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14일 주일낮설교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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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Sunday, 14 July 2013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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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7. 14, 2013
本文:누가복음18:1-8
說敎:崔仁根牧師
[경북 영덕군 남정면 구계리에 한국판 베드로의 기적이 일어났다.예장통합 구계교회(김종무 목사)에 출석하는 김상태씨(44·안수집사)의 어장 그물에 크리스마스 이브인 지난해 12월24일 엄청난 방어 떼가 걸렸다.그것도 김씨의 어장 양옆에 있는 다른 사람의 정치망그물을 피해 어장 중앙에 있는 김씨의 그물에만 방어 떼가 몰려든 것이다.김씨는 “가장자리 그물에 고기떼가 몰리고 중앙에는 떼로 몰리지 않는 것이 보통인데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다른 사람의 그물에는 고기가 전혀 잡히지 않고 내 그물에만 방어 떼가 몰렸다”면서 “이는 하나님의 은혜이며 기적”이라고 말했다.김씨는 현재 동해바다에 폭풍주의보가 내려져 그물에 걸린 방어를 모두 건져 올리지 못하고 있지만 지난해 12월24일 건져 올린 일부 방어만 강구수협위판장에 경매한 결과 4억여 원의 수입을 올렸다.방어는 여름보다 겨울에 맛이 있어 가격이 비싸다.10㎏짜리 마리당 평균 16만9000원을 받았으니 건져 올린 것만 총 2,370여 마리가 되는 셈이다.아직 수천마리가 그물에 더 들어 있어 김씨의 이번 방어 잡이는 정말 기적에 가깝다.강구와 포항수협 관계자는 물론 구계리 마을 노인들도 한사람의 그물에서 방어가 이렇게 많이 잡히기는 정치망 어장이 생긴 이후 처음이라며 한결같이 놀라워했다.김씨는 구계교회가 재정적으로 너무 어려워 성탄절을 이틀 앞두고, 교회 담임목사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목사님!, 이번에 고기가 좀 많이 잡혀야 성전이라도 수리할 수 있을텐데요.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집사님!, 기도합시다.하나님께서 반드시 도와 주실거예요(서로인사).돈이 없어 20년 동안 성전을 한 번도 제대로 수리하지 못했으니 이번에 하나님께서 고기를 떼거지로 잡게 해주실지 모르지요.집사님! 기도합시다.” 김씨와 김목사의 기대는 기적으로 다가온 것이다.김씨는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 하셨지만 이번 방어 잡이의 경우 특별히 주께서 도와주셔서 가능했던 만큼 수익금으로 성전을 아름답게 지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상은 참으로 사람의 지식과 지혜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놀라운 기적이 게재된 신문의 한 부분입니다. 이 모든 말씀들을 종합하여 한 마디로 요약하면, “기도는 기적을 만들어 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주님께서도 분명히 말씀하신 것입니다.
(눅18:6-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라고 말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우리 주님의 이와 같은 말씀을 너무나도 많이 들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평소에 문제가 생기면 이처럼 기적같이 응답되는 기도로서 해결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니 아직도 우리들에게 진정한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지금 이러한 우리들 때문에 탄식하고 계십니다.
(눅18: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고 말입니다. 오늘은 이와 같은 말씀들을 중심으로 현 시점에서 우리들에게 필요한 말씀을 증거하려고 합니다. 형식적으로 듣고 흘려버리는 말씀이 아니라 가슴에 새겨서 삶 속에서 기적을 만들어 내는 그런 귀한 성도들로 거듭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오늘 본문은 우리 예수님께서 친히 가르쳐 주신 귀한 교훈입니다. 언제나 그리하셨던 것처럼 우리 예수님은 우리들이 꼭 배워야 할 부분들을 알기 쉽고 깨닫기 쉽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도 참으로 이해하기 쉽도록 실례를 들어 설명해 주셨는데 그 내용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이 됩니다. 우리들이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본문에 등장하는 과부와 같이 뜻하지 않게 당하는 억울한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예수님은 원한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말, “원한”은 원래 헬라 말에는 “정당하지 못한 일”이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원한은 정당하지 못하게 취급 받으며 고통당하는 일이라고 풀이하면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가난하고 힘이 없는 과부는 그런 정당하지 못한 일로 엄청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도저히 해결할 길이 없는 억울하고 원통한 그 일을 들고 자신을 무시하는 거만하기 짝이 없는 재판관을 찾아갔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느끼는 바와 같이 역시 재판관은 가난하고 못난 과부를 무시하고 그 청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과부는 더는 다른 길이 없고 다른 해결책이 없었기에 온갖 수모를 무릅쓰고 재판관을 계속적으로 찾아가 끝내는 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 그리고 끝으로 그렇게 문제를 해결하려면 과부와 같이 끈질긴 인내와 애걸과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하여서 우리 주님은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과연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고 악하고 험한 이 세상을 이기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인지? 그 해답을 제공해 주십니다. 이처럼 소중한 말씀을 중심으로 오늘 우리들도 말씀을 잘 배워서 과부처럼 문제를 해결 받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중요한 진리를 배우고 깨달아야만 합니다.
