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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 16일 주일낮예배 (가슴에 품은 아버지)

가슴에 품은 아버지 

 

아버지주일

6. 16, 2013

本文:열왕기상1:22-31

說敎:崔仁根牧師

 

조선시대의 어느 임금이 서울을 떠나 개성을 방문하였습니다. 임금님이 오신다는 소문이 온 개성에 퍼졌습니다. 그런데 연세가 높고 오랜 병으로 자리보전하고 있던 노인이 아들을 불렀습니다. “아들아, 임금님이 오신다니 용안이라고 한 번 보았으면 소원이 없겠구나.” 그러자 아들이 아버지를 업고 50리 먼 길을 걸어가서 임금님이 지나가신다는 길 가에 서서 임금님이 오시기를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임금님이 그 길을 지나 가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서울에 돌아 온 임금님이 그 날 길 가에서 아버지를 업고 서 있던 그 사람을 찾아오라고 명하였습니다. 임금님 앞에 선 아들로부터 자초지종을 다 들은 임금님은 그 사람에게 지극한 효성을 지닌 효자라 칭하고 금 백 냥과 쌀 한 섬을 상급으로 주었습니다. 이 소문이 개성 바닥에 퍼지자 돈밖에 모르고 불효막심하던 논팽이가 그 사람처럼 아버지를 업고 임금님이 지나가시기를 기다리다가 마침내 임금님의 눈에 띄게 되었습니다. 궁궐로 돌아 온 임금님은 그 사람을 부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로부터 자초지종 이야기를 다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사람에게도 금 백 냥을 상으로 내리라고 명하였습니다. 그러자 신하들이 막아섰습니다. “임금님 저 놈은 불효자로 개성에서도 소문난 난봉꾼입니다. 일부러 임금님으로부터 상을 받기 위해 거짓으로 효성이 있는 척 한 것입니다. 저런 자에게 상을 내려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저런 자에게는 상이 아니라 벌을 내려야 합니다” 고 아뢰었습니다. 그 때 임금님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효도는 흉내만 내어도 좋은 것이다. 그러므로 저자에게도 상을 내리라”고 말입니다. 그랬습니다. 효도가 얼마나 귀하고 좋은 것이었으면 거짓으로 흉내만 내어도 좋은 것이라고 하였겠습니까? 시대가 변하여 지금은 효도는커녕 부모를 때려서 죽이고 길거리에다 버리는 말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은 2013년도 아버지주일입니다. 우리 아버지는 과연 어디에 계십니까? 이미 이 세상을 떠나시고 안 계시는 분도 계실 것이고 멀리 한국에 계셔서 자주 뵈옵지도 못하는 분도 계실 것이며 다행히도 함께 모시고 살고 있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어쨌든 아버지를 잘 모시고 아버지를 이해하고 아버지를 사랑하는 자녀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자녀들에게 하늘의 축복을 보장해 주셨습니다.

 

엡6:2-3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하나님의 약속입니까? 땅에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잘 섬겨서 아름답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축복을 보상으로 받으니 또한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런데도 왜 이 땅의 자식들은 그렇게 좋은 효도를 하지 않는 것일까요? 이 종은 그 원인을 곰곰이 찾아보았습니다. 그 이유는 의외로 간단한데 있었습니다. 이 시대의 자식들의 가슴 속에 아버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이 시대의 자식들의 가슴 속에는 자기 자신밖에 없습니다. 오직 자신의 유익만을 위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늙고 힘없는 아버지는 자기 자신의 유익을 챙기는데 걸림돌이 될 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효도는커녕 학대하고 죽이기까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종은 오늘 말씀의 제목을 “가슴에 품은 아버지”라고 정해 보았습니다. 오늘부터 아버지를 가슴에 품는 효성어린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가슴에 품은 아버지

 

오늘 본문은 다윗 왕이 아들 솔로몬을 자신의 왕 위에 세우는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아버지 다윗은 솔로몬을 가슴에 품고 있다가 때가 되매 마침내 자신의 보좌에 앉혀주었습니다. 다윗에게는 여러 아들들이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스스로 왕이 되어 권좌에 올랐다가 비참하게 죽임을 당하는 비극의 주인공들도 있었습니다. 압살롬과 아도니야가 그랬습니다. 그런데도 다윗은 유독 솔로몬만은 자신의 의식이 몽롱한 상태에서도 그의 아내를 부르고 선지자를 부르고 제사장을 불러 합법적으로 이스라엘의 3대 왕으로 세워주었습니다. 그것은 오랜 세월 다윗이 솔로몬을 왕위에 올릴 아들로 가슴에 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왕상1:15

밧세바가 이에 침실에 들어가 왕에게 이르니 왕이 심히 늙었으므로수넴 여자 아비삭이 시종하였더라

 

는 말씀과 같이 다윗은 심히 늙어 사리판단을 제대로 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그는 분명하게 솔로몬을 왕위에 세우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을 만큼 총명을 회복하고 완벽하게 뒤처리를 해 주었습니다.

