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26일 주일낮 설교 (같이 갈 친구가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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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Wednesday, 29 May 2013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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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갈 친구가 있습니까?
5. 26, 2013
本文:요한복음15:12-17
說敎:崔仁根牧師
지난 주간 서울의 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대학생이 인터넷에 올린 글을 읽고 너무나도 가슴이 아팠습니다. 저녁 시간대에 한 중년 아저씨가 보기만 해도 불량자 같아 보이는 청소년 8명을 데리고 편의점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 아저씨는 소리쳤습니다. “자 지금부터 여기에서 무엇이든지 너희들이 가지고 싶은 것은 무재한 다 가져도 좋다. 마음대로 가지고 가라. 계산은 내가 한다.” 그러자 그들은 미친 듯이 물건들을 쓸어 담아 왔습니다. 그 아이템은 100개가 넘었습니다. 영수증의 길이만도 50cm가 넘었습니다. 그런데 그 편의점에서는 한꺼번에 100번 이상 케숴를 찍을 수 없게 되어 있어 그나마도 그것만 들고 나가게 된 것이 다행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희희낙락하며 개선장군들처럼 가게를 빠져 나갔습니다. 그 모든 계산을 다 마친 아저씨는 소주를 한 병 사서 그 자리에서 그대로 다 마시고 가게 바닥에 쓰러져버리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배경이 우리 모두를 가슴 아프게 합니다. 아들이 학교에서 그들로 인해 너무나도 많은 왕따를 당하고 괴롭힘을 당하여서 수 없이 학교에 진정하고 경찰에 호소를 하였으나 조금도 시정이 되지 않자 직접 아버지가 그들 앞에 나서서 이렇게라도 그들이 원하는 것을 사주면 아들을 괴롭히지 않을까 싶어 그들을 직접 데리고 와서 그렇게 원하는 대로 사주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 대한민국의 자식 키우는 부모가 겪는 가슴 아픈 현실입니다. 한창 친구들과 어울려 즐겁고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가야 할 그런 나이에 이처럼 괴롭힘을 당하고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길이 없는 그들의 인생에 희망과 꿈이 있는 내일이 진정 있을까요? 그래서 이 종은 가정의 달을 마지막으로 보내는 아쉬운 주일에 이렇게 제 자신과 여러분들에게 질문해 보고 싶습니다. “같이 갈 친구가 있습니까?” 하고 말입니다. 이 세상은 앞을 봐도 뒤를 봐도 오직 자기 자신의 유익만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눈곱만큼 이라도 자신들에게 손해가 된다 싶으면 한 순간에 친구도 관계도 다 집어던지고 원수가 되어 공격해 오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말세의 이와 같은 징조를 다음과 같이 정리해 두었습니다.
딤후3:1-5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 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 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 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 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고 말입니다. 과연 오늘 우리들은 이와 같은 말세의 현상 앞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는지? 그렇지 못하다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는지? 한 번 가슴을 열고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같이 갈 친구가 있습니까?
저는 지난 한 주간동안 LA에서 열린 KAPC(미주한인예수교장로회)총회에 다녀왔습니다. 지난 총회장은 총신 75회 저와 동기동창 친구였습니다. 그렇게 총회장이 못되어 혈안이 되어 있다가 결국은 작년에 총회장이 되었는데 얼마나 지난 1년 동안 마음고생을 하였는지? 영감처럼 늙고 살이 다 빠지고 딴 사람과 같이 변해 있었습니다. 그만큼 우리 총회가 작년 한 해 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도 총회가 열리자 말자 단상이 점령되고 총회장이 총회를 시작조차 못하도록 제지를 당하고 시큐리티가 달려오고 급기야는 경찰까지 동원되는 사상 초유의 비참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이유는 오직 단 하나 자기의 사람, 자기 계파의 사람을 비호하고 옹호하기 위해서는 법도 질서도 원칙도 다 뭉개버리고 세상에서도 볼 수 없는 수단과 방법으로 자신들의 유익만을 쟁취하겠다는 시장잡배만도 못한 목사들의 타락한 근성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지난 4월 1일 LA에서 있었던 우리 총회산하 목사 장로 기도회에의 주강사로 부름 받고 내려가 “오직 예수님을 모시고 그 예수님께 기도하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멋들어진 목사 장로가 되자!”고 말씀을 전하고 왔습니다. 그 때 전한 말씀이 아직 침도 마르지 않았는데 그들이 행동하고 말하는 모습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과는 상관없는 딴 사람이 되어 악을 저지르는 모습을 보고 참으로 이 종은 절망하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이 시대의 마지막 보루라고 할 수 있는 목사와 교회가 정의를 잃고 사리사욕에 눈이 어두워지면 이 세상에는 더 이상의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교단이라고 하는 합동측이나 미국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미주총회가 이 정도로 타락하고 세상적이 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고 하나님 앞에 부끄러울 뿐입니다. 