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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14일 주일낮설교(이제는 행동해야 합니다!)

이제는 행동해야 합니다!

6. 14, 2015

本文:여호수아2:8-14

說敎:崔 仁 根 牧 師

할머니와 어린 손자가 함께 폐지를 주워 근근이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그 날도 손자는 뒤에서 밀고 할머니는 앞에서 당기며 폐지를 리어카에 가득 싣고 힘겹게 비틀거리며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그만 힘에 버거워 비틀거리다가 리어카로 길옆에 새워 둔 값비싼 고급승용차 옆구리를 쭉 그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것을 바라본 할머니는 망연자실하고 섰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손자는 그만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주워서 판 그 폐지로는 몇 달을 모아도 그 고급승용차의 수리비를 댈 수가 없음을 그들은 단방에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었습니다. 극과 극으로 대비되는 참담한 현실이 너무나도 그들의 눈에는 재미있었기 때문입니다. 잔뜩 실은 폐지더미와 초라하게 낡은 리어카, 그 옆에서 번쩍거리는 고급 승용차와 눈물짓고 서 있는 할머니와 어린 아이... 그 때 이 소식을 들은 차주인 내외가 쫓아 나왔습니다. 그런데 순간 너무나도 뜻밖의 광경에 모두들 귀를 의심하고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할머니 이게 뭐예요?" 하는 고함소리가 터져나오리라고 기대했던 사람들의 귓가에 너무나도 조용하고 사랑에 가득한 부드러운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입니다. "할머니, 죄송합니다. 저희들이 잘못하였습니다. 자동차를 여기에 세워 두지 말았어야 했는데 저희들 때문에 할머니 얼마나 불편하셨습니까? 놀라셨지요? 괜찮습니다. 자동차를 여기에 세워 둔 것이 우리들의 잘못이었으니 자동차는 우리들이 고치겠습니다. 아무 걱정 마시고 어서 돌아가십시오!" 하면서 할머니와 손자를 잘 달래서 보내 주었습니다. 이것을 본 사람이 "그래도 이 세상은 살아 볼만한 세상이다! 이런 훈훈한 사람들도 다 있으니..."라며 인터넷에 올렸습니다.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순간 눈시울이 뜨꺼워졌습니다. 그리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도 자동차를 무지 아끼고 좋아하는데, 과연 이 지경이 되었다면 저 사람들과 같이 할 수 있었을까?" 하고 말입니다. 결국 이와 같은 소식이 자동차 회사에까지 알려졌고 회사에서 그 사람들을 찾아나와 그 자동차를 무료로 수리해 주었다고 합니다. 우리들도 이제는 예수님을 가슴에 모신 사람답게 조금은 넉넉하고 따뜻하고 용서할 줄 아는 그런 멋있는 사람으로 변해가야 하겠습니다. 행동하지 못하는 신앙은 그 자체로 죽었고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비록 기생으로 살았지만 상황판단을 정확하게 하고 적들의 정탐꾼을 고이 숨겨주고 잘 모셨다가 기적 같은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과연 이 마지막 시대에 오늘 우리는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살아야 되겠는지? 하나의 팁을 제공해 주는 참으로 복된 모습이 오늘 본문에 가득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함께 배우고 익혀서 지혜롭게 판단하고 행동하는 멋들어진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큰 힘이 되는 말씀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제는 행동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라합이라는 주인공은 그 이름 앞에 "기생"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수2:1)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싯딤에서 두 사람을 정탐으로 가만히 보내며 그들에게 이르되 가서 그 땅과 여리고를 엿보라 하매 그들이 가서 라합이라 하는 기생의 집에 들어가 거기서 유숙하더니

(히11:31)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이었으므로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하였도다

(약2:25)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를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무엇입니까? 그녀의 근본이 그리 아름답지 않았다는 것을 묘사해 둔 말씀입니다. 하지만 그녀의 삶의 결말은 어떠했습니까? 자신뿐만 아니라 부모님, 형제들, 모든 가족들을 죽음에서 살려 낸 위대한 역사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수6:25)