 

왕상1:28-30

다윗 왕이 명하여 가로되 밧세바를 내 앞으로 부르라 하매 저가 왕의 앞으로 들어와 그 앞에 서는지라 왕이 가로되 내 생명을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신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내가 이전에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가리켜 네게 맹세하여 이르기를 네 아들 솔로몬이 정녕 나를 이어 왕이 되고 나를 대신하여 내 위에 앉으리라 하였으니 내가 오늘날 그대로 행하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어떻게 다윗은 그토록 늙었는데도 이처럼 명확하게 솔로몬을 왕 위에 세우는 일을 깨끗이 처리해 낼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다윗이 솔로몬을 가슴에 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우리 아버지를 가슴에 품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렇듯 아버지를 가슴에 품고 있으면 아버지가 이 세상에 계시든 하늘나라에 계시든 우리들의 가슴 속에는 언제나 그 아버지가 살아 계실 뿐 문제 될 것이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솔로몬은 그 아버지를 가슴으로 품지 못하고 자신을 왕으로 세워주는 것으로 만족하고 말았습니다. 그가 만약 그 아버지 다윗을 가슴으로 품었더라면 그렇게 비참하게 망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그렇게도 좋은 아버지를 가슴으로 품지 못하고 육신에 젖어 경거망덕 하다가 결국에는 망하는 왕으로 기록되는 비운의 왕이 되고 말았습니다.

 

왕상11:9-11

솔로몬이 마음을 돌이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저에게 진노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일찍이 두 번이나 저에게 나타나시고 이 일에 대하여 명하사 다른 신을 좇지 말라 하셨으나 저가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시되 네게 이러한 일이 있었고 또 네가 나의 언약과 내가 네게 명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결단코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복에게 주리라

 

는 말씀과 같이 그는 그렇게도 놀라운 명성과 지혜와 부귀영화를 축복으로 받았으나 결국 두 아버지, 즉 하늘의 아버지 하나님과 땅의 아버지 다윗을 떠남으로 이렇게도 비참한 멸망을 자초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이와 같은 솔로몬을 거울로 삼아 가슴에 두 아버지를 모시고 짧은 인생을 승리하고 유복하게 살아가는 지혜와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아버지는 결국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나십니다

 

솔로몬의 아버지는 다윗 왕이었습니다. 그 아버지 다윗은 많고 많은 아들들 중에서도 유독 솔로몬을 가슴에 품고 사랑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 많은 아들들 중에서도 오직 솔로몬에게만 자신의 왕 위를 물려주려고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것을 가슴에 새겨야 합니다. 아들이 많다고 다 아버지의 유산을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임종 시에도 오직 솔로몬만 곁에 불러 놓고 간절하게 가슴에 있던 말씀을 전해 주었던 것입니다.

 

왕상2:1-3

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매 그 아들 솔로몬에게 명하여 가로되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의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릇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고 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두 가지 변찮는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는 아무리 좋은 아버지도 영원히 우리 곁에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아버지의 마지막 유지(遺志)를 가슴에 품고 아들로서의 도리를 다 했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이 소중한 진리 두 가지를 다 망각해 버리고 자신이 현실에 가진 부귀영화만 믿고 경거망덕 하다가 결국은 망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은 이와 같은 솔로몬을 거울로 삼아 아버지가 우리 곁에 머물고 계실 때 잘 하고 순종하고 섬겨야 하겠습니다. 어느 한 순간에 솔로몬의 아버지 다윗이 아들의 곁을 떠나듯이 우리들의 아버지도 우리 곁을 떠나실 때가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중국문헌 “한시외전”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습니다. “나무가 평온하기를 원하여도 바람이 멎지 아니하고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기 원하여도 부모는 자식을 기다려주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송강 정철은 아름다운 시로 우리들의 심금을 울려 줍니다. “아버지 살아 계실 제 섬기기를 다하여라. 한 번 가신 뒤에 애달프다 어이하리, 생전에 고쳐 못할 일이 이뿐인가 하노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우리들이 철이 들어 효도를 잘 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가슴에 품은 아들 솔로몬이 자신의 뜻과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잘 되기를 그렇게도 소원하였건만 다윗은 그가 잘 되는 것을 체 다 보기도 전에 그 아들 곁을 떠나갔습니다. 기회는 항상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삶이 바쁘다는 핑계로 이것저것 좀 해 놓고 나서... 하다가 어느 순간에 그만 그렇게도 소중하신 우리 아버지를 영원히 떠나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순간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이라는 날에 따뜻한 밥 한 그릇이라도 대접해 드리고 시원한 옷 한 벌이라도 입혀드리는 효성으로 아버지를 가슴에 품고 사는 자녀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후회는 언제는 너무 늦은 것이니까 말입니다.

