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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12일 주일낮설교(여호와 이레)

여호와 이레

7. 12, 2015

本文:창세기22:1-14

說敎:崔 仁 根 牧 師

지난 2013년 무슬림 국가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이란에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하였습니다. Hassan Rouhani 대통령이 바로 그 장본인입니다. 그는 그 어느 대통령보다 기독교와 소수 종교에 대해 핍박을 가하고 있고 투옥과 사형까지 서슴지 않는 극단주의 무슬림 신봉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에 이와 같은 정책에 따라 가정교회를 책임진 기독교 지도자 누신이라는 여인은 단지 기독교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체포되었고 독방에 수감되었습니다. 그녀는 미국 오픈도어선교회에 훗날 다음과 같은 자신의 그 때의 상황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나는 감옥에 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그들의 손에 체포되어 끌려갔고 너무나도 더럽고 냄새나는 독방에 투옥되었습니다. 철창으로 된 독방에서 고문을 당하고 그 고문을 이기지 못해 가정교회 성도들의 정보를 넘겨주게 될까봐 너무나도 두려웠습니다." 고 말입니다. 그런데 너무나도 놀랍고 신기한 뜻밖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독방으로 심문관이 3일 동안 줄곧 찾아와 심문을 하려고 했었는데 그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 심문관이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란에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만 하여도 투옥되거나 사형이 되고 저 혼자서 예수님을 믿어도 누신처럼 감옥에 투옥되는데 그를 심문하는 심문관에게 예수님 이야기를 했다는 사실 그 자체가 기적이요 그 복음을 듣고 심문관이 예수님의 사람으로 개종하였다는 사실은 더 큰 기적 그 자체였던 것입니다. 미국 국제종교자유위원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앞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지난 2013년 하산 로우하니 대통령이 들어서고 나서 엄청나게 기독교와 소수 종교에 대한 탄압의 빈도가 많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란 정부는 조직적으로 소수 종교에 대해 탄압하고 구금, 고문, 사형을 일삼고 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때에 구금한 자를 심문하러 왔던 심문관이 개종하였다는 사실은 결코 사람의 역사라고 볼 수 없는 기적 그 자체인 것입니다. 눈에도 보이지 않는 하늘의 하나님께서 "여호와 이레"로 역사하셨다는 것 외에는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 이레의 기적은 창세기에만 등장하는 고유명사가 아닙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그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이처럼 기적 같이 역사하시고 계십니다. 실제로 IS(이슬람 국가)의 잔인한 무장 세력들이 자고세면 폭력과 살인을 일삼고 있는데 그런 IS의 무장 세력에게도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기독교인들을 잡아 잔인하게 살해해 왔던 한 IS의 수니파 무장지도자에게 흰옷을 입은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네가 내 백성들을 살해하고 있다."는 말씀을 주셨던 것입니다. 그 일 이 후 이 잔인한 무장지도자가 회개하고 예수님의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누가 뭐래도 마지막 때입니다. 이런 마지막 때에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성도들에게 초자연적인 역사로 임재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기적 같은 역사를 일으키고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역사를 창세기로 돌아가서 재확인하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을 신선하게 변화시켜 가는 기적을 만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이레

중국 내륙 오지에서 일생을 바쳐 선교의 전초기지를 만들었던 Hudson J. Taylor 선교사는 평생 "여호와 이레"와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선교의 좌우명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고 함께 해 주시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일은 전혀 불가능한 것입니다. 이 종도 부산, 서울, 미국에서 40년이 넘도록 주님의 일을 해 오고 있지만 100% 하나님의 은혜요 인도하심이요 도우심이었음을 숨김 없이 고백합니다. 어찌 이것이 주의 종들에게만 해당되는 고백이겠습니까? 오늘과 같은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고백이요 또한 바램일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하시는 기적을 보며 끝까지 승리할 수 있겠는지? 이것은 오늘 우리 모두의 숙제요 또한 바램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함께 그 길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우리 인생의 본질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아브라함은 원래 우상장사를 하며 살아갔던 아버지 데라에게서 태어나 우르에서 자라났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이 살아가던 그를 하나님께서 친히 불러 내셨습니다.

