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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26일 주일낮설교(자신과의 화목이 행복입니다.)

자신과의 화목이 행복입니다

4. 26, 2015

本文:시편116:1-15

說敎:崔 仁 根 牧 師

영국에서 발행되는 일간지 '미러'가 지난 4월 17일자 신문에 재미있는 기사 하나를 실었습니다. 호주의 뉴 사우스 웨일즈에 사는 말기 암 환자를 돌보는 호스피스 간호사 브로니 웨어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시한부 환자가 마지막 순간 가장 후회하는 5가지"를 인용하여 실은 것입너다. 간호사 브로니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삶의 끝자락에 있는 환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얻은 삶의 통찰과 인생의 의미를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그것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남의 눈치를 보며 척하며 살았음을 후회한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후회하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삶이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아온 것을 마지막 순간에 깨달아 안타까워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자기 자신을 위해 진정한 삶을 살 수 있는 용기를 가지라고 충고하고 있습니다.

2. 너무 일만 하고 살았음을 후회한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는 대신 너무 일만 하며 인생을 낭비하였다고 후회하였습니다. 일 외에는 다른 것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해 다른 시도는 해 보지도 못한 채 살았음을 안타까워했습니다.

3. 나의 감정 표현에 용기가 부족했음을 후회한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감정을 억제하며 살았던 것을 후회하였습니다.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지 말라고 충고하고 있습니다.

4. 친구들과 자주 연락하지 못했음을 후회한다. 죽음을 앞두고 친구가 가장 그리웠으나 건강할 때 친구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했다고 후회하였습니다. 친구와 함께 했던 시간들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었음을 회상하였습니다.

5. 행복을 위해 살아보지 못했음을 후회한다. 행복은 선택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삶이 얼마나 유한한 것인지 알게 되는 순간 행복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당당하게 자기 자신의 행복을 원하며 살아야 한다고 충고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언제 죽을지도 모른 채 삶의 마지막 남은 순간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후회하는 지난날의 삶의 현주소입니다. 언젠가는 우리들도 이렇게 삶의 마지막 순간에 머물게 될 것입니다. 그때 되돌아보며 이렇게 후회하지 않도록 오늘 우리들도 뭔가를 깨닫고 개선하고 새롭게 하는 결단을 내려야 하겠습니다. 저는 그것을 "자신과의 화목"이라고 명명해 보았습니다.

자신과의 화목이 행복입니다

사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들이 있어야 이웃도 있고 자식도 있고 그 외 모든 소중한 것들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불행하게도 언제나 우리 자신은 잊어버린 채 자식들을 위해 다가오지도 않는 미래를 위해 그렇게 허둥대며 그렇게도 소중한 세월을 다 낭비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조금 더 우리 자신을 위해 시간도 만들고 돈도 챙기고 여유를 만들어 자신을 만족하게 하는 여유 있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사는 길이 무엇인지? 오늘 본문 말씀이 그 해답을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함께 배우고 익히면서 소중한 우리 자신과 화목하는 아름다운 역사를 만들어 내는 진정 복되고 지혜로운 심령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

사도 바울은 자기 자신 속에 두 개의 자신이 들어 있고 그 둘이 서로 다툰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롬7:19-23)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은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그 두 지체가 서로 다투고 싸우는데 그 이유는 육신을 지배하는 죄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들이 익히 잘 아는 대로 죄는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과 화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하나님과 친해지고 하나님을 사랑해서 내 속에 거하는 죄를 없이해야 진정으로 자신과 화목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시116:1-2)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저를 사랑하는도다 그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리고 그 시인은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로 기도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요 사랑의 고백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쉬지 말고 기도하며 하나님과의 사랑을 회복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신 속의 죄 문제를 해결하여 결국에는 자신과 화목하고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자로 변화를 받은 사람이 바로 사도 바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 세상 그 누구도 고백하지 못한 사랑장을 기록하고 사랑의 정의를 고백하였고. 그 사랑으로 승리할 수 있도록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우리들이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 최대의 지름길은 바로 이와 같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의 징표로 기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가슴에 품게 되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자로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모든 것을 맡겨버리라!

행복한 사람은 근심 걱정이 없는 사람입니다. 매일 매 순간 평안하고 기쁘고 즐거운 사람을 우리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렇게도 힘들고 어려운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 누구라서 근심 걱정이 없는 즐거운 삶을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이 그 길을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시116:7-8)

내 영혼아 네 평안함에 돌아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후대하심이로다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

이 시인은 절망과 고통의 때에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였다가 끝끝내 고백하게 됩니다. "내 영혼아 네 평안함에 돌아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후대하심이로다"고 말입니다. 어떻게 여호와께서 고통을 제거하시고 평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우리들의 영혼을 후대하실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그 엄청난 능력이 우리 영혼을 사망에서 눈물에서 넘어짐에서 친히 건져 내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은행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그렇게 죽도록 고생하고 벌어서 생명처럼 소중하게 여기는 돈을 거기에다 조금의 의심도 없이 갖다 맡깁니다. 그리고 단 한 번도 불안하거나 걱정이 되어 근심하지를 않습니다. 그것은 은행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마음속에 이와 같은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마음이 근심 걱정으로 나누이지 아니하고 속에서 평안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조용히 들여다보면 아닌 것 같아도 분명한 해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116:3-5)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음부의 고통이 내게 미치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며 우리 하나님은 자비하시도다