원수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최근 영국에서 목회하는 한 목사가 동성결혼은 죄악이라고 가르쳤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성경을 가르치고 지키게 해야 하는 사명을 가진 자가 목사일진데 성경에 기록된 대로 가르치고도 감옥에 갇혀야 되는 이런 기가 막힌 현실을 우리는 지금 직면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악하고 험한 이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뜻하지 않게 원수를 만나게 되고 원한을 품고 살아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과부의 케이스가 바로 그러합니다.
(눅18:3)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하되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것은 결코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과부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늘 예배를 드리고 있는 우리 모두가 한 두 번은 겪는 삶의 현실입니다. 이는 마지막이 가까워 올수록 더욱 더 그 빈도가 많아질 것입니다. 마지막 때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악하여져 가기 때문입니다. 이는 이미 우리 예수님께서도 친히 지적해 주신 바가 있습니다.
(눅11:29)
무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렇듯 사람의 마음속에 악이 가득하게 되면 그 이웃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지난 6일 낮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으로 착륙을 시도하던 아시아나 항공기가 사고를 일으켜 중국 소녀 3명이 목숨을 잃고 180여명이 병원으로 후송되며 기체가 불에 타는 끔찍한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죽은 세 소녀는 한결같이 중국 출신으로 미국에 방학동안 어학연수를 오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처음으로 친구들과 함께 미국이라는 나라로 어학연수를 떠나오던 그들은 얼마나 즐겁고 꿈에 부풀어 있었습니까? 그런데 이처럼 끔찍한 소식을 전해들은 부모들은 또 얼마나 비통하고 억울하고 가슴 아프겠습니까? 한 순간에 이처럼 극적으로 상황이 바뀌어버리는 것이 바로 오늘 우리 인생살이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부탁하십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라”고 말입니다. 불투명한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녀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알 수 없는 고로 우리는 항상 깨어 있어서 기도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상상을 초월할 만큼 엄청나게 다가오는 우리 인생의 숱한 문제들과 고통을 우리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에 다니는 성도들에게 기도에 관한한은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기도를 모르는 사람이 없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신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그렇게 기도에 대한 소중한 진리를 알면서도 실제로 기도는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이유가 무엇일까? 하고 분석을 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기도에 대한 체험을 해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하지 못하고 기도를 한다 해도 지속적으로 계속하지 못한 채 자신도 모르게 기도를 중단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주님께서도 오늘 말씀을 기록하시고 그러한 우리들을 독려하시는 것입니다.
(눅18:1)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저희에게 비유로 하여 가라사대...
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정으로 기도에 대한 확신과 체험이 없다면 그는 교회에는 다니지만 진정한 신자가 아닙니다. 그만큼 하나님과 따로 떨어져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내 곁에는 기도만 하면 들어주시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확신이 있는 사람이라야 진정한 신자인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을 고백하는 최고의 신앙고백이기 때문입니다. 이 종이 혼자서 하이틴 때부터 지금까지 넘어지지 않고 굳게 서서 온전한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전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하나님의 덕분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의 은총을 누리는 최상의 방법은 기도를 통해서라고 담대히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지난 한 주간 동안 저는 마음이 참 편하지 않았습니다. 집 그라지 안쪽에 집안으로 들어오는 물을 조절하는 연결 파이프의 배관이 있는데 느닷없이 거기에서 조금씩 물이 새는 것입니다. 그 물이 그라지 도어로 흘러내려 그라지 않은 물로 모든 물건들이 다 젖어드는 것입니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 그 물을 보고 나가면 그렇게 마음이 편치 않는 것이고 저녁에 들어와서 또 그렇게 고여 있는 물을 보면 마음이 편치를 않는 것입니다. 마침내 목요일 저녁에 집에 들어오는데 여전히 물은 고여 있기에 그날만큼은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집안에 연장이 없으니 어떻게 해 볼 수도 없고 그렇다고 펑펑 많이 새는 것도 아닌데 전문가를 부르자니 또 몇 백 불을 달라 할 것이고... 할 수 없이 망치와 드라이브를 가지고 와서 8각 나사를 조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쭈그리고 앉아서 기도하였습니다. 참으로 원시적이고 어리석어 보이지만 그 방법 밖에는 도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나서 팔각 나사 모서리에 드라이의 이를 대로 뒤에서 망치로 두 서녀 번 두들겨 보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에 나와 보니 물이 더 이상 새지 않고 바닥이 깨끗이 말라 있었습니다. 할렐루야! 제가 이렇게 이야기 하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웃을 것입니다. 물이 새는 것을 기도하여 멈추게 되었다고? 하면서 비웃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압니다. 하나님 외에는 새는 물을 멈추게 할 수 있는 그 어떤 방도도 없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역사하시는 세심한 사랑의 아버지십니다. 제발 이 종이 믿듯이 여러분들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오늘 본문에서 사람을 무시하고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는 아주 교만한 재판관을 실례로 들었습니다. 그렇게 거만한 재판관과 사랑이 한이 없으신 우리 하나님을 대비시켜 비유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악한 재판관도 억울한 누명을 쓰고 밤낮으로 찾아와 호소하는 과부의 소원을 들어주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사랑이 한이 없으신 우리 하나님께서 그 사랑하는 자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어주시지 않겠느냐? 고 하셨습니다.
