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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 2일 주일낮설교 (희생이 축복입니다)

희생이 축복입니다 

 

6. 2, 2013

本文:열왕기상2:13-25

說敎:崔仁根牧師

 

최근 한국에서 출시된 영화 한 편이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로 팽배한 현대사회에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파파로티]라는 영화가 바로 그것입니다. 부모님이 일찍 세상 떠나고 할머니와 함께 가난하게 자라나던 주인공은 할머니마저 세상을 뜨시자 의지할 데 없이 방황하다가 조직폭력배로 빠져듭니다. 중학교밖에 나오지 못한 그가 어떻게든 공부해 보려고 기회를 얻어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낮에는 학교에서 공부하고 밤에는 업소에서 일을 하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가던 중 좋은 스승을 만나 세계적인 성악가 파바로티와 같이 성공하는 이야기인데 그를 위해 희생하신 선배, 스승 등 눈물겨운 아름다운 스토리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닫힌 마음에 잔잔한 감동을 주는 좋은 영화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은 비단 영화의 소재만은 아닙니다. 오늘 우리들도 크든 작든 오늘의 우리들로 존재하기 까지는 반드시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알고 보답하며 사는 사람은 훌륭한 인물이고 그것을 망각한 채 저 잘난 줄 알고 경거망덕하면 그는 못난 사람이 될 뿐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솔로몬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한 후 특별히 세 사람을 조용히 제거하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한결같이 그들은 한 때는 잘났던 사람들이고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의 시대가 지나고 솔로몬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그들은 그렇게 비참하게 심판을 받게 되고 한 순간에 비참하게 죽어야만 하는 어리석은 자로 역사에 남게 됩니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도 비참한 종말을 맞게 하였을까요? 오늘은 바로 이와 같은 역사적인 사건을 중심으로 오늘을 살아가는데 귀한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다윗 왕이 죽을 때 그 아들 솔로몬에게 유언한 내용은 실로 우리들의 간장을 서늘하게 합니다. 한 번밖에 없는 소중한 우리들의 인생을 똑바로 잘 살아야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할 정도로 그릇된 삶의 최후는 너무나도 끔찍하고 비참하기 때문입니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다윗은 자신의 대에서 원수를 갚지 않고 다음 세대인 솔로몬에게 그릇된 그들의 삶의 심판을 맡겼습니다. 솔로몬이 아버지 다윗의 유언을 따라 한 시대에 명성을 날렸던 그들을 깨끗이 처단하는 것을 보면 인생은 결코 그냥 적당하게 살아지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무엇인가 남에게 유익을 줄지언정 고통이나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교훈 또한 분명합니다. 우리 모두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서 뒤돌아보고 후회하지 않는 멋들어진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풍성한 은혜와 교훈을 받아야 되겠습니다.

 

희생이 축복입니다

 

다윗은 죽을 때 솔로몬을 불러 자신의 생애를 통해 고통을 준 사람과 사랑과 도움을 주었던 사람을 분명히 정리하고 솔로몬으로 하여금 그들에게 어떤 모양으로든지 보상하도록 하는 내용이 오늘 본문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왕상2:5-9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내게 행한 일 곧 이스라엘 군대의 두 장관 넬의 아들 아브넬과 예델의 아들 아마사에게 행한 일을 네가 알거니와 저가 저희를 죽여 태평시대에 전쟁의 피를 흘리고 전쟁의 피로 자기의 허리에 띤 띠와 발에 신은 신에 묻혔으니 네 지혜대로 행하여 그 백발로 평안히 음부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 마땅히 길르앗 바실래의 아들들에게 은총을 베풀어 저희로 네 상에서 먹는 자 중에 참예하게 하라 내가 네 형 압살롬의 낯을 피하여 도망할 때에 저희가 내게 나아왔었느니라 바후림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너와 함께 있나니 저는 내가 마하나임으로 갈 때에 독한 말로 나를 저주하였느니라 그러나 저가 요단에 내려와서 나를 영접하기로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기를 내가 칼로 너를 죽이지 아니하리라 하였노라 그러나 저를 무죄한 자로 여기지 말지어다 너는 지혜 있는 사람인즉 저에게 행할 일을 알지니 그 백발의 피를 흘려 저로 음부에 내려가게 하라

