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17일 주일낮설교(제자가 있습니까?)
- Details
-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Sunday, 17 May 2015 09:09
- Hits: 2232
제자가 있습니까?
스승의 주일
5. 17, 2015
本文:마태복음28:16-20
說敎:崔 仁 根 牧 師
오늘은 2015년도 스승의 주일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자신을 주와 선생이라고 증거해 주셨습니다.
(요13:13-14)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선생이라는 말은 주님에 버금가는 귀한 단어입니다. 이 땅에 선생이라는 존칭이 그만큼 소중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 시대는 이와 같은 훌륭한 선생님도 찾아보기 어렵고 또한 그런 스승을 모신 진정한 제자들 또한 만나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제대로 된 스승과 제자가 없는 이 시대를 말세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때에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하나의 거룩한 명령을 내려 주십니다. 그것은 바로 "제자를 삼으라!"는 것입니다.
(마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 말씀을 곱씹어 보면 우리들로 하여금 스스로 선생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선생은 어느 특정인이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거룩한 명령을 받은 참된 성도라면 누구나 다 되어야 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은 2015년도 스승의 주일에 우리들에게 주어진 스승을 기리고 잘 섬기는 차원을 넘어 우리 스스로가 스승이 되어야 한다는 보다 더 큰 숙제를 가슴에 품고 그 길을 순종하는 믿음으로 함께 출발해 보고자 합니다. 말씀에 마음 귀를 기울이고 이 마지막 때에 주님께서 친히 주시는 명령을 가슴에 새기고 보다 더 신자답게 살아가는 복된 길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제자가 있습니까?
이 시대의 가장 큰 병폐는 받을 것만 생각하고 받을 수 있는 길은 찾지 않는데 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공무원연금법이나 국민연금법으로 정치권이 밤낮으로 싸우는 것을 보면 더 더욱 그렇습니다. 돈은 적게 내고 나중에 연금은 많이 타겠다는 발상으로 한 치의 양보도 않으려는 싸움은 차라리 후손들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라가 돈이 없고 후손들에게 빚만 넘겨줄 수밖에 없으니 조금씩 양보를 해서 나라와 후손들을 함께 살리자는 참 아름다운 취지임에도 불구하고 10년이 넘도록 이 문제 하나 타협하지 못한 채 밤낮으로 서로 싸우고만 있으니 한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는 조금이라도 자신의 주머니를 손해 보지 않겠다는 이기주의 때문에 비롯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자기중심적인 발상이 지금은 어느 덧 교회에까지 흘러들어 오고 있습니다. 축복은 사모하면서도 그 축복을 받을 삶은 살지 않는 현실이 바로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위해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셔서 승천하시기 직전 마지막으로 남겨 주신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 주님은 최소한 3가지의 중요한 명령을 주시고 계십니다. 한결 같이 우리 모두가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성도들은 주님의 이와 같은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들으려 하지도 않고 그러므로 그 말씀을 더 더군다나 순종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다음에 축복으로 주시는 말씀과 상관이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가서 제자 삼으라!" 고 명령하신 다음 그 말씀을 순종하는 자들에게 엄청난 축복을 보장해 주셨습니다.
(마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고 말입니다. 오늘 날 거의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시는 축복은 기대하지만 그 이전에 주신 "가서 제자 삼으라!" 는 말씀에는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만이라도 정신을 차리고 이 스승의 주일에 우리 스스로가 스승이 되어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제자를 만드는 거룩한 역사를 한 번 이루어 드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가야합니다
예수님께서 이와 같이 스승이 되어 제자를 만들어 내는 순종의 역사를 이루어 내기 위해서는 "가야 한다"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마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는 너무나도 자명한 논리입니다. 가만히 집에 앉아서 제자를 만들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는 예수님께서 친히 몸소 실천하시고 온 몸으로 모범을 보여주신 일이기도 합니다.
