, 저는요 집도 싫고 학교도 싫고 다 싫어요.” 슈거는 조용히 그 소녀를 안아주었습니다. 그리고 “네 이름이 뭐니?”, “네가 가장 잘 하는 것은 무엇이니?” 하고 물었습니다. 그리피스는 특별히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 주는 슈거가 너무 고마웠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란 달리는 것뿐이에요. 뛰는 것 하나만은 남에게 뒤지고 싶지 않아요.” 그 때 슈거는 그리피스의 손을 잡고 강하게 말해 주었습니다. “그래, 바로 그거다. 너도 네가 잘 하는 뛰는 것을 살려내라. 그러면 너도 나와 같이 영웅과 같은 인물이 될 수 있단다. 희망을 가지렴. 그리고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며 그 꿈을 키워나가렴. 나도 너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해 줄게.” 그리고 슈거는 떠나갔습니다. 하지만 그리피스의 작은 가슴에 그가 남겨 둔 “희망을 가지라.”는 말은 생생하게 살아 있었습니다. 훗날 그녀는 문자 그대로 세계적인 인물이 되었습니다. 1988년 대한민국에서 올림픽이 열리던 그 때 그리피스 조이너는 육상에서 금을 3개나 목에 걸었고 은메달까지 차지하는 미국과 세계를 놀라게 만들었던 육상의 신동으로 거듭났던 것입니다. 비록 11명의 자녀들 속에서 세끼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한 채 흑인이라는 핸디캡을 안고 태어났지만 슈거를 만나 가슴에 꿈을 품고 하나님을 의지한 그녀는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 인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추워도 봄은 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고난은 지나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와 같은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며 가슴에 꿈을 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희망을 품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 희망에 기름을 부으시고 요셉과 같이 때가 되면 들어서 쓰십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바로 우리들에게 이처럼 꿈을 접지 말고 비록 더딜지라도 인내하며 기다라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 함께 오늘 본문 말씀으로 돌아가 가슴에 희망을 품는 풍성한 축복을 받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희망을 버리지 마시오!
오늘 본문에는 참으로 알 수 없는 한 사람의 끈질긴 투병생활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무슨 병에 걸렸는지? 그 이름이 누구인지? 아무런 소개도 없이 그냥 38년 된 병자라고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병에 걸려 낫기를 원하는 것은 이 세상 그 누구도 소망하는 바람이거늘 그는 그렇게도 긴 세월 동안 들어가기만 하면 낫는 그 베데스다 못에 들어갈 수가 없어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다 그렇게 긴 세월을 보냈던 것입니다. 예루살렘에는 지금도 존재하고 있는 베데스다라는 작은 못이 있습니다. 하루에 단 한 번 그 물이 동하는 이상한 역사가 있었는데 그렇게 물이 동하는 동안 그 물에 뛰어 들어가면 그 어떤 병에 걸렸던지간에 깨끗이 낫게 되는 기적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전 세계에서 그 물에 들어가려고 모여든 병자들로 그 못 주변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환자는 그렇게 물이 동할 때 자신을 들어 그 못에 넣어주는 사람 하나가 없어 38년 동안이나 거기서 그렇게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말씀은 그 환자가 38년 동안 그 물에 들어가기만 하면 낫게 된다는 단 하나의 희망을 순간도 버리지 않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종은 오늘 말씀의 제목을 “희망을 버리지 마시오!”라고 정했던 것입니다. 그 희망이 무엇이 되었든지간에 그 한 꿈을 가슴에 품고 이 환자처럼 38년이라도 기다리고 기대한다면 반드시 그 희망은 이루어진다는 확신이 섰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이 이야기를 단순한 성경의 한 토막 스토리로 치부하지 말고 여기에서 교훈을 얻고 여기에서 우리도 배워 우리 꿈을 이루는 진정 복된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은 이와 같은 이름 없는 한 환자를 통해서 우리들의 오늘과 내일에 어떠한 희망을 품고 어떻게 우리들에게 주어진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야 하겠는지? 그 해답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함께 듣고 큰 도전과 은혜와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건강한 몸은 최고의 축복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건강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을 그저 누구나 누리는 평범한 일로 여깁니다. 그러나 실제로 건강을 잃고 병상에 누워보면 이 세상에서 건강보다 더 귀한 축복이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 자기 자신은 건강하다고 믿고 삽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건강에 빨간 불이 켜지는 것입니다. 