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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k You are here: Home 말씀과예배 목사님 칼럼 회복의 은총

회복의 은총

최근 한국에서 들려 오는 아픈 뉴스에 자식을 키우는 같은 부모로서 깊은 공감을 하게 됩니다. 작년 12월 25일 친구와 함께 집 근처에서 놀고 있던 이예진이라는 10살된 어린아이와 우예슬이라는 8살난 어린아이가 실종되었는데 두 달 반이 지난 지금에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도 귀여운 자녀를 가슴에 묻은 그 부모들의 마음이 어떠할는지 능히 이해할 수 있기에 아픈 마음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진정 선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로하시고 새롭고 충만한 은혜와 축복으로 대신해 주시기를 비는 마음 간절합니다. 이렇게 자식으로 인한 아픈 가슴을 생각하다 보니 욥기의 주인공인 욥이 생각납니다. 오늘은 욥을 통한 하나님의 진정하신 위로를 돌아보며 “회복의 은총”이란 제하의 말씀을 함께 나누며 은혜를 기다려 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욥이 겪었던 고난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남달리 하나님 사랑, 자식 사랑이 대단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동방의 의인’이라는 인정을 받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했던 그가 순식간에 그 사랑하던 10남매를 순식간에 다 잃었습니다. 10남매 중 하나를 잃어도 이 세상에서 그 보다 더한 고통은 없을 텐데 자그마치 10남매를 순간에 다 잃었으니 그의 삶은 살았으나 죽은목숨, 바로 그런 형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모자라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모든 재산을 또한 순간에 다 잃고 거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끝내 몸까지 병이 들어 잿더미 위에 올라앉아 기와조각으로 상처를 긁으며 모진 생명 하나만 간신히 연명하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모습을 지켜보던 그의 아내마저도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어버리라”는 모진 악담을 하고 그의 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동화 속에나 나올 법 한 이야기지만 이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은 그 모든 환난을 끈질기게도 이겨내었습니다. 그의 그 무서운 수난을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배우게 됩니다.

어떤 경우에도 그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그와 같은 환경 속에서도 그는 끝까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오늘 우리들을 감동시키고 있습니다. 앞서 그는 동방의 의인이라는 칭송을 받을 만큼 신실하고 믿음과 성실에 손색이 없는 당대의 완전한 자였습니다. 그러한 그가 이처럼 혹독한 시련을 받게 되었다면 한 마디 원망이라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 도대체 제가 무엇을 잘못하였기에 이처럼 무서운 시련을 내리십니까?” 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위로한답시고 찾아 온 친구들이 “네가 뭔가 하나님 앞에서 잘못한 일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처럼 무서운 형벌을 받을 리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빨리 그것을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서라”고 다그쳤지만 그는 억울하고 원통해도 묵묵히 그렇게 참고 견뎌냈습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요? 가만히 그의 삶을 통하여 점검해 보면 소중한 한 가지 비밀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우선 그가 고백한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한번 함께 생각해 보십시다.

욥1:21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赤身)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赤身)이 그리 로 돌아 가올찌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 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 찌니이다

이것은 엄청난 재난과 고통 가운데 빠진 욥이 친히 고백한 말씀입니다. 그는 애당초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단정짓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셨으니 하나님께서 가져가시는 것은 지극히 마땅하고 당연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귀한 믿음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라도 그 근본은 하나님의 것이라고 고백하는 신앙을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주권을 욥처럼 인정하고 고백할 수만 있다면 우리들도 욥과 같이 회복의 은총을 입는데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을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그는 묵묵히 참았습니다

욥의 우리들을 감동시키는 가장 아름다운 덕목은 길이 참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이 땅에 존재하는 그 누구도 욥의 환경에서 욥과 같이 처신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참았습니다. 10남매를 잃었을 때에도, 모든 재산을 다 잃었을 때에도, 심지어는 건강까지 상실하고 중한 병에 들어 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는 그런 때에도 그는 묵묵히 참았습니다. 그래서 훗날 예수님의 사도를 통하여 그의 신실한 인내에 관한 칭송을 받았습니다.

약5:11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 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랬습니다. 그의 인내는 참으로 수 천년이 지난 다음에도 성경에 기록되어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길이 참는 욥의 후예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세상 만사 참고 견디면 승리하게 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참지 못함으로 인해 가정도 깨지고 교회도 깨지고 사랑도 깨지고 우정도 깨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누가 뭐라든 묵묵히 참고 견딜 수만 있다면 결국은 욥과 같이 사람들의 칭찬을 받게 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욥은 어떻게 그렇게도 무서울 만큼 참아낼 수 있었을까요? 이 또한 성경은 분명한 해답을 제공해 주고 있으니 다음과 같은 말씀이 그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욥23: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그랬습니다. 욥은 믿었습니다. 이처럼 혹독한 시련으로 연단을 받고 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정금과 같이 나올 수 있도록 하실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것은 바로 내일에 대한 소망입니다. 옳습니다. 우리들도 오늘만 보지 말고 내일을 준비하시는 소망의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롬8:24-25)고 선언하였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내는 확실한 소망을 가질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친히 예비하시는 내일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이라는 날에 그 어떤 시련과 고통이 우리를 괴롭힌다 할지라도 욥과 같이 내일의 소망을 바라고 끝까지 견뎌내는 참 멋진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회복으로 보상해 주셨습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엄청난 보상으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에게 새롭게 10남매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지난번에 가졌던 재산보다 갑절이나 더 주셨습니다. 두 말할 나위도 없이 건강한 몸과 사랑하는 아내로 다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욥의 고백과 같이 모든 일을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누구에게도 간섭이나 방해를 받으시는 일이 없으십니다. 오직 하나님의 주권에 따라 심판도 하시고 축복도 내리시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들이 시시때때로 고통을 받는 것은 연단을 통한 인내를 만드시기 위함이시오 더 큰 축복을 주시려는 준비를 시키시기 위함이십니다. 반드시 우리를 단련하신 후에는 우리 모둔 정금과 같이 나오도록 전화위복의 역사를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되 욥과 같이 확실하게 믿어야 합니다. 참고 견디되 욥과 같이 확실하게 참아야 합니다. 그래서 욥과 같이 넘치는 회복의 은총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려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 있는 수수 만만의 사람들에게 지금도 살아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을 당당하게 증거하고 우리를 넘어지게 하는 사탄 마귀 앞에 하나님의 이름으로 승리를 보여 주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라고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값진 고통의 때를 주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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