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이 찾은 감사의 조건 (2024년 11월 17일 주일낮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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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Sunday, 17 November 2024 00:00
- Written by 최인근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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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이 찾은 감사의 조건
11. 17, 2024
本文:시편30:1-12
說敎:崔仁根 牧師
구약에서 가장 감사를 많이 드린 사람은 성군 다윗입니다. 그가 쓴 시편 75편 가운데 거의 모든 부분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라, 여호와께 감사하라!”는 말씀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오늘 본문에서도 예외 없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시30:4)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지어다
(시30:12)
이는 잠잠치 아니하고 내 영광으로 주를 찬송케 하심이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영히 감사하리이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사도 바울이 신약에서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였다면 다윗은 구약에서 “내가 주께 영영히 감사하리이다.”고 하여서 그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깊이 박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전무후무한 하나님의 총애를 받았고 역사에 남는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이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부모님께 감사드리고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드리는 사람은 그 인격과 성품과 믿음이 특별한 것입니다. 이것은 잠시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믿음이 충만하지 않고서는 결코 “내가 주께 영원히 감사드리겠습니다!”고 고백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인간에게 “영원”이라는 것은 그 자체가 존재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당당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것만 보아도 다윗은 하나님을 향한 감사에 올인 할 만큼 감사로 무장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어떻게 이처럼 놀라운 감사의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요? 다행히도 오늘 본문 말씀은 이에 대한 정확한 해답을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 함께 이것을 찾아서 우리들도 다윗과 같이 감사의 계절에 일시적으로 드리는 감사가 아니라 평생을 통해, 영원토록 감사드리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풍성한 은혜와 복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고통을 주는 원수의 손에서 건져주셨기 때문입니다
(시30:1)
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일 것은 주께서 나를 끌어 내사 내 대적으로 나를 인하여 기뻐하지 못하게 하심이니이다
우리들이 성경을 읽으면서 놀라는 것은 다윗에게 원수가 너무 많았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도 이와 같은 내용으로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원수를 하나님께서 친히 제거해 주셨기에 다윗은 그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드리고 그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원수에 관한 이야기는 오늘 본문뿐만 아니라 그가 쓴 시편에 너무나도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시3:6-7)
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꺽으셨나이다
(시13:2)
내가 나의 영혼에 경영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쳐서 자긍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
(시17:9)
나를 압제하는 악인과 나를 에워싼 극한 원수에게서 벗어나게 하소서
(시25:2)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나로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나의 원수로 나를 이기어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는 그만큼 다윗이 세상과 타협하지 아니하고 오로지 하나님의 뜻과 진리를 따라 살았기 때문입니다. 사울 왕이 왜 다윗을 죽이려고 하였습니까? 다윗은 사울 왕에게 머리털만큼이라도 악의를 품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울은 다윗을 죽이지 못해 혈안이 되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오히려 다윗이 너무나도 완벽하게 충성하여 백성의 칭송을 받으니 시기와 질투심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묘한 말씀을 하나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다윗과 같은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요15: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다윗에게 원수가 많았던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은 그와 같은 숱한 다윗의 원수들을 하나님은 하나씩 둘씩 다 제거해 주셨습니다. 사울 왕도 제거해 주셨고 압살롬도 제거해 주셨고 시시 때때로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블레셋과 같은 주변 국가들도 다 제거해 주셨습니다. 심지어는 다윗을 배신하고 마음에 깊은 상처를 주었던 시므이와 요압장군도 다 제거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문자 그대로 하나님의 이와 같은 은혜와 축복으로 부족함이 없는 복된 삶을 누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시23:1-3)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이와 같은 하나님을 높여드리고 그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감사를 넘치게 드렸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좋으신 우리 하나님은 오늘 우리들을 괴롭히는 대적들을, 그것이 질병이든, 돈이든, 자식이든, 사람이든 다 해결해 주셔서 우리들로 하여금 기쁨으로 여호와께 감사드리도록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을 기대하고 의지하며 신실한 믿음으로 무장하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를 응답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시30:2)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
다윗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그가 쓴 시편은 그의 기도의 내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기도의 마음을 담은 고백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는 거의 사랑하는 연인들처럼 하나님과의 사랑을 나누며 대화를 나누며 마음을 나눈 인물이었습니다. 심지어 그 무서운 전쟁터에 나갈 때에도 조용히 하나님께로 나아가 문의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확실한 응답을 받고서야 전쟁에 임하는 그런 용사였습니다.
