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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드린 그 한 사람! (2024년 11월 03일 주일낮설교)

감사드린 그 한 사람!

11. 3, 2024

:누가복음17:11-19

說敎:崔仁牧師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2세 아이가 방울뱀에 물려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은 후 약 4억 원에 달하는 청구서를 받았다. 미국의 의료비 수준을 가늠해볼 수 있는 사례인데, 항독제 비용만 3억 원을 차지했다.

31(현지시각) 미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샌디에이고에 사는 브리글랜드 페퍼(2)는 집 뒷마당에서 형제자매들과 놀던 중 방울뱀에 물렸다. 페퍼는 곧장 엄마에게 달려갔고, 엄마는 페퍼의 오른손에서 피가 나는 것을 발견하고 즉시 911에 신고했다. 구급차로 A의료센터에 이송된 당시 페퍼의 손은 부어오르고 보라색으로 변해 있었다. 의료진은 여러 차례 시도 끝에 골수를 통해 항독제 아나빕을 투여했다. 이후 페퍼는 B어린이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져 추가로 아나빕 치료를 받았다. 다행히 겨드랑이까지 퍼진 붓기는 천천히 잦아들었고 페퍼는 이틀 후 퇴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병원에서 날아온 청구서였다. 청구서상 금액은 297461달러(4억 원)였는데 여기에는 구급차 이송 2, 응급실 방문, 중환자실 2일 입원 비용이 포함됐다. 항독제가 특히 비쌌는데 213278달러(3억 원)에 달했다. A의료센터는 아나빕 10병에 대해 1병당 9574달러(1300만원)를 청구했고, B어린이병원은 20병에 대해 1병당 5876달러(810만원)를 청구했다. 같은 항독제에 대해 병원마다 큰 가격 차이를 보인 것이다.(2024111일 조선일보에서 발췌)

2살 된 아들의 치료비가 무려 40만 불이나 되었다고 하니 실로 놀랍습니다. 평생을 통해 이만 한 돈을 모아두고 사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이 돈은 큰 돈입니다. 그런데 두 살짜리가 뱀에 물려 치료 받은 돈이 이 정도라니, 아이 하나 키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짐작케 하는 사건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 아들이 커서 이렇게까지 고생하고 수고하며 투자하여 키워주셨다는 사실을 알기나 할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말세가 된 이 시대에는 감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딤후3:1-2)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는 비단 말세에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닙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있었던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와 같은 사실을 예수님께서 친히 고발하신 충격적인 내용입니다. 함께 공부하면서 은혜와 도전을 받는 귀한 역사가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인생 여정에는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17:11-13)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한 촌에 들어가시니 문둥병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거늘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다가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에 위치한 한 촌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문둥병자 열 명을 만나게 되셨습니다. 이것은 문자적으로는 설명이 필요 없는 문자 그대로 문둥병자 열 명이지만 이것을 영적으로 해석하면 예수님께서 만나신 고통 받는 무리들입니다. 문둥병은 성경에 나타나는 가장 무서운 질병입니다. 이것은 성경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들의 주변에서도 만날 수 있는 질병입니다. 그런데 이 병에 걸리게 되면 가장 먼저 취하는 것이 사람들과의 격리입니다. 가족들과 사랑하는 이들과 격리시켜 이들만 수용하는 특별한 곳으로 가야만 합니다. 한국은 소록도와 같은 곳이고 미국에서는 하와이에 있는 한 섬입니다. 그러므로 이 병은 병으로 아픈 것보다 마음으로 아픈 것이 더 견디기 어려운 것입니다. 병들고 힘들 때는 사랑하는 이들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병은 걸리자 말자 사랑하는 이들로부터 격리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더할 수 없는 고통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병을 인생 여정에서 만나게 되는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병에 걸리게 되면 모든 말초신경이 마비되어 어떤 것도 느끼지 못하는 절망에 빠지게 됩니다. 죄로 얼룩진 인생들은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랑도 부모형제의 사랑도 다 망각하고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게 되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그래서 은혜 받지 못하고 죄악 중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은 감사드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1:21-23)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감사드리는 자가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결국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도 알지 못한 채 문둥병에 걸린 환자처럼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는 그런 미련한 삶을 살지 말라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이처럼 하나님을 향한 깊은 감사를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미 영적인 환자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와 같은 감사의 계절에 다시 한 번 우리들의 영혼을 들여다보고 신선한 변화를 만들어 가야 하겠습니다. 비록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에는 고통과 고뇌가 넘쳐나지만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예수님을 통하여서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한 여성이 어린 두 자녀와 함께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뛰어내리는 일이 발생했다.

1(현지시각) 뉴욕포스트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지난달 21일 밤 9시쯤 나이아가라 폭포 루나 아일랜드 근처에서 한 여성이 아이 2명과 함께 투신했다. 이 여성은 폭포 인근 난간을 넘은 뒤 높이 60m 아래로 떨어졌다고 한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이들을 찾기 위해 수색에 나섰으나 현재까지 시신을 발견하지 못했다. 경찰은 이들 3명이 숨진 것으로 보고 있다.

