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빌립보장로교회

-- 성령의 열매맺는 교회 --

Sat05182024

Last update12:00:00 AM

Font Size

Profile

Menu Style

Cpanel
Back You are here: Home 말씀과예배 설교 읽기 2015년 7월 19일 주일낮설교(여호와 살롬)

2015년 7월 19일 주일낮설교(여호와 살롬)

여호와 살롬

7. 19, 2015

本文:사사기6:19-24

說敎:崔 仁 根 牧 師

1888년 한 유명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다이나마이트를 만든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다이나마이트를 제조한 다음에 일약 당대에 명사가 되었고 수많은 돈을 벌고 사람들의 관심과 촉망을 받는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가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나 언제나 하던 버릇처럼 신문을 펴서 기사를 읽기 시작하는데, 깜짝 놀랄 만한 기사를 발견했습니다. 그 서두에 자기가 죽었다는 기사가 쓰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신과 제가 만일 당신과 저의 죽음을 알리는 신문 기사를 읽는다면 우리는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요? 그 신문 기사의 보도는 이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세계 최초로 다이나마이트를 발명한 유명한 알프렛트 노벨이 죽다." 이 기사를 읽은 그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실 자기 동생이 죽었는데, 기자들이 혼돈하여 자기가 죽은 것으로 보도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사망 기사 앞에서 이 사람은 깊은 침묵과 말할 수 없는 도전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수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폭탄을 만들어서 재물을 얻었고 명성을 얻었지만, 결국 내 인생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나고 마는 것이 아닐까? "많은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폭탄을 만든 제조업자가 드디어 죽다"라고 보도한 신문을 찢어 버리면서 그는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결심을 합니다. 그는 가장 먼저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훗날 그는 하나님과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재산을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저 유명한 노벨상인 것입니다. 알프렛트 노벨의 이름을 따서 아웃의 평화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에게 지금까지 지급하고 있는 노벨 평화상인 것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것이 이 세상에서도 최고의 상이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너무나도 유명한 한 말씀이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여호와 살롬"이라는 말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은 평화"라는 뜻입니다. 기드온이라는 사람이 하나님을 직접 뵈옵고, "이제 나는 죽게 되었구나!" 하고 탄식할 때 "걱정하지 말라, 너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는 하나님의 사자의 음성을 듣고 그곳에다 단을 쌓고 선포한 말이 바로, "여호와 살롬"이었던 것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었던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으로 죽지 않게 되었기에 그는 그렇게 하나님께 감사 제사를 드리고 선포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평화"라고 말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기드온과 같이, 노벨과 같이 죽지 않는 길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후대에 길이 선포하여야 하겠습니다. "여호와 살롬"이라고 말입니다. 그 길은 과연 무엇인지 함께 공부하면서 은혜 받도록 하겠습니다.

여호와 살롬

원래 "살롬"이라는 히브리말은 "평화, 평안"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서로 인사할 때 손을 높이 들고 "살롬"이라고 외칩니다. "평화가 있을지어다!"고 축복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드온은 "여호와 살롬"이라고 선언하였습니다. 과연 하나님은 평안의 하나님이시요, 평화의 하나님이실까요? 거의 모든 성도들이 이와 같은 질문을 받으면 "그렇습니다!"고 의심 없이 대답할 것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먼저 오늘 성경 말씀으로 돌아가서 그런지 아닌지부터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삿6:1-4)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칠년 동안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붙이시니 미디안의 손이 이스라엘을 이긴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을 인하여 산에서 구멍과 굴과 산성을 자기를 위하여 만들었으며 이스라엘이 파종한 때면 미디안 사람, 아말렉 사람, 동방 사람이 치러 올라와서 진을 치고 가사에 이르도록 토지 소산을 멸하여 이스라엘 가운데 식물을 남겨두지 아니하며 양이나 소나 나귀도 남기지 아니하니...