(막1:38)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단 한 순간도 안일과 평안을 위해 한 곳에 머물러 계시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많은 백성들이 주님 계시는 곳을 두루 찾다가 주님을 만나자 함께 계시기를 간청하였으나 주님은 미련 없이 그들 곁을 떠나 다른 마을로 가셨습니다. 그 이유는 오직 하나 그곳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전도를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눅4:42-44)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로 보내심을 입었노라 하시고 갈릴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더라
는 말씀이 바로 그 생생한 증거입니다. 그랬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들을 향하여 "가라!"고 명령하시는 우리 주님의 거룩한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움직여야 합니다. 당당하게 시간을 만들고 용기를 내어 가야 합니다. 이 시대에 제자를 만드는 일은 결코 가만히 앉아서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교회를 개척하고 10여 년 동안 한국으로, 외국으로 선교헌금을 보내드렸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돈은 돈대로 나가고 어느 한 선교지에도 결정적인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5년 동안 집중 선교기금 10만 불을 만들고 그 기금을 바탕으로 15주년부터 단독으로 선교사님을 파송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로 파송한 곳이 서부아프리카 기니공화국이었고 첫 단독 선교사님으로는 김진봉, 정순영선교사님이었습니다. 기니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조차 모른 채 선교사님을 파송하고 처음으로 선교지를 방문하러 가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시애틀에서 독일로 독일에서 프랑스로 프랑스에서 기니로 들어가는데 비행기에서 거의 녹초가 되어버렸고, 끝끝내 기니 국제공항에 도착했는데 국제공항이라는 곳에 비행기가 우리들이 타고 간 그 비행기 한 대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선교사님들에게 드리려고 준비한 가방 10개 중에 두 개는 없어졌는데 그것도 가장 값비싼 선물이 들어 있는 것만 없어져버렸습니다. 입국하는데도 돈을 뜯어내려는 직원들이 이곳저곳에서 눈을 번뜩이며 노려보고 도대체가 입국서류에 도장을 찍어 주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입국하여 도착한 선교사님의 댁에는 물도 전기도 없는 40도의 무더위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먼 곳까지 정든 부모형제를 남겨 두고 그 어린 두 아들을 데리고 그들은 왜 그곳까지 가서 그 생고생을 하고 있었을까요? 저절로 머리가 숙여지고 위대해 보였습니다. 그들은 오직 오늘 주님께서 주신 이 한 마디 말씀을 순종하여 가서 제자 삼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육신적인 생각과 가치를 다 십자가에 못 박아야만 가능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그렇게 먼 곳 까지 가서 선교를 하지 못할망정 가까운 이웃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라도 과감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이 있는 곳으로 가야만 합니다. 이것이 스승이 되어 제자를 삼는 가장 기본적인 첫 결단이기 때문입니다.