 

이것이 바로 다윗이 죽으면서 아들 솔로몬에게 남긴 유언입니다. 내용은 세 가지로 요약됩니다. “요압을 죽여 다윗에게 주었던 고통을 보상하라. 바실래의 후손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어려울 때 다윗을 섬겼던 사랑에 보답하라. 시므이를 죽여 고통 중에 있는 다윗을 저주하였던 죄를 물어라.”는 것과 같이 말입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우리는 참으로 사는 날 동안 선하게 살아야 하겠고 희생하며 헌신하는 삶을 살아야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 누구도 이 세상을 떠날 때 재물을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내게 있을 때 힘든 사람들을 돕고 이웃들을 섬기며 바실래와 같은 아름다운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어떤 경우에도 남에게 고통을 주는 악한 삶은 살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가슴에 한이 맺히도록 아픔을 주면 언젠가는 그 대가를 치루어야 하는 날이 오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이와 같은 내용을 전재로 해서 역사적인 사건을 중심으로 오늘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혜를 얻도록 하겠습니다. 가슴으로 말씀을 받고 생활 속에 실천하므로 하나님께는 영광을 올려드리고 우리들의 삶에는 축복을 만들어 가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교만하면 안 됩니다

 

다윗이 연세가 많아 죽을 날이 가까워 오자 다윗의 아들들이 서로 왕이 되겠다는 야망을 품기 시작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다윗이 누구에게 왕권을 물려주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때 다윗을 배신하고 왕 위에 올랐다 죽은 압살롬의 아우 아도니아가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자연 그가 왕이 될 줄 알고 왕으로 추대하고 따르는 무리들 또한 여기저기에서 일어나 동참하였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다윗의 신복이었던 요압장군이었습니다.

 

왕상1:5-8

때에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 높여서 이르기를 내가 왕이 되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기병과 전배 오십 인을 예비하니 저는 압살롬의 다음에 난 자요 체용이 심히 준수한 자라 그 부친이 네가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하는 말로 한 번도 저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더라 아도니야가 스루야의 아들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과 모의하니 저희가 좇아 도우나 제사장 사독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와 선지자 나단과 시므이와 레이와 다윗에게 속한 용사들은 아도니야와 같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이렇게 모의하여 다윗을 대신하여 스스로 왕 위에 오르려고 하였던 아도니야는 결국 실패하게 됩니다. 다윗이 이것을 알고 솔로몬을 정식으로 왕 위에 올리고 온 나라에 선포하였기 때문입니다. 왕 위에 오른 솔로몬은 스스로 왕이 된 아도니야 를 잡아 오게 하였습니다.

 

왕상1:50-53

아도니야도 솔로몬을 두려워하여 일어나 가서 제단 뿔을 잡으니 혹이 솔로몬에게 고하여 가로되 아도니야가 솔로몬 왕을 두려워하여 지금 제단 뿔을 잡고 말하기를 솔로몬 왕이 오늘날 칼로 자기 종을 죽이지 않겠다고 내게 맹세하기를 원한다 하나이다 솔로몬이 가로되 저가 만일 선한 사람이 될진대 그 머리카락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려니와 저의 가운데 악한 것이 보이면 죽으리라 하고 사람을 보내어 저를 제단에서 이끌어 내리니 저가 와서 솔로몬 왕께 절하매 솔로몬이 이르기를 네 집으로 가라 하였더라

 

하지만 솔로몬은 아도니아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도니야는 근신하지 못한 채 다시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를 찾아가 다윗이 너무 늙었을 때 그를 봉양하도록 보내어졌던 여인 아비삭을 자기에게 주어 아내로 삼도록 해 달라고 간청합니다. 이와 같은 소식을 전해들은 솔로몬은 매우 노하여 그를 마침내 죽음으로 심판하고 맙니다.