어떻습니까? 이 말씀을 읽고 나서도 "여호와 살롬" 즉 "하나님은 평안이시다"고 고백할 수 있겠습니까? 결코 아닐 것입니다. 미디안이 쳐들어와 이스라엘을 괴롭히니 그들에게 평화는커녕 죽음과 같은 고통만 넘쳐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들이 흔히 부엌에서 쓰고 있는 칼과 같습니다. 선한 요리사의 손에 칼이 들려졌을 때는 그보다 더 값진 보물이 없을 만큼 각종 산해진미를 만들어 내지만 그것이 악한 살인마의 손에 들려졌을 때는 고귀한 생명을 다 죽이게 됩니다. 이렇듯 우리 하나님도 우리들이 그 하나님과 어떠한 관계를 형성하느냐에 따라 축복과 평안이 될 수도 있고 미디안들에게 고통당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고통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피상적으로 하나님을 알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그 귀하신 하나님이 축복과 평안이 될 수 있는지 바로 알고 바로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본문으로 돌아가서 하나님을 똑바로 배우고 언제나 "여호와 살롬"으로 우리 곁에서 평화를 제공해 주시는 복되신 하나님으로 모실 수 있도록 마음을 열고 공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한국에서 미국을 처음 방문하는 방문객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공항에서 내리자 말자 입국심사대 앞에 서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커다란 현수막이 붙어 있습니다. 거기에는 "미국을 방문하신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고 써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무섭게 앉아서 심사를 하는 심사관들은 모두가 생전 처음 보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어떤 사람에게는 매우 친절하게 반겨줍니다. 하지만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엄청나게 무섭게 대하고 끝내는 미국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섭니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기준이 무엇입니까? 두 말할 필요도 없이 합법적으로 비자를 받았거나 미국이 요구하는 노비자에 합당한 패스포트나 모든 조건을 갖추었는가 아닌가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 심사관이 결코 개인적인 안면이나 감정으로 누구는 환영하며 받아주고 누구는 거절하여 입국을 거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와 같은 개념으로 우리 하나님을 생각하면 우리 하나님께서 누구에게 평화와 축복이 되시고 누구에게 심판과 저주를 주시는지 보다 쉽게 이해를 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근본 성품이 공의로우신 분이시라 누구는 더 이뻐해 주시고 누구는 더 미워하시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바로 믿고 바른 신앙을 가진 사람은 그 누구를 막론하고 은총과 구원을 누리게 되나 그 반대로 하나님의 근심거리가 되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불순종하게 되면 하나님은 그 누가 되었던지 간에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왕도 없고 지도자도 없이 오로지 사사들만 활동하던 그 시대에 어리석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만이야 하나님을 떠나 자기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삿17:6)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삿21: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진노하시고 주변국들을 강성케 하시고 이스라엘을 고통스럽게 하도록 유기해 두셨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6장 본문의 내용입니다. 미디안이라는 악한 나라를 강하게 만드시고 그 악한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행하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많은 고통을 당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산에서 구멍과 굴과 산성을 만들고 숨어서 간신히 생명만 보존을 받았으며 제대로 된 파종조차 할 수 없는 비참한 삶을 유지해 나갔던 것입니다.

