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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시는 하나님! (2024년 10월 20일 주일낮설교)

기다리시는 하나님!

10. 20, 2024

:누가복음15:11-24

說敎:崔仁根 牧師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어도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기다리신다는 사실을 아는 성도들은 그렇게 많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성경 곳곳에 보석처럼 박혀 있는 하나님에 관한 진리는 이렇듯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기다리고 계심을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15: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라는 말씀이 그렇습니다. 이 이야기는 못난 막내아들이 아버지의 재산을 미리 상속 받아 먼 타국에 가서 탕진하고 거지가 되어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밤낮으로 그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아직도 거리가 멀어서 누가 누군지 구별이 잘 되지 않는 그런 상태에서도 단번에 그것이 막내아들인줄 알고 달려가 맞았습니다. 이것은 먼 동구 밖을 밤낮으로 내다보며 기다렸다는 뜻입니다. 만약 그 아버지가 막내아들에게 관심이 없었다면 가까이 와서 그를 불러도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5장은 탕자의 비유입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탕자는 오늘 우리들의 모습이요, 그 탕자를 기다리고 계셨던 아버지는 우리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 이것을 기록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계시는가를 설명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비유를 통하여서 하나님의 사랑과 탕자가 변화를 받고 아들의 지위를 회복하는 길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소중한 말씀을 통하여서 기다림에 대한 성경의 진리를 확실하게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기다릴 수 있도록 훈련하십니다

(삼상10:8)

너는 나보다 앞서 길갈로 내려가라 내가 네게로 내려가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리니 내가 네게 가서 너의 행할 것을 가르칠 때까지 칠 일을 기다리라

성경 전체에 나타나는 우리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하나님은 우리들로 하여금 기다릴 수 있는 성도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들로 하여금 기다릴 수 있도록 훈련하시는 것입니다. 그 중에 하나가 인류 최초의 왕이었던 사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울을 왕으로 세우시고 하나의 테스트를 하시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기다림에 관한 명령이었습니다.

왕이신 사울에게 하나님의 사람 사무엘은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립니다. “내가 네게로 가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릴 것이니 너는 나보다 먼저 길갈로 내려가서 거기에서 내가 갈 때까지 일주일을 기다리고 있거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사울은 별 생각 없이 그렇게 하겠노라고 대답하고 길갈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이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생겼습니다. 대적 블레셋이 쳐들어왔던 것입니다. 적들은 가까이 오고 백성들은 무서워서 도망을 가고 약속한 사무엘은 오지를 않자 사면초가에 빠진 사울은 그만이야 자기가 번제를 드리고 말았습니다.

(삼상13:8-14)

사울이 사무엘의 정한 기한대로 이레를 기다리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사울이 가로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번제 드리기를 필하자 사무엘이 온지라 사울이 나가 맞으며 문안하매 사무엘이 가로되 왕의 행한 것이 무엇이뇨 사울이 가로되 백성은 나에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은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치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 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영히 세우셨을 것이어늘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그 백성의 지도자를 삼으셨느니라 하고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여기에서 사울 왕이 하나님께서 명하신 말씀을 어긴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기다리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을 사울 왕이 친히 밝힌 바와 같이 부득이 하여더 이상 기다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바라시고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이는 비단 사울 왕에게만 해당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에게도, 오늘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해당 되는 명령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때 아브라함의 나이가 75세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5년이 지나도 10년이 지나도 아들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20년이 지나도 아들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아들을 낳을 수 없는 늙은 나이로 점점 더 시들어갔습니다. 그러자 사울 왕처럼 부득이 하여사라의 몸종 하갈을 취하여 스스로 아들을 만들었습니다. 그 아들이 바로 이스마엘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약속과 능력을 믿고 기다리기를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이러다가는 영원히 아들을 가질 수 없을 것 같아 인간적인 방법으로 아들을 낳았으니 그것이 불행의 씨앗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오늘날 이스라엘과 이슬람이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생생한 증거입니다.

