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골리앗을 어찌할꼬! (2024년 9월 01일 주일낮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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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Sunday, 01 September 2024 00:00
- Written by 최인근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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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골리앗을 어찌할꼬!
9. 1, 2024
本文:사무엘상17:1-11
說敎:崔仁根 牧師
지난 8월 11일에 폐막한 파리 올림픽에서 여자 XY염색체를 가진 복싱선수가 금메달을 따면서 큰 논란이 일어났습니다. 원래 여자는 XX염색체를 가지고 있고 남자는 XY염색체를 가지는 것이 상식인데 금메달을 딴 켈리프라는 나이제리아 선수는 외향은 여자인데 염색체는 남자로 되어 있어 일반 여자 복싱선수들이 감당을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16강을 놓고 벌인 대진에서 켈리프의 상대 선수였던 카리니는 경기가 시작된 직후 단 46초 만에 기권을 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기권한 카리니 선수는 경기 직후 “내 생명을 지켜야 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이는 마치 건장한 남자와 연약한 여자가 복심을 하는 것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문자 그대로 다윗과 골리앗의 경기였던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노라면 이렇듯 상상도 하지 못했던 엄청난 골리앗을 맞아야 하는 때가 있습니다. 사울이 왕으로 있었던 이스라엘이 바로 이와 같은 골리앗을 만나 혼비백산하고 있었습니다.
(삼상17:4-11)
블레셋 사람의 진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왔는데 그 이름은 골리앗이요 가드 사람이라 그 신장은 여섯 규빗 한 뼘이요 머리에는 놋투구를 썼고 몸에는 어린갑을 입었으니 그 갑옷의 중수가 놋 오천 세겔이며 그 다리에는 놋경갑을 쳤고 어깨 사이에는 놋단창을 메었으니 그 창자루는 베틀 채 같고 창날은 철 육백 세겔이며 방패 든 자는 앞서 행하더라 그가 서서 이스라엘 군대를 향하여 외쳐 가로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서 항오를 벌였느냐 나는 블레셋 사람이 아니며 너희는 사울의 신복이 아니냐 너희는 한 사람을 택하여 내게로 내려 보내라 그가 능히 싸워서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이기어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니라 그 블레셋 사람이 또 가로되 내가 오늘날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하였으니 사람을 보내어 나로 더불어 싸우게 하라 한지라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의 이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하니라
는 말과 같이 말입니다. 이 얼마나 기가 막히고 절박한 상황입니까? 명세기 한 나라의 왕인 사울은 참으로 비참한 지경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의 군사들 중에서 그와 같은 골리앗을 이길 수 있는 장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이와 같은 현실이 우리들의 것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우리들에게 닥칠 골리앗을 어떻게 물리칠 수 있겠는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도록 하겠습니다.
인생 여정에 뜻하지 않는 골리앗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삼상17:1-7)
블레셋 사람들이 그 군대를 모으고 싸우고자 하여 유다에 속한 소고에 모여 소고와 아세가 사이의 에베스담밈에 진치매 사울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여서 엘라 골짜기에 진치고 블레셋 사람을 대하여 항오를 벌였으니 블레셋 사람은 이편 산에 섰고 이스라엘은 저편 산에 섰고 사이에는 골짜기가 있었더라 블레셋 사람의 진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왔는데 그 이름은 골리앗이요 가드 사람이라 그 신장은 여섯 규빗 한 뼘이요 머리에는 놋투구를 썼고 몸에는 어린갑을 입었으니 그 갑옷의 중수가 놋 오천 세겔이며 그 다리에는 놋경갑을 쳤고 어깨 사이에는 놋단창을 메었으니 그 창자루는 베틀 채 같고 창날은 철 육백 세겔이며 방패 든 자는 앞서 행하더라
지금 우리들 주변에도 전쟁은 계속 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그렇고 이스라엘과 하마스 및 주변 국가들이 그렇습니다. 이렇듯 전쟁은 한 쪽에서 걸어오면 같이 나가서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블레셋 사람들이 군사를 모으고 싸우고자 쳐들어오니 사울과 이스라엘이 맞서 싸울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서도 이와 마찬가지의 현상들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개인과 개인이 그렇고 가족들이 그렇고 사업장이 그렇고 직장이 그렇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케이스를 경험하는 자는 아마도 목사일 것입니다. 공연히 시비를 걸고 문제를 만들고 싸움을 걸어오면 선을 행하고 가르쳐야 하는 목사는 이길 재간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도무지 이길 수 없는 엄청난 골리앗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 드린바와 같이 여자로 생겼는데 그 속은 남자인 이런 상대를 만나버리면 죽지 않기 위해서라도 경기를 포기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금메달을 향한 경기였기에 포기할 수 있었지만 사울과 같이 적군 중에 골리앗을 거느리고 있는 블레셋이 쳐들어 왔을 때는 물러설 수도 없는 것입니다. 바로 이와 같은 때를 우리는 進退兩難(진퇴양난)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골리앗은 뜻하지 않은 때에 뜻하지 않은 상대가 되어 우리들 앞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일 수도 있고, 무서운 질병일 수도 있으며, 눈에도 보이지 않는 사탄 마귀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들의 삶의 현장에 바로 이와 같은 골리앗이 나타난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대처하여야 하겠습니까?