의사로부터 “말기 암입니다!”는 소리를 듣는 순간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는 듯 한 공허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다 놓아버리고 오로지 낫기 위한 투쟁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 때서야 길거리에서 건강하게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부러워지고 그들보다 더 복 받은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 종이 부산 좌천동교회서 전도사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을 때 교회 장로님 한 분이 중병에 걸려 철도병원에 입원하고 있었습니다. 병원에 심방을 갔는데 마침 창밖으로는 그 병원을 증축한다고 벽에 임시 사다리를 만들어 놓고 인부들이 열심히 자갈을 지고 오르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는 여자 인부도 있어 그 무거운 자갈을 지고 힘겹게 계단을 오르는 모습이 비쳤습니다. 그 때 장로님이 그 모습을 보고 매우 부러워하며 말씀하셨습니다. “전도사님, 저는 지금 자갈을 지고 올라가는 저 여인이 너무나도 부럽습니다. 몸만 건강하다면 무슨 일인들 못하겠습니까?” 그 일이 벌써 40여년 전 일입니다. 그런데도 제 머릿속에는 그 때 하시던 장로님의 말씀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만큼 어린 청년의 마음에 충격이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세상 그 누가 남자도 하기 힘든 공사판에서 그 무거운 자갈을 지고 고층 빌딩 옥상까지 올라가는 여인을 부러워하겠습니까? 하지만 몸이 병들면 그것조차도 부러워하게 된다는 사실을 이 종은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건강은 참으로 소중한 축복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순간이라도 ‘아무나 누리는 평범한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병에 걸려 자리에 누운 지 38년이나 된 불쌍한 사람이었습니다. 얼마나 병 낫기를 소원하였으면 베데스다 물에 한 번 들어가려고 그 자리에서 밤낮 38년을 기다리고 있었겠습니까? 그 환자에 비하면 오늘 우리는 무조건 복 받은 사람들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우리들에게는 돌아갈 집이 있고 함께 사랑 나눌 가족들이 있으며 열심히 일 할 직장과 사업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하나의 숙제를 안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건강한 육신을 받았으니 영혼의 풍성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들의 몸이 오늘 본문의 주인공처럼 중병에 걸려 움직일 수조차 없다면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그 몸을 회복하는 일이 급선무라 다른 어떤 일도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그렇게 되지 않도록 38년 동안이나 노력해도 헛수고뿐인 본문의 환자와는 달리 건강한 몸을 주셨으니 우리는 병 고치려는 노력을 건강을 주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바쳐야 마땅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인물이 있었습니다. 바로 사도 바울이었습니다. 그는 건강한 몸으로 빚진 심정이 되어 오로지 하나님께 헌신하고 충성하며 일생을 바쳤던 사람입니다. 그의 인생 고백을 다음에서 잠깐 엿보도록 하겠습니다.
롬1:13-15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 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헬라인이나 야만 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 노라
롬9:1-3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 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 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 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이 말씀에서 우리는 사도 바울이 어느 정도로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된 건강으로 하나님께 진 짖을 갚기를 소망하는지 너무나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로마 교인들에게는 빚진 자로 자신을 고백하고 또한 자신의 골육과 친척들을 전도하여 새 생명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자기 자신은 저주를 받아 예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한다 할지라도 만족하겠다고 까지 선포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도 바울의 거룩한 희망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과연 무슨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직도 내가 잘 되고 내 자녀들이 잘 되기를 소망하는 육신의 소망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렇게 육신적으로만 살아가게 되면 훗날 반드시 후회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고 맙니다.
