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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k You are here: Home 말씀과예배 설교 읽기 2013년 9월 29일 주일낮설교 (선택)

2013년 9월 29일 주일낮설교 (선택)

선택(選擇)

9. 29, 2013

本文:에베소서1:3-6

說敎:崔 仁 根 牧 師

다니엘서에서 우리는 참으로 가슴 뭉클하도록 하나님을 사랑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을 선택하는 멋들어진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들은 포로로 잡혀 갔지만 워낙에 빼어난 인물들이라 왕이 총애하고 특별히 왕의 사람들로 구별하여 키운 인재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얄밉게 보고 질투하던 고위 관리들이 이들을 죽일 수 있는 묘안을 만들어 내어 왕의 결재를 받아 내게 됨으로 끔찍한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그들의 굳은 신앙을 역이용한 절묘한 우상숭배였습니다. 왕의 신상을 높이 세우고 모든 백성들이 그 앞에서 때를 따라 절을 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당연히 이 세 사람들은 그 신앙 앞에 절하지 않을 것을 확신한 그들은 이것을 이용하여 그들을 왕 앞에서 제거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 신상 앞에 절하지 않는 형벌은 곧 뜨거운 풀무불에 집어넣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화형을 시켜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참혹한 형벌이 왕의 명령으로 전국에 반포되었는데도 이 세 사람들은 믿음의 절개를 지키고 그 우상 앞에 절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그들은 체포되어 구금 되었고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늦게서야 이 소식을 접한 왕이 대노하였습니다. 그렇게도 자신은 그들을 사랑하고 구별하여 대우하였건만 정작 그들이 자신의 신상 앞에 절하기를 거부하였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왕은 당장에 그들을 자기 앞에 불러 세웠습니다. 그리고 엄명하였습니다.

(단3:13-15)

느부갓네살 왕이 노하고 분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끌어 오라 명하매 드디어 그 사람들을 왕의 앞으로 끌어온지라 느부갓네살이 그들에게 물어 가로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그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니 짐짓 그리하였느냐 이제라도 너희가 예비하였다가 언제든지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듣거든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리어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 낼 신이 어떤 신이겠느냐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야말로 그들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습니다. 모든 권세를 다 가지고 있어 말 한 마디면 사람의 목숨을 끊을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는 왕이 직접 명령하고 있는 순간에 그들은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마지막 선택은 그들의 몫이었습니다. 왕의 말대로 순종하고 목숨을 부지하든지 아니면 자신들의 하나님을 선택하고 믿음의 절개를 지킴으로 죽임을 당하든지 오로지 그들이 선택해야 할 순간에 서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왕에게 다음과 같이 자신들의 선택을 알렸습니다.

(단3:16-18)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라고 말입니다. 참으로 그들은 대단한 선택을 하였습니다. 목숨과 맞바꿀 역사적인 선택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의 이와 같은 놀라운 선택의 이야기가 성경에 기록되어 수천 년을 지나는 지금까지도 믿음의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와 같은 선택의 문제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들도 이 세 사람들과 같이 선택의 순간에 옳은 선택을 바로 할 수 있도록 말씀을 통한 풍성한 은혜를 덧입으시기를 바랍니다.

선택(選擇)

