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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조건 (2024년 3월 31일 주일낮설교)

부활의 조건

부활주일

3. 31, 2024

:요한복11:32-44

說敎:崔仁根 牧師

 

오늘은 2024년도 부활주일입니다. 신실한 성도들은 대부분 사람이 죽어도 다시 산다는 부활을 믿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인지라 관념적으로만 믿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죽은 지 나흘이 되어 이미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나사로를 살려내심으로서 이 땅에 부활의 가능성을 친히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 말씀인 요한복음 11장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을 통해서 오늘 우리들을 교훈하는 놀라운 진리가 숨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은 이와 같은 소중한 보석을 찾아 가슴에 새기면서 진정한 부활주일의 은혜를 체험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확실한 부활신앙으로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부활의 소망이 넘치는 신령한 성도들로 거듭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부활의 확신이 없으면 원망하게 됩니다

(11:20-21)

마르다는 예수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 아니하였겠나이다

(11:32)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와서 보이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가로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우리들이 익히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마르다와 마리아는 엄청 예수님을 사랑하고 의지하는 믿음의 딸들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요한복음 112절에서 그들이 어느 정도 예수님을 사랑하였는지에 대한 증거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11:2)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씻기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비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우리들이 이미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부어드린 향유의 값은 무려 남자의 1년 연봉에 해당하는 엄청난 가치였습니다.

(14:3-6)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리고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어떤 사람들이 분내어 서로 말하되 무슨 의사로 이 향유를 허비하였는가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가만두어라 너희가 어찌하여 저를 괴롭게 하느냐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마리아와 마르다는 예수님을 이처럼 사랑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오라비 나사로가 병들어 죽어갈 때 예수님께서 오시지 않으셨음에 서운함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오라버니 나사로는 그렇게 극심하게 앓다가 결국은 죽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부활이라는 커다란 단어 앞에는 언제나 이렇듯 고통의 극치인 죽음이 있었습니다. 죽어야 부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이처럼 놀라운 부활을 먼 훗날의 역사로만 인식할 뿐 우리들의 삶의 현실에서는 도외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그토록 예수님을 사랑하던 마르다와 마리아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부활을 삶의 현실에서 믿고 기대하지 못하게 되면 불행하게도 마르다와 마리아와 같이 원망하는 어리석은 우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데 이렇게 절망과 고통 앞에 서게 되면 비단 마르다와 마리아만 원망하거나 절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도 동일하게 이와 같은 어리석은 우를 저지르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다음과 같은 말씀에서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11:37)

그 중 어떤 이는 말하되 소경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들은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어리석은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과 그 능력의 현주소인 부활을 믿는 믿음에 굳게 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부활의 확신이 없으면 슬픔과 절망에 빠지게 됩니다

(11:33)

예수께서 그의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의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사

부활이 생활이 되지 못하게 되면 마르다와 마리아와 같이 엄청난 슬픔과 절망에 빠지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이 세상 그 어떤 것으로도 회복할 수 없는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만약 사람이 죽어도 다시 살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면 결코 이렇게까지 절망하고 슬퍼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은 먼 훗날의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오늘 슬프고 아픈 우리들에게 현실로 다가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르다는 결국 예수님으로부터 책망을 받고야 말았습니다.

(11:38-39)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통분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예수께서 가라사대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가로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들에게 부활신앙이 절실하게 필요한 이유입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에는 슬픔과 고통과 절망이 바다의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슬픔과 절망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죽어도 다시 살 수 있다는 부활신앙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부활의 기적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우리들에게 부활신앙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하늘 같이 의지하였던 오라비 나사로가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의지할 곳 없었던 마르다와 마리아는 극도로 절망하고 슬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그 모든 슬픔을 순식간에 해결해 주셨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려내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놀라운 기적이 그저 그렇게 일어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와 같은 부활의 기적 뒤에는 숨은 조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조건을 찾아서 오늘 우리들도 마르다와 마리아와 같이 부활을 체험하는 기적의 주인공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와 같은 기적의 조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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