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10일 주일낮설교(우리 행복이 효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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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Sunday, 10 May 2015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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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행복이 효도입니다!
어버이 주일
5. 10, 2015
本文:창세기45:21-18
說敎:崔 仁 根 牧 師
지난 주간 조선일보에 가슴이 짠하게 울려오는 안타까운 기사 하나가 떴습니다. 62세의 송길용씨의 사연이었습니다. 지난 1999년 2월 13일 학교에 간다고 집을 나선 고2의 딸 혜희가 돌아오지 않은 것입니다. 그 딸을 찾기 위해 지난 16년 동안 그 부모는 모든 것을 다 걸었습니다. 전단지만 200만장 이상 뿌렸고 전국을 돌며 현수막만 4천장 이상 붙였습니다. 딸을 찾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닌 거리만도 65만 Km였다니 가히 그 부모의 가슴이 어떻게 찢어지고 망가졌는지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던 중 엄마는 심한 우울증을 앓다가 자살하였고 아버지는 삶의 모든 터전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부모입니다. 자식 하나 때문에 일생을 다 소진하며 애타하는 마음! 그것이 바로 부모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럽고 그 고통이 오래토록 지속되는 일은 뭐니 뭐니 해도 자식을 먼저 보내는 일일 것입니다. 구약의 3대 족장 중의 하나였던 야곱이 바로 이 고통을 온 몸으로 겪었습니다. 배다른 형제들이 질투와 시기심으로 동생 요셉을 먼 타국으로 팔아버리고 양의 피를 그의 옷에 발라 아버지에게 짐승이 찢어 죽였다고 보고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소식을 접했을 때 야곱의 모습을 엿보면 그 고통이 어느 정도였던가를 가히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창37:33-35)
아비가 그것을 알아보고 가로되 내 아들의 옷이라 악한 짐승이 그를 먹었도다 요셉이 정녕 찢겼도다 하고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니 그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가로되 내가 슬퍼하며 음부에 내려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 아비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
이 세상의 그 어떤 고통도 이에 비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고통은 당신들이 눈을 감고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는 잊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랬던 그에게 천만뜻밖에도 기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죽은 줄로만 알고 평생을 통해 눈물로 세월을 보내던 야곱에게 그 아들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입니다. 살아 있을 뿐만 아니라 당대의 최대 강국인 애굽의 총리대신으로 출세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때의 야곱의 기쁨이 그 얼마였던가는 오늘 우리들도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죽었던 줄로만 알고 슬퍼하던 자식이 살았을 뿐만 아니라 대 성공을 거두었다는 이 소식보다 더 큰 기쁨은 이 땅 그 어디에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우리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한 가지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들의 성공이 부모님께 효도가 된다는 사실로 우리들의 행복이 바로 부보님의 행복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一石二鳥(일석이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들 자신만을 위해서만 아니라 우리들의 부모님들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해서라도 성공해야 하고 행복해야 합니다. 2015년도 어버이주일을 맞아서 이렇게 우리들도 기쁘고 부모님께도 효도할 수 있는 멋진 인생의 참 길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그 길이 성경에 빼곡히 기록되어 있으니 함께 배워서 남은 삶을 복되게 살아가는 진정한 행복자로 거듭나시기 바랍니다.
우리 행복이 효도입니다!
