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31일 주일낮설교(말씀이 생명입니다)
- Details
-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Sunday, 31 May 2015 11:15
- Hits: 1234
말씀이 생명입니다
5. 31, 2015
本文:요한복음6:66-71
說敎:崔 仁 根 牧 師
우리 예수님께서 말세에 나타날 징조 가운데 가장 비참한 것은 성도들의 가슴 속에 믿음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눅18: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는 주님께서 세상에 다시 오시는 그 마지막 때에 우리들 속에 말씀이 없다는 말씀과 같은 의미입니다. 말씀이 없이 믿음을 가진다는 것은 먹지 않고도 배부를 수 있다는 말과 같이 헛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온갖 기적을 보고 심지어는 굶주리던 배까지도 풍성하게 채워주시던 놀라운 주님의 역사를 체험했던 백성들은 날마다 인산인해를 이루며 예수님의 주변을 넘치게 만들었습니다. 하루에 주님의 기적으로 만들어진 떡을 먹은 사람이 남자만 5천이요 7천을 넘었을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이 세상에 떡으로 사람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오신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은 잃어버린 양들을 찾아 하늘 곳간에 들이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소중한 사명을 위해 본격적으로 진리를 전파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요6:53-5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고 말입니다. 사실 오늘 우리들도 이 말씀 하나만 잡으면 됩니다. 신, 구약 성경의 그 많고 많은 말씀들은 오직 이와 같은 주님의 말씀을 온전히 믿게 하시려는 설명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예나 지금이나 주님의 이 핵심적인 말씀을 듣고 깨닫고 믿는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오늘날 그 누가 주님의 살을 먹지 못해서 배고프며 주님의 피를 마시지 못해 목마른 자들이 있습니까? 그리고 그 누가 주님의 살을 먹기 위해 그리고 주님의 그 피를 마시기 위해 애타게 주님을 사모하고 기다리는 성도들이 있습니까? 오늘 우리는 오히려 너무 먹어서 배부르며 너무 마셔서 건강을 잃고 있는 불행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는 나가는데 예수님은 없고 예수님을 찾아 교회에 나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찾아 교회에 나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냉철하게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살과 피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결국 주님 곁을 다 떠나 가버리고 말기 때문입니다.
(요6:66)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주님께서 이와 같은 현실을 보시고 얼마나 마음이 아팠으면 동그마니 남아 있는 열 두 제자들에게 "너희들도 가려느냐?"고 물어보셨겠습니까?
(요6:67)
예수께서 열 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우리나라만큼 기독교가 왕성하게 일어난 나라도 없습니다. 하지만 한 세기도 지나기 전에 성장은 멎었고 이제는 교회가 문을 닫고 팔려나가는 비참한 현실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산에 있었던 절이 도시로 내려오고 그 많은 절간의 재산으로 도심 속의 교회를 사들여 절로 꾸미고 있는 비참한 현실을 목도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회 위에 붙어 있던 십자가 끝에 "ㅡ"자를 하나씩 붙여 절의 표시인 "卍"자로 바꾸어 놓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가슴 아픈 현실입니까? 이는 단지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닙니다. 기독교의 발상지라 해도 과언이 아닌 영국에서는 그 아름답던 교회당들이 무슬림의 손으로 다 넘어가고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미국에서도 예외 없이 1년에도 수천 개씩 교회가 문을 닫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으로부터 떡을 구하다가 참 생명으로 화답하시는 주님을 떠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렇게도 참담한 현실을 극복하고 주님의 기쁨이 되는 신자와 교회로 남을 수 있을까요?