(삼하5:19)
다윗이 여호와께 물어 가로되 내가 블레셋 사람에게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저희를 내 손에 붙이시겠나이까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말씀하시되 올라가라 내가 단정코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붙이리라 하신지라
(대상14:10)
다윗이 하나님께 물어 가로되 내가 블레셋 사람을 치러 올라가리이까 주께서 저희를 내 손에 붙이시겠나이까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올라가라 내가 저희를 네 손에 붙이리라 하신지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실제로 다윗은 큰 용사였습니다. 그 어린 나이에 골리앗이라 거대한 대적을 무너뜨린 그런 실제적인 경험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한 번도 이와 같은 자신을 믿거나 자신을 따르는 큰 용사들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어린아이처럼 조용히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그러한 다윗을 귀하게 여기시고 백전백승하도록 역사해 주셨던 것입니다.
또한 다윗은 이와 같은 기도만 드린 것이 아닙니다. 한 나라의 용사요 왕이면서도 그는 여인과 같이 섬세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죄를 고백하고 긍휼과 용서와 자비를 구하는 기도도 간절하게 드렸습니다.
(시51:1-7)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 내 속에 지혜를 알게 하시리이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이처럼 드린 다윗의 모든 기도를 다 들어주셨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기쁨은 체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가히 상상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다윗이 이처럼 하나님께서 그가 드린 기도를 응답해 주심으로 그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고 하는 것만 보아도 기도 응답의 기쁨이 얼마인지 알 수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크든 작든 하나님으로부터 기도 응답을 받은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다윗과 같이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 응답은 그 자체로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영혼을 구원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시30:3)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음부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자 무덤으로 내려가지 않게 하셨나이다
다윗은 이 세상에서 살고 있을 때 필요한 축복만 가지고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늘 우리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권세와 부귀영화를 누렸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왕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런 것으로만 인생의 낙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그는 보통 사람들과 다른, 영혼에 깊은 관심을 가졌고 그러므로 그는 구원과 천국을 사모하였습니다. 오늘 3절 말씀에서 우리는 이와 같은 다윗의 차원 높은 영적 가치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오늘날 교회에는 다니면서도 언제나 현세와 이 세상에서의 복만 사모하는 안타까운 교인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우리들이 이 땅에서 그 어떤 부귀영화를 누린다 해도 그것은 지극히 짧은 순간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왕으로서 이 세상 모든 권세를 다 누리며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었지만 그것으로 만족하고 그것에 치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구원을 확신하고 그 구원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보기 드문 인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누릴 최고의 축복은 바로 천국이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다윗은 막연하게 “감사하라!” 하든지 “감사하겠다!”고 선언한 것이 아닙니다. 문자 그대로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는 엄청난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온 몸으로 체험하였기 때문에 감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당연하고 성도들의 마땅한 도리이기 때문에 오고 오는 후손들에게 요청하였던 것입니다.
(시30:4)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지어다
라고 말입니다. 다윗은 여기에서 우리 성도들을 단순하게 “성도들아!”라고 부르지 아니하고 “주의 성도들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도들이 어디에 소속 되어 있는지를 분명하게 밝히는 귀한 표현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주의 성도들입니다. 그만큼 주님의 은총을 많이 받았고 결국은 그 주님께로 돌아가야 할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들에게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고 내어 주신 그 귀한 주님께 그 주님의 성도들답게 감사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명령하듯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지어다!”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이 복된 감사의 계절에 하나님께 드릴 감사의 이유를 찾아보아야 하겠습니다. 과연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무엇을 해 주셨으며 과연 우리는 그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을 받았는지 다시 한 번 더 깨달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다윗처럼 극한 위험과 대적들로부터 해방 된 경험이 있는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드렸는데 응답해 주신 은혜가 있는지. 죽어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인 구원의 확신이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이 중에 단 하나라도 ‘과연 그렇구나!’ 하는 감동이 있다면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 아낌 없는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들이 주님의 성도들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감사를 모르는 성도는 성도일 수가 없고, 감사를 잊어버리면 짐승보다 못한 인간이 되기 때문입니다. 억지로라도 감사의 이유를 찾아서 다윗과 같이 아낌 없는 감사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그런 복된 우리 모든 빌립보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아멘,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