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21일 주일낮설교(어느 아버지의 불행과 행복)
- Details
-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Sunday, 21 June 2015 09:14
- Hits: 1157
어느 아버지의 불행과 행복
6. 21, 2015
本文:창세기37:29-35
說敎:崔 仁 根 牧 師
[두 남성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영국까지 1만2000여km를 항공기 기체 아래에 매달려 밀항을 시도했다가 한 명이 추락사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영국 경찰이 19일(한국 시각) 밝혔다.
영국 수사당국은 18일 오전 런던 히스로 공항에 착륙한 보잉 747기 기체 하단 이착륙장치에서 25~30세로 추정되는 남성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수사당국은 이 남성이 이착륙장치에 매달려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런던까지 1만2875km가 넘는 거리를 날아 밀항을 시도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남성은 무의식 상태로 발견됐으며 곧바로 런던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고 있다.
경찰 당국은 같은 날 런던 서부 지역 리치몬드 한 상가 건물 옥상에서 한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고도 했다. 당국은 이 남성이 앞서 발견된 밀항자와 함께 항공기에 매달려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항공기 항로로 미뤄볼 때 이 남성은 착륙을 위해 하강 중이던 비행기가 고도 427m 상공에 이르렀을 때 떨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시신이 발견된 건물 인근 교회에선 숨진 밀항 추정자를 위로하는 예배가 진행됐다. 예배에 참여한 한 주민은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건너오려는 이들에게 더 나은 삶을 찾는다는 것이 얼마나 절박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말했다.](조선일보 6월 19일자 기사 중에서)
참으로 이 기사를 읽으면서 가슴이 찡하게 울렸습니다. 남아공에서 볼 때 영국은 축복과 행복이 보장된 나라와 같이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목숨을 걸고 밀항을 시도했을 것입니다. 생명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를 막론하고 다 행복을 추구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또한 인간에게는 주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이 땅에서 "나는 행복합니다!" 라고 선언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습니까? 특별히 이 땅에 존재하는 그 많은 아버지들 중에서 "나는 행복한 아버지입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는 아버지는 과연 또 몇이나 되겠습니까? 오늘은 2015년도 아버지의 날입니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진정 행복을 노래하며 내일의 꿈을 안고 그렇게 복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오늘의 본문과 성경은 우리들에게 무지개를 보듯 선명하게 이에 대한 해답을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함께 의심 없이 배워서 그 길을 따라 지금이라도 더 늦기 전에 단 한 번뿐인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어느 아버지의 불행과 행복
오늘 본문에는 한 아버지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야곱입니다. 그는 아들을 자그마치 12명이나 둔 다복한 가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 보니 그는 다복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오히려 피눈물을 흘리며 가슴 아파하고 있습니다.
(창37:34-35)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니 그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가로되 내가 슬퍼하며 음부에 내려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 아비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는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감히 그 고통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비통한 것이었습니다. 12아들 중에 가장 사랑하여 멀리 떠나보내지 조차 못한 채 곁에 두고 보고 또 보아야 했던 그런 아들이 짐승에게 찢겨 죽었다는 비보와 함께 그 아들이 입고 있었던 피 묻은 옷을 손에 들고 아들의 죽음을 확인해야만 했던 아버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제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아버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과연 인생은 진정 어디에서 그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것일까요? 오늘은 한 아버지이자 한 남성으로서 불행의 눈물과 행복의 감격을 동시에 경험하며 살았던 야곱을 통해서 진정한 행복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그 해답을 함께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저 성경에 기록된 한 사람의 일이려니 하고 넘겨버리지 말고 가슴으로 받아 마음으로 묵상하며 우리들의 삶에 좋은 거울로 삼으면 행복한 삶의 새로운 길을 찾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함께 그 해답을 찾아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야곱은 많은 재물로도 행복을 누릴 수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풍성한 재물만 얻으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인 야곱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축복과 행복을 쟁취해 보려고 아버지도 속이고 형도 속인 채 머나먼 타국으로 도망가서 참으로 비참한 삶을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렇게도 사랑하는 어머니를 단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채 천국으로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를 얻기 위해 7년이란 기나긴 세월을 종처럼 섬겼지만 사기를 당해 원치 않는 아내랑 결혼해야만 했었고 결국은 또 다시 7년이란 세월을 더 종살이를 해 주어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그는 무려 22년이란 세월을 사기를 당하며 종처럼 생존해 나가야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하여 꿈에도 그리던 풍성한 재물 얻는데 만 치중하였습니다. 그러기 위해 그 또한 외삼촌을 속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뜻하는바 목적은 이루어 마침내 거부가 되었지만 이로 인해 그는 또 다시 위기를 겪어야만 하였습니다.