지난 한 주간 동안 한국에서는 두 폐륜아의 서글픈 사건이 중요 일간지의 사회면을 매웠습니다. 하나는 이제 겨우 18살밖에 안 된 패륜아가 아버지가 평생을 두고 모아 두었던 돈을 훔쳐 하루 만에 흥청망청 2천만 원이나 써버리고 놀다가 경찰에 붙잡힌 사건입니다. 아버지가 라면 상자에 꼬깃꼬깃 평생을 모아 감추어 두었던 돈을 친구와 함께 몽땅 훔쳐 각각 오토바이를 하나씩 사고 아직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어린 것들이 룸살롱에 가서 술을 먹고 여자를 품고 흥청망청 그 돈을 쓴 것입니다. 돈을 잃어버린 것을 안 아버지가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이 이 아들을 체포한 것입니다. 자그마치 현금 1억 원을 훔려 하루만에 2천만 원을 쓰고 나머지는 새로 산 오토바이 안장 밑에 넣어 두었다가 체포된 것입니다. 또 다른 폐륜아는 더 기가 막히는 악한 자식이었습니다. 30대의 성숙한 나이에 부모님을 섬기고 효도를 해도 시원찮을 남매가 함께 공모해서 아버지를 죽이고 아버지의 돈을 가로채려고 범행을 저지르다 살인 미수에 그친 사건입니다. 35세 난 누나와 33살의 남동생이 가스분사기와 전기 충격기로 아버지의 얼굴에다 뿌리고 넘어진 아버지를 각목과 철근으로 때려죽이려다 경찰에 체포된 것입니다. 이들은 카톡으로 서로 연락을 하면서 "가스분사기를 사라" 나는 "전기충격기를 살께"하면서 서로 아버지를 죽일 기구를 치밀하게 준비하였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과연 이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자식들이 부모님들에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요? 문자 그대로 말세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려서부터 말씀으로 키우고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 주는 부모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이렇듯 부모들의 삶이 자식들과 직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식들이 잘 되고 행복하면 덤으로 부모님들의 노년이 행복하나 자식들이 폐륜아가 되어버리면 부모님의 남은 여생 또한 비참할 사밖에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어떻게 성공하고 행복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우리들도 행복하고 우리 부모님들도 행복하게 해 드릴 수 있을까요? 그 해답을 오늘 본문에서 함께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절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세상을 들여다보면 범죄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돈이 끼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노라면 돈으로 말미암아 당하는 불 유익도 많고 돈 때문에 겪는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도 많이 있습니다. 이는 우리 모든 인생들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온 몸으로 겪고 있는 현실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때에 우리는 과연 어떻게 이런 고비를 넘길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정확한 해답을 아버지 야곱에게 효도하였던 요셉이 친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나이 17살에 이러한 삶의 최고의 위기를 만났습니다. 형들의 미움을 받아 죽을 고비를 넘기고 먼 타국의 종으로 팔려 가버렸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시작도 해보기 전에 요셉은 먼 타국의 남의 집으로 종이 되어 팔려갔습니다. 과연 그가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이었을까요? 문자 그대로 아무런 희망도 기대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코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팔아먹은 형들에게 대한 증오도 갖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이것이 그가 성공스토리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근본정신이었습니다. 환경과 상황에 따라 흔들리지 않는 강인한 정신! 그것만이 절망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성공의 근본입니다. 요셉은 바로 이와 같은 성공의 근본을 이루는 강인한 정신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미 그의 아버지 야곱에게 있었던 근성이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야곱은 부모님을 떠나 머나먼 타향 외삼촌댁으로 피신을 떠나게 됩니다. 사실 어린 야곱은 형의 축복을 가로챌 그런 마음을 갖지 않았습니다. 다만 편애의 주인공인 어머니가 그를 꼬드겨 야곱이 그토록 먼 곳으로 피난을 떠나야만 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그는 충분히 절망할 수 있었고 낙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외삼촌댁에서도 10번이 넘는 품삯을 사기 당하였고 심어지는 자기가 좋아하는 여인과 결혼하는 중대사에서까지도 속임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끝내는 거부가 되고 대 가족을 만들어 그곳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오뚜기처럼 일어나고 또 일어날 수 있는 열정! 그것은 성공의 밑천이요 행복의 기본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이와 같은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우리들의 삶이 야곱이나 요셉과 전혀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들을 도와 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들을 잘 되라고 손 내밀어 줄 사람 또한 아무도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들의 발을 걸고 우리들의 등 뒤에서 칼을 빼들고 온갖 누명을 씌워 넘어뜨리려는 악한 자들만이 눈에도 보이지 않게 우리들을 에워싸고 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과연 우리는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고 요셉처럼 승리할 수 있을까요? 오직 자신을 강하고 담대하게 훈련한고 주변의 많은 적들을 친구로 돌려세우며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굳굳하게 목표를 향하여 전진하고 환경을 이겨내는 인내력과 열정을 키워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면 별 것 아닌 일로 친구를 적으로 돌려세우고 함께 하던 동반자를 원수로 만들어 버리며 심지어는 자신을 축복하고 도와주는 귀하고도 귀한 지인들과 목사님들까지도 적으로 만들어 등을 돌리는 어리석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목도하게 됩니다. 참으로 어리석고 미련한 모습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쥐뿔도 없으면서 옹졸한 가슴 하나 다스리지 못해 스스로 돌아서고 스스로 왕따가 되는 이러한 정신으로는 결코 효도는커녕 제 인생 하나도 제대로 세워가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은 타국에서의 요셉을 바라보면서 삶의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성공은 아무나 하고 효자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강인한 정신력으로 자신을 다스릴 수 있는 자만이 인생의 성공자가 되고 그렇게 승리하고 진정한 행복자가 되어야 비로소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는 효자가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절대자의 도움을 받아야만 합니다
우리는 흔히 "독불장군이 없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인생 여정의 머나먼 길을 걸어가면서 우리들이 당하는 고통의 길은 예측도 없이 다가옵니다. 야곱과 같은 대 족장도 예외 없이 그것도 자신이 낳은 자식들로부터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게 된다면 이 험악한 세상에서야 오죽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결코 우리들 자신만의 힘으로는 이 타국에서 승리할 수 없고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는커녕 우리 스스로의 삶에 기쁨조차 만들어 내지 못합니다. 요셉의 성공이나 야곱의 승리에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들 스스로 독불장군처럼 승리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아예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100% 하나님의 도우심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단적인 증거가 다음과 같은 말씀 속에 있습니다.
