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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해야 되는데

변해야 되는데...

 

복된 주일을 보내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월요일을 맞았습니다. 참으로 월요일은 교역자들에게 토요일보다 더 즐거운 날입니다. 몇 몇 목사님들과 만남이 약속되어 있었기에 기쁜 마음으로 드라이빙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습니다. 생각 없이 그냥 받았는데 상대방의 목소리가 영 심상치 않았습니다. 어제 설교를 들먹거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왜 목사님은 부모님께 자동차 사준 자식들을 들먹거립니까?” 하는 말로 시비(?)를 걸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어제 설교 중에 누가복음 12장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리라”는 주님의 말씀을 설교하면서 우리들도 우리들의 유익보다 하나님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여야 하고 모든 삶의 우선 순위는 하나님께 있어야 된다고 가르친 말씀이 영 그분의 마음에는 들지 않았던 것입니다. 특별히 그분이 시비하고 싶었던 것은 “비단 자식들이 부모님께 그 공을 생각하여 지극한 효성으로 좋은 자동차를 사 드린다 할지라도 하나님께는 그보다 더 잘 해야 한다” 말씀이 걸렸던 것입니다. 다행히 그분의 자녀들은 신실하여 부모님께 좋은 자동차도 사 드리고 사회적으로도 칭찬을 듣는 귀한 역사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귀에는 다른 모든 복된 말씀들은 한 마디도 귀에 들어오지 않고 “저 목사가 우리 자식들이 부모에게 좋은 차 사 준 것으로 시비한다”고 생각한 것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목사가 가르치려면 똑바로 가르쳐야 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부모보다 더 섬기라고 합니까?”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그분은 기분 좋은 월요일 아침을 망쳐 놓고 있었습니다. 어제 주일 저녁에 부목사님을 향해 “목회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앞으로 여러분이 본격적인 목회를 할 때에는 더욱 더 사람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 갈 터인데 단단히 준비해야 할 것이다.”고 말하지 않았더라면 참으로 스스로 달래기 어려운 지경을 감래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그마치 그분은 우리 교회에서 나의 설교만 들은지도 어언 20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늙어 갈수록 더욱 사람의 육신만 앙상하게 남아서 신령하고 영적인 부분은 바싹 말라 떨어져 뒹구는 낙엽만큼이나 앙상하니 한심하고 가엾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배추로 김치를 담궈도 그 자체가 변해야 맛이 나고 매주로 된장을 담궈도 자신이 발효되어야 맛을 내거늘 인생이 교회에 다니고 주님을 만났다면 진정 영적으로 변해야 하는데 그는 도무지 변하지 않고 20년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으니 그를 바라보시는 하늘의 하나님은 또 얼마나 마음이 안타까우실까 생각되어졌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은 다 변합니다. 단 한 가지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 존재하는 것은 없습니다. 좋게든 나쁘게든 피조물은 변하게 마련입니다. 젊고 아름답던 처녀가 꼬부랑 할머니가 되는 것만 보아도 세월의 변함이 그 얼마나 무서운지를 실감하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고 신앙생활을 수 십년씩 계속하고 있으면서도 변화되지 못하는 모습은 참으로 안타깝고 가련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나이 들어가면서 느긋해지고 부드러워지며 푸근한 맛을 내지 못한다면 그 인생보다 더 가련한 인생은 없습니다. 누구나 다 와서 쉬어 갈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인생의 마지막을 바라본다면 그 인생이 얼마나 귀하겠습니까? 자식들마저도 고개를 흔들며 돌아설 정도로 마음에 분노와 불평과 원망으로 가득한 채 그렇게 인생을 악하고 메마르게 살아간다면 그것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삶일 것입니다. 그런데 30여 년을 교회에서 성도들과 함께 하나님을 섬겨 온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절대 다수의 노인들이 늙어 갈수록 더욱 꼬장꼬장해지고 덕이 없어지는 사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땐 나이가 들어가면 훨씬 더 부드럽고 따뜻해질 것 같은데 긴 삶의 터널을 지나오면서 너무 많은 시련에 심신이 시달려서 그런지 더 마음이 좁아지고 조바심이 많아지며 불평 불만이 가득해 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LA 동산교회에서 목회 하시는 김상구 선배 목사님의 말씀과 같이 ‘사람이 나이가 들어가면 말이 많아지고, 느긋하지 못하게 된다’는 그 징조가 분명하게 나타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깊이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 누구도 늙어 쨍쨍되는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렇게 덕을 세우지 못하면 결국 스스로만 고립되어 갈 뿐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모든 사람에 대하여 적극적이고 긍정적이며 부드럽고 따뜻함으로 격려하고 칭찬해 줄줄 아는 사람, 바로 그런 훈훈한 사람을 메마른 이 세상에서 모든 사람들이 필요로 하고 또한 찾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자기 마음 하나 다스리지 못해 모든 사람들로부터 스스로 미움을 사며 죽을 때 그 목사한테 마지막을 맡겨야 할 터인데 공연히 트집 잡아 스스로 불행의 웅덩이를 파고 있는지? 그것 또한 연구 대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가을 바람이 제법 겨울 흉내를 내고 있는 쓸쓸한 계절에 푸근해지고 따뜻해 질 줄 아는 변화를 스스로 만들어 가도록 한번쯤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대목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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