(눅18:6-7)
주께서 또 가라사대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우리 주님의 이와 같은 말씀을 가슴에 꼭꼭 심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조건 기도로서 모든 삶의 억울함과 원통함을 풀어가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그 사랑하는 자녀들의 부르짖는 소리를 반드시 들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친히 기도 응답에 대한 약속을 남겨 두셨습니다.
(요14:13-14)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마7:7-11)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라고 말입니다. 이는 우리 주님께서 친히 주신 약속이기 때문에 틀림없이 그 말씀대로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Henry Drumond(1851-1897, 영국의 종교적 사상가, 자연과학자, 그래스고무의 자유교회 대학 박물학교수, 신학교수)는 이처럼 약속하신 주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기도는 반드시 응답된다는 말씀을 천명해 두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남겨두었습니다. 영국을 출발하여 뉴욕으로 가는 큰 여객선을 타고 가던 한 소년이 갑판에서 공을 가지고 놀다가 그만 그 공을 바다에 빠뜨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얼른 선장에게 뛰어가서 배를 세워 달라고 졸랐습니다. 그러나 선장은 점잖게 타일렀습니다. “얘야, 이 배는 너의 공을 건지려고 세울 수는 없단다. 다음에 더 좋은 공을 가질 수 있도록 하자구나.”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역시 그 갑판에서 한 소녀가 인영을 가지고 놀다가 기관실이 있는 아래로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어린 소녀는 그 인영도 바다에 빠져버린 줄 알았습니다. 그 때 그 소녀는 선장에게 가서 인영을 건져달라고 해야지 하고 선장에게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까 그 소년이 나타나서 말합니다. “선장에게 가서 말해봐야 아무 소용없어. 선장은 고집이 세고 우리 같은 아이의 말은 절대 들어주지 않아. 그러니 괜히 헛수고 하지 말어.” 그래도 소녀는 선장에게 갔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놀던 인형을 건져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선장이 가만히 살펴보니 인형이 기관실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잠시 후 선장은 기관실로 들어가서 소녀의 그 인형을 찾아 소녀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그 이튿날 “사람이 바다에 떨어졌어요.” 하는 고함소리가 났습니다. 선장은 즉시 배를 세우고 구명보트를 내려 그 사람을 건져 올렸습니다. 배는 무사히 뉴욕에 도착하였습니다. 선장은 아까 공을 바다에서 잃어버렸던 소년을 찾아 좋은 공을 사서 선물해 주었습니다. 헨리는 이 이야기를 통하여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기도에 어떻게 반응하시고 응답하시는지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공통점은 선장을 찾았던 모두가 다 선장의 도움을 받아 목적을 달성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점은 시간적인 차이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빠졌을 때는 즉각 배를 세웠고, 인형을 찾을 때는 잠시 시간이 흐른 다음에 해결될 수 있었고 공을 빠뜨렸던 소년은 목적지에 도착한 이후에 해결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들의 기도를 반드시 들어주시되 응답의 시간적인 차이는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알아서 처리하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도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한 순간도 살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우리 인생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오늘 본문 말씀에서 우리들에게 이것을 매우 설득력 있게 설명해 주시는 것입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망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무슨 일을 만나든지 낙망하지 말고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그리고 과부의 원통하고 억울한 문제가 어떻게 해결 되었는지 설명해 주십니다. 비록 하나님 까지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그런 무정한 재판관이었지만 가난하고 힘없는 과부의 원한을 풀어주었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그렇다면 사랑이 한이 없으신 우리 하나님은 그 얼마나 더 우리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기도를 들어주시겠느냐고 반문까지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마지막으로 하신 한 말씀이 여운같이 깊이 우리 가슴에 와 닿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마지막 악한 때에 믿음 있는 사람을 보겠느냐? 고 탄식하시고 계시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눅18: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여기에 기록된 “인자가 올 때”는 곧 마지막 때라는 말씀입니다. 지금이 그 때입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때인 지금 우리들의 가슴 속에 과연 믿음이 있는지? 떨리고 두려운 마음으로 한 번 깊이 점검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믿음이 없을 것이라고 선포하셨으면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속에 믿음이 없다면 모든 신앙생활은 헛것이 되고 맙니다. 물론 기도 응답도 절대 불가능한 것이 되고 맙니다. 