(창39:2-3)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는 이 말씀은 요셉이 결코 잘나서 성공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전적으로 요셉 성공의 배후에는 이처럼 하나님이 계셨던 것입니다. 이것을 훗날 요셉 자신이 고백하기도 하였습니다.
(창45:5)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랬습니다. 요셉의 성공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요셉은 스스로 절망하거나 스스로 잘난 척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는 비단 요셉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의 아버지 야곱 또한 전혀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야곱이 거부가 된 배경에는 절대적인 하나님의 간섭이 계셨고 도우심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창31:7-9)
그대들의 아버지가 나를 속여 품삯을 열 번이나 변역하였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금하사 나를 해치 못하게 하셨으며 그가 이르기를 점 있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 하면 온 양떼의 낳은 것이 점 있는 것이요 또 얼룩무늬 있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 하면 온 양떼의 낳은 것이 얼룩무늬 있는 것이니 하나님이 이같이 그대들의 아버지의 짐승을 빼앗아 내게 주셨으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나중에 외삼촌이 야곱을 공격하기 위해 심한 분노로 추격하여 올 때 하나님께서 친히 나타나시어 그를 막아 주셨고 야곱이 그토록 무서워했던 에서 또한 하나님께서 친히 그 마음을 움직여 주셨습니다.
(창31:23-24)
라반이 그 형제를 거느리고 칠일 길을 쫓아가 길르앗산에서 그에게 미쳤더니 밤에 하나님이 아람 사람 라반에게 현몽하여 가라사대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 말하지 말라 하셨더라
는 말씀과 같이 하나님은 특별하신 섭리로 이처럼 라반의 분노한 마음을 막아주셨고 야곱을 헤치지 못하게 보호해 주셨습니다. 더 나아가 야곱이 그토록 두려워했던 에서로 인한 야곱의 두려움을 하나님을 친히 다 아시고 몸소 해결해 주셨습니다.
(창32:11)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 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하옴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냄이니이다
(창33:4)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아서 안고 목을 어긋맞기고 그와 입 맞추고 피차 우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렇게 야곱과 요셉의 성공 배후에는 하나님께서 친히 임재하시고 도우셨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의 힘만으로 결단코 머나먼 우리 인생 여정에서 성공하거나 승리할 수 없습니다. 우리들도 야곱과 요셉처럼 절대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도우심을 받아야만 합니다. 아무리 우리들이 돈을 많이 벌어도 몸 하나 병들면 모든 것이 끝장입니다. 아무리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재벌이 되었다 해도 자식 하나 죽으면 인생의 모든 것이 다 의미 없어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우리들만의 힘으로는 결코 진정한 평안을 누릴 수 없습니다. 그 분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만 됩니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췌장암으로 서서히 죽어가고 있을 때 자주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인생의 소중함을 이제야 조금씩 깨닫는다."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은 참으로 소중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소중함을 보다 더 크고 보람 있게 업데이트 시켜주지 못한 채 자기 자신 속에 가두어 두고 망가지게 하고 있지는 않는지? 한 번쯤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들의 소중한 삶을 보다 더 아름답고 복되게 만들기 위해 전능자의 도우심을 구할 줄 아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신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신자들에게 이렇게 약속해 주시고 계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사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는 말씀을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살아가야 할 인생여정은 그렇게 쉽거나 녹녹치 않습니다. 이처럼 다가오시며 도와주시겠다고 약속하시는 하나님을 만나 그 크신 도우심을 입을 때만 승리도 할 수 있고 성공도 할 수 있습니다. 못난 자신의 아집에 사로잡혀 잊지 말고 겸손히 손을 내 밀어 이처럼 고귀하신 전능자의 손을 잡아야 합니다. 그래서 요셉과 같이 야곱과 같이 환경을 초월하여 성공하고 승리하는 멋들어진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들도 행복하고 우리들을 바라보시는 부모님도 행복해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관계회복을 위해 힘써야 합니다
우리는 요셉을 팔았던 그 형제들이 요셉 앞에 나아와 무릎을 꿇는 모습을 봅니다.