인생은 선택입니다. 이 땅에 존재하는 부모 형제만 제외하고 나면 모든 것이 다 선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배우자도 자신이 선택하고 평생을 함께 의지하며 살아 갈 친구도 자신이 선택합니다. 거기에 부합하는 학교나 직장이나 거주지까지 모두 자신이 선택합니다. 다행히도 이를 잘 선택한 사람들은 행복과 보람을 느끼며 살아가지만 불행하게도 이를 잘못 선택한 사람들은 평생을 아프고 힘들게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에서 선택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선택이 우리 인생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님을 오늘 본문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하늘의 하나님께서도 선택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는 참으로 놀라운 진리 중의 진리입니다. 오늘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선택과 우리 인생들의 선택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복된 말씀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이 놀라운 진리로 무장하여 남은 삶만이라도 바른 선택으로 유복하게 살아가는 진정 복 받은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자녀로 선택해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실로 우리들을 충격에 빠뜨리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선택하시되 아직 이 땅에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예정해 두셨다고 증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엡1:3-4)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십니까? 이 세상 만물을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왕 중의 왕이 아니십니까? 그러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들이 아직 이 땅에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우리들을 선택해 두셨다니 이 보다 더 놀라운 사실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들이 이 땅에서 받은 육신적인 모든 축복을 다 합해도 하나님의 이 한 마디 말씀보다 못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들이 교회에 나아와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도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선택하시고 구원하여 하나님의 백성들로 만들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요 성경의 진리입니다. 우리 기독교가 세상 종교나 샤머니즘하고 다른 부분 또한 여기에 있습니다. 세상의 종교는 인간이 자신의 안일과 평안을 위해 그들의 신을 찾아가는 것이지만 기독교는 우리들이 아직 죄 가운데 빠져 육신적으로 살아가고 있을 때 하늘의 하나님께서 친히 찾아오시어 우리들을 선택하시고 불러주신 것입니다.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우리 기독교는 그 근본부터가 다른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들을 태어나기도 전에 선택하여 때가 되매 부르시고 이처럼 하나님 앞에 나아오게 하셨을까요? 성경은 이에 대한 해답과 이유 또한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으니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죄악으로 죽을 우리들을 구원하시려고

우리는 창세기 초반에 기록된 말씀을 중심으로 우리 모든 인생들이 왜 죄인이 되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사탄 마귀와 짝하여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으므로 타락하여 죄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러므로 그 이후 보통 생육법으로 태어나는 모든 사람들은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다 죄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죄의 DNA가 오늘 우리들 속에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다 죄인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롬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3:9-12)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라는 말씀과 같이 이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다 타락하여 허망한 존재요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무익한 존재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들을 하나님은 불쌍하게 여기시고 천에 하나 만에 하나 선택하여 구원하여 주신 것입니다.

엡2:1-5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랬습니다. 오늘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것은 그와 같은 죄에 그대로 두면 영원히 형벌 받고 명망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특별히 선택하시고 구원하여 주셨던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는 세상의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자신들이 죄인이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생이 허무하고 죽으면 다 끝나는 것이므로 오로지 먹고 마시며 세상 낙에 젖어 소망 없이 그냥 그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한국에서 들려오는 너무나도 비참한 소식을 접하고 있습니다. 29살이나 된 아들이 자기 아내와 같이 짜고 58살 먹은 어머니와 32살 난 형님을 죽여 암매장하고 그들이 가지고 있던 7억 정도 되는 집을 차지하였다가 경찰에 발각이 되어 아내는 조사를 받던 중 자살하고 자신은 죽으려고 해도 죽을 기회조차 가지지 못한 채 감옥에 갇혀 있다는 소식 말입니다. 그런데 더욱 큰 문제는 그가 도박에 빠져 빚진 돈 때문에 그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어리석은 인생들의 단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절대주권으로 선택하시고 불러주시지 않았다면 이 세상에서 소망 없이 살다가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인생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죄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해 부모형제까지도 살인하는 이 시대를 바라보면서 죄의 뿌리가 얼마나 강하고 두려운 것인가를 다시 한 번 더 절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선택하신 것은 이처럼 무서운 죄악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 우리 하나님의 이와 같은 사랑보다 더 큰 축복은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2) 땅에서 죽을 우리들을 자녀삼아 천국가게 하시려고

더욱 더 놀라운 사실은 이처럼 이기적이고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멀리 떠나버린 우리 죄인들을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다는 것입니다.

