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28일 주일낮 설교 (와서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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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Tuesday, 30 April 2013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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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서 보라!(Come and See)
4. 28, 2013
本文:요한복음1:35-42
說敎:崔仁根牧師
미국 백인들에게 김치나 된장찌개 맛을 소개해야 한다면 어떤 방법이 가장 좋을까요? 두 말할 필요도 없이 그들을 데리고 와서 김치와 된장찌개를 먹여보는 것이 가장 빠르고 분명한 방법이 될 것입니다. 맛을 그들에게 설명할 수 있는 재주를 우리는 가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한국 풍성한 교회의 김정현 성도님은 우리들처럼 총동원 주일을 앞두고 전도에 매진하여 100명 이상을 전도한 전도왕이 되어 간증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녀는 원래 소심하고 부끄럼을 많이 타 남에게 무엇을 부탁하거나 다가서지 못하는 성품이었지만 기도하고 금식하며 용기를 얻어 그처럼 놀라운 결실을 거둘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단지 자신의 딸아이가 나가는 학교 모임에 참여하면서 그 때 학부형들을 자신의 교회로 초대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겠다 싶어 그렇게 행동으로 옮겨 그처럼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짧은 시간에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성경의 진리를 길게 가르치거나 전하여서 그들을 교회로 데리고 오는 것은 요즘처럼 바쁜 시간 속에서는 그리 좋은 방법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가장 짧은 시간에 사람들에게 관심을 줄 수 있는 것은 일단 교회에 호기심을 갖게 하고 그들을 교회로 데리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일단 교회에 오게 되면 말씀을 듣게 되고 교회 내의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며 선입견과 특별한 곳으로만 여겼던 교회가 따뜻한 사람들의 보금자리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해 주면 지속적으로 그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전도할 수 있는 최상의 길은 바로 교회로 데리고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도 전도 방법의 하나로 강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 바로 “와 보라”는 것입니다.
요1:39 예수께서 가라사대 와 보라그러므로 저희가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제 십 시쯤 되었더라
요1:46 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가 로되 와 보라하니라
는 말씀들과 같이 말입니다. 앞서 동영상에서 보셨듯이 김정현씨도 이처럼 학부형들을 어떻게든 교회에 데리고 나오는데 성공하였고 그렇게 교회에 나와 본 사람들은 목사님의 말씀도 좋고 교인들도 친절하며 교회 분위기도 너무 좋았다며 기쁘게 돌아갔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들이 배워야 할 전도의 최상의 방법이기에 함께 공부하면서 숙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와서 보라! Come and See
우리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최상인지 모를 때는 언제나 예수님을 표준으로 삼으면 됩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는가? 생각해 보고 예수님께서 하신 방법을 따라가면 틀림없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는 전도하는 방법에도 예외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전도하기 위해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막1:38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처럼 말씀하실 정도면 전도가 우리 성도들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주님께서 전도를 위해 오셨다면 전도하실 때 무엇인가 방도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에 나타나 있는 “와 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보다 먼저 이 세상에 와서 예수님의 길을 예비해 왔던 세례 요한이 마침내 예수님께서 나타나시자 외쳤습니다.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세례 요한을 따르던 제자들이 갑자기 나타나신 예수님에 대해 엄청 호기심을 나타내며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께로 달려갔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들이 구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말입니다. 그러자 그들은 또 되물었습니다. “선생님, 예수님은 도대체 어디에 계십니까?” 하고 말입니다. 이는 그들이 아직도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누가 과연 예수님이신지 분간을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바로 그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하신 말씀이, “와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들은 비로소 그 분이 바로 예수님이신 것을 와서 보고서야 알았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 때부터 그들은 주님과 함께 거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요1:35-39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예수의 다니 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거늘 예수께서 돌이켜 그 좇는 것을 보시고 물어 가라 사대 무엇을 구하느냐 가로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와 보라 그러므로 저희가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제 십시쯤 되었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무엇입니까? 와서 보고는 떠날 수 없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세례 요한의 제자들처럼 무엇보다도 먼저 예수님께로 와야 하고 와서 보기만 하면 그 다음은 저절로 멋들어진 결과가 나오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전도 대상자들도 먼저 와서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오래 전 이 종을 사랑하는 선배 목사님이 저에게 간곡히 부탁을 하나 하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골프를 배우라는 것이었습니다. 고려파에서 잔뼈가 굵은 이 종은 단칼에 면박을 주었습니다. “목사가 무슨 골프를 칩니까?” 하고 말입니다. 그 때 선배는 머쓱해서 물러갔습니다. 그런데 그 분은 그 이후 저에게 틈만 나면 골프를 치면 목회와 건강에 매우 유익을 주니 배우라고 전했습니다. 그러나 이 종은 그 때마다 핀잔을 주며 도리어 목사가 더군다나 이민목회를 하면서 골프를 치면 안 된다고 역설했습니다. 성도들은 뜨거운 불 앞에서 하루 종일 사업한다고 고통을 당하고 그 돈으로 헌금하여 교회가 유지되고 목사가 살아가는데 어떻게 그들 앞에서 골프를 치며 배신할 수 있겠느냐고 설교(?)를 해 주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를 10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결국은 그 선배의 전도를 받아 골프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배우고 나니 그 운동이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목회자에게 다시 없이 좋은 운동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그 선배에게 항의합니다. 진작에 딱 붙잡아서 이것이 좋은 것이니 배우라고 강하게 전하지 않고 질질 끌며 10년이란 세월을 낭비하게 하였느냐? 고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부목사들에게 반드시 이민목회를 하려면 골프를 배우라고 강권해 오고 있습니다.
이는 전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우리들이 말하고 전해도 예수님이 누구신지 맛을 보지 못한 그들에게는 공연불에 불과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최상의 길은 말이 아니라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여주고 교회를 보여주고 목사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교회의 성도들을 보고 예수님을 만나게 해야 하고 교회의 목사를 보여주고 예수님을 만나게 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자니 자연 그들을 먼저 교회에 데리고 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와서 보라!”는 전도 방법인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우리들의 말과 행동과 형제 사랑하고 섬기는 삶이 참으로 귀하고 중요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우리들을 보고 우리들의 내면 머물고 계시는 예수님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