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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까지 복종하라! (2024년 12월 01일 주일낮설교)

죽기까지 복종하라!

12. 1, 2024

:빌립보서2:5-11

說敎:崔仁根 牧師

 

12월은 성탄의 달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이 땅으로 성탄하신 계절이기 때문입니다. 하늘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탄생하신 예수님을 우리는 비하하셨다.”고 표현합니다. 낮아지시고 비참하게 죄인이 되셨다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우리 예수님께서 이렇게 스스로 비하만 하신 것이 아니라 죽기까지 복종하시고 결국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원을 받았고 천국으로 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예수님을 생각하고 가슴으로 기리고 감사드리는 계절이 바로 성탄의 계절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이처럼 비하하시고 복종하신 것은 결코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그 내면에 남다른 특별하신 마음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2:5-6)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죽기까지 복종하시기 이전에 그 마음이 벌써 남달랐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스스로 하나님이심을 포기하시고 죄인과 같은 낮아짐의 옷을 입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죽기까지 복종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예수님을 닮아가야 할 예수님의 제자들이고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예수님과 같이 죽기까지 복종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하는 사명을 가진 것입니다. 이 복된 성탄의 계절에 이와 같은 성도들로 거듭나게 될 때 비로소 하늘보좌도 버리시고 이 땅에 오신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들이 어떠한 마음 자세를 가져야 예수님과 같이 죽기까지 복종할 수 있겠는지 공부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마음 귀를 열고 풍성한 은혜와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유익보다 하나님의 뜻을 우선해야 합니다

(2:5-7)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앞에서도 말씀 드린 바와 같이 하나님은 예수님께서 죽기까지 복종하신 것은 그 보다 먼저 하나님의 위치에서 죄인의 위치로 내려앉으신 것을 증거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과연 말만큼 쉬운 일이겠습니까? 어쩌면 우리 모두가 평생을 두고도 할 수 없는 그런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특별히 잘난 것도 없지만 이 정도에서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최고로 낮은 위치로 내려가 살라고 하면 순종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의 자리에서 죄인의 자리로 내려오셨던 것입니다. 그것은 그 다음 단계인 죽기까지 복종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는 곧 죽기까지 복종한다는 것이 이렇게도 어렵다는 것을 입증해 주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당대에 최고의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고 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았으며 그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전통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최고의 명문인 가말리엘 문하에서 최고의 학문을 닦은 보기 드문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사도가 되었을 때 자신을 부르신 주님의 뜻을 따르고 순종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배설물과 같이 과감하게 내려놓았습니다.

사도 바울의 최고로 위대한 점은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내려놓는다는 것은 말만큼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는 담대하게 자신의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온전히 예수님만 쫓아갔습니다.

(3:7-9)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제대로 된 신앙생활로 예수님을 본 받고 하나님으로부터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라는 칭찬을 받으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이처럼 우리들의 소중한 것들을 포기하고 내려놓는 훈련부터 받아야 하겠습니다.

심성이 온유하여야 합니다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예수님의 성품은 그 근본이 온유하심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데 하나 뿐인 목숨조차도 아끼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예수님은 죽기까지 복종하셨던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순종과 복종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그 성품이 온유하여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온유의 반대개념은 악독입니다. 마음이 악한 자는 결코 자신을 희생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결국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의 뜻도 순종할 수가 없습니다. 악독한 자는 오로지 자기 자신의 유익만을 챙기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경 속 인물들 중에 아브라함과 사울 왕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나이 75에도 하나님께서 고향과 친척 그리고 아비 집을 떠나라고 하실 때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순종하였습니다. 그 나이에 도대체 어리로 가야할지도 모른 채 고향 우르를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나이 백 살에 기적 같이 얻은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서 번제로 바치라 하셨음에도 그는 두 말하지 아니라고 그대로 바쳤습니다. 그는 어떻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었을까요? 그 이유는 오직 하나 그는 그 성품이 온유하고 그 속에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11: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온유한 자는 이렇듯 믿음이 있는 자요 그 속에 자신의 유익만을 챙기는 악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렇게 온유한 자는 복이 있다고 하셨던 것입니다.

(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우리들도 장차 비전 프로젝트를 통해서 하나님의 큰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사사로운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내려놓고 무엇보다도 사사로운 인간적인 욕망과 유익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돈으로 인해 가룟 유다와 같이 망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고 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한 순간의 결단으로만 가능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과 같이 아브라함과 같이 속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온유와 믿음이 있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울 왕을 한 번 생각해 보신다면 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사울 왕은 그 성품이 악하였고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조차도 거역하였습니다. 실제로 사울 왕은 다윗을 잡아 죽이지 못해 혈안이 되었고 도망 다니는 다윗을 도와주었다는 이유로 제사장 85인을 칼로 쳐 죽이는 잔악한 인간이었습니다. 그러한 악독이 가득한 사람이었기에 하나님의 말씀조차도 거약하다가 결국은 비참하게 버림받고 말았습니다. 오죽하면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하였으며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다고 하였겠습니까?

(삼상15:22-23)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순종과 복종한 단순한 한 두 번의 행위가 아니라 속 사람의 변화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겸손하여야 합니다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예수님은 또한 그 성품이 겸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죽기까지 복종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와 같은 예수님의 복종을 본 받으라고 하지 않으시고 겸손하신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2:5-7)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렇듯 우리 예수님의 마음은 겸손한 마음이셨고 그러므로 예수님은 자신의 그 어떤 것도 주장하지 않으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분의 제자들인 우리들은 주님의 그와 같은 마음을 품고 겸손한 종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겸손의 반대는 교만입니다. 교만한 자는 결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릴 수 없고 그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예수님의 마음을 품은 겸손한 자에게는 놀라운 축복을 보장해 주셨습니다.

(22:4)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는 겸손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복종하고 예수님처럼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처럼 소중한 재물과 영광과 생명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겸손의 반대 개념인 교만한 자는 하나님께서 미워하십니다.

(8:1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

(16:5)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치 못하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미워하는 자는 그 삶이 망하게 되고 그와 같은 자들의 마음은 넘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교만한 마음은 결국 하나님의 뜻을 복종하지 못함으로 망하게 되나 겸손한 마음은 하나님의 뜻을 죽기까지 복종하니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속사람부터 온유와 겸손으로 무장하고 사사로운 자신의 유익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먼저 챙기는 진정한 신앙인으로 거듭나야 하겠습니다. 그렇게만 하면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들의 내일은 하나님께서 친히 약속하시고 보장하신 그대로 재물과 영광과 생명으로 가득차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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