목사 한 사람이 총회에 참석하려고 4일 동안 사용한 호텔과 음식과 회의장과 각 종 시설물 사용료 등 1인당 4-5백 불의 돈이 들어가고 또 각 목사님들이 원근각지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려면 비행기 삵만 해도 4-5백 불이 들어 최소한 1인당 1천불 이상 들여서 총회에 오는데 300백여 명의 회원들이 모이면 나흘 동안 회의하는데 3십만 불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는데 이렇게 많은 돈을 들여 새벽 1-2시까지 회의를 하는 내용이 서로 욕하고 죽이고 자기들만 옳다고 주장하는데 소비한다고 상상해 본다면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 것인가를 짐작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종은 그들 앞에 나가서 마이크를 잡고 책임질 사람은 책임을 지고 잘못한 사람은 회개를 하고 좀 더 우리 총회가 이렇게도 많은 사람과 돈을 모아 동성애 결혼과 청소년 문제, 이단과 이슬람, 계속되는 불경기 문제 등, 이 시대의 성도들이 힘들어 하는 이런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지혜와 능력을 모아 새로운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호소를 해였지만 이미 성령님이 떠난 그들의 귀에는 들려지지를 않았고 일부 감동 받은 회원들이 개탄을 하고 가슴을 쳐도 악의 큰 세력의 벽을 넘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와 같은 현상이 그 오랜 세월 동안 조금도 변하지 않은 채 지속되어 오는 것은 사리사욕에 젖은 원로들의 비신앙적인 자세와 가치관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와 같은 세대를 향하여 우리 주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요15:14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곧 나의 친구라
고 말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악을 행하는 사람의 친구가 아니라 자기에게 유익을 주는 사람의 친구가 아니라 오직 우리 주님과 친구가 먼저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우리 죄 많은 인생들이 주님과 친구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 조건은 오직 단 하나입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께서 명하시는 말씀대로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또 주님께서 명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요15: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 랑 안에 거하라
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이 악한 세대를 넘어 주님과 친구가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우리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길은 주님처럼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들도 다 사랑하면서 살아갑니다. 문제는 그 사랑의 대상이 무엇인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돈을 사람보다 더 사랑하고,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와 같은 우리 주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면서 진정으로 우리 남은 인생을 같이 살아 갈 친구는 누구인지? 그와 같은 소중한 친구를 어떻게 만들어 갈 수 있는지? 함께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만나는 복된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돈이 친구인 줄 알고 돈을 따라갑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돈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 종도 돈을 매우 좋아합니다. 누가 돈을 주면 그렇게 기분이 좋습니다. 과연 이것이 저만 그럴까요? 아닐 겁니다. 누구든지 다 그럴 겁니다. 문제는 주님보다 더 사랑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돈이 좋기는 하지만 그 돈으로 구원을 살 수 없고 그 돈으로 생명을 살 수가 없고 그 돈으로 천당 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들이라면 그 누구나 다 3가지의 친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세 친구가 내가 죽으면 어떻게 하는지 아십니까? 한 친구는 죽는데 까지만 동행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친구는 죽어도 계속 따라 와서 땅에 묻는데 까지 갑니다. 하지만 그 이상은 아닙니다. 그러나 마지막 친구는 죽은 다음 천국까지 그리고 그 다음의 영원한 세계까지 동행해 주십니다. 이 세 친구가 무엇인지 짐작이 가십니까? 첫 번째 친구는 돈입니다. 두 번째 친구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친구는 우리 구주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돈이 좋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 돈은 이 땅에 살아 있을 동안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얼마나 오래 살아 있을 겁니까? 단지 그 때 까지 만을 위해 영원을 상실하는 그릇된 친구를 만든다면 이 세상에서 그 보다 더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경고해 두셨습니다.
