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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17일 주일낮 설교 (생각을 바꾸면 기적이 보입니다)

생각을 바꾸면 기적이 보입니다

 

3. 17, 2013

本文:마가복음9:14-29

說敎:崔仁根牧師

 

우리들의 생각은 눈에도 보이지 않지만 우리들의 인생을 놀랍게 바꾸어 줍니다. 생각이 삶의 변화를 주도하기 때문입니다. SBS방속국의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본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경상북도 울진에서 살고 있는 68세 된 한 할아버지는 어려서 열병을 앓다가 그만 시력을 다 잃어버리고 시각장애 1급이라는 끔찍한 판단을 받게 됩니다. 부모님을 원망하며 인생을 절망하며 그렇게 어린 시절을 보내고 스무 살이 되었을 때 결국 부모님마저도 돌아가셨습니다. 바로 그 때 그는 간절하게 결단합니다. “나는 살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그는 비록 앞을 보지 못하는 장애인이지만 자기의 인생을 포기하지 않고 굳굳하게 살아보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 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지팡이 하나만 들고 산으로 등산을 하기도 하고 폐지를 주워 생활에 보태기도 하며 심지어는 길거리를 뛰어다니며 운동도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가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에 등장하게 된 것도 앞을 보지 못하는 할아버지가 거리를 뛰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랬습니다. 평생을 절망과 좌절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1급 시각장애자이지만 생각을 바꾸니 이렇게도 정상인 못잖은 멋진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도 우리들에게 바로 이와 같은 사실을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귀신에 붙들려 불에도 넘어지고 물에도 자빠지는 아들을 가진 비운의 아버지가 생각을 바꾸고 예수님을 만나 기적같이 귀신에서 해방되는 복을 누리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답답한 마음에 예수님께 이렇게 말씀 드렸습니다. “예수님, 할 수 있거든 이 아이를 좀 고쳐주십시오.”라고 말입니다. 그 말을 들은 예수님은 단도직입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그 아버지는 순식간에 부정적이던 자신의 생각을 바꾸고 다음과 같이 외쳤습니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십시오.”라고 말입니다. 이렇게 변화된 생각과 결단은 결국 예수님의 마음을 움직였고 주님은 그 아들에게서 귀신을 내 쫓아 주셨습니다. 우리들도 오늘날 이와 같은 부정적인 생각 때문에 인생을 허비하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해 보지도 아니하고 “안 된다”고 단정하는 일이나 아예 해보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무관심 하는 일들이 바로 그렇습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능력이 한이 없으셔도 이처럼 시도조차 하지 않는 사람을 통해서는 그 어떤 역사도 이루실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들도 할 수 있다는 담대한 믿음으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오늘 본문의 역사처럼 예수님의 기적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5월 19일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동행, 너와 함께하면!”이 바로 그 날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다섯 명씩이나 작정하고 하나님 모르는 이웃들을 데려오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작정하지 못한 채 시간만 보내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생각의 차이인 것입니다. “나는 아는 사람이 없다, 나는 데리고 올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전도하는 일은 절대로 못한다...”는 등의 부정적인 사고 때문에 결국에는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게 되는 불충을 저지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어떻게 이와 같은 부정적인 생각을 바꿀 수 있는지? 함께 공부하면서 신선한 변화를 만들어 기적을 맛보는 진정 복 받은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생각을 바꾸면 기적이 보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시고 변화산상에 올라가신 후 나머지 아홉 명의 제자들은 산 밑 마을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 때 귀신에 붙들려 고생하는 아들을 데리고 한 아버지가 예수님의 제자들을 찾아왔습니다. 행여나 그들이 자신의 아들에게 들린 흉악한 귀신을 내 쫓아 줄 수 있을까 싶어서였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참담한 현실 앞에서 좌절하고 있을 때 마침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 오셔서 그 광경을 목도하시게 됩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또 다시 예수님 앞에 엎드려 호소하게 됩니다. 제자들이 하지 못하는 무능을 이미 경험한터라 예수님께 다소 부정적인 마음으로 호소를 합니다. “할 수 있거든 내 아이를 고쳐주십시오.” 하고 말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 아버지의 생각부터 고쳐야 되겠다고 판단하시고 책망을 하신 것입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말입니다. 다행히도 그 아버지는 예수님의 그 책망을 듣자 바로 그 생각을 바꾸고 항복하며 예수님께 호소합니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음을 도와주십시오.”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즉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아버지가 생각을 바꾸자 예수님께서 그의 아들을 순식간에 고쳐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종은 오늘 본문의 이와 같은 모습을 바라보면서 하나의 중요한 결론을 얻었습니다. “생각을 바꾸면 기적을 볼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은 성경 전체의 사상입니다. 실제로 그렇게 생각을 바꿀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다윗이 비록 어리고 힘이 없지만 그 형들과 이스라엘 군대와 달리 생각을 바꾸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담대하게 골리앗 앞에 섰을 때 하나님은 그로 하여금 거대한 골리앗을 이길 수 있도록 역사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리고 담대하게 외쳐야 합니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음을 도와주십시오.”라고 말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움직이십니다. 주님만 움직이시면 그 자체가 바로 기적이 됩니다. 할렐루야! 그러면 어떻게 해서 우리 주님께서 움직이시고 그 흉악한 귀신을 내어 쫓으시고 평생을 통해 고생하던 아들이 깨끗이 나아 새사람이 될 수 있었는지 그 배경을 함께 살펴보면서 신선한 기적을 체험하도록 길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내 힘으로는 안 된다는 현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날 우리들에게 주어진 인생을 살아가면서 삶의 주체를 우리 자신에게 두고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내가 해야 하고 내가 할 수 없으면 안 되는 것으로 치부하게 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암에 걸리게 되면 자연스럽게 삶의 줄을 놓고 포기하게 됩니다. “암은 죽는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암이라는 판정을 받고도 굳건한 믿음과 의지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고 자신도 최선을 다해 암을 극복하고 일어난 사람이 부지기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스스로 할 수 있고 우리 스스로 할 수 없다는 섣부른 판단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들의 생사화복은 우리 스스로 관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 안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관한 우리 예수님의 말씀을 한 번 들어보시겠습니다.