 

아버지의유지를 받드는 것이 아버지를 품고 사는 길입니다

 

아버지는 결코 우리 곁에 영원히 머물고 계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배웠고 또한 잘 압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주신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우리 아버지를 가슴에 품고 영원히 살 수 있을까요?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이 주는 교훈입니다. 솔로몬의 아버지 다윗은 자신이 아들 곁에 영원히 머물지 못한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가 아들 곁에 있을 동안에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 두었습니다. 이 종이 오늘 말씀 서두에 다윗은 그 많은 아들들 중에 유독 솔로몬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다윗이 그를 위해 무엇을 얼마나 준비하고 있었던가를 이해한다면 다윗이 솔로몬을 얼마나 가슴에 품고 있었던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대상29:1-5

다윗 왕이 온 회중에게 이르되 내 아들 솔로몬이 홀로 하나님의 택하신바 되었으나 오히려 어리고 연약하고 이 역사는 크도다 이 전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요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 내가 이미 내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힘을 다하여 예비하였나니 곧 기구를 만들 금과 은과 놋과 철과 나무며 또 마노와 박을 보석과 꾸밀 보석과 채석과 다른 보석들과 화반석이 매우 많으며 성전을 위하여 예비한 이 모든 것 외에도 내 마음에 내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므로 나의 사유의 금은으로 내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드렸노니 곧 오빌의 금 삼천 달란트와 천은 칠천 달란트라 모든 전 벽에 입히며 금 은그릇을 만들며 공장의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쓰게 하였노니 오늘날 누가 즐거이 손에 채워 여호와께 드리겠느냐

 

다윗은 이처럼 엄청난 사재를 다 털어 넓게는 하나님께 드리고 좁게는 아들 솔로몬이 감당해야 할 일을 도왔던 것입니다. 여기에 나타나는 금 삼천 달란트는 요즘 시세로 360만 온스이고 은 칠천 달란트는 840만 온스였습니다. 이것을 다윗은 아들을 위해 다 털어내 놓았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다윗이 스스로 밝혀 두었던바 아래에 기록된 말씀 그대로입니다.

 

대상29:1

다윗 왕이 온 회중에게 이르되 내 아들 솔로몬이 홀로 하나님의 택하신바 되었으나 오히려 어리고 연약하고 이 역사는 크도다 이 전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요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실로 다윗은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쏟아 부어 아들 솔로몬을 위해 최선을 다 하였습니다. 그만큼 그 아들 솔로몬을 다윗이 가슴에 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솔로몬은 그 아버지 다윗을 자신도 가슴에 품고 섬기고 따랐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아버지 다윗의 유지를 받드는 것입니다. 그 유지가 무엇입니까? 그 유지는 바로 다음과 같습니다.

 

왕상2:2-3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의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릇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그런데 불행하게도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의 이처럼 간절한 유지를 저버렸습니다. 그것을 하늘의 하나님께서 인정하실 정도였으니 어찌 솔로몬이 망하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왕상11:4-5

솔로몬의 나이 늙을 때에 왕비들이 그 마음을 돌이켜 다른 신들을 좇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그 부친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그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치 못하였으니 이는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을 좇고 암몬 사람의 가증한 밀곰을 좇음이라

 

는 말씀과 같이 그는 이렇게도 아버지의 유지를 저버리고 어리석게도 하나님을 떠나는 비참한 자리에까지 내려가고 말았습니다.

 

왕상11:9-11

솔로몬이 마음을 돌이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저에게 진노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일찍이 두 번이나 저에게 나타나시고 이 일에 대하여 명하사 다른 신을 좇지 말라 하셨으나 저가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시되 네게 이러한 일이 있었고 또 네가 나의 언약과 내가 네게 명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결단코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복에게 주리라

 

는 말씀과 같이 그는 최후에 비참한 왕으로 망하는 자리에 서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직 하나 아버지는 그토록 자신을 가슴에 품고 사랑하고 섬겼으나 그는 그의 아버지의 유지조차 받들지 못하고 어리석게도 하나님을 떠나 사신 우상숭배에 빠지는 어리석고 미련한 자리에 빠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말없이 지켜보며 자라나는 자식들을 생각해야 합니다

 

