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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3일 주일낮설교(우리 아이, 이렇게 키웁시다!)

우리 아이, 이렇게 키웁시다!

어린이 주일

5. 3, 2015

本文:디모데후서3:10-17

說敎:崔 仁 根 牧 師

우리는 어려서부터 아이를 잘 키우려고 이사를 세 번씩이나 했다던 맹자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어느 날 이웃집에서 돼지를 잡는 것을 본 맹자의 아들이 어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어머니, 저 사람들이 왜 저렇게 짐승을 잡는 겁니까?" 하고 말입니다. 그러자 별 생각 없이 맹자가 아들에게 농담삼아 이렇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저 사람들이 너한테 고기를 주려고 그런단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맹자는 즉시 그렇게 말한 자신의 입을 탓하고 아들 몰래 그 집으로 가서 고기를 사다가 아들에게 먹였다고 합니다. 자신이 실수로 한 말을 회복하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이렇듯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는 농담으로라도 거짓을 말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좋은 자식은 좋은 부모에게서 나오는 법입니다. 어려서부터 장성하기 까지 아이들의 인격과 성품이 만들어지는 것은 은연중에 보고 들은 것들을 통하여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가장 영향력을 많이 끼치는 대상은 항상 함께 생활하는 부모님이라는 사실은 두 말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2015년도 어린이 주일을 맞아서 과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으며 어떠한 아이들로 키워야 하겠는지? 함께 생각하면서 우리 아이들을 바로 키우고 그 아이들을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아이, 이렇게 키웁시다!

성경에 위대한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지만 디모데라는 사도 바울의 제자는 자랑스러운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대 사도인 바울이 아들이라고 부를 만큼 그를 총애하였기 때문입니다. 아랫사람들로부터 칭찬 받는 어른들은 더러 볼 수 있지만 윗 사람들로부터 칭찬 듣는 아랫 사람은 만나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만큼 인생의 경륜이 높기 때문에 거기에 합하도록 행동하고 살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디모데는 비록 어렸지만 사도 바울의 총애를 한 몸에 지니고 살았던 훌륭한 인물이었습니다.

(딤후1:1-2)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는 말씀과 같이 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이렇게 아들이라고 칭할 만큼 귀하게 여기고 사랑했습니다. 그렇다면 디모데의 어떤 모습이 그로 하여금 이토록 총애하게 만들었는지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해답이 바로 오늘 본문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다음의 말씀입니다.

(딤후3:15)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그랬습니다. 디모데는 성경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들이 눈여겨보아야 할 중요한 대목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디모데는 어떻게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을까요? 두 말할 필요도 없이 그가 어렸을 때부터 누군가가 성경을 가르쳐 주었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누군가는 과연 누구일까요?

(딤후1:5)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는 말씀과 같이 디모데에게 어려서부터 성경을 가르치고 그 성경을 중심으로 한 소중한 믿음을 갖게 한 이는 바로 디모데의 어머님과 그 어머님의 어머님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어린이 주일을 맞은 우리 모두는 이 말씀 앞에 큰 도전을 받아야 합니다. 어릴 때부터 아이들을 이렇게 말씀으로 잘 키워야 훗날 하나님의 축복을 자식과 함께 부모님들이 받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들은 우리들에게 내려 주신 가장 큰 선물인 우리들의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하겠습니까? 단순하게 어린이 주일 잔치와 행사로 끝나지 말고 진정으로 먼 훗날 우리들의 아이들이 짧은 인생을 부모님께 감사드리며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오늘 우리들이 그 길을 마련해야 하겠습니다.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게 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들이 오늘날 들고 다니는 성경은 사실 그 가치가 금은보화보다 더 귀합니다. 불행하게도 거의 대부분의 성도들이 이 성경을 들고 다니면서도 진짜 그 가치는 잘 모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성경의 가치는 다음과 같습니다.

(딤후3:16-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사실 이 두 구절만 가지고 설명을 드려도 몇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진부하게 또 다시 성경의 가치가 무엇인가를 설명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기록된 이 말씀으로도 충분히 그 가치를 인식할 수 있습니다. 위대한 인물들은 한결같이 다 이 성경의 가치를 똑바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인물은 바로 성군 다윗입니다. 그는 성경의 가치를 다음과 같이 정확하게 짚어내고 그러므로 그 성경 말씀을 정금보다 더 귀하게 여기며 인생을 승리했던 것입니다.

(시19:7-11)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 꿀보다 더 달도다 또 주의 종이 이로 경계를 받고 이를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은 단언합니다. 이 성경이 단순한 하나의 책이 아니고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책은 곧 하나님의 영감으로 가득한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한다면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를 원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시는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소중한 자녀들의 앞날을 선하게 인도해 주시기를 원한다면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 길을 인도해 주셨듯이 우리들의 아이들과 함께 하시며 그 인생의 길을 인도해 주시는지 그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그 모든 해답이 바로 이 성경 말씀 속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필수적으로 이 성경 말씀을 알고 또한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친히 명령하시고 계십니다.

