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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있는 것과 없는 것 (2024년 4월 14일 주일낮설교)

내게 있는 것과 없는 것

4. 14, 2024

:도행전3:1-10

說敎:崔仁 牧師

 

예수님은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냥 어렵다고만 하신 것이 아니라 거의 불가능하다는 뜻으로 말씀하셨습니다.

(19:23-24)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쩌다가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니라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 다 기록되어 있을 만큼 신중하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오늘 우리들이 깨달아야 할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가진 것에 대한 신앙적인 개념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있는 모든 부자가 다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는 유명한 하나의 말씀을 남겨두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라는 말씀이 그렇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분명한 진리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들에게도 있는 것이 있고 없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과연 오늘 우리는 무엇을 가졌고 또 무엇을 가지지 못하였을까요? 이것은 각 개인마다 다르지만 전반적으로 주는 교훈은 동일합니다. 부활신앙을 계승하고 구체적인 신앙생활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가진 것과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분명한 정의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 다 같이 마음 귀를 기울이고 오늘 내리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풍성한 은혜와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내게 있는 것은 과연 무엇입니까?

(3:7-9)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사도 바울은 실로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가진 것을 그의 고백으로 직접 들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3:4-6)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만하니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내가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22:1-3)

부형들아 내가 지금 너희 앞에서 변명하는 말을 들으라 하더라 저희가 그 히브리 방언으로 말함을 듣고 더욱 종용한지라 이어 가로되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하는 자라

우리들이 대강 아는 대로만 기록하여도 사도 바울과 같이 많은 것을 가진 자는 성경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참으로 그는 당시 보통 사람이 가지지 못한 로마시민권을 비롯하여 가지지 않은 것이 없을 만큼 많은 것을 가진 자였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과연 무엇을 가졌을까요?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공통적인 것만 몇 가지 요약을 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들이 가징 소중하게 여기는 자녀들을 가졌습니다. 사업장과 직장도 가지고 있습니다. 집도 있고 자동차도 있고 건강도 있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도 있습니다. 최소한 집도 절도 없는 홈레스보다는 많은 것을 가지고. 꾸러가지 않고 나름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모든 가진 것에 대하여 당연하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누가 뭐래도 내꺼!”라는 관념으로 굳게 움켜쥐고 있다는 것입니다. 앞서 많은 것을 가졌던 사도 바울은 그 모든 것들을 배설물과 같이 미련 없이 버렸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그 모든 것을 버리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 모든 것들이 진짜 내 것일까요?

(12:16-21)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는 말씀과 같이 이 세상에 있는 그 어떤 것도 하나님께서 주시고 누리게 하시지 않으면 결코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가졌는가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가진 그것을 어떻게 유지하고 관리하느냐는 것입니다.

내가 가졌으나 결코 내 것은 아닙니다

(127:1-5)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앞에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내 것이라고 주장하나 따지고 보면 내 것이 될 수 없기도 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실제로 하나님은 우리들이 가진 그 모든 것이 결코 우리들의 것이 아님을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자식도 결국은 우리들의 것이 아님을 하나님은 분명하게 가르쳐 주십니다. 자식을 주시는 이는 하늘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로 말입니다.

(127:3)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고 말입니다. 그래서 욥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10남매를 한 순간에 다 잃어버리고도 숙연하게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1:21)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가장 단순한 논리로 내가 나았고 내 품에 안고 있다고 내 자식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소중한 자식이 부모 곁을 떠나버리면 다시는 내 것이라고 주장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들이 가진 것에 대한 본질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들이 적신으로 이 땅에 나왔고 또한 적신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들이 가졌다고 욕심 부리는 우리들의 모든 것을 결국 우리들의 것이 아님을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가령 우리들이 고생고생해서 번 돈은 어떨까요? 하나님은 그것도 우리들의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8:17-18)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하나님은 오히려 우리들이 잘나서 돈 잘 벌고 그러므로 그 돈은 내 것이라고 할까봐 두려워한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교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가장 소중한 건강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임을 알아야 합니다.

(15:26)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급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오늘 우리들이 내 것이라고 주장하는 그 어떤 것도 결국 우리들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내 것이라고 우기며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온갖 욕심을 다 부렸으니 참으로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배우고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진 것을 나누며 살아야 합니다

(3:6)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들이 지금 소유하고 있다고 우리들의 것이 아니라고 가르치시는 것은 그 소유를 잠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맡겨두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욕심내고 끌어안고 있지 말고 나누어 주어야 한다고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셨으니 하나님께 돌려드리고 많이 가졌으니 가지지 못한 자들과 나누며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행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께서도 단도직입적으로 선언하셨습니다.

