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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2024년 9월 15일 주일낮설교)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9. 15, 2024

:시편42:1-11

說敎:崔仁 牧師

 

오늘은 하나님께서 지난 40년 동안 우리교회에 베풀어 주셨던 놀라운 축복을 가슴에 간직하고 새로운 40년을 향하여 출발하는 그 첫 번째 주일입니다. 말세가 된 오늘날은 정상적인 것이 거의 없는, 모든 사회전반이 비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는 악한 세대입니다. 이러한 때를 미리 내다보신 예수님은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으로 다음과 같은 말씀을 경고로 남겨두셨습니다.

(18: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무엇이 믿음입니까? 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운 마음으로 순종하며 사는 삶이 바로 믿음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들 자신을 한 번 돌아본다면 예수님께서 왜 이와 같은 말씀을 하셨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오늘날 그 누구도 하나님을 삶의 우선순위에 두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루 종일 셀폰을 손에서 놓지 않고 있으나 하나님과는 한 순간도 같이 하지 않습니다. 매 순간 자신의 유익과 평안을 챙기고 있으나 하나님의 소원은 알아 볼 마음조차 갖고 있지 않습니다. 매일 같이 게임을 하고 있으나 하나님을 생각하고 그 말씀을 묵상하는 젊은이들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탄식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시는 마지막 종말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 속에 있는 육신적인 가치를 걷어내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신령한 변화를 만들어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사명도 감당할 수 있고 하나님의 손발이 될 수도 있고 비전 프로젝트도 감당해 나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 옛날 육신적으로 잘 못 살다가 망한 고라를 중심으로 그의 허물진 삶과 그 자손들의 새롭게 만들어 낸 변화를 찾아보고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신앙생활을 결단해보려고 합니다. 마음 귀를 씻고 말씀을 받아 신령한 변화를 만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육신적으로 살면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게 됩니다

(16:23-3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회중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장막 사면에서 떠나라 하라 모세가 일어나 다단과 아비람에게로 가니 이스라엘 장로들이 좇았더라 모세가 회중에게 일러 가로되 이 악인들의 장막에서 떠나고 그들의 물건은 아무것도 만지지 말라 그들의 모든 죄 중에서 너희도 멸망할까 두려워하노라 하매 무리가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장막 사면을 떠나고 다단과 아비람은 그 처자와 유아들과 함께 나와서 자기 장막 문에 선지라 모세가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사 이 모든 일을 행케 하신 것이요 나의 임의로 함이 아닌 줄을 이 일로 인하여 알리라 곧 이 사람들의 죽음이 모든 사람과 일반이요 그들의 당하는 벌이 모든 사람의 당하는 벌과 일반이면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심이 아니어니와 만일 여호와께서 새 일을 행하사 땅으로 입을 열어 이 사람들과 그들의 모든 소속을 삼켜 산 채로 음부에 빠지게 하시면 이 사람들이 과연 여호와를 멸시한 것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이 모든 말을 마치는 동시에 그들의 밑의 땅이 갈라지니라 땅이 그 입을 열어 그들과 그 가족과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과 그 물건을 삼키매 그들과 그 모든 소속이 산 채로 음부에 빠지며 땅이 그 위에 합하니 그들이 총회 중에서 망하니라

이 말씀은 고라와 그 일당들이 육신적인 가치로 하나님께서 친히 세워 놓으신 하나님의 종들을 비난하고 거역하다가 망한 고라와 그 일당들의 최후의 모습입니다. 불행하게도 고라와 그 일당들은 이와 같은 범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몰랐습니다. 신자들이 믿음에서 벗어나 육신이 되어버리면 이처럼 무엇이 죄인지, 잘못인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지 깨닫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구체적으로 고라와 그 일당들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성경으로 돌아가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6:1-3)

레위의 증손 고핫의 손자 이스할의 아들 고라와 르우벤 자손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과 벨렛의 아들 온이 당을 짓고 이스라엘 자손 총회에 택함을 받은 자 곧 회중에 유명한 어떤 족장 이백 오십 인과 함께 일어나서 모세를 거스리니라 그들이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거스려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뇨

이른바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가운데 레위지파의 후손들과 르우벤지파의 후손들이 당을 짓고 족장 250명과 함께 일어나 모세를 대적한 역사적인 반란이었던 것입니다. 이 모습을 보고 진노한 모세가 이처럼 반란을 일으킨 사람들을 데려오라고 사람을 보내었으나 그들은 당당하게 거절하고 극렬히 모세를 비난하였습니다.

(16:12-14)

모세가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을 부르러 보내었더니 그들이 가로되 우리는 올라가지 않겠노라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이끌어 내어 광야에서 죽이려 함이 어찌 작은 일이기에 오히려 스스로 우리 위에 왕이 되려 하느냐 이뿐 아니라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도 아니하고 밭도 포도원도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니 네가 이 사람들의 눈을 빼려느냐 우리는 올라가지 아니하겠노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마침내 모세와 아론을 대적하려고 달려들었습니다. 바로 그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나타나셨습니다.

