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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처럼 참으라! (2024년 12월 08일 주일낮설교)

예수님처럼 참으라!

12. 8, 2024

:히브리서12:1-10

說敎:崔仁 牧師

 

스위스의 유명한 철학자 장자크 루소(1712-1778)는 유명한 하나의 명언을 남겼습니다. “인내는 쓰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달다. Patience is bitter, but its fruit is sweet."라는 말이 그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말 그대로 인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천하에 온유하고 이스라엘의 최고의 지도자였던 모세조차도 이 인내에 실패하여 40년 동안 말 안 듣는 백성들과 함께 광야에서 고생하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도 들어가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20:10-12)

모세와 아론이 총회를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그 손을 들어 그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매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총회를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물이 없어 원망하고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인해 모세는 실로 지칠 대로 지쳤습니다. 그러한 그에게 하나님께서 해결책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20:7-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으로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울지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지팡이를 가지고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패역한 백성들을 향한 분노를 참지 못하고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씩이나 내리치고 말았습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를 싸게 되었고 그 벌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참고 인내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이처럼 어려운 인내와 참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내신 뜻을 온전히 이루어 드림으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시는 영광을 누리게 되셨습니다.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이와 같은 예수님의 참으심을 본 받아 이 마지막 때의 사명을 감당하는 멋진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를 위한 귀한 말씀에 마음 귀를 기울이시고 풍성한 은혜와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부끄러움도 참으셨습니다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지난 주일에 우리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정확하게 배웠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 하나님의 자리를 내어놓으시고 사람의 옷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들에게 성탄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땅으로 강림하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 복종하시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렸습니다. 그런데 이 십자가는 바로 부끄러움의 상징입니다. 십자가는 당시 악한 죄인들을 처형하는 형틀이었기 때문입니다.

(21:23)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당일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이렇게 십자가에 달려 저주를 받으시기 전에도 숱하게 많은 멸시와 천대를 받으셨습니다.

(27:27-31)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가시 면류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희롱을 다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오늘 우리 중에 이와 같은 모욕과 멸시를 당한다면 과연 참고 견딜 수 있을까요? 그것도 힘이 없고 능력이 없어 어쩔 수 없어 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보다 몇 천배 더 많은 권세를 가지고 있다면 말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 예수님의 인내와 참으심에 감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께서 이렇게 참으셔야 하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렇게 하셔야만 우리 죄인들을 구원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이와 같은 예수님의 참으심을 본 받아야 합니다. 비록 자존심이 상하고, 무시를 당하고, 손해를 보는 한이 있다 해도 예수님께서 이렇게도 참으심의 모범을 보여주셨으므로 그 주님을 생각하며 참아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그렇게 예수님을 닮아가는 우리들을 기꺼이 제자로 삼아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참지 못할 지경에 이를 때는 언제나 모세를 생각해야 합니다. 40년의 수고가 한 순간의 참지 못함으로 인해 헛것이 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잠시 살고 있는 이 땅의 삶만 위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땅에서보다는 영원한 하늘나라에서의 삶을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늘 상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내하지 못하고 참지 못하다가 하늘 상을 잃어버리는 어리석은 자는 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육신적 가치와 혈기를 참아야 합니다

(22:50-51)

그 중에 한 사람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오른편 귀를 떨어뜨린지라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이것까지 참으라 하시고 그 귀를 만져 낫게 하시더라

이제 예수님은 온 몸으로 참는 아름다움을 보여주신 다음 오늘 우리들에게 명령하십니다. “이것까지 참으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가장 인격이 성숙되고 믿음으로 무장한 사람의 특징은 묵묵히 참아내는 것입니다. 반대로 참지 못하고 조급하게 화를 내거나 조급하게 처신하는 자는 인격도 신앙도 문제가 있는 사람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배신한 가룟 유다가 군병들을 이끌고 예수님을 잡으러 왔을 때 그 혈기를 이기지 못하고 칼을 빼들었습니다. 그리고 말고의 귀를 깎았습니다. 누군들 예수님을 모시고 다니는 제자들로서 이렇게 하지 않겠습니까? 어쩌면 이렇게 하는 것이 당연한 제자의 도리이고 윗사람을 모신 자들의 처신이 아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이와 같은 베드로의 용기 있는 행동을 나무랐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까지 참으라!”고 말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육신적인 가치와 영적인 가치의 차이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26:50-54)

