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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k You are here: Home 말씀과예배 설교 읽기 2013년 10월 6일 주일낮설교 (은혜)

2013년 10월 6일 주일낮설교 (은혜)

은혜(恩惠)

10. 6, 2013

本文:에베소서2:1-10

說敎:崔 仁 根 牧 師

은혜란 말은 우리 기독교인들이 가장 많이 쓰는 단어 중의 하나입니다. 하지만 그 뜻을 정확하게 잘 알고 있는 성도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은혜"라는 말을 기독교대백과사전에서 찾아보니,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발적이고 값없이 베풀어 주시는 사랑의 선물들을 총칭하는 말"이라고 써 놓았습니다. 참으로 쉬우면서도 분명하게 잘 설명된 것 같습니다. 이렇듯 은혜는 하나님께서 우리 모든 인생들에게 값없이 주시는 숱한 선물들입니다. 하지만 이 은혜에도 차등이 있으니 일반은혜와 특별은혜가 바로 그렇습니다. 일반은혜는 "하나님께서 모든 인생들에게 차등 없이 베풀어 주시는 선물들"을 말합니다. 성경에서 이와 같은 사료들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마5:44-45)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행14:16-17)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족속으로 자기의 길들을 다니게 묵인하셨으나 그러나 자기를 증거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너희에게 하늘로서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너희 마음에 만족케 하셨느니라

이상의 말씀들 중에서 밑줄 친 부분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차등 없이 사랑을 베풀어 주심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은혜를 일반은혜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특별은혜는 "인간의 죄와 무가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 크신 사랑으로 인해 인간에게 값없이 사죄와 생명을 주시는 것으로서 구원 및 은사와 관련되어 있는 선물들을 총칭하는 말"입니다. 이에 관한 성경적인 증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롬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엡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믿는 신자이든 하나님을 모르는 불신자이든 우리는 다 하나님의 은혜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을 잘 알고 늘 감사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을 일컬어 성도라고 부르고 그것을 끝내 모른 채 제 잘난 맛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우리는 불신자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은혜로 주시는 가장 큰 선물이 무엇인지? 함께 공부하면서 깊은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해 보는 복된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은혜(恩惠)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기 이전의 상태를 설명하고 그와 같은 곳에서 우리들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게 해 주신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이와 같은 본질을 깊이 깨닫는 자들일수록 하나님의 구원을 감격하게 되나 그렇게 자신의 본질을 깨닫지 못하게 되면 그렇게 깊은 감사를 드리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기록한 사람은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우리들이 성경을 통하여서 익히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예수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던 살인자였습니다. 훗날 예수님을 똑바로 만나고 나서는 그것이 얼마나 악하고 무서운 죄인 줄을 알았기에 그와 같은 자신의 죄를 평생을 통해 회개하며 주님을 섬기고 따르는 무기로 사용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항상 기뻐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보통 사람과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잠시 그의 이와 같은 삶의 단변을 성경 속에서 찾아보고 계속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딤전1:12-14)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살전5:16-18)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바로 이와 같이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들의 올바른 삶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무엇이 진정한 하나님의 은혜인지? 분명하게 배우고 깨닫고 체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은혜가 크고도 많지만 그것을 성경에서 찾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과 함께하시는 것이 은혜입니다

우리는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구원하시려고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 주신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으로부터 우리들에게 보내심을 받으시고 우리 곁으로 오신 예수님의 이름이 [임마누엘}이라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임마누엘이란 뜻은 과연 무엇일까요?