 

마10:28-31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 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 새보다 귀하니라

 

이 말씀을 조용히 묵상해 보신다면 우리 인생이 주님의 손 안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진정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삶의 주체는 우리들 자신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할 수 있으면 하고 할 수 없으면 하지 않는 이와 같은 인본주의적 사고를 버려야 합니다. 할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할 수 없는 것은 더 더욱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한다는 신본주의의 생각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그래야 할 수 있어도 교만하지 않고 할 수 없어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이름 없는 한 아버지의 모습은 바로 오늘 우리들이 본받아야 할 좋은 모델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마을에 머문다는 소식을 듣고 망설이지 아니하고 아들을 데리고 그들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이 제자들이 고치지 못했을지라도 절망하고 낙심하지 않은 채 또 다시 주님께서 찾아오시자 그 주님 앞으로 아들을 데리고 나타났습니다. 무엇입니까? 그만큼 누군가의 도움을 절실하게 사모하고 있었다는 반증입니다. 그것은 그만큼 스스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판단이 앞섰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우리 스스로 모든 것을 다 해결해 낼 수 없다는 자신에 대한 절망을 철저히 체험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두 손 들고 절대자이신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각부터 바꾸어야 합니다. 주님을 찾아야 하고 주님을 만나야 한다는 이 단순한 생각은 반드시 기적을 만들어 놓습니다. 그것이 성경 전체의 사상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 세리들은 인간 측에도 들지 못했습니다. 악랄하게 백성들을 착취하여 로마에 갖다 바치고 그 와중에 자신의 배를 불리는 가장 악덕스러운 직책이 바로 세리였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그렇게 해서 돈을 많이 벌고 잘 살았던 한 세리가 있었습니다. 삭개오라는 사람이 바로 그 장본인이었습니다. 비록 돈은 많이 벌었지만 사람들 속에서 왕따를 당하고 업신여김을 당하며 비난을 받고 사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때에 예수님이란 신기한 분이 나타나 온통 장안의 화재거리가 되셨습니다. 자기도 그 예수님에 관해 알고 쉽고 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워낙에 많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으므로 그는 감히 그들 속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육신적으로는 남달리 키가 작아 주님을 볼 수조차 없었고 현실적으로는 모든 시민들이 자신을 인간 취급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무리들 속에 감히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채면불구하고 주님을 만나야 되겠다는 결단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뽕나무 위로 올라가 먼 발취에서나마 주님을 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그 많은 군중들을 해치고 나오신 주님께서 바로 자신이 올라가 있는 뽕나무 밑으로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삭개오야, 내려오너라 오늘 내가 너희 집에서 유하여야 되겠다.”고 말입니다. 무엇입니까? 기적입니다. 단 한 번 보기만 원했던 삭개오에게 세상 사람들도 싫어하는 자신의 집으로 친히 오시겠다고 하시니... 이것이 바로 기적입니다. 그랬습니다. 생각을 바꾸면 기적은 일어나는 것입니다. 나의 삶의 주체가 내가 아니요 주님이시라는 이 단순한 생각의 변화가 바로 이처럼 놀라운 기적을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절대자시오 전능자이신 하나님을 찾아 나서야 한다는 이 생각으로 말입니다. 그렇게만 되면 우리들도 지금 기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 말씀이 우리들에게 던져주는 놀라운 축복이요 교훈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내 힘으로 안 되면 더 큰 능력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사람이 유능한 것 같으나 무능하고 사람이 지혜로운 것 같으나 미련하다는 사실은 우리 스스로 삶 속에서 늘 체험하는 일입니다. 실제로 우리 인생은 별것 아니라는 생각을 늘 가지게 됩니다. 그렇게 잘 나가던 사람이 한 순간에 풍을 맞고 자리보전하는 경우나 그렇게 출세하고 성공했다고 하던 사람이 한 순간에 암에 걸려 이미 세상을 떠났다거나,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사람이 지난 밤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리를 너무나도 많이 듣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인생은 절대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아야만 주어진 인생을 제대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결론을 얻게 됩니다. 더 더군다나 본문의 주인공처럼 눈에도 보이지 않는 귀신이나 악령에 사로잡히게 되면 속수무책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현실을 직면한 아버지는 매우 현명한 처신을 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은 상태에서 절망하고 주저 않아 있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행동했고 길을 찾아 나섰기 때문입니다.