(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고 말입니다. “주라!”는 이 말씀처럼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말씀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는 이렇게도 단순명료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베드로는 바로 이와 같은 진리를 온 몸으로 실천하며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준다!”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내게 있는 것을 아낌없이 내어줄 때 그것을 내개 맡기신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의 이와 같은 깊은 뜻을 성령님의 은총으로 깨달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조금도 제 것을 제 것이라고 주장하지 아니하고 아낌없이 사도들의 발 앞에 내 놓았던 것입니다.

(2:44-45)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4:32)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제대로 된 신앙생활은 이렇듯 재물에 대한 올바른 개념이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늘 드리는 말씀이지만 하나님 앞에 인색하고 이끼는 마음은 결코 바로 된 신앙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노골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면서 하나님 앞에 인색하지 말라고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고후9: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고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 예수님께서도 무조건 주라!”고만 하시지 않으시고 거기에 따른 합당한 보상을 보장해 주셨던 것입니다.

(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아무런 보상이 없어도 우리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야 합니다. 그러데 이렇게까지 풍성한 축복으로 보상까지 하신다니 안 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시는 분이심으로 반드시 주는 복된 삶에 더욱 풍성함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사업이 잘 되어 부족함이 없이 넉넉하게 잘 살아가는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외동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아들의 친구의 집은 매우 가난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가난한 친구의 부모님이 밤늦게까지 일을 하고 돌아오다가 그만 졸음운전으로 큰 사고를 내고 돌아가셨습니다. 순식간에 고아가 되어버린 친구는 고아원으로 가야만 하였습니다. 그 때 아들이 아버지, 어머니께 이 딱한 사정을 말씀드리고 그 친구를 집으로 데리고 와서 함께 생활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간청을 하였습니다. 그 부모님은 아들의 부탁을 흔쾌히 받아들이고 생면부지의 아들의 친구를 친 아들과 다름없이 잘 키워주었습니다. 다행히도 머리가 좋아 서울대학교 의대에 합격하였습니다. 부모님은 기꺼이 그 많은 등록금도 아끼지 않고 다 대어주어 훌륭한 의사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IMF를 맞아 그렇게도 잘 되던 사업이 한 순간에 망하고 말았습니다. 빚쟁이들이 들이닥치고 집과 가구에는 빨간 딱지가 붙었습니다. 아버지는 집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도망 다녀야만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암에 걸려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의사로 키워 놓은 아들 친구가 일어섰습니다. 그 모든 빚을 다 갚아주고 자신의 병원으로 모시고 가서 지극정성으로 암도 다 고쳐주었습니다. 그리고 사업장도 마련하여 드려서 지금은 넉넉하게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이야기를 들으니 지혜자 솔로몬이 남긴 전도서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11:1-3)

너는 네 식물을 물 위에 던지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 줄지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 구름에 비가 가득하면 땅에 쏟아지며 나무가 남으로나 북으로나 쓰러지면 그 쓰러진 곳에 그냥 있으리라

는 말씀이 말입니다. 이 말씀을 조용히 묵상해 보면 이 이야기와 너무나도 잘 매취가 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이렇게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들이 가졌다고 우리들의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구름에 비가 가득하면 땅에 쏟아지게 됩니다. 우리들도 재물이 넉넉할 때 비를 쏟듯이 이웃들에게 쏟아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나무와 같이 쓰러진 채 가만히 있으면 결국은 썩어지고 말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비록 세상 사람들이 다 기지고 있는 은과 금은 없었지만 그 보다 천 배. 만 배 더 귀한 나사렛 예수님의 이름으로 날 때부터 앉은뱅이 되어 거지로 살아가야만 했던 한 사람을 살려놓았습니다. 베드로가 그렇게 하라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예수님을 주셨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무엇을 가졌든지 간에 가진 그것으로 이웃을 살려내고 고통당하는 이웃들에게 도움을 줄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뜻을 이루어드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욕심내고 혼자서만 움켜쥐고 있으면 그것은 결국 넘어진 나무와 같이 가만히 있다가 썩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그 진리를 알 때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살아 있는 영혼이 되어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순종하여 풍성한 역사를 이루어 가는 진정한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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