아버지는 영원히 아버지의 자리에 서 계시고 우리는 언제나 아들과 딸의 자리에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압니다. 우리들이 또한 아버지의 자리에 서게 되고 우리들의 자식들이 지금 우리들의 자리에 서게 되는 것이 인생의 이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면에서 보면 솔로몬은 참으로 어리석은 아들의 모습을 후손들에게 보여주고 맙니다. 훗날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어른들의 말씀을 무시하고 자기 또래의 말을 듣다가 모든 나라의 백성들이 그에게 등을 돌리고 나라가 두 동강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왕상12:13-14

왕이 포악한 말로 백성에게 대답할새 노인의 교도를 버리고 소년의 가르침을 좇아저희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 부친은 너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부친은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하였으나 나는 전갈로 너희를 징치하리라 하니라

 

왕상12:16

온 이스라엘이 자기들의 말을 왕이 듣지 아니함을 보고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다윗과 무슨 관계가 있느뇨 이새의 아들에게서 업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라 다윗이여 이제 너는 네 집이나 돌아보라 하고 이스라엘이 그 장막으로 돌아가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리하여 결국 이스라엘의 대부분이 여로보암에게로 돌아가 북쪽 이스라엘을 만들고 르호보암은 오직 유다지파만을 데리고 유다 왕이 됨으로 태평성대 하던 이스라엘이 이처럼 비참하게 갈라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 가장 큰 요인이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어른들의 말씀을 듣지 않고 경거망덕한 까닭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솔로몬이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지 못하고 스스로 경거망덕했던 바로 그 길로 아들이 걸어갔던 것입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효도는 가르쳐서 되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며 몸에 베게 해야 함을 다시 한 번 더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진정으로 여러분들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잘 되기를 원하신다면 몸으로 아버지를 섬기고 어머니를 공경하는 모습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면 자연스럽게, ‘부모님에게는 저렇게 해야 되는가보다’ 하고 자녀들이 따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더 큰 축복을 받게 하고 싶으면 온 몸으로 교회를 섬기고 교회를 인도하는 주의 종들을 정성을 다 해 섬기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들의 자녀들이 결단코 주의 종을 대적하거나 교회를 대항하는 어리석은 자리에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너무나도 놀라운 약속과 축복을 보장해 두셨던 것입니다.

 

마10:41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라고 말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약속이요 놀라운 축복입니까? 여러분들의 자녀들이 다 선지자이겠습니까? 여러분들의 자녀들이 다 의인이겠습니까? 하지만 여러분들의 자녀들이 선지자와 의인의 상을 받는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은 바로 그렇게 선지자와 의인을 영접하고 섬기면 그렇게 귀한 상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 시대는 자기를 낳고 길러주신 부모님도 대적하는 악한 시대입니다. 이러한 때에 과연 선지자를 대접하고 의인을 영접하겠습니까? 바로 여러분들이 그렇게 하는 아름다운 모범을 보여주면 여러분들의 자녀들도 그렇게 아름다운 유산을 이어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솔로몬을 거울로 삼아 하늘 아버지와 육신의 아버지 그리고 이 땅에 가장 귀한 영의 아버지를 가슴에 품고 자손만대에 복을 누릴 수 있도록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고 신선한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은 2013년도 아버지주일입니다. 우리는 한 순간도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아버지를 주신 사실을 잊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아버지가 없으면 우리는 이 땅에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렇게도 고귀하신 아버지를 가슴에 품고 늘 언제나 하나님 다음으로 섬기길랑 다 하는 아름다운 자녀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 길이 바로 오늘 우리들이 잘 되고 복을 누리는 축복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늘 역사적인 인물 솔로몬을 통하여서 아버지의 존귀함과 그 아버지를 따르고 섬기는 삶이 그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깊이 가슴에 새겼습니다. 듣고 흘러버리지 않도록 우리들도 가슴으로 말씀을 받고 우리들의 자녀들에게도 말없이 모범으로 보여주는 그런 멋진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축복이란 사모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을 공경하는 효성에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도 귀한 효성으로 부모님도 잘 섬겨드리고 자손들에게 아름다운 효성 교육도 시키고 하나님으로부터 축복도 받을 수 있는 이처럼 소중한 삶을 왜 살지 못하는지? 참으로 안타깝고 답답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은 오늘 아버지날을 주시어 우리들로 하여금 새로운 깨달음을 주셨으니 깊이 가슴에 새기고 축복과 교육의 양 날개를 다는 그런 복된 기회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모쪼록 오늘 하나님께서 주신 복된 말씀을 듣기만 하는 자들이 아니라 순종하는 자들이 되어 하나님께서 친히 약속하신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는 축복을 누리시는 그런 귀한 심령들이 되시기를 좋으신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 멘

 

주후 2013년 6월 16일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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