(신6:6-9)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며 그것으로 삶의 근본으로 삼도록 훈련하는 것은 그 자식들에게 천금을 유산해 주는 것보다 더 귀한 것입니다. 가슴에 명심하고 오늘 우리들도 이 말씀으로 무장해야 하겠지만 아이들에게 더 더욱 이 말씀으로 무장시키는 그런 지각이 뛰어난 부모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희생할 줄 아는 아이로 키워야 합니다

성경의 근본은 하나님이시고 그 하나님의 사랑을 이 땅에 실천하신 분이 바로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우리 예수님의 평생 삶의 근본은 바로 섬김과 희생이었습니다. 신약 성경 중에 복음서는 이와 같은 예수님의 삶을 기록해 둔 놀라운 말씀입니다. 성경을 올바로 배운다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예수님의 삶을 배우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100%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 땅에서 이루어 드린 매우 훌륭하신 삶을 살으셨습니다. 심지어는 십자가의 그 무서운 고통도 달게 받으시고 죽으시기까지 복종 하셨습니다.

(빌2:5-8)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 남을 위해 죽는 것보다 더 큰 희생은 없습니다. 그것도 하늘의 하나님이시면서도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죄인과 같이 되어 십자가에서 처형되어 돌아가시는 희생이야 말로 우리 사람들의 생각의 한계로는 도저히 이해조차 할 수 없는 놀라운 모범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배우고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이라면 마땅히 우리 예수님의 삶의 근본이셨던 이와 같은 희생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과 기본적인 공감대가 형성되고 그와 같은 기본적인 공감대가 형성 되어야 진정한 화목과 교감이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수십 년 교회에 다니면서도 이와 같은 희생은커녕 오로지 자기 자신의 유익만 찾으며 사는 안타까운 교인들을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결국은 하나님을 가슴으로 만나지 못한 채 스스로 위안을 삼는 종교인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을 이렇게 키워서는 결코 안 될 것입니다. 이웃을 위해 그리고 우리 교회를 위해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과감하게 희생할 줄 아는 그런 멋들어진 신앙인으로 키워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우리 주님으로부터 "너는 어찌 그리 나를 닮았느냐?"는 칭찬과 함께 풍성한 축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4월 달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세월호의 침몰 1주년이 되는 달이었습니다.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이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다가 300여명이 물속에 수장된 끔찍한 사고의 아픔이 가족들은 말할 것도 없고 온 국민에게까지 미친 안타까운 사고였습니다. 그런데 그 사고 때 희생적으로 헌신한 두 사람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바다를 건너 이억 만리 미국에까지 전달되어 미국의 유수한 재단에서 매달을 수여하는 놀라운 일이 있었습니다. "포 체플린스 메모리얼 파운데이션"이라는 제단에서 지난 4월 8일 필라델피아의 네이비야드에서 시상식을 열고 한국에서 희생자의 두 부모님을 모시고 '골드메달'을 수여하였던 것입니다. "포 체플린스 메모리얼 파운데이션" 제단은 지난 1943년 독일에 피격돼 침몰한 미군 함정에서 자신들의 구명조끼를 벗어 병사들에게 나누어 주고 침몰하는 배와 같이 운명을 같이한 성직자 4명을 기리려고 1951년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설립한 재단입니다. 이 재단의 회장인 루이스 카발리어는 세월호 침몰 때 자신의 소중한 생명을 버려 죽어가는 어린 생명들을 살려낸 최해정 단원고 교사와 박지영 세월호 승무원의 희생을 4명의 성직자에게 비교하며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하여 이 땅에서 가장 영예로운 '골드메달'을 수여하게 되었다고 그 배경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최해정 교사는 자신이 먼저 구조되었다가 학생들이 배 속에서 죽어가고 있다고 그들을 구조하러 다시 들어갔다가 학생들만 구조한 채 자신은 끝내 살아오지 못하고 희생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박지영 세월호 승무원은 모든 승객들을 다 살려내기까지는 결코 밖으로 나가지 않겠다며 물이 허리까지 차오르는데도 승객들을 탈출시키는데 안간힘을 다 하다가 배와 함께 침몰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참으로 그들의 아름다운 이와 같은 희생은 국경을 넘어 미국에까지 알려지게 되었고 이처럼 고귀하게 그 희생이 기록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이처럼 소중한 생명을 가장 값지고 아름답게 유지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사랑스런 자녀들에게도 길이 전수하여서 역사에 빛나는 그런 희생정신으로 소중한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그 소중한 생명도 아낌없이 내어 주시고 희생의 제물이 되어 주셨던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될 것입니다.