(창42:6)
때에 요셉이 나라의 총리로서 그 땅 모든 백성에게 팔더니 요셉의 형들이 와서 그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매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것을 옛 어른들을 隔世之感(격세지감)이라고 합니다. 언제는 그들이 요셉을 죽이려고 하다가 선심이라도 쓰듯 그를 먼 타국에 종으로 팔아버렸으나 지금은 그들이 그 요셉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생입니다. 우리는 이처럼 지금만 생각하고 이웃들에게 악을 저지르고 무시하며 그렇게 잘난 척 하며 살아 왔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들의 내일은 그 누구도 모릅니다. 오늘 내가 무시했던 그 사람이 내일 나의 목을 쥐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인간관계를 중요시 하고 늘 겸손하고 아름답게 관계유지를 위해 힘써야 합니다. 100사람의 친구를 두는 것보다 한 사람의 원수를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관계를 귀하게 여질 줄 모르는 사람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제대로 유지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몇 주 전 다윗의 유언을 통해 다윗을 배신했던 요압 장군이 어떻게 비참하게 죽었는지 생생하게 살펴보았습니다. 다윗은 늙었고 죽을 때가 가까웠는고로 요압은 매우 안심하고 자신의 배신을 그렇게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왕위에 오르고 그 솔로몬의 손에 자신의 목이 달아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모든 사람들에게 나이스하고 따뜻할 줄 아는 인간미가 넘치는 사람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언제 우리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비수가 우리 곁으로 날아올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도 이처럼 비참한 모습으로 생명을 구걸하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바로 요셉을 팔아먹었던 형들의 초라한 모습이 그렇습니다.
(창50:15-21)
요셉의 형제들이 그 아비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가로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다 하라 하셨나니 당신의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의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의 그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그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가로되 우리는 당신의 종이니이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우리는 여기에서 승자 요셉과 폐자 그 형들의 모습을 극명하게 대조해 볼 수 있습니다. 형들이 되어서 동생 앞에 무릎 꿇고 생명을 구걸하는 초라한 모습과 과감하게 그들을 용서하고 그들의 자손들까지도 거두겠다고 약속해 주는 대범한 요셉의 멋진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인생의 격세지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인생의 고귀한 교훈을 받게 됩니다. 참으로 인생을 바른 관계를 통해서만 행복도 성공도 누릴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바로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늘 이웃을 상전 모시듯이 고귀하고 아름답게 섬기며 인간관계에서부터 먼저 성공해야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래야 그 성공이 성공답고 그 승리가 성리답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들 자체를 통하여서 우리들의 가장 소중하신 부모님께 효도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2015년도 어버이 주일을 맞아 우리는 진정한 효도가 어디에서부터 나오는 것인지 살펴보았습니다. 자녀된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승리자가 되고 행복을 누리게 될 때 부모님들은 저절로 효도를 받으시고 행복한 여생을 보내시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초라하고 비참한 현실을 가리우고 부모님 앞에 엎드려서 아무리 만수무강을 빈들 부모님께서 만족하시고 기뻐하실 수 없습니다. 자식의 행복이 부모님의 행복이요 자식들의 평안이 곧 부모님들의 평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선 요셉처럼 타국에서도 성공하고 굄을 받는 인물들로 승리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자니 이웃들과 하나님과의 관계 개선으로 성공의 기초를 마련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낯선 미국 땅에서 우리들 스스로 승리하기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인간관계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게 될 때 우리는 자연스러우면서도 근본적인 도움을 누리게 되고 그래야 요셉처럼 승리할 수 있게 됩니다. 얄팍한 자존심을 붙들고 관계 회복에 실패하는 그런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으려면 요셉과 야곱처럼 하나님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유지하며 환경 속에서 낙심하지 않는 강인한 믿음을 키워야 하는 것입니다. 부디 이와 같은 성공철학으로 요셉과 같이 승리하여 부모님께 효도하고 짧은 인생 풍성한 낙을 누리는 진정한 요셉의 후손들이 되시기를 좋으신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 멘
주후 2015년 5월 10일
어버이 주일 낮 예배 설교 말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