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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가 견고한 자 (2024년 1월 28일 주일낮설교)

심지가 견고한 자

1. 28, 2024

:이사야26:1-7

說敎:

 

반세기가 넘도록 부산, 서울, 시애틀에서 목회를 하면서, 커다란 병폐를 하나 보았는데 두고도 풀리지 않는 안타까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최소한 우리 성도들은 세상과 다른,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기에 그 누구보다 높은 신뢰가 있어야 하고 또한 신자다움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세상도 아닌 교회에서 일어나는 작금의 현상들을 보면 세상 사람들이 왜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라고 다르게 평가해 주지 않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그것은 바로 다음과 같은 문제들입니다.

교회정치에서는 안수를 받은 목사와 장로, 그리고 안수집사를 종신직(항존직)이라고 합니다. 교회에는 두 가지 직이 있는데 하나는 임시직으로 서리집사나 전도사와 같은 직분 자들입니다. 이런 임시직은 그 임기가 1년이고 매년 새롭게 임명을 다시 받아야만 그 직분을 계속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종신직인데 이는 죽을 때까지 재임명을 받지 않고도 그 직분을 수행하는 영광스러운 직분입니다. 그것이 바로 목사요, 장로요, 안수집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와 같은 분들의 직분 앞에 자랑스러운 수식어가 하나 붙어 있는데 목사에게는 위임목사요 장로와 안수집사에게는 시무장로 혹은 시무안수집사라는 별칭입니다. 그런데 이웃에 있는 모 교회에는 시무장로가 아닌 등록 장로가 수십 명씩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들은 모두 장로로 그 교회에 출석하고 있지만 시무장로가 되지 못해 이름만 들고 당회장 목사와 성도들의 눈치나 보고 있는 초라한 장로들입니다. 그들은 모두 다 자신이 안수를 받고 섬겨야 했던 교회를 떠나 그 교회로 옮겨 갔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왜 종신직으로 거룩한 제단에서 온 성도들의 투표를 받고 하나님과 성도들 앞에서 죽도록 충성하겠노라 서약하며 안수를 받아놓고 왜 그 귀한 제단을 떠나 남의 교회에 가서 그렇게 초라하고 부끄러운 신앙생활을 하고 있을까요? 변절하고 배신하였기 때문입니다. 자기들을 믿고 선택하고 큰 잔치를 벌이며 귀한 직분을 받게 해 주었는데 그들은 그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버린 것입니다.

이는 장로뿐만 아닙니다. 오늘날 목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는 노회에서 그 교회에 양들을 맡기고 임무를 주어 종신토록 양무를 치라고 위임목사로 세워 준 사명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큰 교회에[서 오라고 부르면 미련 없이 그 교회를 떠나버리고 맙니다. 노회가 맡겨 준 사명이나 자기만을 바라보며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은 안중에 없는 것입니다. 더 큰 교회에 자기를 위한 더 나은 베네핏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신의를 지키고 믿음을 주어야 할 목사와 장로가 이러고 있으니 그 누가 교회를 믿고 교회에 다닌다고 크레딧을 더 주겠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이와 같은 현실을 끊임없이 경험하며 마음의 아픔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친히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선포하셨습니다!

(26:3)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고 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심지가 견고한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친히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겠다,”는 약속을 보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이미 우리들이 여러 차례 배운바와 같이 기쁨과 평강은 우리들이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심지가 견고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축복입니다. 오늘은 바로 이와 같은 말씀을 중심으로 몇 가지 진리를 배우고 평강이라는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마음 귀를 기울여보도록 하겠습니다.

인간은 변하고 배신합니다

(2:22-23)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3:11-12)

가라사대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인류 최초의 사람이었던 아담을 보면서 타락한 인간에게는 견고한 심지가 없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배신하고 그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선물로 주셨던 여자도 또한 배신하고 있음을 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금하신 나무의 열매를 먹으며 불순종한 아담은 그 즉시로 하나님을 피하여 숨어버렸습니다.

(3:8-9)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그렇게도 하나님은 한결 같은 사랑으로 아담에게 무상으로 지상의 낙원이었던 에덴동산을 주시고 그것도 모자라 여자를 만들어 그에게 주셨는데 그들은 그 하나님을 피하였고 숲속 깊은 곳으로 숨어버렸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스스로 하나님을 떠나버린 것입니다. 그들은 더 이상 처음에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셨던 순수하고 진실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변해버렸던 것입니다.

그 이후 인간들의 삶에는 하나님을 향한 심지가 견고한 변하지 않는 인간성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나타난 너무나도 무서운 결과가 바로 살인이었습니다.

(4:8)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그 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

가인이 쳐 죽인 아벨은 그의 친 동생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벨은 아담의 아들이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이 보다 더 끔찍하고 비참한 고통은 없을 것입니다. 내가 낳은 아들들이 서로 싸우고 미워하다가 결국은 돌로 쳐 죽이는 살인까지 하였다면 그 부모가 어떻게 이 세상을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배신하고 떠난 인간의 현주소입니다. 이것이 바로 변절하고 배신하며 견고한 심지를 지키지 못한 타락한 인간들의 실상인 것입니다.