(마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이 말씀에서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는 바와 같이 "임마누엘"이란 "하나님께서 우리들과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하늘의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죄인 된 우리들과 함께 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가 크고도 많지만 하늘의 하나님께서 땅에 거하는 우리들과 함께 하신다는, 이 보다 더 큰 은혜는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하든지 세상적인 재물이나 권세를 많이 얻으면 그것이 축복인 줄 알지만 이 세상의 것은 예수님에 비하며 그리 귀한 축복이 아니라는 사실을 체험합니다. 이 세상에서는 올라가는 만큼 떨어지는 추락의 고통이 더욱 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탕자의 비유를 잘 압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나가 허랑방탕하면서 다 까먹고 거지가 되어 돌아 온 동생을 위해 살진 송아지를 잡고 사람들을 불러 잔치하는 아버지를 형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와 같은 잔치가 벌어지고 있는 집안에 들어가지 않고 분노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아버지가 친히 나와서 이와 같은 아들을 위로하고 가르치는 내용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눅15:29-32)

아버지께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우리는 이 말씀 중에서 아들의 가치와 아버지의 생각이 너무나도 다른 것에 놀라게 됩니다. 아버지를 모시고 있는 이 큰 아들의 바램은 고작 염소 새끼였지만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보여주시는 사랑과 은혜는, 아버지가 그 아들과 함께 하시는 것이었고 그러므로 아버지의 것이 다 그 아들의 것이라는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날 우리들도 이 큰 아들처럼 고작 이 세상의 재물이나 권세 정도에 눈이 어두워 있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제대로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믿음의 눈과 영의 눈이 열려서 하늘의 하나님께서 우리들과 함께 하신다는 이 엄청난 축복을 볼 수 있어야 비로소 은혜 받은 성도들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들의 어리석은 가슴을 두드리시며 친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사43:1-4)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그렇습니다. 이렇게 하늘의 하나님께서 우리들과 함께 하시고 죄로 얼룩져 사람도 싫어하는 우리들을 영원히 사랑해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믿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구원해주시는 것이 은혜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실로 너무나도 외롭고 힘든 삶을 살아갑니다. 이 세상에서 외롭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시편 기자의 다음과 같은 탄식을 들어보면 이것이 우리 인생의 현실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55:5-8)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고 황공함이 나를 덮었도다 나의 말이 내가 비둘기 같이 날개가 있으면 날아가서 편히 쉬리로다 내가 멀리 날아가서 광야에 거하리로다(셀라) 내가 피난처에 속히 가서 폭풍과 광풍을 피하리라 하였도다

사실 이것은 성군 다윗의 탄식입니다. 골리앗을 순식간에 무너뜨리고 용사 중의 용사였던 다윗이 이 정도로 인생의 고독과 두려움과 아픔과 고통을 토로하고 있다면 오늘 우리들이야 더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우리 조국 대한민국에서는 하루에 46명씩 자살하고 있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그렇게 한 번뿐인 삶을 죽음으로 마감하고 있겠습니까? 이것이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 인생의 현주소입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렇게 힘들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요? 단순 결론은 죄 때문입니다. 이미 지난 몇 주간 동안 주일 예배 말씀을 통해 배우고 있는 바와 같이 우리 조상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사탄 마귀와 짝하여 타락하므로 그 이후의 모든 인생들은 그렇게 아픈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하고 끝내는 죽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의 무서운 형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창3:16-19)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처럼 비참하게 되어버린 인생들에게 하나님께서 친히 사람의 옷을 입고 고통의 땅으로 찾아오셨던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들을 이와 같은 무서운 죄와 고통과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엡2:1-4)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살리셨고(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것을 일컬어 사도 바울은 "은혜"라고 선포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쉽게 단순하게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이 당하여야 할 그 숱한 고통과 죽음을 예수님께서 친히 담당하시고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눈물과 통곡으로 대신하셨기 때문입니다.

(사53:5-6)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히5:7-10)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

이상의 말씀에서 보는 바와 같이 우리들은 단순하게 어쩌다가 구원 받은 것이 아닙니다. 이처럼 우리 예수님께서 친히 우리들이 마땅히 감당해야 할 고통과 눈물과 죽임을 친히 당하시고 우리들을 구원해 주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놀라운 구원을 거저 받았으니 이것을 우리는 "은혜"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축복을 주시는 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들을 창조하시고 어떻게 살아가나 구경만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우리들을 먹이시고 입히시며 인도해 주십니다. 그것은 우리 주변에서 여인들이 아이를 낳아 어떻게 키우는지를 바라보면 저절로 공감하게 되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사49: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 할 것이라

고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 예수님께서도 친히 우리들에게 약속의 말씀을 남겨 두셨습니다.

