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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k You are here: Home 말씀과예배 설교 읽기 2013년 11월 3일 주일낮 설교 (사랑 때문에)

2013년 11월 3일 주일낮 설교 (사랑 때문에)

사랑 때문에

11. 3, 2013

本文:고린도전서13:1-7

說敎:崔 仁 根 牧 師

우리 예수님은 우리들을 향한 사랑 때문에 고귀한 목숨까지도 내 놓으셨는데 그 주님을 따라가는 오늘 우리들에게는 사랑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땅이 온통 고통과 눈물로 가득하고 절망과 좌절로 망가져가고 있는 것입니다. 과연 오늘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를 드리고 있는 우리 마음속에는 사랑이 있을까요? 다음 이야기를 들어보시면서 우리들의 가슴 속에는 진정 사랑이 남아 있는지? 스스로 한 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야기 1

한 젊은이가 결혼을 앞두고 아버지에게 몇 가지 조언을 구하기 위해 멀리 계신 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얼마 후 아버지로부터 답신이 왔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네가 곧 결혼을 한다니 네 어머니와 나는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구나. 너도 이제 곧 결혼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축복이요, 행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식탁 너머로 네 어머니를 바라볼 때마다 나는 우리 부부가 함께 살아온 지난날들이 너무나도 아름답고 충실했으며 행복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단다. 무슨 일이 있어도 결혼은 꼭 하도록 해라. 우리는 기꺼이 너희들을 축복해 줄 것이다. 네가 결혼하는 날은 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이 될 것이다.

추신- 네 어머니가 방금 나갔다. 이 바보 같은 녀석아! 결혼은 절대로 하지 마!

이야기 2

절대로 자기는 결혼하지 않겠다는 친구가 결혼한다고 청첩장을 보내 와 깜짝 놀란 친구가 물어 보았습니다. "그대는 항상 결혼을 반대해 오지 않았는가? 그런데 갑자기 왜 결혼하게 된 거야?" 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그 친구가 대답해 주었습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이번 겨울은 전에 없이 몹시 추워진다고 하는데 그런데 기름 난방 및 겨울나기가 어떻게 힘들겠는지? 아무리 궁리해 보아도 해답이 없어. 그래서 결혼을 하고 아내를 얻으면 경비가 반으로 줄어들 것 같으니 어쩔 수 없었다네."

이것은 이 종이 꾸며 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소중한 사람에게 마음에 힘이 되어주는 책"(박지현 엮음)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사랑의 결정체가 결혼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 결혼이 이 정도이면 이 세상에는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의 삶이 힘들고 외롭고 고통스러운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입니다. 우리 주변을 한 번 살펴보십시오. 날마다 행복해서 기쁨을 이기지 못하는 사람이나 기쁜 미소를 얼굴 가득 머금고 노래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있습디까? 저마다 다투고 싸우고 화내고 돌아서고 미워하며 그렇게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디까? 그 모든 요인이 바로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단도직입적으로 선포하고 있습니다.

(고전13:1-3)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라고 말입니다. 이는 단순하게 사도 바울만의 견해가 아닙니다. 이는 성경 말씀이니 하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교훈이요 진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에게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귀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바로 배우고 사랑을 회복하는 복된 심령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에 기록되어져 있고 평생을 통해 그 사랑을 체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일4: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일4: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도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또한 성경에 기록된 바요 우리들이 피부로 느끼고 체험하는 바이기 때문입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눈곱만큼도 의심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명명백백 고백하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이와 같은 사랑이 우리들의 생활 속에 어떻게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는지 함께 찾아 가슴에 새기면서 확신하고 그 사랑을 우리들도 배워보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삶 속에서 실천하므로 우리들도 사랑 때문에 우리들의 삶이 온전히 달라지고 변화되는 역사로 충만하여지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 때문에 우리들을 길이 참고 기다려주십니다

우리는 매일 같이 핸들을 잡고 운전을 하고 다닙니다. 사고나 티켓을 만들지 않도록 늘 노력하고 애 쓰지만 깊은 생각에 잠겨 있거나 전화를 하고 있거나 방심하는 순간의 실수로 우리는 사고를 내거나 티켓을 떼게 됩니다. 무심결에 빨간 신호등을 무시하고 지나갔는데 다행히 경찰이 보지 못해 티켓을 떼지 않게 되면 안도의 한숨을 쉬며 좋아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모든 것을 다 보시고 다 알고 계십니다.

