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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k You are here: Home 말씀과예배 목사님 칼럼 인생은 선택입니다

인생은 선택입니다

이민 목회를 하면서 참으로 여러 가지를 경험하게 되지만 다음과 같은 케이스는 참으로 저를 당혹케 하였습니다. 20대 후반의 예쁘고 착실한 두 아이의 엄마가 있었습니다. 자기는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기 위해 완강히 반대하시는 부모 형제도 버리고 7년을 함께 연애한 후 마침내 결혼에 골인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국으로 이민 와 두 아이를 낳고 좋은 집도 사서 외형적으로는 남부럽지 않게 잘 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남편이 미워지기 시작하는데 더 이상은 함께 살 수 없을 만큼 싫어졌다고 합니다. 한 마디 더 보태어 하루 하루가 지옥같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케이스를 보면서 무엇을 생각하게 됩니까? 선택의 어려움을 배우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은 그 자체가 선택으로부터 시작된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람에서부터 물건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선택의 결단 없이 되는 일이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 부모님의 품에서 점차 자유하게 되면 친구를 선택하게 됩니다. 또 자라가면서 지식의 전당인 학교를 선택하게 됩니다. 학교를 마치면 직장과 사업장을 선택해야 하고 성숙한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좋은 종교도 선택해야 합니다. 그러다가 배우자를 선택하게 되고 어디에서 살 것인지? 삶의 기본인 집과 지역도 선택해야 합니다. 다행히도 이와 같은 선택이 적절하게 잘 되었을 때는 행복한 삶을 살게 되는데 불행하게도 이 중에 어느 것 하나라도 잘못 선택하였을 때는 여지없이 고통의 늪에 빠지게 됩니다. 친구 하나 잘못 선택하여 망하게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으며 배우자 하나 잘못 선택하여 일생을 고통 가운데서 사는 사람 또한 부지기수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무엇을 어떻게 선택해야 알지 못하는 미래의 삶에 참된 보장을 받을 수 있을까요?

주전 1000여년 경에 베들레헴에 한 사나이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었습니다. 그는 나오미라는 여인과 결론하여 말론과 기룐이라는 두 아들을 낳고 살았습니다. 불행하게도 베들레헴에 큰 흉년이 들자 엘리멜렉은 고향을 떠나야 하나? 그대로 가난과 싸우며 버티고 나가야 하나? 하는 선택을 해야 하는 어려운 환경에 처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먹고사는 삶의 기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대에 악한 이방 땅으로 소문난 모압으로 이사를 가게 됩니다. 거기에서 두 아들을 장가들게 하고 그런 대로 살아가게 되는데 불행하게도 거기에서 그는 그만 뜻하지 않는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의 두 아들 또한 거기에서 죽게 됩니다. 그 집안에는 졸지에 모든 남자가 다 죽고 나오미와 두 자부만이 남게 됩니다. 그렇게 되자 착한 나오미는 두 자부들을 불러 놓고 각 자 자기의 젊은 미래와 새로운 삶을 위해 자부들로 하여금 자신의 갈 길을 선택하고 자신을 떠나갈 것을 종용하게 됩니다. 그러자 한 자부 오르바는 외롭고 의지할데 없는 시어머니로 인해 가슴 아파하고 눈물을 흘리며 떠나갑니다. 그러나 다른 한 자부는 끝내 그 나오미를 떠나지 않고 끝까지 받들어 모시겠다고 고집합니다. 아무런 대책도 없는 자신을 위해 만리 같은 먼 인생을 포기하는 자부의 기특한 마음이 고마워 나오미는 끝까지 착하디 착한 며느리의 앞날을 위해 자신을 떠나갈 것을 종용하지만 그 자부는 한사코 따라 나섭니다. 그 여인의 이름이 바로 룻입니다. 할 수 없이 나오미는 룻을 데리고 고향 땅 베들레헴으로 되돌아옵니다. 그러나 살길이 막막한 현실에는 젊은 며느리 룻으로 하여금 남의 집 보리밭에 나가 보리 이삭을 주어야만 생을 연명할 수 있게 되는 비참함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룻은 그 보리밭 주인으로부터 기적 같은 사랑을 받게 됩니다. 그리하여 부요한 보리 밭 주인 보아스로부터 가난을 해결 받게 되고 끝내는 그 보아스의 사랑을 받고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낳은 아들이 바로 그 유명한 다윗의 할아버지 오벳입니다. 그를 통해 이새가 나고 그 이새를 통해 다윗이 나오고 그 후손에서 마침내 예수님이 탄생하시게 됩니다. 참으로 묘한 한 여인의 선택을 통해 이 세상에 상상도 할 수 없는 역사가 이루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름 없었던 한 이방의 모압 여인이 구약 룻기서의 주인공이 되고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의 갈 길을 선택하여 스스로의 삶을 찾아갔던 오르바의 이야기는 영원히 역사 속에 뭍이고 아는 이가 없습니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어느 회사의 선전 문구와도 같이 참으로 한 순간의 선택이 우리들의 먼 인생 여정에 얼마나 중요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지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 준 역사적인 사건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택에 지혜로와야 합니다. 그 방법은 룻과 같이 자신의 유익을 포기하고 타인의 연약함을 돕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는데 있습니다. 한국 격언에 “약은 고양이 밤 눈 어둡다”란 말이 있습니다. 요즘 시대는 사람들의 마음이 너무나도 이기주의로 팽만해 있습니다. 자기를 양보하고 이웃의 유익을 먼저 선택하라는 말은 이제 고사에서나 읽을 수 있는 먼 옛 이야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진리는 수 천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습니다. 이웃을 생각하고 나 아닌 남을 더 배려하는 삶의 가치는 하늘이 돕고 사람이 인정합니다. 바른 선택의 기준에 이와 같은 가치관이 자리잡고 있는 한 그 인생은 영원할 것입니다. 우리들이 슈바이쳐나 에이브라함 링컨을 기억하고 있는 것도 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가능한 것입니다. 지금 조금만 손해를 보면 먼 미래에 엄청난 보상으로 되돌려 받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모든 종교의 기본 정신이며 또한 우리 기독교의 핵심입니다. 지금도 만물의 조물주이신 하나님은 누가 이처럼 자기를 희생하고 남을 위해 선행을 베푸나 살펴보시고 아낌없는 상을 주시려고 두 손에 가득 복을 들고 기다리시고 계십니다. 인생이 순간을 살고 영원을 상실하느냐? 순간을 포기하고 영원을 상속받느냐의 아름다운 결단이 바로 이와 같은 작은 선택에서부터 시작됨을 깨닫게 될 때 비로소 그 인생은 성공적인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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