(마6:25-31)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고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들은 끊임없이 걱정하고 염려하고 불안해합니다. 이는 우리 주님께서 친히 지적해 주신대로 우리들에게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보다 더 우리들을 보살피시고 필요를 채워주시는 좋으신 아버지십니다. 결코 우리들을 영적인 존재로만 취급하시고 영적인 것만을 강요하시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들의 눈물을 아시고 함께 울어주시고 우리들의 가난을 아시고 어느 까마귀를 통해서도 먹여주시며 우리들의 연약함을 아시고 때를 따라 입히시며 안아주시어 우리 인생 여정에서 낙오자가 되지 않게 도와주십니다. 그 대표적인 고백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뉴욕의 파라마우스라는 동네에 Bargen Pine Hospital이 있습니다. 이 병원은 특수병원으로 평생을 재활치료를 받으며 입원해야만 하는 환자들이 머물고 있는 곳입니다. 여기에 43살 난 Joyce Akins라는 믿음 좋은 여인이 입원해 있습니다. 이 여인은 23살의 나이에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자동차를 타고 가다 교통사고를 당하여 남편은 현장에서 즉사하고 자신은 목뼈가 부러져 전신마비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병원으로 후송되어 20년 동안 움직이지 못한 채 병석에 누워 있어야만 하는 불행한 여인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병원의 모든 직원들에게 선물을 준비하여 나누는 천사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병석에 엎드리러 붓으로 그림을 그리고 그 그림을 판돈으로 1년 동안 모아 그렇게 선물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여인이 고백한 내용이 오늘 우리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그 여인이 간증한 두 가지 축복이란, 첫째로 평소에 그림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자신이 입 하나로 이처럼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이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인 줄 알고 감사드리며,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이 얼마나 소중한 분이시라는 사실을 건강할 때는 전혀 몰랐었는데 이렇게 움직이지도 못한 채 병원에 입원해 20년 동안을 살아 와 보니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요 은혜라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게 되어서 감사드린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들은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건강한 몸으로 이웃에게 유익은커녕 고통을 주는 삶을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이렇게도 놀라운 영육 간에 복을 누리고 살면서 원망하고 불평하며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무엇인가 우리들도 이웃을 위해 하나님을 위해 섬기고 헌신하며 죽고 나서도 영원히 남을 그런 멋들어진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은혜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서는 결코 이렇게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얼마나 많은 축복을 주셨는가를 가슴으로 깨닫고 그 은혜에 화답하는 멋들어진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더 큰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입은 백성들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가진 것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은 것이 단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들도 우리들과 함께 하기를 원치 않은데 하늘의 하나님께서 우리들과 밤낮으로 함께 해 주신다니 눈물겹도록 감사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들과 함께 하시면서 우리들의 숱한 죄와 고통의 문제를 친히 몸으로 대신 해결하여 주시고 끝끝내 우리들을 천국 갈 수 있도록 구원하여 주신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사는 날 동안 우리들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고 말할 수 없는 숱한 축복으로 넘치게 하시니 또한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사랑하시고 인도해 주시니 우리는 하나님의 이와 같은 놀라운 은혜에 보답할 양으로라도 이제는 값진 삶을 회복하여야 하겠습니다. 이웃들에게 사랑을 나누고 하나님께 온 몸을 바쳐 예배드리는 삶이 바로 하나님께서 은혜로 우리들을 캐어하시는 데 대한 보답이 될 것입니다. 모쪼록 오늘 같이 귀한 날 하나님께서 친히 기다리시는 거룩한 성전으로 나아와 예배드리는 우리 모든 빌빌보의 권속들은 은혜 받은 성도답게 충성스런 헌신으로 하나님께 온전한 영광 돌려드리는 그런 행복한 심령들이 되시기를 좋으신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아 멘

주후 2013년 10월 6일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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