이는 구약에만 나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종말을 예언하시는 종말장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25:3-5)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예수님은 또 재림 예수님을 기다리는 준비를 요구하고 계십니다. 그것을 열 처녀 비유에서 가르치고 계십니다. 신랑이 더디 오므로 모두가 졸고 잤다고 했습니다. 더디 온다는 것은 기다림의 한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기름과 등을 준비하고, 다시 말해 성령과 말씀으로 준비하고 성도는 신랑 되신 예수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을 기다리는데 실패하게 되면 영원히 그 예수님을 다시는 만날 수가 없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기다림의 소중함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친히 기다림의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15: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맟추니

오늘 말씀에서 가장 우리들을 감동시키는 부분은 이처럼 아버지가 밤낮으로 집 떠난 아들을 기다리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 아들은 탕자였고 자신이 평생을 통해 모아두었던 재물을 세상에 나가 다 탕진한 못난 자식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그 아들이 돌아오기를 주야로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아무 쓸모도 없는 그 탕자 자식이었지만 아버지는 단 한 마디의 원망도 없이 기다리며 사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5장 탕자의 비유에서 우리들에게 보여주시고 싶은 부분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사탄 마귀와 짝하고 하나님을 배신한 탕자와 같은 오늘 우리들을 하나님은 아무런 조건도 없이 사랑하시고 계신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아버지의 재산을 들고 세상에 나갔던 아들이 얼마 만에 돌아왔다는 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 많은 돈을 다 쓰고 거지가 되어 남의 집에서 일을 하다가 그것마저도 흉년이 들어 할 수 없게 되어 할 수 없이 집으로 돌아오는 탕자의 이야기를 상상해 보면 상당히 긴 세월이 흐른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그 긴 시간을 밤낮으로 집 밖에 서서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던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바로 이와 같이 우리들을 긴긴 세월동안 기다리시는 분이시기에 오늘 우리들에게도 이처럼 기다리는 영혼이 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30:18)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저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이심이라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

는 말씀과 같이 하나님은 오늘 우리들이 이처럼 기다리는 신앙인이 되어 하나님의 복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는 우리 예수님께서도 하나님 아버지와 같이 동일하게 기다림의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10:12-14)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와 같이 길이 참고 기다리는 복된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기다릴 줄 모르고 조급한 자는 결코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가 없고 결국에는 하나님의 은총을 누릴 수 없는 인간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기다리심은 사랑입니다

(15:21-24)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그렇다면 아버지는 왜 이렇게도 자신의 모든 재산을 다 탕진하고 거지가 되어버린 그 아들을 그토록 기다리고 있었을까요?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아버지는 그런 아들일지라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결국 기다림은 사랑인 것입니다.

30:18)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저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이심이라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말 만큼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의 이와 같은 기다림이 사랑이었다는 사실은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아버지의 행동을 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그레도 아들은 염치가 있어서 이제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칭함을 받을 수 없사오니 우리 집에 있는 품꾼과 같이 여기시고 일을 시켜주셔서 밥이라도 배불리 먹게 해 주세요.”라고 호소하였으나 아버지는 그 더러운 아들을 씻기시고 새 옷을 꺼내 입이시며 손에는 자신의 반지를 끼워 여전히 너는 내 아들이야!”하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소를 잡고 동네사람들을 불러 기쁨의 큰 잔치를 벌였습니다. 바로 이것이 사랑입니다.

하지만 집안에서 그 아버지를 도와 한 푼의 돈도 낭비하지 아니하고 성실하게 살아왔던 큰 아들은 아버지의 이와 같은 처신을 이해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그 많은 돈을 창기와 함께 먹어버리고 거지가 되어 돌아온 못난 자식을 저렇게도 큰 잔치를 벌일 만큼 사랑해 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육신적인 가치입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 생각하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은 기다리지도, 사랑하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로 하여금 기다릴 줄 아는 인내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시는 이유는 바로 이처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함인 것입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큰 아들은 결코 그렇게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불행하게도 그는 영적인 가치관을 갖지를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동생은 고사하고 그 동생을 기다리시고 사랑하시는 아버지조차도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15:28-30)

저가 노하여 들어가기를 즐겨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아버지께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백 번 천 번 옳은 말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지 못한 육신적인 가치로는 절대로 이렇게 해 줄 수 없는 것입니다. 당장 혼을 내 주고 집안에서 쫓아내버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오늘 우리들에게 이와 같은 가치가 아닌 길이 참고 기다리며 만들어 낸 엑기스와도 같은 사랑을 품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믿고 섬기려면 세상적인 가치나 육신적인 사고로는 불가능 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래 참고 기다리는 훈련은 하시고 그와 같은 훈련을 통하여서 사랑을 만들어 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명령하십니다. “기다리라!”고 말입니다.

(1:4)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1:21)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8:34)

누구든지 내게 들으며 날마다 내 문 곁에서 기다리며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

(3:25)

무릇 기다리는 자에게나 구하는 영혼에게 여호와께서 선을 베푸시는도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은 이처럼 기다림으로 훈련 받고 사랑을 만들어 하나님께서 친히 보장하신 복을 누리는 미래지향적인 신앙인으로 거듭나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지키는 자는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시고 하늘 상급으로 보상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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