(창31:1)
야곱이 들은즉 라반의 아들들의 말이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고 우리 아버지의 소유로 인하여 이같이 거부가 되었다 하는지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결국 자신의 재물이 풍성해지는 이유가 외삼촌의 가솔들에게 들어나고 만 것입니다. 할 수 없이 야곱은 그 모든 재물을 챙기고 식구들을 챙겨서 야반도주라도 해야만 했습니다. 과연 이와 같은 여정이 야곱에게 진정한 행복이었을까요? 결국 이와 같은 사실을 알아차린 외삼촌 라반이 도망간 야곱을 잡기 위해 군사들을 이끌고 야곱을 추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창31:21-23)
그가 그 모든 소유를 이끌고 강을 건너 길르앗 산을 향하여 도망한지 삼일 만에 야곱의 도망한 것이 라반에게 들린지라 라반이 그 형제를 거느리고 칠일 길을 쫓아가 길르앗 산에서 그에게 미쳤더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왜 라반은 무려 7일 동안을 밤낮으로 야곱을 추격해 갔을까요? 틀림없이 야곱에게 보복하려고 그랬던 것입니다. 오죽하면 하늘의 하나님께서 친히 나타나시어 라반의 이와 같은 보복을 가로 막으셨겠습니까?
(창31:24)
밤에 하나님이 아람 사람 라반에게 현몽하여 가라사대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 간 말하지 말라 하셨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처럼 분노한 라반의 보목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천신만고 끝에 이처럼 라반의 보복을 면했지만 야곱의 앞에는 또 다른 근심 걱정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22년 전에 자신이 속이고 축복을 가로채 나왔던 형 에서였습니다.
(창32:11)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 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하옴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냄이니이다
라는 야곱 자신의 기도와 같이 그는 실로 에서를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그 많은 재물이 결코 그에게 진정한 행복을 갖다 주지 못했습니다. 그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에서나 그를 7일 동안 추격해 왔던 라반 같은 인물들은 한결같이 야곱 자신이 만들어 놓은 대적들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들이 배울 수 있는 중요한 한 가지 교훈은 재물과 성공이 좋기는 하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이루지 못했을 때는 얻은 그 재물과 성공 때문에 더 비참해 질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재물이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야곱의 젊은 날의 성공을 바라보면서 피부로 절감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가지는 큰 착각 중에 하나는 물질을 많이 소유하면 행복할 줄 아는 것입니다. 이란의 팔레비왕은 우리나라 예산의 3년분에 해당한 돈을 축재해 두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결코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대통령 자리에서 쫓겨나 망명 다닐 때에 가발을 쓰기도 하고 수염을 붙였다 땠다 하기도 하고, 눈알을 까맣게
도 하고 노랗게도 하며 이리저리 피해 다니다가 결국에는 암에 걸려 Chicago 어느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수술비용도 못낸 채 비참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그가 탐심과 사심을 버리고 정치를 바로하고 올바른 사람이 되었다면 얼마나 존경받는 인물이 되며 더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이는 우리나라 전두환 전 대통령만 보아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돈을 숨겨 두고도 한 푼도 써보지 못한 채 온 백성들의 비난을 받으며 늙어가고 있으니 이 보다 더 불쌍한 삶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돈이 결코 행복의 수단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똑똑히 보여주는 실제적인 현상을 이 두 사람보다 더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들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만들어 줄까요?
사랑하는 여인도, 자식들도 행복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우리는 앞서 야곱이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을 얻기 위해 7년이란 세월을 보냈었고 그것마저도 사기를 당하여 또 다른 7년을 더 종살이를 하였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창29:25-27)
야곱이 아침에 보니 레아라 라반에게 이르되 외삼촌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행하셨나이까 내가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께 봉사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 어찜이니이까 라반이 가로되 형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는 바이라 이를 위하여 칠일을 채우라 우리가 그도 네게 주리니 네가 그를 위하여 또 칠년을 내게 봉사할지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는 야곱이 사랑하는 한 여인을 얻기 위해 무엇을 지불하였는가를 알 수 있는 귀한 자료가 됩니다. 그래서 결국은 야곱이 그 사랑하는 여인을 14년이란 세월 동안 종살이를 하고 자신의 아내로 얻었습니다. 이제 야곱은 얼마나 행복했겠습니까? 하지만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사랑하는 그 여인이 자신의 아이를 해산하다가 죽었기 때문입니다.