골리앗을 두려워하지 말고 이겨내야 합니다
(삼상17:11)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의 이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하니라
(삼상17:34-36)
다윗이 사울에게 고하되 주의 종이 아비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서 새끼를 움키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 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나이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골리앗은 현실입니다. 감히 상대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능력과 힘을 가진 자가 전쟁을 치르듯 달려든다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대처하여야 하겠습니까? 피하여 도망하여야 하겠습니까? 맞서 싸워야 하겠습니까? 앞서 XY염색체를 가진 여자 복싱선수를 마주하였던 선수는 경기 시작 1분도 안 되어서 경기를 포기하고 기권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상대조차 되지 않는 엄청난 골리앗으로부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앞서 인용해 드린 말씀 속에서 어린 다윗은 어른이요 왕이신 사울도 두려워 떠는 그 엄청난 골리앗 앞에 나가서 당당하게 맞서 싸우겠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우리들의 삶에서 만나게 되는 골리앗을 과연 어떻게 대처하여야 하겠습니까? 바로 이것이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숙제입니다.
세계적인 암전문의인 김의신박사는 지난 8월 30일자 조선일보에서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보기 드물게 암이 많이 발생하고 치료가 원만하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과도한 스트레스, 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취하는 식습관, 그리고 암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한국은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치열한 경쟁사회로 숱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해소하기 위해 술을 지나치게 많이 마신다고 지적하였습니다. 그리고 암에 대한 매우 부정적인 생각이 암으로 사망하게 되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온다고 하였습니다. 일례로 미국 사람들은 암을 고혈압이나 당뇨와 같이 하나의 질병으로 여기고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하는데 한국 사람들은 암이라고 하면 바로 사형선고라는 극단적인 생각을 가지고 어차피 사형선고를 받았으니 치료해 봐야 고생만 한다고 여긴다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오늘 우리는 소중한 하나의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암과 같이 우리들이 어찌할 수 없는 그런 강적인 골리앗을 만난다고 해도 적극적으로 싸우고 이겨내려는 다윗과 같은 강력한 의지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비록 아직 어리고 힘도 없지만 형들이나 이스라엘의 용사들이나 심지어 왕이신 사울까지도 두려워하는 그 엄청난 골리앗 앞에 당당하게 맞서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왕까지도 “너는 아니야!”라고 말리며 그 앞에 나가지 말라고 말렸지만 다윗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삼상17:33)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기에 능치 못하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어떻게 나라의 왕도 말리는 그런 엄청난 골리앗 앞에 당당하게 나서려고 하였을까요? 그는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체험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고백하는 체험이란 바로 다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삼상17:34-37)
다윗이 사울에게 고하되 주의 종이 아비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서 새끼를 움키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 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나이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또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 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다윗과 함께 역사하셨던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며 동일하게 역사해 주십니다. 바로 이와 같은 실제적이고도 구체적인 믿음이 지금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다윗과 같이 등에 업을 때 우리들에게도 이기지 못할 골리앗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울과 같이 골리앗을 보고 두려워하고 떨 것이 아니라 다윗과 같이 당당하게 나서야 하는 것입니다. 이기게 하시는 이는 전능하신 만왕의 왕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사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골리앗을 제거해 주십니다