이렇듯 인간들이 하나님을 떠난 이후 거의 모든 사람들은 이렇듯 서로 싸우고 배신하고 죽이는 비참한 역사를 계속해오고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인간의 역사는 한결같이 배신과 살인과 전쟁으로 얼룩져 있음을 성경이 정확하게 증거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류 최초의 왕이었던 사울은 자신을 왕으로 세워주신 하나님을 배신하고 그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도 거역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걸고 그가 두려워 떨었던 골리앗을 제거해 주고 전쟁터에 나가 목숨을 걸고 왕과 나라를 지켜준 은인 중의 은인인 다윗을 시기하여 3천명의 군사를 데리고 그 다윗을 잡아 죽이려고 따라다녔으니 이 보다 더 큰 배신은 없을 것입니다. 비로소 하나님은 그와 같은 사울을 제거하시고 그 왕위에 다윗을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그 다윗을 또 누가 배신하였습니까? 시므이와 요압이었습니다. 다윗이 그들의 배신을 가슴에 새기고 있다가 아들 솔로몬이 왕이 될 때 그들을 제거하도록 유언까지 하였습니다. 결국 그 두 배신자는 비참하게 생의 마지막을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신약에 들어와서도 최악의 배신자가 또 나타났습니다. 바로 가룟 유다였습니다. 다른 이도 아니고 예수님께서 친히 자신을 제자로 선택하시고 사랑해 주셨으나 그는 세상 돈에 눈이 멀어 그 스승이요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은 30에 팔아넘기는 배신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의 최후는 더 비참하여 스승을 팔아서까지 취하였던 돈을 도로 갖다 주고 스스로 목을 매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돈은 수중에 있다고 내 것이 아님을 하나님은 이렇게도 극명하게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늘 우리들이 이처럼 배신하고 변절하고 망하지 않도록 엄청난 축복을 제시하시며 심지가 견고하기를 원하십니다.

(26:3)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타락한 인생들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유익만을 위해서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왜 변절하고 왜 배신합니까? 그만큼의 유익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역사와 성경이 증거하는 바와 같이 변절하고 배신하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지 않도록 심지가 견고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심지가 견고하여야 합니다

(26:3)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고전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심지란 과연 무엇일까요? 심지란 두 가지 의미로 설명이 되는데, 하나는 마음 바탕이라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마음의 의지를 말합니다. 이 두 가지를 합하여서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심지란 마음 바탕의 의지가 감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우리들의 마음 바탕이 흔들리지 않고 견고하기를 원하십니다. 심령과 믿음이 변절되고 하나님을 한결같이 믿고 따르지 못하는 자들은 결국 아담과 같이 넘어지고 하나님을 떠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평강에 평강으로라는 강력한 축복을 보장하시며 흔들림이 없는 견고한 심지를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고린도전서 15장의 부활장 마지막 절에 밝히 기록해 두신 바와 같이 견고하며 흔들리지 않고 주님의 일에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은 비로소 그러한 자들을 복이 있다 인정하시고 풍성한 축복으로 보상해 주시는 것입니다.

(112:6-8)

저가 영영히 요동치 아니함이여 의인은 영원히 기념하게 되리로다 그는 흉한 소식을 두려워 아니함이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그 마음을 굳게 정하였도다 그 마음이 견고하여 두려워 아니할 것이라 그 대적의 받는 보응을 필경 보리로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렇게 심지가 견고하여 흔들림이 없는 믿음으로 하나님만 의지하면 결국 하나님께서 근심, 걱정, 두려움을 제거해 주시고 그와 같은 요인들을 만들어 내는 대적들을 제거하심으로 평강에 평강으로 복을 누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의 손아귀에서 고통당하고 있을 때, 그리고 그들이 그와 같은 고통에서 해방시켜 달라고 기도하며 부르짖을 때 그들에게 모세를 보내시고 그들을 바로의 손아귀에서 해방시켜 주신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을 이렇게 해방시켜 주신 하나님께 어떻게 하였습니까?

(14:1-5)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백성이 곡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린지라

그랬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친히 세워주신 모세와 아론을 배신하고 심지어는 하늘의 하나님까지도 원망하며 원점인 애굽으로 돌아가려 하였습니다. 불행하게도 그들은 심지가 견고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변절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보다 눈앞에 보이는 현실을 바라보고 두려워하며 낙심하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똑 같은 조건하에 있었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하나님께서 주신 그 복된 땅을 우리들이 능히 차지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무엇이 이렇게도 극명하게 서로 다른 두 가지의 결론을 만들어 내었을까요? 바로 심지의 문제였습니다. 하나는 심지가 견고하지 못하여 하나님을 의심하였고 다른 하나는 끝까지 흔들림이 없이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였습니다. 바로 심지가 견고하였던 것입니다.

(13:30-33)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안돈시켜 가로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가로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는 말씀처럼 똑 같은 조건하에서도 심지가 견고하여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능히 이길 수 있다고 하였으나 마음이 변절하고 두려움과 육신에 젖어 있었던 사람들은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하여 결국 하나님께 등을 보이며 믿음에서 멀어진 그들은 그들이 탐지한 40일을 1년씩 환산하여 40년 동안 광야에서 고통을 당하다가 결국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가 보지도 못한 채 망하고 말았습니다.