(시139:1-5)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족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주께서 나의 전후를 두르시며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는 말씀과 같이 하나님은 전지 전능하셔서 모르시는 것이 하나도 없고 못하시는 것 또한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죄를 그렇게도 싫어하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들을 심판하지 않으시고 지금 이 순간까지 가만히 계시는 것일까요? 오직 그 이유는 하나입니다. 우리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길이 참고 계시는 것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전13: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모든 허물과 죄를 다 아시면서도 모르시는 것처럼 참고 기다리십니다. 그리고 회개하고 새롭게 변화되기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너무나도 많이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래 오래 참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민14:22-23)

나의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나의 이적을 보고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한 그 사람들은 내가 그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하나라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이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그 놀라운 기적과 능력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도 하나님을 거역하고 업신여기고 반역한 죄인들의 죄를 하나님은 열 번이나 참고 기다리시며 그들이 회개하기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끝까지 깨닫지 못하고 사랑은커녕 반역으로 대항하다가 결국은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으로 다가서시는 하나님 앞에 우리들도 사랑으로 화답해야만 합니다. 사랑만이 갈라진 두 관계를 싸매고 회복할 수 있는 묘약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간에 서울에서는 가출하였다가 돌아 온 아버지가 문을 열어주지 않자 되돌아가 칼을 두 자루나 사와서 아버지를 찔러죽이겠다고 아우성을 치다가 경찰이 오자 경찰 두 명을 칼로 찌른 고등학교 3학년 아이가 체포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모두가 다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에 빚어진 비극이요 불행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마땅히 사랑해야 할 부모자식 간에도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길이 참고 기다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오래 전 우리 교회에 유대인과 결혼하여 사는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참으로 남이 낳은 망나니 같은 전처의 아들로 인해 마음고생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그분의 고백을 듣고 많은 감동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 남편은 유대인인데 아들이 그렇게 말썽을 부리는데도 그 아들이 원하는 것을 다 해 주며 단 한 번도 언성을 높이거나 그 아들을 꾸짖는 법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끝까지 참아주고 도와주고 필요를 채워주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집사님은 그 남편까지 미웠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자식을 저렇게 키우는가?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타락하고 방탕하던 아들이 스무 살이 넘어가더니 놀랍게 변화가 되더라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그 사랑에 감동하여 다시 마음을 잡고 비록 늦었지만 열심히 공부하며 새로워지더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이처럼 놀라운 변화를 만들어 놓는 가장 분명한 해답이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는 사랑 때문에 우리들과 함께 해 주십니다

우리들을 사랑하사는 하나님의 특징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지만 요약하면 간단하게 다음과 같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떠나지 않습니다. 실망했다고 돌아서지 않으십니다.

(마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사랑하다가도 조금만 실망하면 그냥 떠납니다. 다시는 보지 않는다고 장담까지 합니다. 그리고는 늘 가슴 한켠에 미움과 원망을 쌓으며 살아갑니다. 우리 속에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온유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들을 결코 떠나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사랑은 온유이기 때문입니다.

(고전13: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떠나지 않으실 뿐더러 오히려 우리들을 하나님의 품안으로 부르십니다.

(마11:28-29)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라고 말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미움은 떠나는 것이고 사랑은 머무는 것입니다. 성경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으로 가득 차 있는 아가서를 보면 이와 같은 아름다운 사랑이 가득 담겨져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2:10-13)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의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반구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이 피어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여기에서 밝히 보는 바와 같이 사랑은 함께 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미워도 떠나면 안 됩니다. 같이 있으면 희망이 있지만 떠나면 모든 것이 끝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은 우리들이 이처럼 불순종하고 거역하고 우리 자신의 유익만을 챙기는 못난 죄인들이지만 떠나지 않고 함께 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그토록 많이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 때문에 모든 것을 다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사랑하시는 까닭에 모든 귀한 것을 다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도 아낌없이 우리들에게 주셨던 것입니다. 참된 사랑은 이렇듯 고귀한 그것일지라도 아끼지 않고 내어주는 것입니다. 참 사랑은 자기의 유익보다는 사랑하는 사람의 유익을 먼저 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오늘날처럼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우리 자신들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고 이웃과 하나님에 대해 인색한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고전13:5)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너무나도 욕심이 많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남의 유익을 먼저 구하여 본적이 언제인지? 기억조차 없으니 누가 우리들을 보고 사랑의 사람이라고 인정해 주겠습니까? 오죽하면 하나님께서 이처럼 욕심에 젖어 자기 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죄를 만들어 낸다고 선언하셨겠습니까?

