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속에서 드린 감사! (2024년 11월 10일 주일낮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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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Sunday, 10 November 2024 00:00
- Written by 최인근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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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속에서 드린 감사!
11. 10, 2024
本文:고린도후서12:1-10
說敎:崔仁根 牧師
사도 바울은 성경에 등장하는 위대한 인물들 중에서 가장 감사를 많이 드린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성경 인물들 중에서 가장 고통과 고난을 많이 겪은 인물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결국은 로마의 감옥에서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와 같은 사도 바울의 감사와 고통을 대변해 주는 대표적인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그가 당한 고통이 무엇이며, 그와 같은 고통 속에서도 그는 어떻게 감사를 드릴 수 있었는지 그 해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감사의 달을 맞아 오늘은 이와 같은 사도 바울의 감사를 통하여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믿음을 재확인하고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감사드릴 수 있는 사도 바울의 후손들이 될 수 있는 귀한 호기로 삼으려고 합니다. 마음 귀를 기울이시고 신선한 변화와 결단으로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는 행복한 빌립보의 모든 권속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엄청난 영적인 체험을 하였습니다
(고후12:1-4)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 사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대부분의 위대한 성경 인물들은 하나님과 교통하며 많은 신비로운 체험을 하였습니다. 그 중에는 직접 계시를 받거나 환상을 보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절대 계시인 성경이 완성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와 같은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셨고 또 주의 종들은 그와 같은 하나님의 뜻과 계시를 후세대들에게 전하여야 하였기 때문에 이와 같은 놀라운 체험을 하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과 같이 많은 계시와 환상을 받은 인물도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그가 보았던 환상과 계시를 아주 조심스럽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자신의 영적인 능력을 자랑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부득불 복음을 위하여서, 그리고 자신이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서 꼭 필요하였기에 이처럼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어떻게 그토록 심각했던 질병과 고통 속에서도 감사드릴 수 있었는지 설명하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사도 바울은 신비한 체험을 많이 하였습니다. 특별히 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이와 같은 놀라운 체험을 하였습니다. 그것도 예수 믿는 성도들을 학대하고 살인까지 저지르던 그 때 이와 같은 하나님의 환상을 보았던 것입니다.
(행9:3-7)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섰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신비로운 능력도 많이 받아 숱하게도 많은 병자들을 고쳤고 심지어는 예수님과 같이 죽은 자도 살려내는 기적 같은 역사도 만들어 냈습니다. 그리고 유라굴로 풍랑에서도 기적 같이 구원을 받았고 멜리데라는 섬에서는 독사에게 물렸으나 맹독으로부터 해방 되는 기적도 만들어 냈습니다. 문자 그대로 사도 바울은 전무후무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육신을 지닌 사람이었고 그로 인해 가시와도 같은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여야만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은 제한적이며 유한하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는 진리입니다. 이처럼 인간의 한계를 알고 겸손하게 하나님을 의지할 때 비로소 하나님은 귀하게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극심한 육체의 고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고후12:7-8)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사도 바울은 육신적인 질병의 고통을 “가시”라고 표현하였고, 이것을 또한 “사단의 사자”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결코 남의 아픔을 공감할 수 없습니다. 같이 길을 걸어가다가 한 사람이. “내가 지금 갑자기 배가 너무 아프다.”고 했을 때 “어, 왜 그래? 괜찮아?”하며 놀라지만 그가 얼마나 아픈지는 결코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이 가진 한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사도 바울은 자신의 육신적인 질병의 고통을 “가시”에다 비유하였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참으로 가시넝쿨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 가시넝쿨은 성장이 매우 빠릅니다. 그리고 엄청나게 엉키고 성키며 번성합니다. 이 종은 그것들을 바라보면서 이따금씩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악한 날에 악한 것이 나타나 예수님을 부인하라고 종용하며 그렇지 않으면 옷을 다 벗기고 저 가시넝쿨 위로 던져버리겠다고 위협하면 어떻게 할까? 하고 말입니다. 실제로 그렇게 된다면 그 가시넝쿨에서 헤어 나올 수 있을까? 그리고 사방에서 찌르며 박혀오는 그 모진 가시의 고통을 이겨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의 몸에 있는 질병으로 인한 고통이 바로 이와 같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겠습니까? 결국 그는 스스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이 고통을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해결해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의 응답은 너무나도 뜻밖이었습니다.