(요6: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이 말씀에서 우리는 이에 대한 고귀한 해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주님께서 참 생명의 양식이 된다는 말씀이요 주님께서 곧 말씀이시라는 고백입니다. 오늘은 이 말씀을 중심으로 말씀으로 돌아가야 하는 당위성과 그 말씀이 곧 우리들의 생명이 된다는 사실을 공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말씀이 생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되는 가장 소중한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이와 같은 말씀이 없으면 세상은 망하여가고 사람들은 죽어가게 됩니다. 제사장 엘리 시대에 엘리의 두 아들 흡니와 비느하스가 온갖 범죄로 제사를 방해하고 하나님의 가슴에 고통을 안겨드리자 하나님은 그들에게 더 이상 말씀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삼상3:1)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이 한 말씀이 당시에 하나님께서 얼마나 화가 나 계셨으며 그 앞에 있는 인간들이 얼마나 하나님을 떠났는가를 단적으로 설명해 주는 귀한 자료가 됩니다. 이는 이 때만 그랬던 것이 아닙니다. 사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하나님을 배신했을 때에도 동일하게 하나님은 사울에게 말씀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삼상28:4-7)
블레셋 사람이 모여 수넴에 이르러 진치매 사울이 온 이스라엘을 모아 길보아에 진쳤더니 사울이 블레셋 사람의 군대를 보고 두려워서 그 마음이 크게 떨린지라 사울이 여호와께 묻자오되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지 아니하시므로 사울이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 내가 그리로 가서 그에게 물으리라 그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엔돌에 신접한 여인이 있나이다
사울이 오죽 답답하였으면 점치는 여자를 찾아갔겠습니까? 이렇듯 하나님의 말씀이 사라지면 그 때부터 인생이든 나라든 다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마지막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앞에 놓고 겸손히 엎드려 그 말씀을 읽으며 그 말씀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그 말씀을 붙잡고 기뻐하며 새 힘을 얻어 본적이 언제인지 자신에게 물어 본다면 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자손들에게 재물 물려 줄 생각을 하지 말고 눈물과 손 떼가 묻은 성경을 물려 줄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리들이 먼저 성경 말씀의 진짜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오늘은 이것을 간단하게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말씀이 믿음을 만들어 줍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3년이란 공생애를 통해 제자들을 양육하기도 하시고 직접 전도하시며 죽어가는 영혼들을 건져내시기도 하셨습니다. 그 와중에 주님께서 가장 안타까워하신 것은 "믿음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중에는 3년씩이나 데리고 다니시며 친히 가르치셨던 제자들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 제자들에게 믿음이 없음을 보시고 매우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요14:8-11)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이 말씀을 조용히 묵상해 보면 믿음이 없는 빌립을 향해 우리 주님께서 안타까워하시는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거듭 거듭 "믿으라"고 권면하고 계십니다. 또 다른 곳에서도 이와 동일한 믿음 없는 제자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요20:27-29)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유언처럼 남겨 두신 요한복음 14장에서는 그 시작부터 이 믿음에 관한 말씀으로 강력하게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주님께서 친히 요구하시고 우리들에게 가장 이 말세에 필요한 믿음은 어떻게 만들어 지는 것일까요? 의외로 이에 대한 해답은 간단합니다. 그것이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이 성경 말씀을 들을 때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롬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 우리 속에서 믿음이 만들어지며 이 말씀을 조용히 읽을 때 우리 속에서 믿음이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이 마지막 때에 가장 복이 있는 사람은 이처럼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입니다.
(계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할렐루야!!