(16:19)

고라가 온 회중을 회막 문에 모아 놓고 그 두 사람을 대적하려 하매 여호와의 영광이 온 회중에게 나타나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불행하게도 그들은 육신으로 돌아가 모세와 아론이 스스로 하나님의 종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을 세우시고 백성 앞에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일을 하게 하셨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들도 레위지파 후손으로 하나님께서 부르신 종들인데 왜 모세 너만 잘난 척 하고 우리들 위에 군림하려고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세가 하는 모든 일이 아니꼽고 치사하여 스스로 그들 앞에 서 있는 왕과 같이 군림한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육신적인 인간에게 나타나는 전형적인 교만이요 질투요 시기였던 것입니다.

(16:13)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이끌어 내어 광야에서 죽이려 함이 어찌 작은 일이기에 오히려 스스로 우리 위에 왕이 되려 하느냐

고 반문한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와 같은 오만한 자들과 주의 종들을 대적하였던 고라와 루우벤 자손들을 무섭도록 심판하셨던 것입니다. 훗날 사도 바울은 고라의 이와 같은 어리석은 육신을 염두에 두었는지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경고를 남겨두었습니다.

(8: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고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는 것으로 끝나지 아니하고 진노하신 하나님의 심판으로 고라와 같이 망하게 된다는 사실도 기록해 두었습니다.

(8:12-13)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이와 같은 육신적인 가치를 해결하지 아니하고는 결단코 하나님의 기쁨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우리들이 육신에 머물고 있는 한 교통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육신적인 삶에서 영적인 삶으로 변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42:1-2)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

오늘 본문은 그렇게도 비참하게 망하였던 고라자손들이 남긴 시요 고백입니다. 다행히도 그들은 조상들이 왜 그렇게도 비참하게 망하였는지 깊이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진노하신 하나님 앞으로 나아와 회개하고 살 길과 새 길을 찾았습니다. 시편에 고라자손들의 시가 더러 나타나는데 한결 같이 절절하고 간절하고 사모하는 영혼으로 변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85:7-9)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보이시며 주의 구원을 우리에게 주소서 내가 하나님 여호와의 하실 말씀을 들으리니 대저 그 백성 그 성도에게 화평을 말씀하실 것이라 저희는 다시 망령된 데로 돌아가지 말지로다 진실로 그의 구원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가까우니 이에 영광이 우리 땅에 거하리이다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특별히 너희는 다시 망령된 데로 돌아가지 말지로다.”는 대목은 그들의 심정이 그 얼마나 절절히 회개하고 하나님만 바라보는지 알 수 있는 고백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조상들이 열심히 섬겼던 주의 장막을 그리워하며 사모하고 있었습니다.

(84:1-12)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저희가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셀라)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저희는 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그 곳으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며 이른 비도 은택을 입히나이다 저희는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야곱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이소서(셀라) 우리 방패이신 하나님이여 주의 기름 부으신 자의 얼굴을 살펴보옵소서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끝내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도우심으로 구원을 받았고 하나님을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더 열심히 섬기는 자손들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시편에 등장하는 고라자손들의 시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들의 모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이와 같은 신령한 변화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적당하게 하나님을 섬길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누구도 완전하지 못하여 잘못도 하고 죄도 짓지만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돌아오면 고라의 자손들처럼 회복의 은총을 덧입을 수 있습니다. 이렇듯 고라의 자손들은 이 땅의 그 어떤 자손들보다 조상들의 그릇됨을 교훈삼아 더 나은 하나님의 종들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모하고 바라보아야 합니다

(42:1-2)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

(42: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42:11)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성경에서 고라처럼 당을 만들고 하나님의 종들을 극렬하게 대적한 자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고라처럼 처절하게 심판을 받은 인간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젖을 먹고 있는 어린 아이와 그들이 키우는 가축들과 그들이 사용하던 물건까지 완전하게 갈라진 땅 속으로 들어가 사라져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후손들이 그렇게 하신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조상들을 두둔하지 아니하고 오로지 하나님과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며 새로운 자손들로 거듭났으니 놀라운 변화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위에서 언급해 드린 말씀들처럼 그들은 이 세상 그 누구보다 하나님을 더 사모하였고 그 하나님의 은총을 더 기다렸습니다. 특별히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는 대목에서는 목이 메이고 눈물이 맺힐 만큼 절실하고 간절함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 영혼이 이렇게 간절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들의 신앙생활이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진심이기를 원하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언제나 한결 같은 진심으로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하나님을 진심과 정성을 다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에 관한 하나님의 속마음을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나타내 보여주셨습니다.

(107:9)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고 말입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도 아닌 하나님의 최악의 진노와 심판을 받았던 고라자손들이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더 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구하였던 것입니다.

(84:10-12)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들의 해요 방패십니다. 그리고 공로 없는 우리들에게 은혜와 영화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대하는 자는 복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그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소중한 팁을 하나 남겨주셨습니다.

(8: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우리 하나님을 진심과 전심을 다해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고라자손들과 같은 간절함이 넘쳐나는 그런 영혼으로 거듭나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고라자손들처럼 우리들도 하나님의 손과 발이 되어 영원한 천국상급을 바라보는 진정한 신자들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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