지금 한국에는 참으로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2월 25일 자로 새로운 대통령이 청와대에 들어왔는데도 새로운 각료가 형성되지 못하여 국무회의 한 번하지 못한 채 국정이 마비상태에 놓여있기 때문입니다. 장관들이 임명되지 못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장관감이다 싶어 뽑아 놓으면 한결같이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녀들의 위장 전임, 자녀들을 군대에 보내지 않은 일, 자녀들에게 편법으로 재산을 넘겨 준 일. 부정한 방법으로 재산을 축적한 일... 등, 이런 일에서 깨끗한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할 만큼 남들보다 출세하고 나라를 위해 일 할 만하다 싶은 인물이면 거의 다 이 문제에 걸려들고 있으니 그들이 겉으로는 출세하고 잘난 척 하여도 실상은 그 속이 다 추하기 이를 데 없는 것입니다. 이는 오늘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보실 때 우리 또한 예외 없이 오로지 육신만을 위해서 인생을 살아왔고 생명주시고 건강주시고 우리들에게 풍성한 축복을 주셨던 하나님을 위해 인생을 살아 온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부족한 이 종을 통해서 이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희들도 사도 바울과 같이 건강과 축복을 받았으니 이제는 나를 위해 거룩한 희망을 좀 가져 보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이제 우리 건강한 몸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데, 죽어가는 이웃들을 전도하는데, 먼 곳에서 우리 대신 복음을 전하고 계시는 선교사님들을 섬기는데 깊은 관심을 가지고 헌신하는 그런 멋진 희망을 한 번 가져 보십시다. 우리 그렇게 하라고 오늘 전도 대상자들을 결신하는 귀하고도 복된 숙제를 주셨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최선을 다해 한 영혼이라도 전도하고 살리는데 헌신되어지기를 소망합니다. 만약에 우리들이 불치의 병에 걸려 몸져누웠을 때 하나님께서 이르시기를, “네가 알지 못하는 이웃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10명만 예수님을 영접하도록 만든다면 내가 네 병을 깨끗이 고쳐 줄게.”라고 하신다면 10명에게 전도하려고 최선을 다 하지 않겠습니까?
사랑 할 가족들과 이웃들은 더 소중한 축복입니다
우리들은 오늘날 늘 함께 하는 가족들과 늘 함께하는 이웃들에 대해 그렇게 소중한 축복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축복은 고사하고 늘 다투고 싸우며 그렇게 고통스럽게 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 지난 주간에는 실제로 이와 비슷한 끔찍한 사건에 대구에서 일어났습니다. 나이도 어리지 않고 52살이나 먹은 여인이 평소에 언니가 자신을 무시하고 업신여기고 힘들게 하였다고 언니를 죽인 살인사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형제들끼리 싸우다가 죽이고 친구를 무시했다고 죽이는 이런 일들은 이제 뉴스거리도 되지 않을 만큼 흔하여졌습니다. 무엇이 사람들을 이렇게까지 만들어 놓았을까요? 이기주의 때문입니다. 오로지 자기 자신만의 유익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가 인간의 근본정신을 상실하게 만들어 준 것입니다. 이제 오늘 본문 말씀으로 돌아가 조용히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기회를 만들어 보십시다.
요5:6-7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 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 다
여기에서 우리는 밑줄 친 부분을 묵상해 보기를 원합니다. 물이 동할 때 그 물에만 들어가면 어떤 병도 다 낫는데 이 사람은 그 물에 들어가지를 못해 38년이란 기나긴 세월 동안 그곳에서 고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쩌다가 이 사람은 이렇게 되어버렸을까요? 어떻게 보면 이 사람은 병 그 자체보다도 38년 동안 혼자 있다는 이 사실이 더 슬프고 가슴 아픈 일일 것 같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 현상입니다. 저나 여러분들이 만약 자리보전하고 누웠다고 가정해 보십시다. 죽지도 않고 아프기만 38년을 계속하여 인간다운 구실을 못했다고 가정해 보십시다. 그래도 우리 곁에서 우리들을 간호하고 챙겨 줄 사람이 있을 것 같습니까?