예수께서 가라사대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 하신대 이에 저희가 나아와 예수께 손을 대어 잡는지라 예수와 함께 있던 자 중에 하나가 손을 펴 검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 두 영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 하시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세상적인 가치나 육신적인 가치로는 당연히 베드로와 같이 행동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들이 이렇게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악당들이 쳐들어와 여러분의 목사님을 끌고 가려고 한다면 여러분은 멀뚱멀뚱 쳐다보고만 있겠습니까? 달려들어 막아서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우리 모두의 가치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성도들이고 예수님의 제자들이기 때문에 이와 같은 상황에서 예수님의 가르침과 가치를 가져야만 합니다. 그것이 바로 방금 소개해 드린 예수님의 설명이었습니다. 밑줄 친 부분과 같이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이끌고 온 칼과 몽치를 든 자들을 순식간에 해치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참았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그렇게 모욕을 당하시고 악당들에게 잡히시고 저주의 십자가 위에서 죽으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 우리들이 기억해야 하는 영적인 가치요 참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들은 영적인 신자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만사를 육신적으로만 생각하고 오로지 자신에게 유익이 있을 때만 행동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육신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고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닮아가기에 아직도 너무나도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이렇게 배우고 있고 훈련받고 있는 것입니다. 도무지 억울하고 원통해서 참을 수 없는 그런 경우에도 오늘 우리 주님께서 주신 말씀, “이것까지 참으라!”는 명령이 생각나서 자신을 달래고 고통을 이겨내며 끝끝내 예수님을 쫓아가는 그런 멋들어진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기 위해서 참아야 합니다

(12:6-8)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 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 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이제 우리들이 참아야 하는 이유를 하나 더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이유를 하나님은 오늘 본문에서 아주 길게 설명해 주시고 계십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자녀답게 연단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을 키우다가 많은 부모들이 절망합니다. 자신들이 자라날 때와 자녀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은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 이민 1세대들만 해도 어릴 때 밥조차 제대로 먹지 못한 분들이 많습니다. 그 때를 생각하고 지금은 먹고 살만 하지만 여전히 아끼고 절약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태어나면서부터 절약이라는 것을 모르고 풍족하게 자라난 아이들은 도무지 이해를 하지 못합니다. 이와 같은 문화차이로 어긋난 부모와 자식은 모든 매사에 부딪히고 힘들어 합니다. 자기들 잘 되라고 하는 충고나 부탁이라도 듣기 싫어합니다. 그러한 그들이 징계를 달게 받겠습니까? 그러므로 온통 참고 견디는 것을 미덕으로 살아온 부모들과 도무지 인내하지 못하고 참지 못하는 자녀들 사이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비록 징계를 받더라도 참고 견뎌내라고 말입니다.

(12:6-8)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 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 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이 말씀에서 우리는 놀라운 진리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누구나 잔소리를 듣기 싫어하고 더 나아가서 징계는 더 더욱 싫어하지만 이것이 없으면 사생자라는 사실이 그렇습니다. 부모는 다 자식들이 잘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야단도 치고 징계도 하고 잔소리를 하게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늘의 하나님께서도 우리들이 하나님의 자녀답게 잘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믿음에서 멀어지거나 세상과 짝하거나 육신적으로 살아가면 징계를 주시고 채찍을 가하시는 것입니다. 바로 이 때 잘 참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돌이키면 더 큰 복을 받게 되지만 끝까지 제고집대로 돌아서지 않으면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 인물들 중에서 가장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은 다윗입니다. 하지만 그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탐하여 우리아를 죽이고 밧세바를 취하였을 때 하나님은 진노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러한 방법으로 만나 만든 아이가 태어나자 하나님은 그 아들을 데리고 가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이 보다 더 큰 고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지만 다윗은 깨달았습니다. 이것이 자신이 잘못한 데 대한 하나님의 징계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 이후 다윗은 엄청 회개하고 그 모진 아픔과 고통을 참고 견뎌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그를 귀하게 여기시고 다시 아들을 주셨으니 그 아들이 바로 솔로몬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 받은 우리들을 빛의 자녀들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얻은 소중한 닉네임인 빛의 자녀들은 거기에 합당한 열매를 맺혀야 합니다.

(5:8-9)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게 빛의 자녀들처럼 살아가려면 우리 모든 성도들은 착해야 하고 의로와야 하며 진실해야 합니다. 이처럼 아름다운 열매를 맺히려면 무엇보다도 오래 참고 인내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인내가 없이는 소망을 이룰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5:3-4)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환난은 싫고 연단도 힘들지만 이 모든 과정을 인내로서 극복해 내면 그 끝에는 풍성한 축복과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길이 참는 인내로 구유에 오신 예수님을 환영하고 그 예수님을 보내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려야 하겠습니다. 우리들이 누리는 삶의 모든 소중한 것들은 바로 그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요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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