여호수아가 기생 라합과 그 아비의 가족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살렸으므로 그가 오늘날까지 이스라엘 중에 거하였으니 이는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탐지하려고 보낸 사자를 숨겼음이었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라합은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받아 룻이 결혼하게 되었던 보아스를 낳았고 그 보아스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탄생하시는 위대한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마1: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비록 그의 신분이 기생이었지만 그녀의 삶은 이 세상 그 어떤 여인들도 상상하지 못하는 넘치는 축복으로 가득하였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요 우리 하나님께서 하시는 위대한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우리들의 상식과 경험만으로 인생을 살아가지 말고 오로지 믿음으로 과감하게 행동함으로 하나님께서 친히 임재하시고 역사해 주시는 그러한 생산적인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오늘 기생 라합을 통해 그 진정한 길을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자신을 보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며 평가를 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남도 또한 그렇게 들여다보고 나름 평가를 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는 우리 자신도 잘못 판단하게 될 때가 있고 다른 사람도 또한 그렇게 그릇 판단하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욕을 먹기도 하고 본의 아니게 이웃에게 피해를 끼치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것이 극단적으로는 자살로 이어지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너무 뚱뚱하다고 판단하고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싫어한다고 결론을 내린 여고생이 자신이 살고 있는 고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자살하는 경우도 여럿 있었습니다.

지난 9일 화요일에도 속옷을 입고 사진을 찍어 스마트폰으로 남자친구에게 보냈다가 아빠에게 들켜 야단을 맞고 머리까락을 잘렸습니다. 그러자 너무 수치스럽다고 판단한 소녀가 I-5 고속도로 위 고가도로에게 뛰어 내려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남자에게 속옷차림으로 사진을 찍어 보내는 것은 부끄럽지 않고 아빠에게 머리카락을 잘린 것은 수치스럽다고 여긴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늘 우리 스스로 판단하는 그 판단이 그릇된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그릇된 판단으로 빚어낸 결과는 가히 충격적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라합이라는 여인은 "기생"이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기생이라는 직업을 그리 칭찬 받을 만한 떳떳한 직업이 아닙니다. 그러한 그녀가 자신을 그렇게 부정적으로 보면서 인생을 함부로 살지 않았다는데서 오늘 우리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비록 기생이었지만 그녀는 자신의 초라한 모습으로 열등의식을 가지고 인생을 함부로 살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기생이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많은 정보를 최선으로 잘 활용한 참으로 지혜로운 여인이었습니다. 전국적으로 혹은 외국에서 드나드는 모든 사람들이 기생집으로 모였다가 흩어지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동일한 현실입니다. 그와 같은 환경을 적극 활용하여 그녀는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녀가 수집한 정보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수2:8-11)

두 사람이 눕기 전에 라합이 지붕에 올라가서 그들에게 이르러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백성이 다 너희 앞에 간담이 녹나니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라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의 연고로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하지에 하나님이시니라

그녀는 이토록 정확하게 이스라엘 백성들과 하나님의 역사적인 사건들을 모조리 꿰뚫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내 신분이 기생인 주제에 세상이 어디로 가든지 무슨 상관이냐?"며 인생을 함부로 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신분을 백분 활용하여 정보를 수집하고 그 정보에 따라 앞으로의 삶을 개척해 나갔던 위대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수천 년이 지난 믿음의 사람들이 그녀의 그와 같은 삶의 양태를 믿음이었다고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히11:31)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하였도다

(약2:25)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를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랬습니다. 그녀는 비록 기생이었지만 먼 미래를 내다볼 줄 알았던 믿음의 여인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들과 다른 점입니다. 우리는 큰 흠이 없으니까, 세상 사람들처럼 욕먹을 일을 하지 않았으니까, 엄청 자신이 의롭고 반듯한 줄로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앞날을 어떻게 살아야 하겠는지? 고민하지도 아니하고, 하나님의 절대적인 능력과 권능을 그렇게 애타도록 사모하지 않는지도 모릅니다. 오늘 우리들의 모습을 기생 라합과 대비시켜 본다면 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어렵지 않게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들의 현실에 너무 자만하지도 말아야 하겠고 또한 자신의 현실에 너무 절망하지도 말아야 하겠습니다. 어떤 현실에 처해 있던지 간에 우리들의 삶을 주관하시고 다스리시는 분은 누가 뭐래도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기생 라합과 같이 깊이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바로와 같은 크고 악한 자도 항복하고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도 단숨에 심판하시고 이스라엘의 진로를 확보 하시던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신 줄 똑바로 아는 참된 신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기생 라합과 같이 막연하게 살아계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上天下地(상천하지)의 하나님으로 당당하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그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마음의 소망을 품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상황분석을 정확하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라합은 비록 기생이었지만 스스로 좌절하지 아니하고 앞서 말씀 드린 대로 그 기생이라는 위치에서 얻을 수 있는 주변 정보를 정확하게 분석하여 그 상황에 적절하게 대처하고 있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수2:2-6)