 

왕상2:21-25

가로되 청컨대 수넴 여자 아비삭을 아도니야에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소서 솔로몬 왕이 그 모친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어찌하여 아도니야를 위하여 수넴 여자 아비삭을 구하시나이까 저는 나의 형이오니 저를 위하여 왕위도 구하옵소서 저뿐 아니라 제사장 아비아달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도 위하여 구하옵소서 하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로되 아도니야가 이런 말을 하였은즉 그 생명을 잃지 아니하면 하나님은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심이 마땅하니이다 나를 세워 내 부친 다윗의 위에 오르게 하시고 허락하신 말씀대로 나를 위하여 집을 세우신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아도니야는 오늘날 죽임을 당하리라 하고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보내매 저가 아도니야를 쳐서 죽였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참으로 귀한 교훈 한 가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아도니야라는 사람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교훈입니다. 성경은 아도니야를 매우 좋은 사람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왕상1:6

저는 압살롬의 다음에 난 자요 체용이 심히 준수한 자라 그 부친이 네가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하는 말로 한 번도 저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는 외모도 준수하고 잘 생겼을 뿐 아니라 속 사람도 성실하여 단 한 번도 아버지로부터 책망을 들은 일이 없을 정도로 착실한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 즈음에 이렇게도 비참하게 죽어야 할 정도로 그가 그릇된 길로 들어섰을까요?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들이 배워야 할 교훈입니다. 그것은 바로 교만입니다.

 

왕상1:5

때에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 높여서 이르기를 내가 왕이되리라하고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기병과 전배 오십인을 예비하니

 

라는 말씀과 같이 그는 스스로 높이는 교만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친 다윗 왕의 제가도 없이 스스로 모의를 하여 왕위에 오르려다가 결국은 그렇게 비참하게 죽은 것입니다. 솔로몬은 그러한 아도니야를 즉시 심판하지 않았습니다. 일단 집에 가 있으라고 경고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또 다시 솔로몬의 어머니를 찾아가 아비삭을 요구하였습니다. 아무 것도 몰랐던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는 아들 솔로몬에게 이것을 허락해 주도록 간청하였습니다. 하지만 솔로몬은 이 말을 듣고 격노하였습니다. “아도니야가 이런 말을 하였은즉 그 생명을 잃지 아니하면 하나님은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심이 마땅하니이다”고 할 정도록 그를 심판할 것을 굳게 결심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아도니야가 요구한 아비삭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비록 다윗이 아비삭과 동침은 하지 않았지만 아비삭은 다윗의 첩이었습니다. 다윗의 첩을 얻게 되면 왕권을 회복하는 상속자의 신분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계략으로 끝까지 왕권을 찬탈하려던 제2의 모의까지 감행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결국은 자신의 목숨을 잃게 되는 어리석은 자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평생을 칭찬 받을 만한 성실과 진실로 살아오다가도 한 순간에 교만에 빠지면 이렇게도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은 삶을 살아가는 동안 언제나 이 교만을 경계하고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교만은 하나님께서 친히 심판하실 정도로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악행이기 때문입니다.

 

잠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잠29:1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은 사람은 갑자기 패망을 당하고 피하지 못하리라

 

는 말씀들과 같이 말입니다.

 

배신하면 안 됩니다

 

두 번째로 등장하는 비참한 심판의 대상은 바로 요압 장군입니다. 요압은 참으로 다윗의 신복이었고 충성스러운 용사였습니다. 다윗의 시대에 요압이라는 이름은 거의 다윗과 같은 수준으로 많이 등장할 정도로 댜윗하면 요압이 떠오를 정도로 요압은 다윗 시대에 위대한 인물이었습니다. 자그마치 성경 이스라엘 역사에 요압이라는 이름은 121번이나 등장 할 정도입니다. 그랬던 그가 다윗의 총애를 받고 있는 그 놀라운 지위를 악용하여 다윗에게 충성하던 귀한 장수를 두 명이나 다윗 몰래 죽여 다윗의 가슴에 큰 아픔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임종의 순간에도 그 아픔을 잊지 못하고 아들 솔로몬에게 유언으로까지 남겼던 것입니다.