(창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세상과 죄악의 땅인 우르에서 무조건 불러내셨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에게 축복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창12:2-3)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우리들도 아브라함과 똑 같이 이 세상에서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도 모른 채 살아가던 죄인들이었습니다. 그와 같은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친히 불러내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교회라는 특별한 곳에서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축복을 누리도록 구별하셨던 것입니다. 원래 교회라는 말의 원어는 "에클레시아"입니다. 에클레시아라는 말은 '밖으로'라는 전치사 "에크"와 '부른다'는 말 "칼레오"의 합성어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부르심을 받은 무리"라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을 우상과 죄악의 땅 우르에서 불러내신 것과 꼭 같은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우리들을 우리들의 의지와는 상관도 없이 세상에서 이처럼 친히 불러내신 것일까요? 두 말할 필요도 없이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풍성한 축복을 누리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부름 받아 나온 우리 성도들은 그렇지 못한 채 세상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보다 엄청난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들이 미련하고 우매하여 그 축복의 가치를 모르기 때문에 우왕좌왕하며 사는 것이지 그것을 분명히 깨닫고 안다면 결코 그렇게 살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꾸준히 배우고 깨닫는 훈련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오랜 세월 목회를 해 보며 똑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도 그 말씀을 꿀처럼 받아먹고 믿음이 자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데 학벌이나 재산이나 성별의 차이가 있는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반대로 아무리 가르쳐 주어도 여름 메마른 잔디에 물을 주듯이 겉으론 촉촉한 것 같은데 속 깊은 곳에는 전혀 물이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 흘러내리는 것과 같이 말씀이 가슴 속 깊은 곳에 이르지 못한 채 다 흘려버리는 교인들이 있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신앙생활의 처음과 나중은 한결같이 다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 스스로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뜻입니다.

앞서 말씀 드렸던 심문관이 복음을 듣고 개종하게 된 사건이나 그렇게도 잔인하던 IS의 무장 세력들이 꿈속에 나타나신 예수님을 보고 개종하여 예수님의 사람이 된 경우는 한결같이 사람의 능력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은 말씀 하나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행16:13-15)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 문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더니 두아디라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 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가로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있게 하니라

이 말씀에서 우리는 확실하게 한 가지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이 전하지만 그것을 깨닫고 변화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오늘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원래 아브라함처럼 세상에서 우상을 섬기며 그렇게 살았던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무런 조건도 없이 우리들을 그 속에서 불러내시고 하나님의 사람들이 될 수 있도록 교회의 성도들이 되게 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들에게 보다 더 복된 삶을 살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을 해야 합니다

이제 하나의 숙제가 있습니다.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불러내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시고 풍성한 축복을 주셨다면 그렇게 복을 받은 신자로서의 사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인지 아브라함을 통하여서 구체적으로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창17:1-5)

아브람의 구십 구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 하시니 아브람이 엎드린대 하나님이 또 그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

여기에서 우리는 크게 두 가지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언약이 체결되었다는 사실이요, 하나님께서 그 언약을 따라 아브라함의 이름을 바꾸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아브람이 아니라 아브라함으로 그 이름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아브람"은 "높은 아버지"란 뜻입니다. 그런데 바꾸어 주신 이름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우리 인간은 그 누가가 되었던지 간에 홀로 위대하고 고귀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그 삶이 모든 사람들에게 희생되어지고 유익을 주게 될 때 비로소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든, 믿지 않든 간에 사람은 그 하나 하나가 다 고귀합니다. 하지만 그 고귀한 생명을 가지고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하여 산다면 그 얼마나 안타깝고 허무 하겠습니까? 하지만 한 알의 밀알과 같이 그 소중한 생명으로 더 많은 생명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며 산다면 그 얼마나 더 위대하고 숭고해지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아브람과 같이 홀로 위대하던 삶을 아브라함과 같이 모든 사람들을 위해 위대하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렇게 하라고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 인생들과 언약을 체결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언약은 반드시 지켜야만 합니다.

(창17:9)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고 하나님은 친히 엄명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오늘 우리들이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믿음의 덕목은 바로 "순종"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나온 우리 모든 성도들은 단 한 사람도 예외가 없이 순종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순종하지 않을 때 우리들은 뜻하지 않은 고통을 당하게 되고 하나님과의 관계 또한 끊어지고 밥니다. 그 대표적이 인물이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이었습니다.