딤전6: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 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라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돈이 좋기는 하지만 영원을 살아가야 할 성도들에게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돈이 최고인 줄 알고 오로지 이 돈을 쫓으며 사랑하며 의지하고 살아갑니다. 오늘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서 분명한 한 가지를 깨달아야 할 것은 우리들을 이 땅에 보내시고 자녀 삼아주신 하나님은 우리들이 이 땅을 살 동안 필요한 것을 반드시 채워주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부모가 자식을 낳아 놓고 모른 채 버려두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미련하고 어리석은 사람들도 자기가 낳은 자식만큼은 거두는 것이 상식이라면 하늘의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지 않겠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들에게는 이와 같은 사실을 확신하고 돈을 친구로 삼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마6:31-32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사람도 진정한 친구는 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참으로 많은 아픔과 실망과 상처를 받습니다. 우리들에게 그와 같은 아픔과 실망을 주는 대상은 과연 누구입니까?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아픔을 주는 사람은 또 누구입니까? 먼 곳에 있는 모르는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가장 가깝게 있었고 가장 믿었고 또한 가장 사랑했던 사람들입니다. 가만히 잘 살아가고 있는데 난데없이 나타나 사랑한다고 일생을 다해 책임지겠다고 꼬셔서 결혼해 놓고 다른 사람에게로 날아가 버리고 평생을 통해 씻을 수 없는 아픔과 고통을 주는 대상은 바로 이와 같은 사람입니다. 이와 같은 각도에서 생각해 보면 사람 또한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비록 사람이지만 진정 믿을 수 있고 인생의 동반자로 함께 갈 수 있는 대상이 있는데 그것을 우리 예수님은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설명해 주셨습니다.
요15: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 나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무엇입니까? 무엇이 사람이지만 친구가 될 수 있는 조건입니까?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이 조건입니다. 과연 이렇게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릴 정도의 사람을 가졌습니까?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사람 또한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종이 오늘 날까지 짧은 이민 목회이지만 그 힘든 33년여의 이민목회를 해 오면서 느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사람을 헤치는 것은 사람이고 목사를 죽이는 것은 목사고 우리 한인들을 괴롭히는 것은 바로 우리 한인이더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 사람이 어찌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명령하십니다.
사2:22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
시146:3-4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라고 말입니다. 우리들이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사람하고 섞여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떠나서는 살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을 진정한 친구라 생각하고 믿고 의지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저 다윗과 같이 흉을 보지 말고 어리석음도 보지 말고 다만 사랑하며 기도 할 뿐인 것입니다.
시109:4 나는 사랑하나 저희는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
그러므로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하나님의 말씀을 쫓아가려면 참으로 외롭고 힘든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길이 힘들고 어려운 것만이 아닌 것은 우리 주님께서 함께하시고 친히 친구가 되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만이 진정한 친구가 되십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오면서 참으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고 깨닫습니다. 이를테면 고생을 하면서 축복의 가치를 알게 되고 외로워보면서 사람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고 이 세상에서 상처입고 절망하고 실패해 봄으로서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혹자는 설파했습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의 맛을 모른다.”고 말입니다. 험한 세상을 살아오면서 하나님을 만난 성도들만이 남은 험한 세상도 살아갈 능력과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요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 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고 말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의 말씀입니까? 주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구하고 그렇게 구하는 것은 다 얻을 수 있게 해 주시려고 우리 주님은 우리들의 그 모든 죄악을 지시고 십자가로 올라가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그 모든 악한 것들을 다 막아주시고 그 무서운 질병에서 보호해 주시고 수많은 위험과 사고에서 보호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우리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15: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 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고 말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주님은 우리들에게 그 어떤 비밀도 없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신분을 격상시켜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 말씀이 얼마나 소중하고 축복된 말씀인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주일 청년대학부가 보여 준 드라마가 생각납니다. 이 세상에서 그 누구도 거들 떠 보지 않는 타락한 한 인생을 우리 주님께서 어떻게 보호하시고 사랑하시고 구원해 주셨는가를 우리는 가슴 찡하게 보았습니다. 참으로 무자비하게 학대당하고 버림받는 한 사람을 온 몸으로 막아서시며 지키시고 구원하시던 주님의 모습에서 이 종은 가슴으로 울컥하고 솟아오르는 눈물을 억제하지 못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모습이 바로 우리 주님의 모습입니다. 그 모습이 바로 진정한 친구가 과연 어떠한 존재인지를 대변해 주는 모습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인생 여정에 바로 이러한 친구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들이 힘들 때 그 무거운 짐을 함께 져 줄 수 있는 친구, 죽을 만큼 아프고 외로울 때 그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능력 있는 친구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과연 누가 우리를 위해 그렇게 대신 짐을 져주고 문제를 해결해 주고 힘들고 험한 길이라도 함께 걸어 주겠습니까? 아무리 살펴봐도 그런 친구는 없습니다. 결코 돈이 우리들의 외로움을 달래 주지 못합니다. 결코 돈이 우리들의 죽을 몸을 살려주지 못합니다.