 

왕상2:5-6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내게 행한 일 곧 이스라엘 군대의 두 장관 넬의 아들 아브넬과 예델의 아들 아마사에게 행한 일을 네가 알거니와 저가 저희를 죽여 태평시대에 전쟁의 피를 흘리고 전쟁의 피로 자기의 허리에 띤 띠와 발에 신은 신에 묻혔으니 네 지혜대로 행하여 그 백발로 평안히 음부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또 다시 다윗을 배신하고 아도니야와 모의하여 솔로몬 대신 아도니야를 왕으로 세우려고 하다가 결국은 비참한 참살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왕상1:7

아도니야가 스루야의 아들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과 모의하니저희가 좇아 도우나

 

왕상2:28-31

그 소문이 요압에게 들리매 저가 여호와의 장막으로 도망하여 단 뿔을 잡으니 이는 저가 다윗을 떠나 압살롬을 좇지 아니하였으나 아도니야를 좇았음이더라혹이 솔로몬왕에게 고하되 요압이 여호와의 장막으로 도망하여 단 곁에 있나이다 솔로몬이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보내며 가로되 너는 가서 저를 치라 브나야가 여호와의 장막에 이르러 저에게 이르되 왕께서 나오라 하시느니라 저가 대답하되 아니라 내가 여기서 죽겠노라 브나야가 돌아가서 왕께 고하여 가로되 요압이 이리이리 내게 대답하더이다 왕이 이르되 저의 말과 같이 하여 저를 죽여 묻으라 요압이 까닭 없이 흘린 피를 나와 내 부친의 집에서 네가 제하리라

 

이렇게 하여 한 평생을 다윗과 같이 용맹스러운 장수로 이름을 날리던 그가 이렇게도 비참하게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그 이유는 오직 하나 끝까지 다윗에게 순종하여 충성스러운 종으로 일관하지 못한 채 주군의 가슴에 아픔을 주고 끝내는 그 주군을 배신한 연고였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인생을 이렇게 자신의 분노와 유익만을 위해 배신자로 살아서는 결코 안 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다 늙어서 얼마나 더 많은 영화를 누리겠다고 그렇게 다윗을 배신하고 아도니야와 모의하여 권력을 찬탈하겠습니까? 그러므로 객관적으로 우리들이 판단해도 인생들의 욕망은 한도 없고 끝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이웃을 위해 주님을 위해 우리들의 소중한 것을 다 내놓고 헌신하고 희생하는 참 신자의 길을 갈 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이즈음에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약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간사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 끝으로 세 번째로 심판을 받은 시므이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는 원래 사울의 충복으로 헌신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늘 다윗 왕에 대해 반감을 품고 있다가 다윗이 마침내 압살롬에게 쫓기어 도망하게 되자 따라가며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삼하16:5-7

다윗 왕이 바후림에 이르매 거기서 사울의 집 족속 하나가 나오니 게라의 아들이요 이름은 시므이라 저가 나오면서 연하여 저주하고 또 다윗과 다윗왕의 모든 신복을 향하여 돌을 던지니 그 때에 모든 백성과 용사들은 다 왕의 좌우에 있었더라 시므이가 저주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말하니라 피를 흘린 자여 비루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다윗 왕이 고통을 당할 때 가장 격렬하게 저주를 퍼부은 사람은 오직 시므이 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다윗이 다시 왕권을 회복하고 돌아올 때 그는 모든 사람들 보다 가장 먼저 뛰어 나와 다윗을 환영하였습니다.

 

삼하19:16-20

바후림에 있는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급히 유다 사람과 함께 다윗 왕을 맞으려 내려올 때에 베냐민 사람 일천 명이 저와 함께 하고 사울의 사환 시바도 그 아들 열다섯과 종 스무 명으로 더불어 저와 함께 하여 요단강을 밟고 건너 왕의 앞으로 나아오니라 왕의 가족을 건네려 하며 왕의 선히 여기는 대로 쓰게 하려 하여 나룻배가 건너가니 왕이 요단을 건너려 할 때에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왕의 앞에 엎드려 왕께 고하되 내 주여 원컨대 내게 죄 주지 마옵소서 내 주 왕께서 예루살렘에서 나오시던 날에 종의 패역한 일을 기억하지 마옵시며 마음에 두지 마옵소서 왕의 종 내가 범죄한 줄 아옵는 고로 오늘 요셉의 온 족속 중 내가 먼저 내려와서 내 주 왕을 영접하나이다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간사한 사람의 전형입니다. 망하게 될 때에는 저주하고 흥하게 될 때에는 아첨하는 부류, 바로 이와 같은 사람은 결국 자신의 저주를 스스로 자초하게 되는 것입니다.