혹이 여리고 왕에게 고하여 가로되 보소서 이 밤에 이스라엘 자손 몇 사람이 땅을 탐지하러 이리로 들어 왔나이다 여리고 왕이 라합에게 기별하여 가로되 네게로 와서 네 집에 들어간 사람들을 끌어내라 그들은 이 온 땅을 탐지하러 왔느니라 그 여인이 그 두 사람을 이미 숨긴지라 가로되 과연 그 사람들이 내게 왔었으나 그들이 어디로서인지 나는 알지 못하였고 그 사람들이 어두워 성문을 닫을 때쯤 되어 나갔으니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하되 급히 따라가라 그리하면 그들에게 미치리라 하였으나 실상은 그가 이미 그들을 이끌고 지붕에 올라가서 그 지붕에 벌여놓은 삼대에 숨겼더라

여기에서 우리는 선택이라는 엄중한 기로에 선 라합의 현실을 보게 됩니다. 우리들도 남북이 분단된 국가에서 반공을 국시의 제1호로 삼으며 살았던 백성들입니다. 과연 간첩을 집안에 숨겨 둘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그것도 이미 나라에서 왕이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찾아 온 지경이라면 더 더욱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라합은 자신의 나라의 운명이 風前燈火(풍전등화)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이미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상천하지의 하나님과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녀는 이제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었습니다. 곧 사라질 나라를 위해 정탐꾼들을 잡아 넘겨야 하는지? 아니면 정탐꾼들을 숨겨주고 그들이 훗날 쳐들어 왔을 때 은총을 입을 수 있어야 하는지? 의 선택을 해야만 하는 기로에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라합은 후자를 택했습니다. 곧 망하고 없어질 나라에 기대지 않고 새롭게 힘을 가진 이스라엘을 돕고 의지해야만 내일이 보장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녀는 분명하게 깨닫고 있었던 것입니다.

(수2:12-13)

그러므로 청하노니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즉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여 나의 부모와 남녀 형제와 무릇 그들에게 있는 모든 자를 살려주어 우리 생명을 죽는데서 건져내기로 이제 여호와로 맹세하고 내게 진실한 표를 내라

는 말씀이 이를 잘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그랬습니다. 라합은 참으로 현명한 여인이었고 그로 인해 결국 그가 분석했던 그대로 자신뿐만 아니라 온 집안 식구들을 다 구원해 내는 기적 같은 역사를 만들어 냈습니다.

(수6:25)

여호수아가 기생 라합과 그 아비의 가족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살렸으므로 그가 오늘날까지 이스라엘 중에 거하였으니 이는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탐지하려고 보낸 사자를 숨겼음이었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이와 같은 라합을 통해 인생과 신앙생활의 현주소를 똑바로 찾아야 합니다. 과연 이 세상에서 누가 내일의 우리들의 삶에 진정한 행복을 제공해 줄 수 있겠습니까? 평생 살아 왔던 여리고 성입니까? 아니면 그들을 정복하기 위해 쳐들어오려는 이스라엘의 정탐꾼입니까? 우리는 언제나 라합과 같이 이 두 사이에 끼이게 됩니다. 영원히 살 천국과 지금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 사이에 끼인 우리들의 현실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들에게는 상황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오래전에 어떤 두 여인이 같은 시기에 할리우드의 배우가 되었습니다. 한 사람은 콜린 타운센드였고, 또 한 사람은 마릴린 몬로였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타운센드양은 예수님을 믿고 할리우드를 떠나 선교 목사님과 결혼하여 주님품으로 돌아왔으나 마릴린 몬로는 계속해서 섹스의 심벌로 헐리우드에 남아 있었습니다. 어느 날 몬로는 타운센드를 만나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우리가 영화배우가 되기로 했을 때 나는 결심했지. '세상이 깜짝 놀랄 스타가 되겠다'고. 그래서 꿈을 이루었지만 너무나 비싼 대가를 치루어야만 했어. 나는 지금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하고 불행한 사람이야." 그 후 어느 날 밤 몬로는 죽었으나 타운센드는 주님을 위하여 지금도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선택이 갖다 주는 우리 인생에서 누구나 다 겪는 삶의 현실입니다. 라합과 같이 하나님을 선택할 줄 아는 고도의 지혜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용기 있는 행동으로 기적을 만들어야 합니다

정확하게 상황 분석을 끝낸 라합은 마냥 망설이고만 있지 않았습니다. 한 목숨을 내어 놓을 만큼 비장한 각오로 정탐꾼을 선택하는 마음의 결단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수2:4-6)

그 여인이 그 두 사람을 이미 숨긴지라 가로되 과연 그 사람들이 내게 왔었으나 그들이 어디로서인지 나는 알지 못하였고 그 사람들이 어두워 성문을 닫을 때쯤 되어 나갔으니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하되 급히 따라가라 그리하면 그들에게 미치리라 하였으나 실상은 그가 이미 그들을 이끌고 지붕에 올라가서 그 지붕에 벌여놓은 삼대에 숨겼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와 같은 용기 있는 라합의 행동을 후대의 조상들은 훌륭한 믿음으로 높이 평가하였습니다.