투신한 여성은 나이아가라 폭포 인근에서 가정폭력 상담사로 근무하는 키안티 민스(33). 그의 두 자녀는 생후 5개월 된 아기와 9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여성은 최근 소셜미디어에 헤어진 남편에 대한 상실감을 토로하는 글들을 여럿 올렸다고 한다.](2024111일 조선일보에서 발췌)

이 얼마나 슬프고 가슴 아픈 사건입니까? 만약 이 두 아이의 엄마가 예수님을 알았더라면, 이 세상에서 가장 저주 받는 문둥병에 걸렸을지라도 예수님으로 인해 회복을 받고 새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는 말씀만 알았더라면 이처럼 비참하게 자녀들과 함께 삶을 포기하는 비극을 만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감사함으로 이와 같은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어떤 고난도 극복해 나가는 멋들어진 신앙인으로 거듭나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아무런 조건도 없이 고통의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17:13-15)

소리를 높여 가로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거늘 보시고 가라사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저희가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우리들이 함께 별견하는 놀라운 사실은 이와 같은 문둥병자들을 예수님께서 아무런 조건도 없이 고쳐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숱하게도 많은 환자들을 고쳐주시고 배고픈 자들을 먹여주시고 기도하는 자들의 소원을 들어주셨습니다. 그런데 단 한 번도 조건을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것이 사람과 다른 오직 하나님만 가지고 계시는 절대적인 사랑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그와 같은 하나님의 큰 사랑을 깨닫고 감사드리는 영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한 번 상상을 해 보십시오. 암에 걸린 사람들이 그 암에서 해방되기 위해 애쓰고 고통 받는 모습은 너무나도 처절하여 바라볼 수조차 없습니다. 가족 중에 암 환자가 하나 있으면 온 가족이 다 아픕니다. 말도, 먹는 것도, 모두가 조심하며 오로지 그 암 환자만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 몹쓸 병에서 얼렁 나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두 아이를 둔 30대 엄마가 뇌사 장기기증으로 6명에게 새 생명을 선물하고 세상을 떠났다.

1일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은 지난달 5일 이근선(38)씨가 삼성서울병원에서 뇌사 장기기증으로 6명에게 심장, , , 좌우 신장, 안구를 기증했다고 밝혔다.

이씨는 2014년 뇌하수체 종양 제거 수술을 받았으며 지난 4월 완치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지난달 1일 집에서 쓰러진 이씨는 자녀에 의해 발견돼 응급실로 이송됐지만 뇌사 상태에 빠졌다.

이씨는 9, 10세 자녀를 두고 있다. 앞서 가족 모두는 2006년 뇌사상태 또는 사망 이후 장기·인체조직을 기증하겠다고 기증원에 등록해 생명 나눔을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 유족들은 남은 아이들에게 천사와 같은 엄마가 다른 생명을 살렸다는 사실을 언론을 통해 알고 자랑스러워했으면 하는 마음에 언론보도를 결심했다고 한다.](2024111일자 조선일보에서 발췌)

그런데 모든 가족들과 격리 되고 설령 완치 되었다 해도 가족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이와 같은 무서운 문둥병에서 고침을 받았다면 그 얼마나 놀라운 기쁨을 누리겠습니까? 그렇게 고쳐주신 예수님께 그 얼마나 감사가 넘치겠습니까? 열 번이고 백 번이고 찾아가 사례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그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회복된 건강만 기뻐하였을 뿐 그렇게 만들어 주신 예수님은 잊어버렸습니다. 그것도 열 명 중에 아홉 명이나 말입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 우리들의 모습인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감사를 잊어버린 그 어리석은 인생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섭섭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탄식하셨습니다.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고 말입니다.

(17:17-18)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문제는 이처럼 은혜를 망각하고 사모하지 않으면 다시는 더 그 은혜가 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은혜가 임하지 않는 것은 고사하고 이처럼 은혜를 망각한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의 학정에서 시달릴 때 그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도와 달라고 호소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친히 모세를 보내시고 출애굽까지 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감사는커녕 오히려 망과 불평을 쏟아냈습니다. 바로 그 때 하나님은 결단하셨습니다. 그들을 모조리 멸망시켜 버리겠다고 말입니다. 그리하여 감사를 잊어버린 어리석은 백성들은 결국 광야에서 비참하게 망하고 말았습니다.

(14:22-23)

나의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나의 이적을 보고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한 그 사람들은 내가 그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하나라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이렇듯 우리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감사드리는지, 아니면 원망하고 불평하는지를 중심으로 우리들에게 복을 주실는지, 벌을 주실는지를 판단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감사드리는 성도들에게 놀라운 하늘의 구원을 보장해 주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17: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예수님은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드리기를 원하십니다

(17:15-19)

그 중에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 저는 사마리아인이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하나님은 아무런 조건도 없이 우리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또 고통을 해결해 주십니다. 그리고 그 후에는 그렇게 은혜를 입은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 감사드리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에서 숨김 없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지금은 말세요, 인본주의가 하늘을 찌르는 불신의 시대입니다. 이와 같은 시대의 특징은 사랑이 식어지고, 부모를 거역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지 않는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친히 예언해 주셨습니다.

(딤후3:1-2)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더욱 하나님의 마음을 읽고 뜻을 발견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성도들로 거듭나야 합니다. 감사를 잊어버리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잊어버리면 앞에서도 인용해 드린 바와 같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1:21-23)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오늘 말씀을 조용히 묵상해 보면 예수님께서 열 명의 문둥병자를 고쳐주신 다음 그들이 감사드리고 사례드리기 위해 다시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그들이 돌아오지 않자 매우 서운한 마음을 내비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지혜가 있고 센스가 있어서 예수님의 이와 같은 마음을 읽어낼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것이 바로 그 한 사람의 감다드린 문동병자와 같이 주신 은혜를 잊어버리지 않고 감사로 사례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아예 단도직입적으로 이렇게 감사드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기록해 두셨습니다.

(살전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렇게 감사하라!”는 명령이 성경에 35번이나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단순한 신앙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적인 명령인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너무나도 부끄럽게 열 명 중에 오직 한 명만이 예수님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물론 그 한 명이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이 되기를 원하지만 극단적으로 우리 모든 성도들 중에 단 10% 뿐이라면 실로 부끄럽고 두렵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이 소중한 말씀을 거울삼아 모든 것을 다 주신 예수님을 실망시켜드리지 않도록 감사로 깨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만 더 큰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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