저는 보았습니다. 옛날 우리 교회에 나오던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불행하게도 남편은 교회에 나오지 않고 어린 아들과 같이 둘이만 교회에 나오던 초신자였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어느 날 Ocean Shore에 낚시를 갔다 오다가 교통사고를 당하여 식물인간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직 남편이 병석에서 깨어나지도 않았는데 그 여인은 다른 사람과 재혼을 하였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들의 현실입니다. 그러니 우리 곁에 머물러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진정 축복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깨달아야 합니다. 많은 돈은 없지만 가난한 살림살이를 서로 도우며 콩 하나라도 나눠먹으며 그렇게 서로 돕고 서로 사랑하며 얽혀서 사는 것이 진정한 축복인 줄을 우리는 오늘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저는 이미 지난 수요일에 1억 1490만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복권에 당첨 되었던 한 사람의 이야기를 소개해 드린 바가 있습니다.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 스코트 디포트(Scott Depot)에 사는 건설 하도급 업자 잭 휘태커(Jack Whittaker)의 이야기 말입니다. 그것은 2002년의 일이었습니다. 그로부터 딱 10년이 지난 2012년도에 그는 알거지에 혼자만 남은 비참한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부인과는 이혼하였고 남편을 잃은 딸과 손녀랑 함께 살았는데 딸과 손녀는 자살하였고 자신은 모든 재산을 다 잃고 거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무엇이 원인이었는지 조선일보 기자가 심층 취재하였는데 인간부재가 그 원인이었습니다. 돈으로만 만사 해결하려고 하다 보니 주변에 사람들이 다 없어져버린 것입니다. 결코 돈이 아닙니다. 더불어 살아갈 줄 아는 인간 존엄성을 인정할 줄 아는 따뜻한 인간미가 바로 축복인 것을 우리는 다시 한 번 더 가슴에 새기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인생을 더불어 살 줄 아는 평범한 이 진리를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의 진정한 희망은 돈이 아니라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인디애나주의 조그만 시골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브라이언이라는 15살 된 소년이 뇌암에 걸려 방사선 치료를 받고 머리가 다 빠진 상태에서 학교에 가는 날을 맞았습니다. 그런데 그 소식을 들은 그 학교의 클래스메이트들이 의논을 하였습니다. 브라이언이 학교에 나올 때 자신의 머리카락이 없는 것을 부끄러워 할 터인데 좋은 방법이 없을까? 하고 의논을 한 끝에 그들도 모두 머리를 밀어버리기로 하였습니다.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 와 보니 브라이언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반 학생들의 머리털이 없어져 깜짝 놀랐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즉시 눈치를 채고 돌아서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것을 본 20여명의 반 친구들이 모두 말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정이고 사랑입니다. 내가 조금 희생하더라도 이웃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된다면 기꺼이 그 희생을 감수하고 나서는 것, 바로 이것이 진정한 이웃의 소중한 사랑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진정한 축복은 바로 이와 같은 이웃을 가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들과 우리들 자녀들이 가지는 소박한 희망이기를 바랍니다.
찾아와 주시는 하나님이 가장 큰 축복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고 교회에 예배드리러 나오면서도 가슴 깊이 하나님은 없는 안타까운 현실을 너무나도 많이 경험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성도들의 가장 큰 문제이기도 합니다. 학교에는 가는데 지식은 없고, 사업은 하는데 돈이 없으며, 결혼은 하는데 사랑은 없고, 자식은 낳는데 가족은 없는 이런 희한한 세상을 우리는 지금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국 교회에는 다니는데 하나님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지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무관심하고 인간적인 권력 다툼이나 벌이다가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난 저주를 받았던 고라 자손들은 그와 같은 하나님의 진노 속에서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나서야 하나님의 소중함을 깨닫고 훗날 다음과 같은 눈물겨운 고백을 남겨 두었습니다.