(창35:17-19)
그가 난산할 즈음에 산파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라 지금 그대가 또 득남하느니라 하매 그가 죽기에 임하여 그 혼이 떠나려할 때에 아들의 이름은 베노니라 불렀으나 그 아비가 그를 베냐민이라 불렀더라 라헬이 죽으매 에브랏 곧 베들레헴 길에 장사되었고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14년이란 긴 세월을 투자하며 종노릇하고 얻었던 그렇게도 사랑하던 라헬이 이렇게도 일찍 죽었으니 야곱의 고통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래서 그는 그 라헬을 대신하여 그 라헬이 낳아 준 요셉과 베냐민을 유별나게 사랑하였던 것입니다. 열 두 아들들 중에서 유달리 이 두 아들을 사랑하므로 배 다른 큰 형들이 그 요셉과 베냐민을 유별나게 미워하는 빌미를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결국은 그렇게 질투하던 형들이 그 요셉을 타국으로 팔아버리고 아버지에게는 짐승이 찢어 죽였다고 허위 보고를 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내용이 바로 여기에서 나왔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은 더 많이 사랑했던 라헬과 요셉 때문에 더 큰 고통을 당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 세월이 무려 13년이나 되었던 것입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우리들이 스스로 쟁취한 행복이 우리들에게 더할나위 없이 큰 고통도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들에게는 반드시 절대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한 것입니다. 할렐루야!
병태가 등산을 갔다가 요술램프를 주웠습니다. 병태는 그 자리에서 요술램프를 문질렀습니다. 그러자 당연히 펑하는 소리와 함께 지니가 나와서 소원 3가지를 말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병태는 망설이지 않고 돈 많고 예쁜 여자와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지니는 너무 길다고 싫어하며 간단하고 짤막하게 다시 대답하라고 일렀습니다. 그러자 병태는 얼른 돈, 여자, 결혼이라고 외쳤습니다. 병태의 소원대로 지니는 허락하고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병태는 머리 돈 예쁜 여자와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허망한 인생들이 속절없이 행복할거라고 소원하는 어리석은 삶의 현실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 옵니다
야곱의 인생은 숱한 고통과 눈물로만 범벅이 되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어린 나이에 타국으로 도망가서 그렇게도 사랑하던 어머니의 임종조차도 볼 수 없었던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남도 아닌 외삼촌으로부터 10번이 넘는 사기를 당하였고 천신만고 끝에 결혼을 하고 부귀를 얻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자신의 인생 여정에 행복이 아닌 씻을 수 없는 고통의 불씨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나이 130살이 될 때까지 행복이라는 단어를 잊어야만 했었습니다.
(창47:9)
야곱이 바로에게 고하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 삼십 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라는 말씀과 같이 그야말로 야곱의 인생 여정은 "험악한 것" 그 자체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야곱의 인생만 이렇게 되었을까요? 오늘날 우리들은 진정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거의 모든 아버지들의 인생 역정이 야곱과 거의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고백이요 탄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천당이 올 때까지 자식들을 사랑하는 아버지는 볼 수 있지만 늙어가는 부모님 때문에 마음 아파하는 자식들을 보기는 하늘의 별과 같은 이 마지막 때를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험악한 세월만 보내고 살던 야곱의 인생 말년에 꽃처럼 활짝 핀 행복이 찾아왔습니다.
(창45:25-28)
그들이 애굽에서 올라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서 아비 야곱에게 이르러 고하여 가로되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 있어 애굽 땅 총리가 되었더이다 야곱이 그들을 믿지 아니하므로 기색하더니 그들이 또 요셉이 자기들에게 부탁한 모든 말로 그 아비에게 고하매 그 아비 야곱이 요셉의 자기를 태우려고 보낸 수레를 보고야 기운이 소생한지라 이스라엘이 가로되 족하도다 내 아들 요셉이 지금까지 살았으니 내가 죽기 전에 가서 그를 보리라
는 말씀과 같이 죽은 줄로만 알고 지옥과 같은 세월만 보내고 있던 야곱에게 그렇게도 사랑했던 아들 요셉이 살아 있다는 낭보가 날아들었기 때문입니다. 살아 있을 뿐만 아니라 당대의 최강국이었던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어 있다는 엄청난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때의 야곱의 기쁨은 과연 어느 정도였을까요? 이 땅에 있는 인간의 언어로는 더 이상 표현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랬습니다. 야곱은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는 것처럼 황홀하였고 만족하였고 행복하였습니다. 당장에 그 아들이 있는 애굽으로 온 식구들을 이끌고 이민 가서 죽는 날까지 그렇게도 사랑하는 아들 요셉의 효도를 받으며 무려 17년 동안이나 더 없는 만족과 행복을 누리며 그는 인생을 만끽하였던 것입니다. 야곱이 인생 말년에 누렸던 이와 같은 엄청난 행복은 과연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두 말할 필요도 없이 그것은 바로 하늘의 하나님께서 주신 놀라운 축복이었습니다. 요셉이 그렇게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의 축복이었고 요셉이 아버지 야곱을 그렇게도 지극 정성으로 섬길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이것은 설교하는 목사가 적당하게 추측하여 내린 결론이 아닙니다. 당사자인 요셉이 남긴 고백입니다.