 

왕상2:8-9

바후림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너와 함께 있나니 저는 내가 마하나임으로 갈 때에 독한 말로 나를 저주하였느니라 그러나 저가 요단에 내려와서 나를 영접하기로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기를 내가 칼로 너를 죽이지 아니하리라 하였노라 그러나 저를 무죄한 자로 여기지 말지어다 너는 지혜 있는 사람인즉 저에게 행할 일을 알지니 그 백발의 피를 흘려 저로 음부에 내려가게 하라

 

이것이 죽을 때도 잊지 못하고 다윗 왕이 아들 솔로몬에게 유언한 내용입니다. 그 유언대로 솔로몬은 그 시므이를 가차 없이 심판하여 척결하고 말았습니다.

 

왕상2:44-46

왕이 또 시므이에게 이르되 네가 무릇 네 마음의 아는 모든 악 곧 내 부친에게 행한 바를 네가 스스로 아나니 여호와께서 네 악을 네 머리로 돌려보내시리라 그러나 솔로몬왕은 복을 받고 다윗의 위는 영원히 여호와 앞에서 견고히 서리라 하고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에게 명하매 저가 나가서 시므이를 쳐서 죽게 한지라 이에 나라가 솔로몬의 손에 견고하여지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심지가 곧고 견고하여 흔들림이 없어야 합니다. 시므이처럼 기회주의로 돌아서서 간사하고 격망스럽게 판단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하나님은 마음에 간사가 없고 심지가 견고한 자들을 기뻐하시고 축복하시기 때문입니다.

 

요1:47-51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나다나엘이 가로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또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사26:3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는 말씀들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진실하고 견고하여 흔들림이 없는 신앙생활을 지속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우리들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 하늘의 하나님이시니 사람과 육신의 유익을 위해 간사하게 흔들리는 그런 작은 자가 되어서는 결코 안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죽으면서도 잊지 못했던 바실래와 같이 다윗이 흥할 때나 망할 때를 막론하고 자신의 가진 것으로 정성을 다해 섬기고 살면 훗날에 반드시 그 보상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왕상2:7

마땅히 길르앗 바실래의 아들들에게 은총을 베풀어 저희로 네 상에서 먹는 자 중에 참예하게 하라 내가 네 형 압살롬의 낯을 피하여 도망할 때에 저희가 내게 나아왔었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바실래와 같이 희생하고 섬기고 도와 준 삶이 진정 축복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실만이 영원합니다. 마음의 간사와 육신의 유익을 위해 사는 작은 자가 결코 되지 않도록 오늘의 말씀이 도전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현충과 희생의 달 6월입니다. 짧은 인생 살아가면서 마치 영원을 사는 것처럼 그릇된 삶을 살아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렇게 모든 것을 다 가지고도 인생을 잘 살지 못한 채 비참하게 최후를 맞은 사람들의 면모를 살펴보았습니다. 인생은 경기하는 선수들 같아서 본인들은 자신들을 잘 보지 못할지라도 관중석에 앉아 있는 관객들은 너무나도 잘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에게는 역사적인 성경의 사건들이 좋은 모델이 되고 거울이 되어 지혜롭고 복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오늘 본문 말씀 또한 그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그들이 왜 그렇게도 인생 말년을 비참하게 보내야만 했을까요? 그것은 바로 교만과 배신과 간사한 마음이 그들을 그토록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은 그들의 인생을 망쳐버렸던 이 세 가지 요소를 제거하고 주님만을 바라보면서 희생과 헌신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그 사랑하는 자들에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해 주시겠다고 친히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얻어 스스로 복된 삶을 살아가려고 잔꾀를 부리 지 말아야 합니다. 맡기고 기대하고 기다리는 믿음의 덕목으로 다윗과 같이 멋들어진 인생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그렇게 하라고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불러내시고 복되고 귀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부디 그 말씀을 가슴에 품고 그 말씀을 거울로 삼아 되돌아보고 후회하지 않는 멋들어진 삶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좋으신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주시는 말씀으로 영혼의 양식을 삼으시는 우리 귀한 빌립보의 권속들에게 주님만이 주시는 평안과 위로가 충만하시기를 좋으신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 멘

 

주후 2013년 6월 2일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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