 

막9:22 귀신이 저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그가 기적을 볼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행동입니다. 우리는 이미 지난 주일에 놀라운 진리를 배운 바 있습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는 진리 말입니다. 행동해야 합니다.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시시때때로 동일한 의미의 말씀을 반복적으로 던져 주십니다.

 

잠8: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렘29:13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요14:21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 를 나타내리라

 

고 말입니다. 이 말씀들을 조용히 묵상해 보신다면 우리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 짐작하게 될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주님을 찾아야 하고 적극적으로 그러한 주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고 삶 속에 실천해야 된다는 사실을 또한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주님을 만날 수 있고 누가 그 주님의 기적을 맛볼 수 있습니까?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오늘 본문 말씀의 주인공처럼 고통 가운데 있어봐야 주님을 찾습니다.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좌절해 보아야 절대자이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를 먼저 떠나보낸 효성이 지극한 젊은 딸이 어머니의 사후가 늘 마음에 걸립니다. 아마도 그 어머니는 딸과 함께 절에 다녔던 것 같습니다. 어느 날 스님이 강의하는 자리에 이 여인은 참석을 하였고 수많은 대중 앞에서 질문을 하였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가 10여 년 전에 이미 이 세상을 떠나가셨는데 참으로 우리 어머니는 천국에 가 계시는지 너무나도 궁금합니다. 그러니 스님께서 우리 어머니가 지금 어디에 계시는지 좀 가르쳐 주십시오. 과연 불교에서 말하는 극락이라는 곳이 있는지? 우리 어머니가 과연 그곳에 가 계시는지? 좀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간절히 요청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스님이 대답을 하시는데 참으로 놀랍니다. “믿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고 했으니 천국에 가 계신다고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 딸이 다시 말합니다. “스님, 그 말은 기독교에서 하는 말 아닙니까? 그것 말고 스님이 대답해 주십시오.” 하고 말입니다. 그러자 그 스님이, “지금 스님인 내가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믿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하고 말이오.” 참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누가 뭐래도 이 세상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우리들의 사후에 천국을 보장해 주실 분도 오직 우리 하나님뿐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망설임 없이 믿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믿음의 최종 주인이신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이렇게 믿고 만나기만 하면 기적은 일어나는 것입니다.

 