(14:30)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로 거하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14:35-37)

나 여호와가 말하였거니와 모여 나를 거역하는 이 악한 온 회중에게 내가 단정코 이같이 행하리니 그들이 이 광야에서 소멸되어 거기서 죽으리라 모세의 보냄을 받고 땅을 탐지하고 돌아와서 그 땅을 악평하여 온 회중으로 모세를 원망케 한 사람 곧 그 땅에 대하여 악평한 자들은 여호와 앞에서 재앙으로 죽었고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랬습니다. 하나님은 이렇듯 심지가 견고하지 못하고 변절하고 배신하고 두려움과 육신에 젖어 원망하던 그들을 광야에서 처절하게 심판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이 날마다 기쁘게 살아가기를 원한다면, 그리고 하나님께서 친히 내리시는 평강에 평강으로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원한다면 심지가 견고한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심지가 견고하여야 하는 것은 단순하게 평강의 축복을 누리기 위하여서만은 아닙니다. 앞에서 친히 목도한 바와 같이 그것은 곧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될 만큼 믿음의 본질이 되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능력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37:4-9)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 대저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

하나님은 친히 선택하신 백성들이 험악한 이 세상에서 승리하기를 원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복을 누리며 기쁘게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늘 그렇게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아버지와 같이 말씀하십니다.

(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 말씀을 눈을 감고 조용히 묵상해 보시고 마음으로 곱씹어 보신다면 지극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눈물겹도록 느끼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친히 택하신 그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이렇게 근심하지 아니하고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행복하고 기쁘게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너무나도 소중한 축복인 평강에 평강으로 인도하겠다는 약속을 주십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복을 받을 수 있는 놀라운 비밀을 말씀해 주십니다. “심지가 견고한 자가 되라!”고 말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는 어떻게 이처럼 아버지 같이 우리들이 평강을 누리며 행복하게 잘 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속 들 수 있도록 심지가 견고한 자가 될 수 있을까요? 오늘 우리들이 배우고 깨닫고 새로워져야 하는 길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과연 그 길은 무엇일까요? 다행히도 오늘 본문 3절 말씀의 끝 부분에 그 해답이 숨어 있습니다.

(26:3)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그렇습니다. 연약한 우리들이 흔들림이 없는 견고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비밀은 절대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뢰하는 것입니다. 앞서 우리는 여호수아와 갈렙, 그리고 60만의 대 식구들을 비교해 볼 수 있었습니다. 절대다수인 60만 명이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는 그런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들과 전혀 다른 승리의 확신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그들도 연약한 인간일진데 어떻게 그 엄청난 가나안 일곱 족속들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있었을까요? 이 두 부류의 극명한 차이점은 의외로 단순한데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육신의 눈으로 대적을 보는가, 아니면 신령한 눈으로 하나님을 보는가, 에 달려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똑 같은 조건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전히 불경기와 온갖 기후변화와 눈에도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 지진과 전쟁을 보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이 탄식하고 절규하고 못살겠다고 아우성칠 때 오늘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친히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기쁘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육신적인 것은 비록 생각에 그친다 할지라도 사망에 이르는 재앙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8:5-6)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눈에도 보이지 않는 생각이 얼마나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똑 같은 생각인데도 그것이 육신적인 것인가 아니면 영적인 것인가에 따라서 사망도 되고 생명과 평안도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사랑하시는 택한 자녀들에게 명령하고 계십니다. “심지가 견고한 자가 되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심지가 견고하여 모든 매사에 전능하신 하나님만 의지하고 평강을 누린 위대한 인물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다윗이었습니다.

(23:4-6)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는 고백과 같이 다윗은 그 어떤 경우에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절대적인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며 평강을 누렸던 왕이었습니다. 그러했던 그가 오늘 우리들을 위해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우리들의 삶을 독려하고 있습니다.

(37:4-9)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 대저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

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바로 이렇게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두려워한다고 죽을 사람이 살지 못합니다. 반면에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면 죽을 자도 살아날 수 있습니다. 바로 이것을 믿고 따르며 기쁘고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이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신자들입니다. 벌써 2024년도 새해도 한 달이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남은 소중한 우리들의 삶을 이렇게 심지가 견고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흔들림이 없는 평강을 누려야 하겠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친히 약속하신 축복이니 심지만 견고하면 반드시 누리는 축복이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을 결코 피상적이거나 막연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고 우리들에게는 복이 될 수 있도록 구체적이고 현실적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세상의 근심걱정에 눌려 있거나 두려움과 불안에 떤다면 이는 결코 잘 된 신앙생활이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계서도 이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연약한 우리들을 위해 평안을 보장해 주셨던 것입니다.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미 우리 예수님께서 친히 보장하신 이와 같은 평안을 누리며 살아야 예수님의 제자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보장된 평안을 지속적으로 누리는 길은 오직 심지가 견고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와 같은 소중한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흔들리거나 변절되지 않는 견고한 신앙으로 사는 날 동안 평안을 누리는 행복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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