제자의 대상은 모든 족속입니다
우리는 늘 "우리끼리" 라는 개념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가족, 우리 한국사람, 우리 교회 등으로 "우리"라는 단어를 즐겨 쓰고 있습니다. 참으로 좋은 말입니다. 우리라는 대명사는 가장 우리들을 안정되게 지켜주고 평안하게 하는 참 좋은 단어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과감하게 우리를 넘어 "모든 족속"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제자를 삼으라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마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는 이 엄청난 축복의 역사에는 인종과 국경이 필요 없다는 뜻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50여 년 전의 우리나라를 한 번 생각해 보신다면 특히 우리들은 더 더욱 미개하거나 가난한 지구촌의 그 어떤 족속들이라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가난하고 미개하고 무식하던 인간으로서 최악의 상태가 바로 우리나라의 옛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방년 27살의 토마스 목사님이 대동강변까지 들어와 우리나라에 첫 발을 내 디뎠기 때문입니다. 생김새도 다르고 말도 다르고 모든 것이 다른 이 선교사님을 발견한 무식한 나라의 관리들은 그를 무조건 죽여버렸습니다. 죽으면서도 무엇인가 간절히 전달해 준 것은 쪽복음이었습니다. 한글도 모르던 그들은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흙으로 벽돌을 만들어 지는 집에 귀하던 종이를 뜯어 벽지 대용으로 사용하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토마스 선교사님의 목숨을 건 전도로 우리 대한민국에 최초의 복음의 씨가 들어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우리 주님께서 전도의 대상에 조건을 두지 않도록 "모든 족속"이라고 말씀해 주신 것은 엄청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다행히도 온갖 인종들이 동일한 인권을 누리고 사는 인종시장이라 일컬음 받는 미국 땅에 와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전도는 참으로 우리 주님의 말씀을 순종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 모든 이웃들에게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여 제자를 삼으라고 하신 우리 주님의 명령을 우리는 한 순간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는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가장 소중한 말씀이고 이로 인해 우리들이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가장 값진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제자를 삼을 때 주님은 우리들과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마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렇듯 우리들이 마땅히 주님의 말씀과 명령을 따라 복음을 전하고 제자를 만들어야 하겠지만 우리 주님은 거기에 상응하는 이처럼 놀라운 축복도 보장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나 지금이나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따르는 참된 성도들은 주님으로부터 풍성한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제자를 만들어야 합니다
지난 목요일 한국시간으로는 금요일 15일에 한국에서 권다은이로부터 메시지가 왔습니다. "비록 짧은 2-3년이었지만 참으로 좋으신 스승님을 만나 많은 것을 배우고 잊을 수 없는 영적인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오늘은 스승의 날이라 목사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고 하면서 말입니다. 이럴 때 힘든 목회지만 보람을 느끼며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제자를 만들어간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천금을 누리는 것보다 더 값진 일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제자는 선생님이나 목사님이 되어야만 만들 수 있는 것으로 치부하고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도 제자 하나 만들어 놓을 생각조차 않은 채 그렇게 소중한 인생을 낭비해버리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 주님께서 담담하게 "가서 제자 삼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웃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 사람으로 하여금 예수님을 영접하게만 하면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감히 여쭈어 보는 것입니다. "제자가 있습니까?" 하고 말입니다. 이 질문 앞에서 "예"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이라도 전도하여 예수님의 사람을 만들어 놓았다는 객관적인 증거가 됩니다. 하지만 아직도 "아니요"라고 대답한다면 그는 불행하게도 아직도 예수님의 이 엄청난 지상명령을 순종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이는 주님 앞에서 엄청난 불경입니다. 평생을 살며 예수님을 고백하면서도 단 한 사람의 제자조차 만들어 놓지 못했다면 이는 참으로 잘 산 삶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종은 오늘 참으로 도전이 되는 하나의 실화를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우리 모두 가슴으로 교훈을 삼고 심기일전 하여 가서 제자 삼는 일에 최선을 다하도록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구 소련 강제 수용소에 보리스 니콜나에비치 콘펠트라는 유대인 의사가 수용되어 있었습니다. 보리스가 의사였기 때문에 수용소 당국은 그를 죄수 병원에서 근무하게 하였습니다. 