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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와 같이 되라! (2024년 5월 05일 주일낮설교)

어린아이와 같이 되라!

어린이주일

5. 5, 2024

:마가복음10:13-16

說敎:崔仁根 牧師

 

예수님께서 사역하시던 그 때만 해도 여자와 어린아이는 정상적인 사람으로 취급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심지어 사람이 모여 있을 때 그 수에도 들어가지 못하였을 정도였습니다.

(10:13)

사람들이 예수의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이란 말씀이 바로 이를 잘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당시 아이들은 이처럼 예수님 앞에 나아와 만져주심을 받기에도 허락이 되지 않을 정도로 사람다운 취급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당시 배경을 염두에 두고 오늘 본문 말씀을 묵상해 보신다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너무나도 파격적으로 어린아이들을 대우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감히 상상조차 못했던 그런 말씀으로 제자들을 깜짝 놀라게 하셨던 것입니다.

(10:14-15)

예수께서 보시고 분히 여겨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예수님은 어린아이가 예수님께로 오는 길을 가로막은 제자들에게 분을 내셨습니다. 복음서 그 어디에도 예수님께서 이처럼 제자들을 대하여 화를 내신 적이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당시 풍습대로 아이들이 예수님께로 나아오지 못하게 하였을 뿐인데 예수님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셨던 것입니다. 이는 어린아이에 대한 당시의 상식과 관념을 깨뜨리신 놀라운 변화였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에 대한 단순한 윤리, 도덕적인 개념을 넘어 신앙의 본질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어린아이를 통상적으로 사람답게 취급하지 않았던 풍습에서 벗어나 복음과 신앙의 핵심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 어린아이를 받들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청천병력과 같은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예수님께서 그 아이를 품에 안으시고 그 아이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을 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갑자기 당시 모든 풍습까지도 엎으시고 이처럼 파격적인 말씀과 역사를 베풀어 주셨을까요? 오늘은 2024년도 어린이주일을 맞아 이와 같은 예수님의 말씀에서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 우리들의 믿음의 본질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고 신선한 진리로 영혼과 가정을 회복하는 기적 같은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어린아이는 겸손하기 때문입니다

(18:1-5)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예수께서 한 어린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우리 어른들은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를 다른 사람들과 비교 평가합니다. 그래서 남보다 나으면 우월감을 가지고 자만하고 교만하여지게 됩니다. 반대로 자신이 판단해도 남보다 못하고 떨어지면 열등감을 가지고 의기소침해집니다. 위에 언급한 마태복음 18장의 말씀도 이와 같은 범주에 들어가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끊임없이 누가 크냐?”하는 문제로 시비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때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그 마음속의 교만을 책망하시고 급기야는 어린아이 하나를 그들 앞에 세우시고 교훈하셨던 것입니다. 묘하게도 이것을 마태나, 마가, 누가가 다 같이 발견하고 성경에 기록해 두었습니다.

(9:34)

저희가 잠잠하니 이는 노중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9:46)

제자 중에서 누가 크냐 하는 변론이 일어나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예수님의 제자들 속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들이 모이는 노회나 총회에서도 암암리에 늘 일어나는 일이고 같은 교회에서 섬기는 성도들 중에서도 늘 일어나는 일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이에 관심이 있고 남보다 낫고자 하는 욕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것을 매우 싫어하십니다. 왜냐하면 천사와 인간의 타락이 바로 이와 같은 욕심과 교만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3:5-6)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14:12-13)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 중에서도 가장 영적인 존재들인 천사와 사람이 이렇게도 비참하게 망하게 된 것은 오직 하나, 하나님처럼 높아지려는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렇게 교만한 자를 가장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린아이는 그렇지 않습니다. 어른들과 같이 더 높아지는데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와 같이 순전한 아이를 그들 앞에 세우시고 교훈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우리들이 처한 현실이 다 하나님의 은혜요 뜻인 줄 믿고 더 크고 더 잘난 것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어리석은 신앙생활을 하지 않도록 깊은 교훈으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어린아이는 엄청난 성장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11:25-26)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예수님은 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셨다는 사실을 이렇게도 성경에 기록하시고 분명하게 밝혀두셨을까요? 앞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하나님은 스스로 잘난 사람을 매우 싫어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교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와 같이 교만한 사람들에 대해 매우 신랄하게 비판하셨습니다.