(삼상15:22-23)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지난 토요일(7월 4일)에 우리교회 중고등부 아이들이 Ice Cave로 소풍을 다녀왔습니다. 바로 그 다음 날인 7월 5일에 그곳 동굴이 더위에 녹아내리면서 무너져 한 사람이 죽고 여섯 사람이 크게 다치는 사고가 났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그곳에는 "위험하니 동굴 속에는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날씨는 덥고 동굴 속에는 시원하며 그 속에 무엇이 있는지 호기심이 있으므로 무심코 경고를 무시한 채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아는 것입니다. 얼음으로 된 동굴이므로 기온이 상승하게 되면 무너져 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러므로 방문객들의 안전을 위해 경고문을 세워 두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무시하고 들어가게 되면 그와 같은 불행한 사고를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똑 같은 원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오늘과 내일을 그 누구보다 더 잘 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에게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무엇은 하고 또 무엇은 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성경책입니다. 오래 전에 먼저 주신 언약을 우리는 구약이라고 하고 최근에 새롭게 주신 언약을 우리는 신약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신 이와 같은 약속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엄청난 축복을 보장해 주시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렇게 순종하고 풍성한 축복을 전무후무하게 받았던 인물이 바로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아브라함입니다.

순종만이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만들어냅니다

하나님은 인류 최초로 아브라함과 언약을 체결하시고 순종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순종하면 놀라운 축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창17:6-8)

내가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니 나라들이 네게로 좇아 일어나며 열왕이 네게로 좇아 나리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고 말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몇 절의 문자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예나 지금이나 실로 엄청난 축복입니다. 그런데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 언약을 순종하고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창17:9)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실제로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는지 아닌지를 시험해 보셨습니다. 그 시험이 바로 오늘 본문의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것입니다.

(창22:1-2)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마치 생각이 하나도 없는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이 말씀에 一言半句(일언반구)도 없이 묵묵히 순종하여 3일 동안이나 걸어서 모리아산으로 갔고 거기에서 장작을 벌려 놓고 아들 이삭을 잡아 결박하고 그 장작더미에 올려놓고 칼을 들어 아들을 내리치려고 합니다. 오히려 놀란 것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창22:10-12)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하매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순종에 대한 테스트에서 이처럼 100% 합격하였던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전무후무하게 축복을 주셨으니 그것이 바로 오늘 말씀의 제목인 "여호와 이레"의 축복이었습니다.

(창22:14)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하신다"는 뜻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우리들에게 필요한 그 모든 것들을 하늘의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해 주신다면 무엇이 문제이겠습니까? 그런데 아브라함에게는 그랬습니다. 무자하던 그가 나이 100살에 아들을 얻었던 것으로부터 무엇 하나 하나님께서 준비해 주시지 않은 것이 없는 모자람이 없는 기적 같은 인생을 살았습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 그에게 보장하신 축복을 보면 두 입이 떡 벌어집니다.

(창22:17-18)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그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여호와 이레의 축복입니다. 이 땅에 그 누가 아브라함과 같이 복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사는 날 동안 영육 간에 받은 축복도 그렇지만 하늘의 하나님께서 친히 그를 "벗"이라고 불러 주셨으니 더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습니까?

(사41:8)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나의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약2:23)

이에 경에 이른바 이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이처럼 높여주시고 모든 필요를 채워주실 뿐만 아니라 영원한 생명까지도 보장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이제는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탈피하여 하나님과 이처럼 아름다운 관계를 회복하고 여호와 이레의 은총을 누리는 참신한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늘 말로만 듣고 알고 있었던 고귀한 말 "여호와 이레"의 은총을 오늘은 자세히 말씀 속에서 공부해 보았습니다. 참으로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고귀한 말씀입니다. 우리들도 이제는 이처럼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온 몸으로 받아 누려야 하겠습니다. 우리 그렇게 하라고 하나님은 아무런 조건도 없이 우리들을 우르와 같은 세상에서 친히 불러주시고 약속의 말씀으로 우리들을 먹이시며 오늘에 이르도록 인도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오직 하나 아브라함처럼 무슨 말씀을 주시든지 순종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그 말씀 순종하다가 망하게 하시려고 명령을 주시지도 않습니다. 그 말씀이 우리들에게 건강을 주고 평안을 주고 생명이 될 것이기 때문에 순종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순종하고자 하면 순종할 수 있는 능력 또한 하나님께서 친히 제공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단순히 "나도 아브라함처럼 순종하겠다."는 야무진 결단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에 열심히 출석하고 마음 귀를 기울이며 말씀을 경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쪼록 오늘 귀하고 복된 아버지의 날에 예배자로 구별되어 하나님 앞에 나아온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은 아브라함과 같이 순종하고 아브라함과 같이 복을 받아 누리는 그런 멋들어진 심령들이 되시기를 좋으신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 멘

주후 2015년 7월 12일

주일 낮 예배 설교 말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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