작년에 부산에서 부산영화제가 열렸는데 거기에서 한 영화를 보고 관객들이 모두 일어나 기립박수로 극찬한 한 일이 있었습니다. [The Tenor 더 테어]라는 영화가 바로 그것입니다. 올 해 1월에 일본과 한국에서 동시에 개봉된 영화입니다. 이는 배재철성악가의 삶을 그린 실화입니다. 배재철성악가는 한양대학교 음대와 이태리 베드디국립음악원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유럽각지에서 열리는 음악 콩쿠르에서 우승을 거듭하면서 오페라의 주역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성공가도를 걸으면서 오페라 오델로를 준비하는 가운데 목에 이상이 생겨 병원에 갔더니 감상선 암이라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을 듣게 됩니다. 설상가상으로 수술을 받던 중 성대와 연결된 오른쪽 신경과 오른쪽 횡격막 신경이 떨어져 나가 오른쪽 성대마저 마비되고 말았습니다. 의사로부터 "더 이상 노래는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는 선언을 듣는 순간 천재 성악가는 절망 그 자체를 맛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눈앞이 캄캄해진 배재철씨는 병상에 누워 지나간 삶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렇게도 열심히 찬양대에서 하나님을 노래하며 섬겼던 그가 인기가 올라가고 스케쥴이 바빠지자 하나님과 교회를 멀리하며 믿음에서 멀리 멀리 떨어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병상에 엎드려 심히 통곡하며 회개하며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더 목소리를 회복하여 주신다면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먼저 찬양하는 섬김으로 인생을 다시 출발하겠다고 서원하였습니다. 그 후 그를 후원하는 일본 매니저와 일본 팬들의 도움으로 성대복원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 후 의사가 노래를 한 번 불러보라고 했습니다. 그 때 그는 "주하님 지으신 모든 세계"를 노래하였습니다. 그리고 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재활치료를 받고 천신만고 끝에 목소리를 되찾고 무대로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을 일본 NHK방송에서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방영했습니다. 이를 통하여 일본에서 많은 애청자들이 감동을 받고 예수님께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의 매니저 와지마 토타로씨도 "당신이 믿는 하나님이 이렇게도 위대하시다면 나도 그 하나님을 믿겠습니다. 성악가로서 목소리를 잃는 그 처참한 환경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믿고 의지하며 일어서게 하시는 그 하나님을 나도 믿겠습니다."며 주님께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이렇듯 우리들을 위기에서 회복시키시고 거룩한 구원으로 복을 주시는 분은 오직 우리 하나님뿐이시고 그 하나님의 도우심을 덧입는 길 또한 믿음뿐입니다. 이와 같은 믿음을 오늘 우리들도 말씀으로 회복해야 하겠습니다!
말씀이 축복을 가져다 줍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결같이 다 축복을 원하고 또 사모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으로부터 진짜 축복을 넘치게 받아 누리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이 볼 수가 없습니다. 이는 사모하기만 하고 그 진정한 방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의외로 성경은 이와 같은 축복은 하나님의 말씀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면 축복을 주시고 반대로 그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거역하면 저주를 주십니다. 이것이 성경의 전 사상입니다.
(신28:1-6)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이 말씀을 보면 축복이 무엇이며 그 축복을 어떻게 우리들이 받아 누릴 수 있는지 아주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가능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게 되면 이와 꼭 같은 저주를 받게 된다고 또한 분명하게 가르쳐 주십니다.
(신28:15-19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네게 미칠 것이니 네가 성읍에서도 저주를 받으며 들에서도 저주를 받을 것이요 또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저주를 받을 것이요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우양의 새끼가 저주를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으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참으로 단순하고도 명료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곧 우리들이 받을 축복과 저주와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이 보다 더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말씀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해답을 찾아야 합니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그래서 인간의 풍조가 아무리 바뀌고 새로워져도 우리들이 가슴에 새기고 변화지 않게 간직해야 할 것 하나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말씀을 가슴에 품고 순종하고 지키기만 하면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친히 약속하신 대로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수1: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어떻습니까? 더 이상 설명이 필요하지 않지 않습니까? 우리들이 살아가고 또한 우리들의 자녀들이 살아가야 할 이 세대는 참으로 악하고도 비참합니다. 동성결혼이 합법화 되고 마약으로 금지되었던 마리화나가 합법적으로 팔려나가며 집에서 큰 길로 잠시 나오기만 하여도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녀들의 삶을 파괴하는 카지노가 문방구보다 더 많이 널려 있는 이 세대를 우리는 과연 어떻게 평탄하고도 형통하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더 이상 그 어떤 대안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너무나도 비참하게 망할 수밖에 없는 이 세상을 우리는 지금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난 주간에도 내 친구가 살고 있는 경기도 부천 아파트 12층에서 33살, 31살 먹은 자매가 나란히 베란다에서 뛰어내려 자살하였고 막내 29살 동생도 또한 침실에서 약을 먹고 자살하였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기가 그렇게도 힘이 든다는 현실을 이보다 더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습니까? 꽃다운 서른 전후의 나이에 남도 아닌 세 자매가 이렇게 목숨을 끊어야 할 정도였다면 이 세상이 얼마나 살아가기 힘든 곳인가를 설명해 주는 가장 대표적인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시대를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형통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그 말씀을 묵상하여 영혼의 양식으로 삼는 길 밖에는 대안이 없는 것입니다.