(약1:14-15)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런데 분명히 여기에서 우리들이 하나 깨닫고 알아야 할 것은 이렇게 욕심을 낸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약4:2)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이처럼 추악한 욕심을 던져버리고 사랑으로 변화를 입어야 합니다. 사랑이 없으면 우리들의 믿음도 우리들의 천사 같은 말도 그 어떤 것도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없는 우리 자신들의 의가 될 것이기에 이것은 축복이 아니라 바로 불신이요 심판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랑으로 변화를 덧입게 되면 모든 것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는 놀라운 기적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가 바로 에스더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에5:1-2)

제 삼일에 에스더가 왕후의 예복을 입고 왕궁 안뜰 곧 어전 맞은편에 서니 왕이 어전에서 전 문을 대하여 보좌에 앉았다가 왕후 에스더가 뜰에 선 것을 본즉 심히 사랑스러우므로 손에 잡았던 금홀을 그에게 내어 미니 에스더가 가까이 가서 금홀 끝을 만진지라 왕이 이르되 왕후 에스더여 그대의 소원이 무엇이며 요구가 무엇이뇨 나라의 절반이라도 그대에게 주겠노라

(에5:6)

잔치의 술을 마실 때에 왕이 에스더에게 이르되 그대의 소청이 무엇이뇨 곧 허락하겠노라 그대의 요구가 무엇이뇨 나라의 절반이라 할지라도 시행하겠노라

(에7:2)

왕이 이 둘째 날 잔치에 술을 마실 때에 다시 에스더에게 물어 가로되 왕후 에스더여 그대의 소청이 무엇이뇨 곧 허락하겠노라 그대의 요구가 무엇이뇨 곧 나라의 절반이라 할지라도 시행하겠노라

무슨 이야기입니까? 아하수에로왕이 이전에는 에스더를 소원하게 생각하고 멀리하여 한 달이 지나도록 모른 척 하였었지만 지금 에스더가 사랑스럽게 보임으로 이처럼 세 번씩이나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고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가장 극단적이 모습입니다. 사랑하면 모든 것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는다는 사실을 성경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렇게 본을 보여주셨고 우리들의 부모님들도 그렇게 몸으로 사랑을 실천해 주셨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우리들이 이 사랑 때문에 이웃들에게 아낌없이 소중한 사랑을 나누는 삶입니다. 결국은 이 세상에 다 두고 수의 한 벌 입고 떠날 존재가 오늘 우리들입니다. 특별히 욕심을 부릴 것도 손에 움켜쥐어야 할 것도 없습니다. 있을 때 나누고 주실 때 감사하는 평범하면서도 비범한 이런 신앙생활을 우리 모두 회복해야 합니다. 결국은 우리들의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 서야 할 존재들이 오늘 우리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어느 덧 감사의 달 11월을 맞았습니다. 아무리 감사를 외쳐본들 가슴에 하나님을 향한 또 이웃들을 향한 사랑이 없다면 공연불이 되고 말 것입니다. 사랑 때문에 오래 참고 기다려주고 사랑 때문에 힘들지만 동행하고 함께 해 주는 아름다운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사랑하시므로 내려 주신 소중한 것들을 이제는 하나님과 이웃들을 위해 아낌없이 나누는 멋진 살을 회복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그렇게 하라고 하나님께서 몸으로 몸소 모범을 보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허물과 죄악을 다 아시면서도 모르시는 척 참아주시는 사랑은 참으로 가슴이 매일정도로 감동이 됩니다. 추하고 못난 욕심쟁이들인 우리들과 한 순간도 떠나 계시지 아니하시고 동행해 주시는 사랑은 차라니 눈물겹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우리들을 사랑하시는 까닭에 우리들에게 모든 것을 다 아낌없이 내려주시는 그 사랑 앞에는 그만 눈물이 맺힙니다. 우리들도 이제는 이 사랑을 본받아서 사랑하는 흉내라도 내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성도되고 주님의 제자된 우리 모든 성도들의 의무요 보답이기 때문입니다. 모쪼록 오늘 말씀을 받으며 살아계신 하나님께 예배로 영광 올려드리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은 이처럼 사랑의 성도로 변화를 덧입고 거기에 부응하는 축복을 받아 이 세상에서 가장 복된 삶을 살아가는 그런 성도들이 되시기를 좋으신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 멘

주후 2013년 11월 3일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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