(히11:31)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하였도다

(약2:25)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를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왜 라합은 기생이었음에도 수천 년이 지난 훗날 이토록 칭송을 받는 믿음의 여인으로 기록되고 있습니까? 오직 하나, 그의 용기 있는 행동이 그녀의 믿음을 입증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녀의 그 놀라운 믿음은 과연 어디에서 왔을까요? 두 말할 필요도 없이 하나님에 관한 진리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수2:10-11)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라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의 연고로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하지에 하나님이시니라

우리는 단순하게 라합이 하나님의 역사에 관해 들었다고만 인식하게 되지만 바로 이것이 믿음을 만들어 내는 놀라운 기초가 된다는 사실은 간과하게 됩니다. 하지만 다른 성경에서는 이와 같이 하나님에 관해 듣는 것이 바로 믿음을 만들어 내는 가장 중요한 근본이라는 사실을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롬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들의 비극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루 종일 분주하고 바쁘지만 그 어디에서도 라합처럼 하나님에 관한 말씀을 들을 기회가 없다는 것입니다. 라합은 비록 여리고성에서 기생을 하며 생계를 꾸려갔지만 그곳에서 숱하게 많은 하나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너무나도 완벽하게 도덕선생님과 같이 거룩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들의 귀에 들려오는 하나님과 성경에 관한 이야기는 단 한 마디도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생을 판단하고 살아가는 지금 우리들의 불행이요 비극인 것입니다. 그나마 우리교회 성도들은 주일에도 수요일에도 또 금요일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속적으로 들을 수 있으니 라합과 같은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폐일언하고 무조건 말씀으로 들아 가야 합니다. 그 말씀을 듣고 읽으며 복된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 말씀만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영국에서 국왕 윌리엄 4세가 죽는 날 밤 궁중에 있던 처녀가 이튿날 왕으로 간택을 받았습니다. 그녀가 바로 빅토리아 여왕입니다. 그녀는 64년 동안 왕위에 있었습니다. 영국의 번영은 이 빅토리아 여왕 때 성취된 것입니다. 영국의 국기 아래 해가 지지 않던 때도 빅토리아여왕 때였습니다. 일찍이 인류의 역사상 빅토리아 여왕만큼 위대한 왕도 드물 것입니다. 그녀는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즉시로 무릎을 꿇고 성경을 폈습니다. 잠시도 자신의 품에서 떠나지 않았던 성경을 놓고 '주여, 내가 여왕이 되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정치를 하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해결했고 기도로 정치를 했습니다. 인도의 왕자 한 사람이 '그렇게 정치를 잘하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라고 묻자 성경을 펴 들고 '바로 이것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성경이 힘입니다. 다이너마이트입니다. 말씀은 영이요 생명입니다. 그래서 능력 있는 크리스챤이 되려면 말씀의 능력을 체험해야 합니다.

(히4:12-13)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는 가장 바르게 흠 없이 잘 산다고 스스로 자부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바르게 잘 살고 있기 때문에 라합과 같이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하는 위험도 없고 위기에서 자신과 가족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절박함도 없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라합의 때보다 더 큰 위험에 봉착하고 있습니다. 눈에도 보이지 않는 온갖 바이러스와 질병, 그리고 하나님께서 심판하지 않을 수 없는 온갖 비성경적인 세상의 풍조가 우리들의 목전까지 침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들이 직접 피부로 느끼는 위험이 아니라고 방관하며 하루하루 그렇게 세월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이야말로 비장하게 결단해야 할 때요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할 때요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여야 하는 때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머뭇거리지 말고 라합처럼 정탐꾼들을 데리고 지붕으로 올라가 삼단 속에 감추어야 하는 행동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적당하게 오늘을 보내면 내일은 또 그렇게 평안하게 살게 되겠지? 하는 요행을 더 이상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파괴는 건설의 기초요 위기는 하나님을 만나는 기회라는 적극적인 사고로 라합처럼 담대하게 행동하는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이 바로 이런 성도들이기 때문입니다. 모쪼록 오늘 말씀을 받고 온 정성으로 하나님께 예배자로 헌신하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은 바로 이와 같은 믿음과 행동으로 하나님의 기적을 라합같이 만들어 내는 그런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좋으신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 멘

주후 2015년 6월 14일

주일 낮 예배 설교 말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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