용기 있는 삶을 살아가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들이 믿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의 능력은 죽은 자도 살리시고 무에서 유도 만들어 내시는 정도로 강력하십니다. 그런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라면 그 하나님 앞에서 당당하고 두려움이 없는 그런 용기 있는 사람들로 거듭나야 합니다. 불 속에라도 들어가고 사자 굴에도 들어갔던 사드락과 메삭과 아멧느로와 다니엘처럼 말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얼마나 당당하게 믿었기에 이처럼 용기 있는 결단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 마지막 때는 환란의 때라고 하였습니다. 곳곳에 전쟁이 터지고 곳곳에 지진이 일어나며 상상도 못했던 질병들이 우리들의 고귀한 생명을 위협하는 때가 바로 이 마지막 때이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강도 7.8의 대 지진을 만난 네팔에는 사람이 얼마나 죽었는지 통계조차 나오지 않는 처참한 지경에 이르고 있습니다. 지진 발생 일주일 째인 지금까지 확인된 사망자만도 6천 200명이 넘었고 부상자는 1만 3천명이 넘었으며 집을 잃은 이재민이 20만 명이 넘었다고 하니 가히 그 비참함이 얼마인지 가늠해 볼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고 우리들의 자녀들은 또한 어떻게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바로 하나님을 가슴에 품은 신자답게 용기 있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명령하십니다.

(수1:6-8)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고 말입니다. 과연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께서 친히 보장하시는 평탄하고 형통한 삶을 살 수가 있겠습니까? 강하고 담대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가슴에 품고 타협 없이 당당하게 순종하고 나갈 때 비로소 얻어지는 축복이 바로 형통한 삶인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자라나는 청소년들을 보면 너무나도 안타깝지 않습니까? 너무나도 연약하고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엄마의 치마폭에 쌓인 마마보이들을 너무나도 많이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당하게 아이들을 훈계하고 훈련시켜야 할 부모들이 아이들의 고함소리와 불평불만 소리에 전전긍긍하고 있으니 어찌 용기 있는 자식들을 만들어 낼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신자라면 다윗과 같이 당당하고 용기 있는 그런 멋쟁이로 키워내야 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형들이 집안에서 우글거리고 있을 때 그는 혼자 들판에서 양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가장 어린 그를 감싸고 품안에 두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집안에서 빈둥거리던 그 많은 형들을 다 제치고 어린 막내에 불과했던 그가 이스라엘의 왕으로 간택이 되었던 것입니다. 어째서입니까? 그는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삼상17:33-37)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기에 능치 못하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 다윗이 사울에게 고하되 주의 종이 아비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서 새끼를 움키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 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나이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또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 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이 말씀을 가만히 묵상해 보면 다윗의 이처럼 넘치는 용기가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을 믿는 절대적인 믿음에서 나오는 것이며 어려서부터 두려움 없이 담대하게 사자와 싸웠던 체험에서 나오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는 한 나라의 왕도 두려워 떨었던 적장 골리앗을 어린 소년으로서 당당하게 이겨 냈으며 그것을 계기로 왕위에까지 오르는 승리자가 되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용기 있는 신념이 그를 그렇게 만들어 놓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이제는 두려움 없는 이와 같은 용기로 남은 삶을 승리해야 하겠고 우리들의 꿈나무들 또한 그렇게 키워내야 하겠습니다. 다윗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들과 함께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2015년도 어린이 주일을 맞아 우리는 심각하게 우리들의 자녀들을 어떻게 키워야 하겠는지 고민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은 순식간에 장성하여 부모님의 품을 떠나 이 나라와 민족을 짊어지고 나가야 할 이 시대의 주인공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무한정 시간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가르쳐야 힐 기회도 성장해야 할 기회도 지극히 제한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장성하여 스스로도 자신을 바꾸어내지 못하는 그러한 안타까운 때가 이르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디모데처럼 무장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기초로 희생하고 헌신할 줄 아는 주님의 성품으로 키워내야 합니다. 마지막 때를 만난 이 때에 쭈빗거리며 인생을 뒷걸음질 치지 않도록 당당하고 용기 있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곧 부모님의 축복이요 하나님의 영광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렸을 때 올바르게 말씀과 믿음으로 무장시켜 놓지 못하면 나중에는 결코 그렇게 만들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부모들은 자녀들의 미래를 가장 우선순위에 두고 돈보다 더 귀하게 시간과 정성을 투자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들의 작은 노력이 한 사람의 평생이 좌우되는 놀라운 축복이 되어 되돌아 올 것입니다. 모쪼록 복된 어린이 주일 예배로 하나님께 헌신하시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은 믿음으로 자녀들을 훈련하고 축복으로 남은 삶을 누리는 그런 멋들어진 신자들이 되시기를 좋으신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아 멘

주후 2015년 4월 3일

어린이 주일 낮 예배 설교 말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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