(11:20-24)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신 고을들이 회개치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화가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가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면 그 성이 오늘날까지 있었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잘나고 못난 것이 하나님의 뜻 안에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22:1-2)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 빈부가 섞여 살거니와 무릇 그들을 지으신 이는 여호와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것들로 스스로 자만하고 교만하면 그를 지으신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와 같은 자들에게는 하늘의 비밀을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앞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그런 교만한 자들을 가장 미워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하늘의 비밀을 알려주시지 아니하면 결국 스스로 우매해져서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처럼 스스로 잘난 어른들에게 숨기신 비밀을 하나님께서는 어린아이에게는 나타내 주신다는 것입니다.

(삼상3:10-14)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가로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이스라엘 중에 한 일을 행하리니 그것을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말한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날에 그에게 다 이루리라 내가 그 집을 영영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이른 것은 그의 아는 죄악을 인함이니 이는 그가 자기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그러므로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맹세하기를 엘리 집의 죄악은 제물이나 예물로나 영영히 속함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노라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주셔야 할 대상인 엘리 제사장을 제쳐두고 어린 사무엘에게 말씀해 주셨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 우리들이 도전 받고 배워야 할 가장 소중한 포인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이렇게 어린아이에게 하늘의 비밀을 보여주시는 것일까요? 그 아이들에게는 어른과 다른 엄청난 성장의 잠재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예수님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2:40)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비록 예수님은 아기와 같이 어리지만 그 속에서 벌써부터 지혜가 있었으며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다 성장한 어른들에게는 큰 변화를 기대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미 자기만의 자아가 형성되어 있고 자기만의 아집과 가치관이 정립되어버렸기에 큰 변화나 성장을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어린아이는 다릅니다. 참교육과 신앙으로 잘만 키우면 엄청난 성장의 가능성을 어린아이는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변화를 배격하고 성장을 거부하는, 스스로 잘난 어른들에게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되라!”고 말입니다.

어린아이는 절대적인 도움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10:13-14)

사람들이 예수의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예수께서 보시고 분히 여겨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왜 어린아이를 예수님께로 데리고 왔습니까? “예수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데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와 같은 어린아이가 자신에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어린아이는 끊임없이 주님과 어른들의 도우심이 필요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을 키워보신 부모들은 한결 같이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비록 귀찮고 힘들어도 아이들이 엄마, 아빠를 찾고 도와달라고 할 때가 행복하였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아직도 숱하게도 많은 도움과 손길이 필요한 때임에도 필요 없어!, 내가 알아서 해, 제발 간섭 좀 하지 마!”라고 할 때가 가장 섭섭하였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는 하늘의 하나님께서도 마찬가지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고 하나님께로 찾아 나아오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어쩌면 하나님 없이도 너무나도 잘 살아가기에 어려움과 시련을 주시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방법을 써서라도 우리들을 하나님께로 부르시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그 속마음을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내가 도와주리라!”고 말입니다.

(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만 하시지 않으시고 도와달라고 호소하는 성도들의 소원을 들어주십니다.

(9:22-27)

귀신이 저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곧 그 아이의 아비가 소리를 질러 가로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하더라 예수께서 무리의 달려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가라사대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렇듯 도와주소서!”하고 외치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도움을 바라고 기도하고, 찾고, 부르짖기를 원하십니다. 하지만 어른들은 저마다 제가 잘나서 어린아이처럼 천진하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경험과 지식과 가진 돈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명령하십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되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 어른들은 남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을 매우 자존심 상해하며 꺼려합니다. 그러니 남들이 도움을 요청하는 것 또한 달갑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쉽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하고 또한 쉽게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바로 이것이 어린아이와 어른들의 다른 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어른들의 이와 같은 자세를 싫어하시고, “어린아이와 같이 되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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