영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30대의 젊은 여성이 암으로 사경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부모로부터 상속 받은 돈이 엄청 많았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6개월도 채 못산다는 마지막 사형선고를 받고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그녀가 성형외과를 찾아가 온 얼굴과 몸을 고치는데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부었습니다. 하도 비이성적인 일이라 기자들이 찾아가 인터뷰를 했습니다. 왜 아까운 돈을 얼마 있지 않으면 죽게 될 그 몸에다 쏟아 붓느냐? 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그 여인은 당당하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죽으면 이 모든 돈은 나와 상관이 없어집니다. 남은 몇 달 만이라도 더 이뻐지고 더 곱게 살고 싶습니다. 이것 외에 내가 저 많은 돈을 쓸데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고 말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우리들이 그렇게 귀하게 생각하고 사모하고 사랑하는 돈의 한계는 바로 여기까지입니다. 죽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어떻습니까? 사람은 철저히 자기에서 유익할 때만 우리 곁에 머뭅니다. 나로 인해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해가 된다면 미련 없이 우리 곁을 떠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어떻습니까? 힘들 때도 좋을 때도 우리 주님은 언제나 우리 곁에 머무십니다. 그 어떤 경우에도 우리 주님은 우리 곁을 떠나지 않습니다. 언제나 우리들의 보이지 않는 등 뒤에서 우리들과 함께 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분의 이름은 [임마누엘]이십니다.
마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 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주님은 친히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약속해 주셨습니다.
마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을 믿는 자가 바로 신자입니다. 이렇게도 좋으신 주님께서 바로 지금 선포하십니다. “나는 너희들의 친구니라”고 말입니다. 참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하늘의 그 놀라우신 하나님께서 사람도 무시하고 함께 해 주지 않는 연약하고 부족한 우리들을 친구하고 불러주시니 말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우리 주님의 이 사랑을 함께 노래해 보기를 원합니다.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나의 인생길에서 지치고 곤하여
매일처럼 주저앉고 싶을 때
나를 밀어주시네
일어나 걸어라 내가 새 힘을 주리니
일어나 너 걸어라 내 너를 도우리...
우리들의 영원한 친구 되시는 주님을 사랑합시다. 그리고 이렇게도 우리들과 함께 이 땅에서도 동행해 주시고 천국에서도 영원히 함께 해 주시는 귀하신 주님을 영원히 가슴에 새기고 외롭지도 말고 낙심하지도 말며 남은 우리들의 삶을 승리하는 당당한 그런 멋진 성도들이 되십시다. 그래야만 우리 친구 되시는 주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기뻐하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어느 덧 가정의 달 5월도 다 저물어 갑니다. 이 땅에서 진정으로 가장 귀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어리석게도 우리는 그리 귀하지도 않는 것은 귀한 줄 알고 목숨을 거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을 들어보니 이 땅에서 가장 귀한 것은 돈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그렇게도 우리들을 아프게 하고 배신하는 사람은 더 더욱 아니었습니다. 오직 예수님, 우리 예수님만이 우리들에게 가장 소중한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분을 친구라고 부르고 싶고 성경 또한 그 분을 친구라고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이렇게도 귀하신 친구가 있다면 우리들의 삶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살아갈만한 세상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겸손한 마음으로 욕심을 털어내고 잡다한 사람의 생각을 버리고 어린 아이들과 같이 단순하게 주님을 찾고 주님을 만나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들도 가슴으로 고백하여야 하겠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나의 친구입니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중요한 진리 하나를 배워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결코 이 땅에서만 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는 잠시만 살고 주님과 같이 천국에서 영원히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너무 이 땅에만 소망을 두지 말고 영원히 살아갈 그 나라에도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신앙생활이고 주님을 친구로 모시는 영적인 삶이기 때문입니다. 모쪼록 오늘 아버지 집에 와서 예수님을 친구로 모시는 참으로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좋으신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 멘
주후 2013년 5월 26일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