이 시인이 자기 자신과 화목하고 평안으로 회복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와 의와 자비하심을 믿고 간절히 구한 기도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도 이처럼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도하여 그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의지할 때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은혜가 되어 우리들에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 고통이 없어서 평안한 것이 아니라 고통 때문에 하나님을 찾게 됨으로 평안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워싱턴주는 불행하게도 2년 전에 일부 정치인들과 법정에서 주민들의 의견도 무시한 채 저희들끼리 동성결혼을 합법화했습니다. 우리들 거의 모두는 이와 같은 일들을 언짢게 혹은 좋게 여기며 그냥 지나갑니다. 하지만 이것이 삶을 송두리째 앗아 가버리는 고통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30여 년 동안이나 Arlene's Flower라는 상호의 꽃집을 운영하던 Barronelle Stutzman이라는 70세의 할머니가 바로 그 피해자였습니다. 그녀는 지난 10년이 넘도록 손님관계로 친구처럼 잘 지내오던 Rob이라는 사람이 이와 같은 동성애 법이 통과되자 결혼하겠다며 꽃을 주문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우리 관계는 긴 세월 동안 잘 지내왔지만 나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 그것만은 할 수 없다며 완곡하게 거절하고 다른 꽃집을 소개해 주어 결혼식을 잘 마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에 일어났습니다. 워싱턴주정부와 Rob이 함께 이 할머니를 차별금지법으로 고소를 한 것입니다. 지난 2년 동안 법정에 끌려 다니면서 말로 다할 수 없는 스트레스와 돈과 시간을 낭비하며 고생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2월 법정에서 마지막 선고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30년 된 사업체와 집과 그동안 은행에 저축해 두었던 모든 재산을 다 털어도 갚을 수 없는 엄청난 벌금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할머니는 항소하겠다며 끝까지 법정 다툼을 하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그러자 워싱턴주정부와 소송을 걸었던 팀들에게서 편지가 한 통 왔습니다. "벌금을 2001불로 낮추어 줄 테니 다시는 결혼식 꽃을 하지 않겠다고 그리고 법정싸움을 취소하겠다고 약속해 주라"는 것이었습니다. 할머니가 응답해 주었습니다. "이것은 결코 돈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신앙과 진리에 관한 문제다. 그러므로 너희들이 진정으로 이 문제를 올바로 해결하기를 원한다면 너희들이 먼저 소송을 취하하든지 아니면 항소하라. 거기에서 끝까지 시시비비를 가려보자. 나는 힘도 돈도 없지만 나의 하나님은 공평하시고 공의로우신 분이시므로 그분을 믿는다."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동성결혼을 하겠다고 하는 것은 결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직접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따르는 백성들에게 이처럼 치명적인 위협과 고통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는 강력한 믿음으로 믿음을 지켜나가야 합니다. 그것만이 우리들 자신과의 화목을 이루고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유일무이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영원히 머물 곳을 확증해 두라!

우리들이 우리들 자신과 화목해야 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들이 영원히 이 세상에서 살고 있을 수 없는 유한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잠시 잠깐 후면 우리들 모두가 이 세상을 떠나 영원한 하나님께로 가든지 지옥의 불속으로 가든지 이 세상을 떠나야만 합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선포합니다.

(시116:13-15)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

고 말입니다. 만약 우리들이 우리 자신들과 화목하지 못한 채 두 개의 자신을 안고 서로 다투고 있다가 갑자기 죽게 되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께서 귀중히 보시는 그와 같은 아름다운 종말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깊이 탄식하였던 것입니다.

(롬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고 말입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을 똑바로 만났고 그 예수님 안에서 이와 같은 엄청난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었습니다.

(롬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들의 삶을 반드시 우리 예수님과 연관시키며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우리 속에 존재하는 두 개의 우리 자신의 문제를 결단코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롬8:5-6)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우리 속에 두 사람으로 인해 우리는 끊임없이 다툼과 고통 속에 머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예수님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미래의 마지막 순간을 대비하는 그런 고귀한 삶을 살았습니다.

(빌3:13-14)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롬8: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는 고백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다가 결국 그도 하나님의 부르심의 때가 되어 하나님께로 가게 되었는데 그때 그는 다음과 같이 담대하게 선언하였습니다.

(딤후4:7-8)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마련하였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사도 바울은 자기 자신과의 화목을 통해 비록 젊은 날에는 예수님을 핍박하고 예수님의 사람들을 잡아 죽이는 살인마라는 끔찍한 삶을 살았었지만 생의 마지막에 그는 이렇게도 승리하는 멋들어진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처럼 자신과 화목하고 승리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 곁으로 돌아오는 것을 귀하게 여기시는 것입니다.

(시116:15)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 도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들의 생명을 천하보다 더 귀한 것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마16:26)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런데도 불행하게도 오늘날 어리석은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소중한 자신의 생명을 헛되이 여기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과 관계없는 삶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다 이 부류에 속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없이는 결코 우리들의 가치를 모릅니다. 그러므로 오로지 자신의 삶을 육신적인 것에만 치중하다가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 하나님께로 돌아갈 것을 알고 사는 사람들은 다 자기 자신과 화목한 행복자들입니다. 이것을 터득하는 것이 지혜요, 이것을 따라 사는 것이 바로 신앙생활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이 함께 읽고 배우는 시편 116편을 기록한 시인은 참으로 복된 자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는 자신의 영혼이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를 알았고 그 자신의 영혼이 결국은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또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베풀어 주신 사랑이 그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를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12절).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제 우리 자신과 화목해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영적인 성숙의 최고봉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만 진정한 행복자가 될 수 있습니다. 모쪼록 오늘 4월의 마지막 주일을 보내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은 이와 같은 깊은 진리를 깨닫고 남은 삶을 자신과 화목하므로 진정한 하나님을 만나는 그런 행복한 심령들이 되시기를 좋으신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리는 바입니다. 아 멘

주후 2015년 4월 26일

주일 낮 예배 설교 말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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