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존경하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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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목사님 칼럼
- Published on Sunday, 25 December 2011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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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참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특별히 목회를 하다보면 일반 사람들 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40여 년을 목회 했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났겠는지 가히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 왔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가장 머리에 남아 있고 존경하고 싶은 한 분을 들라고 한다면 서슴없이 고 한영제 장로님을 들 수 있겠습니다. 모든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그 분을 지금 새삼스럽게 논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일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너무나도 갑자기 한 순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반아 훌쩍 우리 곁을 떠나가셨기에 아쉬움을 달래는 마음으로 마음에서 느껴왔던 바 소중한 고인의 사랑과 덕을 간단하게나마 정리하고 싶어서 감히 필을 들고 생각에 잠겨봅니다.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분이셨습니다
고 한영제 장로님은 누구나 느끼고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매우 고요하신 분이셨습니다. 목소리를 크게 내시는 법이 없을 정도로 부드러운 분이셨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강하셔야 하실 필요가 있을 때는 매우 강직하고 또한 분명하신 분이셨습니다. 필자의 약혼식이 있던 날이었습니다. 서울 교통과 지리에 익숙하지 못했던 터라 약속 장소에 그만 늦게 도착하고 말았습니다. 젊은 전도사가 가족들과 어른들 특별히 약혼 주례를 하셔야 할 목사님 앞에까지 늦어 결례를 한 것입니다. 면목없어 고개를 숙이고 “교통이 막혀 좀 늦었습니다.”고 용서를 구했더니, “그것까지 감안을 했어야지”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짧은 한 마디의 말씀에 불과했지만 필자가 평생 목회하면서 가슴에 새겨 두고 시간에 늦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삶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고 한 장로님은 시간에 철저하신 분이셨습니다. 그분을 만나기 위해 약속 장소에 나갈 때마다 마음에 다짐을 하면서 ‘먼저 가서 어른을 기다려야지’ 하며 빨리 간다고 가도 이미 한 장로님은 그 자리에 먼저 와 계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바쁘시고 분주한 시간을 보내시면서도 어린 사람, 낮은 사람을 만나시는 곳에까지도 반드시 먼저 오셔서 기다리시던 그 분의 그 멋진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그 분은 이 세상 그 누구도 흉내조차 내지 못하는 강직한 분이시오 그러면서도 한없이 따뜻한 분이셨습니다. 그러니 그런 분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래 참으시며 사랑으로 일관하신 분이셨습니다
우리는 관념적으로 통상적으로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고 또한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살아오면서 사랑은 오래 참아야만 이루지는 것이라고 믿고 있기에 그렇게들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해관계가 얽히게 되고 모든 문제들이 현실적인 자신의 것이 되었을 때는 아무도 오래 참아야 한다는 이론과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인내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 한영제 장로님은 오래 참으시며 한결 같은 사랑으로 자신을 견지해 나가신 분이셨습니다. 필자가 유학을 떠나 미국에서 교회를 개척하며 어려움 속에서 13년이란 긴 세월 가족과 헤어져 있을 때 부모님으로서 이 세상 그 누구보다 가슴 아프고 걱정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필자가 살고 있는 미국에 오셨을 때나 필자가 한국에 나왔을 때를 막론하고 그 분은 단 한번도 인내심의 한계를 보이시거나 사랑의 위치에서 물러서 계시는 법이 없었습니다. 속이야 쓰리고 아프셨겠지만 겉으로는 언제나 따뜻하고 인자하시어 모든 일들을 이해하시고 용납하시고 수용하시는 모습으로 일관하셨습니다. 사업을 하실 때나 교계를 섬기실 때나 모든 인간 관계에서 이와 같은 성품으로 일관되게 사랑과 인내를 견지해 오셨기에 오늘 날 까지 그분에게는 적이 없고 한결 같이 존경하며 사모하는 사람들만 존재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사랑보다 사람을 녹이고 변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이 땅 그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을 그 분은 그렇게 생활 속에서 친히 몸으로 보여 주셨던 것입니다.