막9:24 곧 그 아이의 아비가 소리를 질러 가로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 는 것을 도와주소서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오늘날 교회에 나오는 성도들에게 믿음이 없습니다. 돈 없이 식당에 가면 배를 불릴 수 있겠습니까? 믿음 없이 교회에 나오면 기적을 볼 수 있겠습니까? 똑 같은 원리입니다. 배가 고프면 돈을 가지고 식당에 가야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고 이 시대에 문제를 해결 받고 하나님의 기적 보기를 원하신다면 반드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오늘 본문의 주인공처럼 절규해야 합니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십시오.”하고 말입니다. 이처럼 믿음이 이 시대에 소중한 것은 이처럼 값진 믿음이 없기 때문에 능력과 기적의 주인이신 우리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또한 만나보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찾지도 않는데 어떻게 만나며 만나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그분의 기적을 볼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믿음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지난 1월 29일에서 2월 5일까지 강원도 평창에서 세계 장애인 올림픽이 열렸습니다. 이 개막식에서 애국가를 부른 22살의 박모세군의 감동스토리는 전 세계인의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그는 태어난 지 3일 만에 대뇌 70%, 소뇌 90%를 잘아낸 아이였기 때문입니다. 이 수술을 집도한 의사의 소견은 살아 날 가망이 제로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 조영애(49세)씨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아무 것도 없다는 절망 속에 사로잡혀 오직 하나님께만 이 아이의 생명을 맡겨드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지난 22년 동안 이 아이를 살려주시고 비록 지금도 지체장애, 지적장애, 시각장애, 자폐, 청력장애를 가진 5중 장애인이지만 밝고 맑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건강한 청년으로 자라나게 하셨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모여든 장애인들 앞에서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애국가를 열창하여 그들의 마음을 울리게 하셨던 것입니다. 무엇입니까? 불행과 불가능의 생각을 믿음으로 극복한 기적 그 자체인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꿈을 안고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이신 아버지는 참으로 적극적인 사람인 것 같습니다. 아들을 데리고 제자에게로 또 예수님께로 찾아나서는 자세가 그렇고 믿음이 있으면 기적을 보리라는 주님의 말씀에 즉각 엎드려 믿음 없음을 고백하고 그 믿음 얻기를 소원하는 모습이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결국 주님의 기적을 보는 행복한 자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시대에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처럼 적극적인 생각과 행동입니다. 생각이 있으면 행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을 한 번 생각해 보신다면 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어렵지 않게 터득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적극적인 믿음으로 평생을 기적을 만들며 산 멋진 인물이 되었습니다.

 

빌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참으로 놀라운 말씀입니다. 우리 인생은 실로 무능하고 미련한 존재라는 사실을 이 종은 앞서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무엇이라 고백하고 있습니까?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앞선 조건 절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무능하지만 우리 주님은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그 분 안에서만 유능한 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와 같은 믿음으로 세계적인 인물이 된 사람이 있습니다.

 

1847년 겨우 12살이 된 때에 부모님을 따라 스코틀랜드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능력이 없었던 탓에 그 소년은 어린 나이에 전보 배달부로 일했습니다. 하루는 땀을 뻘뻘 흘리며 전보를 전달해 주는데 수취인이 이 소년의 어깨를 두들겨 주면서 격려해 주었습니다. “너는 참으로 명석하게 생겼구나. 지금은 몇몇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해주고 있지만 훗날에는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사람이 되거라.”하고 말입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그 소년의 가슴에 미래에 대한 엄청난 꿈과 비전이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그 꿈을 한 시도 잊지 않고 가슴에 품고 노력했습니다. 그 소년이 바로 미국의 교육과 사회복지에 지대하게 공헌했던 강철 왕 카네기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생각은 삶을 바꾸고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소극적이면 안 됩니다. 내가 할 수 없다면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꿈을 잃지 말고 적극적인 자세로 현실을 극복해 나가는 인물이 바로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적극적으로 우리들에게 주어진 인생을 살아가고 무엇보다도 이웃들에게 소망을 전하는 전도자로 우뚝 서야 하겠습니다. 이 세상 그 어떤 일보다 하나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일이 바로 전도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문제가 있고 고통이 있는 것은 아직도 이 세상에 살아 있다는 반증입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문제와 고통이 있었기에 거룩하신 예수님을 만나 기적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우리들의 현실과 상황을 탓하지 말고 적극적인 자세와 믿음으로 인생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기적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각부터 바꾸어야 합니다. 문제가 있으면 스스로가 아닌 주님의 능력을 사모하는 생각으로 바꾸어야 하겠고 그 문제를 안고 주님을 찾아가면 반드시 해결 받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바꾸어야 하겠습니다. 그 생각이 바로 적극적인 생각이고 긍정적인 생각입니다. 이러한 자세는 결국 주님을 만나게 되고 주님을 만나게 되면 믿음의 필요성을 발견하게 되고 그 믿음을 회복 받게 되면 비로소 기적을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 말씀을 우리들에게 던져 주는 놀라운 교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이제는 무슨 일이든지 적극적으로 앞서서 감당하고 그렇게 노력하고 힘쓰면서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을 체험하는 진정한 멋쟁이로 변화를 받아야 하겠습니다. 할 수 있다는 생각은 놀라운 믿음의 결과이기 때문에 생각이 그렇게도 중요한 것입니다. 모쪼록 오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예배자로 쓰임 받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은 이와 같은 적극적인 자세와 믿음으로 날마다 기적을 만들어 내는 거룩한 천국 백성들이 되시기를 좋으신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 멘

 

주후 2013년 3월 17일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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