(창45:5)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행복을 추구하고 잘 살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야곱과 같이 재물을 얻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고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기를 꿈에도 소망합니다.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해 자식을 낳고 기릅니다. 하지만 그들의 말년이 야곱처럼 행복한 사람은 그렇게 많지가 않습니다. 한결같이 야곱이 겪었던 것과 같이 재물이 진정한 행복을 만들어 줄 수 없고, 사람이 영원히 곁에 머물 수 없다는 한계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믿는 성도들은 가슴으로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들을 지키시고 우리들의 행복을 보장해 주실 분은 오직 한 분 하나님뿐이시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것을 인정하고 그렇게 하나님을 의지하며 묵묵히 남은 삶을 하나님만 바라보는 사람들을 진정한 신자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중국의 한 유명 여류 극작가가 뉴욕을 방문하고 가장 가슴에 와 닿았던 한 사건을 기사화해서 인터넷에 올렸습니다. 그 극작가는 뉴욕의 거리 한켠에서 꽃을 팔고 있는 노인 한 분을 만났습니다. 노인은 가난하고 초라해 보였습니다. 복장은 허름했고 얼굴에는 주름이 깊게 패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얼굴 전체에 항상 행복한 웃음꽃이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노인을 '행복한 할머니"라고 불렀습니다. 바로 이것이 중국에서 온 극작가의 마음을 두드렸습니다. 어떻게 거리에서 온갖 더러운 먼지와 매연을 다 마시며 꽃이나 팔고 있는 저 할머니가 저렇게도 만족한 미소를 띠며 행복해 할 수가 있겠는가? 하는 의구심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극작가는 노인에게 조용히 다가가 물어보았습니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나 보지요?" 노인은 특유의 밝은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습니다. "내게 행복의 비결이 하나 있지요" 노인의 말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이 나이에 어찌 좋은 일만 있겠습니까? 고통을 당할 때마다 저는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금요일 날 십자가에 못 박히는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사흘 만에 부활의 새벽을 맞지 않았습니까. 저는 고난이 다가올 때마다 마음속으로 '사흘만 기다리자"고 다짐 합니다.그때부터 제 삶이 한결 행복해 졌어요." 노인이 누리는 행복의 근원은 부활의 주인공이셨던 예수님이었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이 땅에 아버지 없이 존재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버지를 제대로 이해하고 섬기며 사랑하는 근본이 되어 있는 자녀들은 그렇게 많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시대를 불행한 시대요 마지막 때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는 이와 같은 불행한 징조가 나타날 것이라고 성경이 예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딤후3:1-6참조). 오늘 우리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인정받는 신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우선 눈에 보이는 육신의 아버지부터 제대로 섬겨 행복한 말년을 보내실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버지들도 오늘 본문 말씀을 가슴에 품고 인생 말년에 누릴 수 있는 진정한 축복은 요셉처럼 자녀들이 잘 되는데 있음을 깨닫고 자녀들의 신앙생활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요셉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모들이 온 몸으로 믿음의 모범을 보이며 영적인 삶으로 하나님께 보험을 들어 놓듯 신앙생활을 제대로 잘 해야만 합니다. 그렇게 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주셨던 축복을 오늘 우리들에게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모쪼록 오늘 말씀을 받으며 주일 예배자로 하나님께 헌신하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성도들은 야곱과 같은 말년을 맞으시고 요셉과 같은 자식을 두시어 야곱처럼 행복한 삶으로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려드리시기 바랍니다. 2015년도 아버지의 날을 맞아 평생토록 자식들 뒷바라지 하느라 등허리가 굽어져버린 우리 모든 아버지들에게 주님만이 주실 수 있는 평안과 위로와 내일을 향한 소망이 가득하시기를 좋으신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 멘
주후 2015년 6월 21일
주일 낮 예배 설교 말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