시84:10-12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 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여호와 하나 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 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만군의 여호와 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들은 만물의 영장이라 일컬음을 받으면서도 어리석고 미련하여서 자신들이 가지고 누릴 때는 귀한 줄을 모르다가 그것을 다시는 가지지 못할 것으로 잃어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사모하고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들의 가장 사모하고 그리워해야 할 영원한 희망은 바로 우리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래서 고라 자손들은 그렇게도 교만하게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무서운 심판을 받고 비로소 그 하나님의 소중함을 깨닫고 목매어 호소하며 그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았던 것입니다. 다음의 시는 바로 그들의 목이 매인 절규입니다.
시42: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 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 하리로다.
시42:11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 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 려 찬송하리로다
시43: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 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마지막 클라이맥스를 체험하게 됩니다. 그처럼 38년 동안이나 소망 없이 베데스다 못가에서 죽어가던 그에게 뜻밖에도 예수님께서 나타나시어 순간에 그 무서운 질병을 고쳐주시는 기적이 일어났기 때문 입니다.
요5:8-9 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 가니라
이 말씀은 한 두 줄에 불과한 성경 구절입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어떻습니까? “38년”과 “곧”이라는 내용을 비교해 보신다면, 아니 38년 동안이나 병을 앓고 있던 환자가 순식간에 그 병이 다 나았다는 사실을 상상해 보신다면, ‘아 이것이 바로 기적이구나!’ 하고 감탄해 마지않을 것입니다. 그랬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그 사람에게 나타나시니 순간에 이처럼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평소에 예수님이 누구신지도 모르던 사람이었습니다.
요5:10-13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 고 걸어가라 하더라 한대 저희가 묻되 너더러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되 고침을 받은 사람이 그가 누구신지알지 못하니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평생을 살아오면서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부터 이처럼 놀라운 사랑과 기적을 체험해 본적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처럼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도 나타나시고 기적을 베풀어 주시는 가슴이 따뜻한 분이십니다. 사랑이 넘치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모든 것을 다 바쳐 섬기고 예배드리는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찾아오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마르다와 마리아는 오라비 나사로가 죽어 나흘이 지났음에도 학수고대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예수님께서 찾아오시니 죽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의 희망은 예수님이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의 소망은 우리 하나님이셔야 합니다. 그 하나님만 찾아오시면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서형통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어느 덧 봄을 여는 춘삼월이 다가왔습니다. 우리들의 영적인 삶에도 신선한 변화와 향기로운 꽃을 피우는 계절이 와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희망을 버리지 마시오!” 라는 제목으로 본문 말씀을 역으로 생각하며 은혜와 축복의 말씀을 증거해 드렸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설문조사를 하였는데 “현재 한국교회의 최고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에 대해 33.1%의 응답자가 “신앙생활과 말씀의 불일치”라고 지적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말씀과 생활의 불일치는 결국 믿음이 없다는 결론으로 맞물려 오늘 우리들의 그릇된 신앙생활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바로 우리들에게 이에 대한 경고와 함께 진정으로 우리들이 이 시대에 희망하고 소망하는 바가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좋은 자료가 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지금 건강의 축복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일니다. 이는 건강한 그 몸으로 하나님의 손발이 되어 복음을 전하고 하늘나라를 확장하는데 사용되어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우리들 주변에 좋은 사람이 있다는 것이 더 없이 소중한 축복이라는 사실을 또한 배우게 됩니다. 더욱 주님의 심장으로 그들과 사랑하며 이 땅에서도 천국을 맛보는 그런 멋진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늘의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나타나 주시기를 학수고대하는 진정한 소망을 가슴에 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만 우리들에게 나타나 주신다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고 진정한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38년 동안이나 앓아야 했던 질병이 순간에 떠나고 죽은 자가 벌떡 일어나는 기적은 한결같이 하나님께서 문제의 중심에 나타나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들 가운데 나타나 주시기를 소원하는 진정한 믿음의 소유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늘 그 귀하신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그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으로 순종하는 그런 멋들어진 빌립보의 사랑스런 성도들이 되시기를 좋으신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 멘
주후 2013년 3월 3일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