주님께서 정의하신 믿음은 다음과 같은 놀라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롬14:23)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한 연고라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리고 믿음이 없이는 결단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히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믿음으로 구하지 않는 모든 기도는 응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약1:5-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에 관한 절대적인 응답을 가르쳐 주시는 우리 주님께서 그 말미에 남겨 주신 이 한 마디는 참으로 놀라운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린다면, 믿음이 없는 기도는 결코 응답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결론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주관하시는 절대자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속에 믿음이 있어야 믿음의 말을 하게 되고 믿음으로 생각하게 되고 믿음으로 행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자동차의 개스와 같이 모든 기도의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에는 불행하게도 믿음이 없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교인들에게 믿음이 없으니 그 어떤 기적도 능력도 일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 마지막 시대에는 믿음이 없는 것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이 다음 말씀 속에 나타나 있습니다.
(딤후4:3-4)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바로 여기에 이 시대에 왜 믿음이 없는지에 대한 해답이 있습니다. 진리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아니하고 허탄한 일에 관심을 두고 그것으로 인해 영혼의 능력이 상실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말씀이 없는 교회일수록 은사집회에 관심을 많이 두고 있습니다. 말씀이 없는 성도들일수록 필요 이상의 은사에 집중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결국은 말씀입니다. 말씀을 읽지 않고 듣지 않고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믿음은 결코 은사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오직 말씀을 통해서만 오는 것입니다.
(롬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처럼 말씀을 듣고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을 따라 헌신할 줄 아는 성도들이 될 때 비로소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믿음에 굳게 서게 되었을 때 비로소 그 믿음으로 드리는 모든 기도는 다 응답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마21:22)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는 말씀과 같이 기도에는 반드시 믿음이라는 전제 조건이 충족되어야 응답의 기적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앞서 믿음으로 무장하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믿음으로 굳게 서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는 말씀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마지막 때에 이처럼 말씀을 읽고 듣고 순종하는 말씀 중심의 성도들이 복이 있는 것입니다.
(계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친히 보장하시듯 기도 응답은 반드시 되는 것이니 항상 기도하고 낙망하지 말라시는 말씀을 가슴에 담고 삶에 그 어떤 위기와 어려움을 당한다 할지라도 낙심하지 말고 오직 능력에 한이 없으신 하나님께 구하고 응답 받는 그런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비록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그런 악한 재판관일지라도 밤낮으로 부르짖고 호소하는 과부의 소원을 들어 주었다고 하시는 우리 주님의 말씀은 참으로 사랑이 한이 없으신 우리 하나님과 좋은 대비가 됩니다. 이렇듯 분명하게 기도 응답에 관한 약속을 주신 우리 주님의 말씀을 가슴으로 받아 이제부터는 모든 삶의 영역에 기도와 연관시켜 기쁘고 즐거운 일이 있을 때에는 그것을 주신 이가 하나님이신 줄 믿고 감사를 드리고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에는 그 문제를 능히 해결해 주실 이는 하나님 밖에 없는 줄 알아 하나님께 찾아가 조용히 기도하는 그런 기도의 사람들이 다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처럼 모든 기도 응답의 배후에는 하나의 조건이 있음도 배웠습니다. 그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그런데 이 마지막 때에는 믿음이 없을 것을 탄식하신 주님의 마음을 우리는 오늘 분명히 읽고 우리 주님의 탄식이 결코 우리들과는 상관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 말씀을 중심으로 믿음을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신앙생활의 처음도 나중도 오직 믿음이니 그 믿음 없음을 가슴 아파하며 말씀 중심으로 돌아가 풍성한 믿음의 성도들이 먼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될 때 기도 응답의 놀라운 역사는 저절로 이루어지는 축복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쪼록 오늘 거룩한 성전에 올라와 마음으로 바쳐 예배드리는 우리 모든 성도들은 오늘 말씀이 우리 남은 삶을 살아가는데 결정적인 역사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가슴에 새기고 믿음으로 기도하며 하늘 문을 열어가는 그런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귀하신 우리 주님으로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아 멘
주후 2013년 7월 14일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