언제나 그 분 속에는 하나님과 후세대가 있었습니다
이 땅에 수많은 장로님들이 계시지만 그 분처럼 진실된 믿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분도 찾아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오랜 세월 하나님을 섬기다 보면 막연하고 추상적이며 타성에 젖은 믿음이 되기가 쉬운 법입니다. 하지만 고 한영제 장로님은 초지일관 한결 같은 믿음과 사랑으로 하나님을 섬기시는 분이셨습니다. 그 분의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사랑은 곧 이웃이나 사람들이나 후대들을 향한 헌신에서 고스란히 묻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 섬기시는 일이 곧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역 입증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천 한나원과 기독교 박물관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안녕과 가족과 자녀들의 장래를 살피는 것을 우선적으로 선택합니다. 하지만 고 한 장로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모든 사재를 털어 오갈 데 없는 노인 어른들을 섬기는데 쏟아 부으셨고 이 세상 그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기독교 박물관을 세우고 유지해 나가시는데 투자하셨습니다. 말없이 묵묵히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실제적이고도 구체적으로 헌신하셨던 것입니다. 진실된 예수님을 닮아 가는 일에 이 보다 더 확실한 삶을 없을 것입니다. 감히 목사인 필자도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일들을 고 한 장로님은 그렇게 묵묵히 감당해 오셨던 것입니다. 섬기기 위해 오셨고 대속물로 주기 위해 사셨던 우리 주님의 그 희생적인 삶을 그 분은 그렇게 따라 가셨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필자는 그분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받아 마땅하신 분이라고 자신 있게 선언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검소하고 겸손하게 살아가신 분이셨습니다
고 한 장로님의 자손으로서 평생 동안 살펴본 그 분의 삶의 모습은 단 하나였습니다. 검소와 겸손이 바로 그것입니다. 남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치시면서도 자신을 위해서는 바지 혁대 하나도 제대로 된 것이 없을 정도로 검소하게 사셨던 분이셨습니다. 고 한 장로님의 장례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때마침 혁대가 고장났기에 행여 그 분이 쓰시던 것 중에서 하나 바꾸어 보려고 바지마다 다 뒤져봐도 제대로 된 것이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바지마다 끼워져 있던 혁대는 낡을 대로 다 낡아 쓸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참으로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분은 총회장까지 지내신 교계의 원로이시지만 단 한번도 섬김 받는 자라에서 군림하시는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40여 년의 목회 생활 속에서 미국과 한국에서 높으신 목사님들도 많이 만나 보았지만 고 한 장로님과 같이 겸손하신 분은 그리 쉽게 만나보지를 못했습니다. 몸에 배인 듯한 그 겸손하심과 꾸밈없으신 진실된 신앙은 두고도 본 받아야 할 믿는 자들의 덕목이었습니다. 행여 교만하여질 만한 위치나 자리에 머물 때가 있어도 필자는 늘 고 한 장로님을 생각하며 자신을 다시 한번 더 돌아보는 계기로 삼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필자는 그러한 고 한 장로님을 존경하여 마지않는 것입니다.
이제 그 분은 우리 곁에 계시지 않습니다. 수많은 믿음과 사랑의 흔적만을 우리 곁에 남겨 두신 채 그렇게 하늘나라에서 복락을 누리고 계십니다. 우리 또한 멀잖은 시간 속에 그렇게 이 세상을 떠나 천국으로 가야 할 텐데 고 한 장로님과 같은 인품과 성품으로 그렇게 남은 삶을 살아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땅에 남은 성도들에게는 고귀한 존경의 대상으로 남고 하늘나라에서는 하나님으로부터 놀라운 상급을 받는 그런 멋지고 후회 없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곁에 이처럼 두고도 잊지 못하고 본 받고 싶고 존경스러운 분이 계셨다는 사실만으로도 필자는 행복한 때를 살아간다고 자부하고 싶습니다. 소중한 분을 만나고 모실 수 있도록 복된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머리 숙여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