(시1:1-3)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래서 성군 다윗도 이 세상을 떠날 때 험악한 이 세대를 어떻게 살아야 하겠는지 가장 사랑하여 왕권을 물려 준 아들 솔로몬에게 가르쳐 주었던 것입니다.
(왕상2:1-3)
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매 그 아들 솔로몬에게 명하여 가로되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의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릇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이로 미루어 볼 때 형통하게 하나님의 은총을 누리며 잘 살 수 있는 길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에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우리들의 자손들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으로 돌아가는 길밖에는 다른 대안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성경을 읽고 그 말씀 가운데서 길을 찾고 남은 삶을 하나님께서 친히 약속하신 대로 형통하게 살아가기를 소원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말씀이 생명을 얻게 해 줍니다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장수와 건강에 신경 쓰는 민족도 없을 것 같습니다. 이는 건강식품을 만들어 내는 현실을 보면 너무나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 사람들만큼 암에 많이 걸리는 민족도 또한 없음을 봅니다. 이는 서로 이율배반적으로 맞지 않는 통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마음만 건강을 원할 뿐 현실은 전혀 건강과 상관없이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건강식품이라고 내 놓은 것들이 전부 건강을 헤치는 것으로 가짜익이 때문이고 건강은 구호로만 외치지 건강하게 살아가는 풍토를 만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밤새도록 게임에 빠진 사람이 무엇을 먹은들 건강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건강이 생활화 되지 못한 안타까운 우리들의 현실입니다.
어떤 성도님이 이 종의 건강을 생각해서 고려인삼에서 나온 인삼으로 보약을 만든 홍삼 물을 한 박스 선물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박스를 열기도 전에 신문에서 대서특필하였습니다. 그 홍삼 물에 중금속이 너무나도 많이 검출되어 그것을 먹으면 큰일 난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암도 예방하고 만병통치약처럼 선전하는 도라지 엑기스 선전이 각종 매체를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 도라지는 21년근으로 인삼보다 더 효과가 좋다는 것입니다. 이 종이 믿음이 없어서 그런지? 21년이나 된 도라지를 어디에서 그렇게 많이 구해서 저렇게 대량생산을 해 낼 수 있는지? 자꾸만 의심이 갑니다. 이렇다 보니 이 세상은 온통 불신으로 가득하게 되고 그 어떤 것도 이제는 믿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이제는 그 어떤 건강식품도 가짜일거라는 선입감이 넘쳐나 건강식품에 투자했던 모든 사람들이 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이 진짜 영원한 생명을 보장한다고 외쳐도 이제는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진짜로 우리들의 삶을 영원히 보장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뿐입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요6: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서글프게도 이 땅에 살고 있는 인생들은 오로지 오늘만 생각하지 내일을 모릅니다. 오늘 배부르면 벌떼처럼 따라다니던 사람들이 내일을 영원히 살게 해 주겠다는 주님의 말씀에는 입을 삐죽이며 다 떠나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다시는 그 주님과 함께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요6:66)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는 말씀이 그 생생한 증거입니다. 이것이 믿음이 없는 이 세대의 단면입니다. 이것은 이 종도 30년이 넘는 이민목회에서 너무나도 많이 보았습니다. 처음 이민 와서 힘들고 어려울 때에는 교회와 목사의 도움이 절심하므로 온갖 애교와 아양을 다 떨며 곁에서 알짱거리다가 조금 먹고 살기 편해졌다 싶으면 배신하는 그런 안타까운 모습들을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들이 예수님을 믿는 것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언젠가는 분명히 이 세상을 떠나야 할 때가 오는데 그 때 지옥으로 멸망하지 아니하고 영생으로 천국에서 영원히 복락을 누리기 위해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이 땅에는 예수님 없어도 돈 잘 벌어서 잘 사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빌 게이츠도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제 아무리 돈이 많아도 반드시 죽는 날이 오고, 예수님을 모르고 죽으면 지옥 형벌에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서 좀 잘 산다고 뽐낼 것도 없고 부러워 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언젠가 세상을 떠날 때 내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고 그곳에서 사도 바울과 같이 상을 받으며 영원히 사는 것을 꿈꾸고 이 땅에서는 그 소망으로 행복한 사람이 최고인 것입니다. 그렇게 하자면 영원한 생명인 구원을 받아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이 미국에서 사는 동안 영주권이 있든지 없든지 돈 벌고 사는 데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다만 영주권이 없으면 한국에서 무슨 일이 있을 때 마음대로 들어갔다 올 수 없다는 한계를 느낄 뿐입니다. 이처럼 우리들이 구원 받았든 안 받았든 이 땅에서 밥 먹고 살아가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하지만 죽을 때 천국 못가면 그것보다 더 큰 낭패가 없는 것입니다.