(엡2: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행13:33)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롬8:16-17)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는 말씀들과 같이 말입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처럼 아무런 자격도 조건도 갖추지 못한 우리 죄인들을 하늘의 하나님께서 친히 하나님의 자녀들로 불러주시면서도 아무런 조건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태초에 이미 하나님의 자녀들로 선택해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무슨 조건을 요구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로 미루어 보건데 사도 바울이 "범사에 감사하라"(살전5:18)고 명령하신 이유를 알듯합니다. 하나님께서 이토록 우리들을 사랑하시고 우리들을 세상에서 불러 예수님의 보혈로 죄를 씻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 주셨다는 이 사실은 오늘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고 그 하나님 앞에서 늘 충성스런 일꾼으로 살아야겠다는 거룩한 결심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음의 말씀을 묵상해 보신다면 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사43:1-4)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오늘 우리들이 비록 못나고 가진 것 없고 초라할지라도 하늘의 하나님께서 이토록 우리들을 구별하시고 사랑하시고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 하나님의 자녀 됨을 확증하여 사는 삶 속에서 기죽지 아니하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삶의 원동력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에게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 모든 불가능한 일들이 가능으로 믿어지고 확신되어질 수 있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하신 것은 우리들의 삶이 이 땅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늘나라까지 계속된다는 사실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시카고에서 택시 기사로 일하고 있는 밀턴 브런스타인이라는 신자가 있습니다. 그는 하늘의 하나님께서 자신을 아들로 불러주신데 대해 늘 감격하며 하나님의 그 사랑을 이웃들에게 전해야겠다고 선행에 힘쓰고 있습니다. 성경구절을 카드에 적어 택시에 붙이고 거기에서 문제를 내어 맞히면 택시 요금을 받지 않기도 하였고 장애인이나 몸이 불편한 사람은 무조건 요금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의 아름다운 선행이 시민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자 매스컴에서 그를 취재하였습니다. 그들은 이 좋은 기사에게 물었습니다. "인생의 철학이 무엇입니까?" 하고 말입니다. 그러자 그는 서슴지 않고 대답하였습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의 절반은 그것을 가지지 못한 이웃들의 것입니다." 고 말입니다. 이런 그의 삶은 마침내 클라이슬러 자동차 회사와 미국 택시산업이 그를 전국 최고의 모범택시기사로 뽑았고 평생 그와 같은 선생을 하는데 필요한 돈을 대 주겠다는 독지가도 나왔습니다. 바로 이처럼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을 자녀로 삼아주신 하나님께 보답하는 길일 것입니다. 우리 그렇게 하라고 하나님은 아무런 조건도 없이 우리들을 선택하시고 자녀로 구별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3) 수고와 슬픔으로 망가진 우리들에게 축복을 주시려고

이 세상은 수고와 슬픔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 말씀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진짜로 이 세상에서 육신적인 복을 엄청나게 받은 사람일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로 군림하며 지금까지도 그들의 영원한 지도자요 우상과 같이 존경 받고 있는 모세가 인생 마지막을 논하여 놓은 말씀이 성경에 있는데 그것은 참으로 오늘 우리들을 슬프게 합니다.

(시90:9-11)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일식 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누가 주의 노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를 두려워하여야 할대로 주의 진노를 알리이까

그렇게도 위대한 인생을 살았던 그가 인생을 무엇이라고 정리해 두었습니까? "수고와 슬픔뿐이라"고 하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배신하고 타락한 인생들에게 내리신 하나님의 형벌을 떠나 살 수 없는 것이 우리 인생들이기 때문입니다.

(창3:17-19)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오늘 우리 인생들이 죽도록 수고하여야 겨우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와 같은 말씀들을 통하여서 명백히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인생은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가시덤불과 엉겅퀴로 우거진 이 험악한 세상에서 수고와 슬픔을 당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와 같은 우리 인생들을 찾아오신 예수님은 우리들을 부르실 때 이와 같은 배경을 두고 다음과 같이 부르셨던 것입니다.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고 말입니다. 그러한 우리들을 하늘의 하나님께서 친히 선택하시고 불러내시어 자녀로 삼아주신 것은 그와 같은 험악한 고통에서 해방시키시고 진정한 축복으로 우리들을 회복시키시기 위함이십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죽음이 없는 삶, 영원을 사모하는 삶, 죽어도 다시 사는 삶을 보장해 주시는 것입니다.