(고후12:9)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는 말씀과 같이 하나님은 사도 바울의 가시를 제거해 주지 않았습니다. 속된 말로 하면 “고마 됐다! 참고 살아라!”는 것이었습니다. 죽은 자도 살려내시는 하나님께서 그까짓 가시 하나 제거해 주시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닐 텐데도 말입니다. 그리고 더욱 오늘 우리들을 놀라게 하는 것은 사도 바울의 능력이 앞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모든 질병을 고치고 심지어 죽은 자도 살려낼 정도였다는 것입니다.
(행19:11-12)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행28:8-10)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웠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 이러므로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 쓸 것을 배에 올리더라
(행20:9-12)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앉았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 누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 보니 죽었는지라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저에게 있다 하고 올라가 떡을 떼어 먹고 오래 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나니라 사람들이 살아난 아이를 데리고 와서 위로를 적지 않게 받았더라
는 말씀들은 한결 같이 사도 바울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잘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러한 사도 바울이 자신의 몸에 있는 가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한 가지 소중한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바울이 비록 모든 질병을 다 고치고 심지어는 죽은 사람까지 살려내었지만 그것이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몸에 있는 가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었다는 사실 또한 이것을 제거하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우리들의 몸의 건강으로 인해 고통 받을 때 당연히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안 되거나 고통이 사라지지 않을 때 절망하게 됩니다. 바로 이와 같은 때에 오늘 말씀이 도움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같은 고통을 제거하지 않으시고 남겨두시는 뜻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은 언제나 그 주인이 하나님이 되셔야 합니다. 비록 나에게 꼭 필요한 소원이 있지만 그것을 주시거나 주시지 않는 분은 하늘의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비록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기꺼이 감사드릴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들이 존재하는 목적 그 자체가 우리를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사도 바울은 고통 속에서도 감사드렸습니다
(고후12:8-9)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바로 이 말씀에서 우리는 사도 바울의 위대한 믿음을 엿보게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소원을 우선순위에 두기 마련입니다. 솔직히 오늘 우리들도 우리들의 존재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알고 있고 또한 그렇게 고백하지만 실생활 속에서는 우리 자신의 소원이 우선이고 우리 자신의 유익을 우선으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몸의 질병으로 인해 가시처럼 찔리는 고통을 당하고 있어 복음을 전하는데도 힘들고 생활하는데도 어려움을 겪고 있어 간절하게 기도드렸는데 그것을 응답해 주지 않으신다면 실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건강은 가장 필수적인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자의 덕목에 있어서도 남의 질병은 다 고쳐주면서 정작 자기의 병은 고치지 못하고 끙끙 앓고 있다면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도 덕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이에 대해 망설이지도 않고 즉각적으로 반응하였습니다.
(고후12:9-10)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사도 바울은 조용히 하나님의 뜻을 가슴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하나님의 뜻에 적극적으로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히리니.”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어떻게 그는 간절히 드린 기도에 응답조차 받지 못했는데도, 여전히 그의 몸에는 가시 같은 질병이 남아 있어 고통을 받고 있는데도 이처럼 크게 기뻐할 수가 있었을까요? 어떻게 그것을 오히려 자랑할 수가 있었을까요? 바로 이것입니다. 무엇이 어떻게 되든지 간에 그의 가슴 속에는 그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가득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담담하면서도 담대하게 선언하였던 것입니다.
(살전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고 말입니다. 지금 사도 바울에게는 무엇이 범사입니까? 기도 응답이 되어도, 되지 않아도 범사입니다. 가시가 떨어져 나가도, 그냥 있어도 범사인 것입니다. 여전히 육신의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여도, 기적 같이 나음을 입어도 범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그냥 기뻐한 것이 아니라 크게 기뻐하였고, 그냥 자신만 조용히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그 고통을 자랑하였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위대한 사도 바울만이 할 수 있었던 놀라운 역사였습니다. 그는 감사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하여 아프던 병이 낫고, 기도하여 망해가던 사업이 일어나고, 기도하여 방탕하던 아들이 돌아오면 이 세상에서 감사드리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지만 이처럼 고통은 여전히 남아 있고, 질병은 여전히 가시처럼 찌르고, 간절히 기도하였는데 응답은 안 되고 하는 이런 상황에서도 감사드리고 기뻐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이야 말로 진짜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오늘 우리들도 다 아는 위대한 사도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당장은 힘들지라도 이와 같은 사람이 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그 어떤 환경 속에서도 감사드리며 기뻐할 수 있는 그런 멋들어진 성도들로 성장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사도 바울과 같이 한 시대를 귀하게 쓰임 받고 오고 오는 후손들에게 귀감이 되는 귀한 인물로 남을 구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