(삼상17:45-47)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비록 다윗은 어리고 세상 경험이 많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삶의 위기를 이기게 해 주신다는 확신만은 이 세상 그 누구보다 강하였습니다. 골리앗이 나타났을 때 이스라엘 용사들 중 그 누구도 다윗과 같은 믿음으로 위기의 순간을 맞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군대에 있는 그 숱한 장수들조차도 이처럼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의지하고 당당하게 골리앗 앞에 나타나지 못하였고 왕이신 사울까지도 두려움에 떨고 있을 뿐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위에 인용한 말씀처럼 너무나도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리라는 확신이 넘쳐났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비교조차 불가능한 엄청난 골리앗 앞에 달랑 물맷돌 다섯 개만 들고 당당하게 나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상식을 넘어선 대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삼상17:48-49)
블레셋 사람이 일어나 다윗에게로 마주 가까이 올 때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로 마주 그 항오를 향하여 빨리 달리며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취하여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돌이 그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지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과연 우리 하나님을 얼마나 생활 속에서 인정하고 믿고 의지하는지요? 사울 왕이나 이스라엘의 용사들이나 다윗의 형들과 같이 숱한 전쟁의 경험과 훈련된 기술은 믿었지만 정녕 그들이 어찌할 수 없는 엄청난 골리앗이 나타났을 때 그들은 속수무책으로 두려움과 불안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전쟁이 여호와께 속하였다거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아무리 큰 골리앗이라도 넉넉히 제거해 주실 것이란 믿음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교인들의 현주소가 아닐는지요?
하지만 다윗은 비록 어렸지만 그들과 달랐습니다. 전쟁터에서는 적을 죽이지 못하면 내가 죽는 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리디 어린 다윗이 그 누구도 감히 상대하기조차 두려워하는 골리앗 앞에 설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실 것이란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확신은 다음과 같은 그의 생생한 경험에 기초를 두고 있었습니다.
(삼상17:34-37)
다윗이 사울에게 고하되 주의 종이 아비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서 새끼를 움키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 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나이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또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 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은 결코 이론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실제적이고도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다윗과 같은 생생한 체험을 통하여서 확고해지는 것입니다. 비록 어리지만 다윗의 이와 같은 확고한 믿음을 들은 사울 왕은 두 말 하지 아니하고 바로 다윗에게 선포하였습니다.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면 골리앗이 아니라 이 세상 그 어떤 세력이라도 감히 일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와 같은 다윗의 믿음입니다. 이와 같은 믿음이 없는 한 설립 40주년이 아니라 400주년을 맞이한다 할지라도 사울 왕과 이스라엘의 용사들처럼 골리앗을 만나게 되면 여전히 두려움에 떨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교회는 이제 나이가 40에 들어선 장성한 청년이 되었습니다. 이 즈음에 과연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그 어떤 위기와 골리앗을 만나도 흔들리지 아니하고 굳건하게 맞서 싸울 수 있는 용기와 믿음입니다. 말세를 맞은 우리 앞에 무엇이 나타날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 앞에 다가설 골리앗은 무서운 질병일 수도 있고 세상의 거절할 수 없는 유혹일 수도 있고, 눈에도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나 사탄 마귀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던지 간에 다윗과 같은 믿음과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는 확신이 있는 한 우리는 물러서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당당히 나서서 싸워 이길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이와 같은 확신의 약속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비록 우리들이 다윗과 같이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기적 같은 역사를 체험하지 못하였다 할지라도 그와 같은 체험보다 훨씬 더 강하고 불변한 하나님의 말씀은 넉넉하게 우리들을 약속대로 지켜주실 것입니다.
(수1:9)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와 같은 놀라운 하나님의 약속을 품고 이제 또 다시 40년을 향하여 도약해야 하겠습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져도 하나님은 그 사랑하는 자녀들을 보호하시고 다윗처럼 골리앗을 물리칠 수 있는 권능을 주실 것입니다. 이와 같은 확신과 담대한 믿음으로 남은 삶도 당당하게 싸워 이기는 멋들어진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이 되시기를 능력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멘,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