(요11:25-2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한 가지는 이와 같은 진리를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있는 믿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 이와 같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고 그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자녀로 선택하시고 엄청난 천국을 보장하시며 이 세상에서도 풍성한 축복으로 인도해 주실 줄 믿는 성도가 최고의 복된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그와 같은 하나님을 위해 한 목숨이라도 내 놓았던 것입니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듣기만 해도 흐뭇한 멋들어진 관계입니까? 하나님께서 조건 없이 우리들을 선택해 주셨으니 우리도 그 하나님을 조건 없이 선택하고 섬기겠다는 이 관계보다 더 감동되는 이야기는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을 것입니다. 바라기는 오늘 말씀을 받으며 하나님께 감사와 예배를 드리는 우리 모든 성도들도 이처럼 놀라운 선택으로 이 세상 그 누구보다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그런 멋쟁이가 되시기 바랍니다.

과연 오늘 우리들의 수고와 슬픔을 가슴으로 위로해 주고 도와주신 분들을 만나 보셨습니까? 이 종은 최근 "마음을 열어 주는 101가지 이야기"를 읽으며 혼자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로버트 J. 맥뮬런2세가 쓴 기사는 짧았지만 참으로 감동적이었습니다. 그의 사랑하는 형이 심장마비를 일으켜 응급실에 입원해 있는데 온통 이리저리 연결된 전기선이 형의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기가 막히는 순간이었습니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말하면서 들어와서 말하면서 나갔습니다. 전혀 위로도 도움도 되지 않는 안타까운 모습들이었습니다. 한결같이 그들은 진정으로 슬픔을 당한 사람을 어떻게 위로해야 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형의 친구가 찾아 왔습니다. 아무 말 없이 들어와서 형의 곁에 서더니 오랫동안 형을 내려다보기만 했습니다. 그리고는 조용히 말했습니다. "참으로 너무나도 안 됐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말없이 가만히 형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돌아서서 말없이 형수님을 포옹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동생인 자기의 손을 평소보다 조금 더 꼭 쥐고 말없이 서 있는데 그의 눈에는 촉촉이 눈물이 고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말없이 떠났습니다. "그가 진정 누구인지 이름조차 모르지만 인생을 살아오면서 고통과 슬픔을 어떻게 나누어야 하는지 그 사람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사람을 아직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지금 우리들에게 이처럼 고통을 나누어 줄 진실된 친구가 필요합니다. 그 누구도 가슴으로 우리들의 고통을 나누어 줄 사람이 우리에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늘의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고통을 이렇게 나누시기 위해 우리들을 선택하시고 우리 곁에 다가오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된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은 아무런 조건도 없이 오늘 우리들은 천에 하나 만에 하나 선택하여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천국을 보장해 주시고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풍성한 은혜와 축복으로 채워주십니다. 우리들이 과연 무슨 공로가 있어 이처럼 놀라운 축복을 누리고 살아가게 되었습니까?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이처럼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하고 깨달을 수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이 모든 것이 다 수포로 돌아가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바로 그런 존재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독생자까지 주셨으나 그들은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버리고 말았습니다. 부디 생각 없이 인생을 살아가지 말고 깊은 깨달음과 은혜 속에서 하나님의 이처럼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가슴으로 되새기며 사드락과 메삭과 아멧느고와 같이 하나님을 이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견주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선택해 주셨으니 우리들도 하나님을 선택하며 살아가는 그런 멋들어진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로 헌신하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은 바로 이런 성도들이 되어 하나님의 기쁨이 될 수 있기를 좋으신 우리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 드립니다. 아 멘

주후 2013년 9월 29일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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