(삿6:1-4)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칠년 동안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붙이시니 미디안의 손이 이스라엘을 이긴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을 인하여 산에서 구멍과 굴과 산성을 자기를 위하여 만들었으며 이스라엘이 파종한 때면 미디안 사람, 아말렉 사람, 동방 사람이 치러 올라와서 진을 치고 가사에 이르도록 토지 소산을 멸하여 이스라엘 가운데 식물을 남겨두지 아니하며 양이나 소나 나귀도 남기지 아니하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지금 우리들의 조국 대한민국에서는 연평해전에서 전사한 꽃 같은 젊은이 6명을 기리며 영화를 만들어 그들의 전사를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지난 2002년 6월 29일, 한국에선 월드컵으로 온 나라가 거기에 열광하고 있을 때 연평도를 지키던 우리 해군함정이 느닷없는 북한군의 공격을 받고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그 뜻밖의 공격으로 아름다운 우리 장병 6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국무총리, 대통령 등 그 누구도 그들의 장례식장에 나타나지 않았고 보상금이라고 고작 3만 불이 지급되었습니다. 그런데 작년 봄 수학여행을 가다가 배가 침몰되어 사망한 학생들에게는 90만 불을 지급하고 국회가 특별법을 만들어 온갖 지원과 혜택을 주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대한민국 백성이라면 그 누구라서 감히 이해나 할 수 있겠습니까? 나라가 이처럼 시류에 따라 공평하지 못하기 때문에 삶이 힘들고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과연 이것이 단지 우리 대한민국에서만 그렇겠습니까?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 그 어디에 가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서글픈 현상입니다. 지금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미국은 어떻습니까? 동성결혼을 하겠다는 사람들에게는 이성결혼과 동일한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고 하면서 온갖 세금까지도 혜택을 주면서 그들이 불평등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나라가 일어나 법을 제정하고 보호하면서도 우리들이 전통적으로 지켜 오는 신앙은 무시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법이고 그것을 우리는 지켜야 하므로 그들의 비신앙적인 그와 같은 법과 행동을 따를 수 없다고 하면 처벌을 받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 세계에서는 결코 공의가 정의롭게 살아날 수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러한 땅에 심판을 주시고 고통을 주시는 것입니다. 생전 들어보지도 못했던 바이러스인 에볼라가 아프리카를 강타하고 매르스가 대한민국을 울려 놓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그 어떤 개인이나 나라는 반드시 미디안을 만나게 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 어느 때 그 어떤 경우에도 피할 수 없는 심판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역사는 이것을 가장 분명하게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대하36:16-21)

그 백성이 하나님의 사자를 비웃고 말씀을 멸시하며 그 선지자를 욕하여 여호와의 진노로 그 백성에게 미쳐서 만회할 수 없게 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갈대아 왕의 손에 저희를 다 붙이시매 저가 와서 그 성전에서 칼로 청년을 죽이며 청년 남녀와 노인과 백발노옹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였으며 또 하나님의 전의 대소 기명들과 여호와의 전의 보물과 왕과 방백들의 보물을 다 바벨론으로 가져가고 또 하나님의 전을 불사르며 예루살렘 성을 헐며 그 모든 궁실을 불사르며 그 모든 귀한 기명을 훼파하고 무릇 칼에서 벗어난 자를 저가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매 무리가 거기서 갈대아 왕과 그 자손의 노예가 되어 바사국이 주재할 때까지 이르니라 이에 토지가 황무하여 안식년을 누림 같이 안식하여 칠십년을 지내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응하였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스라엘이 하나님 목전에서 악을 행하여 7년을 미디안의 손아귀에서 고통당하였지만 다음 세대에 가서는 바벨론을 세우시고 무려 70년을 고통당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듣고 깊이 깨닫고 하나님과 아름다운 관계회복을 무엇보다도 먼저 이루어 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예외 없이 인류 역사를 다스려 가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지도자를 세우시고 그를 통해 회복시키십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통에서 해방되기 위해 깊이 죄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며 하나님의 은총을 사모하게 됩니다.

(삿6:6-7)

이스라엘이 미디안을 인하여 미약함이 심한지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을 인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은 고로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한 지도자를 세우시고 그들을 미디안의 고통에서 해방시킬 계획을 세우십니다. 그래서 세우신 지도자가 바로 그 유명한 기드온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드온을 어떻게 부르시고 어떻게 함께 하셨는지 오늘 본문은 많은 지면을 할애하며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기드온이 여러 차례 확인하고 또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주의 종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분명한 하나님의 소명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께서 분명히 부르신 종이라면 우리 모두는 아낌없이 그 종을 따르고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기드온이 어떻게 소명을 확인하였는지? 그리고 백성들은 그와 같은 주의 종을 어떻게 따랐는지 다시 한 번 더 확인해 보기를 원합니다.