(눅16:22-24)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 하나이다
는 말씀과 같이 인생에게는 반드시 그 마지막 죽는 순간이 오기 마련이고 그 다음에는 지옥과 천국이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영원한 천국에서 복락을 누릴 수 있는 그 축복은 어떻게 얻을 수 있을 것입니까? 말씀이시오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요6:54-58)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예수님이 영원한 생명이시고 그 예수님이 바로 성경의 주인공이시며 곧 말씀 그 자체이신 것입니다.
(요1:1-3)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이 말씀을 읽고 믿고 따를 때 곧 예수님을 믿고 따름이 되고 그렇게 될 때 우리 속에서 천국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참 생명이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지난 4월 미국의 전국흑인교회연합회(National Black Church Initiative)가 공개적으로 성명을 내고 동성결혼을 합법하다고 결정한 PCUSA교단과는 그 어떤 교류도 하지 않는다고 선언하였습니다. 이 연합회는 1천 5백만 성도를 가진 15개 교단의 3만 4천여 교회가 속해 있는 거대한 흑인교회연합회입니다. 그들은 성명에서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금하신 일을 사람들이 모여서 옳다고 결의하는 그런 집단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인간집단에 불과하므로 우리는 그들과 그 어떤 교류도 하지 않는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참으로 옳은 판단입니다. 이와 집단에 빌붙어서 적당한 핑계를 대며 인간적인 유익이나 얻겠다고 하는 자세는 결코 주님께서 용답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에서 떠난 모든 것은 주님과 상관이 없고 주님과 상관이 없으므로 결국 영원한 생명과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서로 친하다고 하면서 밥도 같이 먹고 커피도 같이 마시며 귀한 시간을 함께 나누지만 이 이민 땅에서는 끝까지 우정과 사랑에도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은 알고 계십니까? 절대로 마음을 완전히 다 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루 종일 이야기를 해도 어느 한계까지만 하게 되지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그 마지막은 내 보이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사랑도 우정도 뿌리가 없기 때문이요 끝까지 다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문화 속에서 신앙생활을 하다 보니 신앙생활도 이렇게 하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적당하게 교회에 다니며 적당하게 봉사하고 적당하게 대우를 받으면 만족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속에 진정한 믿음이나 영생이나 천국 같은 신앙의 근본적인 접근은 어려운 것입니다. 이제 우리 이렇게 하지 말고 말씀 속으로 들어가서 우리들의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똑바로 만나 진정한 믿음으로 진정한 축복을 만들어 내고 더 나아가서 영생을 성취하는 참 신자로 거듭나야 하겠습니다. 바로 우리 그렇게 하라고 예수님께서 친히 피를 쏟으시고 살을 찢어 영원한 구원을 보장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모쪼록 오늘 5월의 마지막 주일예배로 하나님을 섬기며 말씀으로 돌아오신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은 말씀대로의 신앙생활로 가장 소중한 믿음과 축복과 영생을 성취하시기를 좋으신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 멘
주후 2015년 5월 31일
스승의 주일 낮 예배 설교 말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