어느 날 보리스는 신심이 아주 깊고 주기도문을 틈틈이 암송하는 그리스도인 죄수 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러시아 동방정교회가 유대인들을 심하게 박해했기 때문에 보리스는 원래 기독교인들을 무척 싫어했습니다. 그러나 사회주의 체제 하에서 인권이 말살되는 것을 보면서 마음속에 이미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보리는, "주님 우리가 우리들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며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어느 죄수의 고백을 자신도 모르게 귀담아 듣고 있었습니다. 한 번은 간수를 수술하면서도 그렇게도 악랄하게 자신들에게 고통을 주던 그 사람을 어떻게 하면 아무도 몰래 죽여 버릴 수 있을까 하면서 고민하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동맥을 꿰멜 때 대충 꿰메어 한 삼일 정도 지나면 저절로 터져서 죽도록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자신을 발견하였습니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의 마음속에 미움과 폭력이 함께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그는 늘 엿들었던 주기도문이 생각났습니다. 그는 깜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주님, 나를 이 악에서 구하여 주시옵소서"하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차츰 그는 그 주님을 자신의 생명의 주인으로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사람이 되고 난 다음부터 그는 죄수들을 죽게 만드는 건강진단서에 더 이상 서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병원의 약과 음식을 훔치는 간수들을 고발하였습니다. 그것 때문에 자신이 큰 위험에 처하게 된다는 사실을 보리스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대장암 수술을 받고 침대에 누워 있는 한 청년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그 청년은 몹시 지쳐보였고 큰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보리스는 자신의 영적인 체험을 그리고 새롭게 영접한 예수님의 이야기를 그 청년에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그 청년에게 자신이 경험한 모든 사실들을 다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이 청년이 잠에서 깨었을 때 주변이 몹시 어수선 하고 소란스러움을 느꼈습니다. 자신에게 예수님을 소개시켜 주었던 그 보리스가 잠자는 동안 망치로 여덟 번이나 맞아 죽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의사가 전해 준 복음은 청년의 가슴에서 살아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절망하던 청년이 회복을 받으며 예수님의 사람이 되어갔습니다. 그 청년이 바로 1970년에 세계노벨문학상을 받은 소련의 반체제 작가 알렉산드로 솔제니친이었습니다. [수용소 군도]라는 작품을 통해 솔제니친은 전 세계에 예수 그리스도가 놀라운 구세주이심을 선포했으며 그 끔찍한 수용소생활을 폭로했습니다. 죽음의 현장에서도 담대하게 외우고 또 외웠던 주기도문이 보리스라는 의사를 전도했고 그 의사는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솔제니친에게 복음을 전하여 세계적인 역사를 만들어 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은 지금 우리들에게 명령하고 계십니다. "가서 제자 삼으라!" 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는 섬길 스승도 제대로 갖지 못하였지만 우리가 스스로 스승이 되어 발이 부르트도록 돌아다니며 제자 삼는 일에 우리들의 삶을 헌신해야 하겠습니다. 먼 훗날 주님 앞에 섰을 때, "내가 준 그 모든 축복으로 너는 무엇을 하다가 내 앞에 왔느냐?"는 책망을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그러므로 가서 제자 삼는 이 일은 단순한 윤리적인 문제가 아닌 우리들의 삶의 목표 그 자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2015년도 스승의 주일을 맞아 우리는 이 시대에 우리들이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제자 삼는 것임을 배웠습니다. 스승도 없고 제자도 없는 안타까운 이 세대를 이제는 탓하고만 있을 때가 아닌 듯합니다. 우리들 스스로가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스승이 되고 제자를 만들면 모든 것이 다 해결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평생을 살아가면서 주님께서 이토록 강력하게 내려 주신 명령 하나도 순종하지 못한 채 제자 하나를 만들어 놓지 못한다면 훗날 주님 앞에 어떻게 설 수 있겠습니까?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제자 삼는 일에 전념하여 우리 주님의 이렇게도 아름다운 명령을 순종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들도 보리스와 같이 한 목숨이라도 내어 놓고 제2의 솔제니친을 만들어 내야 하겠습니다. 하고자 하면 우리들과 함께 하시며 기적을 베풀어 주실 우리 주님께서 반드시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이요 그 믿음을 만들어 내는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에 돈과 권세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당당하게 설 수 없다면 이제는 제자를 만들어 그 보다 더 강력한 능력으로 주님 앞에 서야 하겠습니다. 스승의 주일에 이와 같은 복된 말씀으로 심령을 무장하고 보다 더 풍성한 제자라는 열매로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려드리는 그런 멋진 빌립보의 모든 권속들이 되시기를 좋으신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 멘
주후 2015년 4월 17일
스승의 주일 낮 예배 설교 말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