기드온이 확인한 분명한 소명

기드온은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자신을 부르셨다면 거기에 합당한 징표를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두 말 않으시고 기드온의 그 요청을 다 들어 주십니다.

(삿6:36-40)

기드온이 하나님께 여짜오되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려 하시거든 보소서 내가 양털 한 뭉치를 타작마당에 두리니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사면 땅은 마르면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줄 내가 알겠나이다 하였더니 그대로 된지라 이튿날 기드온이 일찍이 일어나서 양털을 취하여 이슬을 짜니 물이 그릇에 가득하더라 기드온이 또 하나님께 여짜오되 주여 내게 진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말하리이다 구하옵나니 나로 다시 한 번 양털로 시험하게 하소서 양털만 마르고 사면 땅에는 다 이슬이 있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이 밤에 하나님이 그대로 행하시니 곧 양털만 마르고 사면 땅에는 다 이슬이 있었더라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보여 주신 이와 같은 기적은 기드온으로 하여금 전심으로 하나님을 따르고 순종하게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분명하게 자신을 부르시고 함께 하신다는 확신은 그로 하여금 그 어떤 명령도 순종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심지어 달랑 3백 명의 용사들을 데리고 그 강력한 미디안 12만 명도 상대하고 나가 싸웠을 정도였습니다.

(삿7:7-8)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물을 핥아 먹은 삼백 명으로 너희를 구원하며 미디안 사람을 네 손에 붙이리니 남은 백성은 각각 그 처소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 이에 백성이 양식과 나팔을 손에 든지라 기드온이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을 각각 그 장막으로 돌려보내고 그 삼백 명은 머물러 두니라 미디안 진은 그 아래 골짜기 가운데 있었더라

골짜기에 머물고 있는 미디안 병사들을 성경은 해변의 모래와 같이 많다고 하였습니다.

(삿7:12)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동방의 모든 사람이 골짜기에 누웠는데 메뚜기의 중다함 같고 그 약대의 무수함이 해변의 모래가 수다함 같은지라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드온은 담대하게 오직 그 하나님만 믿고 모래알 같이 많은 미디안 적진으로 오직 3백 명의 용사만 데리고 나아가 그들을 쳐서 이겼습니다. 과연 기드온이 빼어난 능력이 있어 3백으로 12만을 이겼을까요? 결코 아닙니다.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친히 적진을 혼란케 하시고 기드온으로 하여금 이기도록 역사해 주셨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습니다.

(삿7:22)

삼백 명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와께서 그 온 적군으로 동무끼리 칼날로 치게 하시므로 적군이 도망하여 스레라의 벧 싯다에 이르고 또 답밧에 가까운 아벨므홀라의 경계에 이르렀으며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의 사람들이 된 오늘날 우리들도 그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을 이처럼 담대히 의지하고 싸워 이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그렇게 두려움 없이 하나님만 의지하고 담대하게 행동하며 일어나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게 하면 그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친히 일어나 역사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분명한 소명의식은 그렇게도 중요한 것입니다.

순종이 "여호와 살롬"의 축복을 만들어냅니다

우리들이 오늘 본문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하게 되는 놀라운 한 가지 사실은 순종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기드온도 그랬고 그를 따르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마침내 기드온이 자기 자신은 지극히 작은 집안에서 자랐고 자신의 집에서도 제일 작은 보잘 것 없는 사람이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부르시니 '순종하겠습니다' 하고 나섰습니다. 그리고 12만이나 되는 대군 미디안과 싸우러 나갈 용사들을 모집하였습니다. 최선을 다 했지만 그가 모집한 군사는 고작 3만 2천 명이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하나님은 군사가 너무 많다고 싫어하시고 그들을 추려 줄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삿7:1-3)

여룹바알이라 하는 기드온과 그를 좇은 모든 백성이 일찍이 일어나서 하롯샘 곁에 진 쳤고 미디안의 진은 그들의 북편이요 모레산 앞 골짜기에 있었더라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좇은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붙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이제 너는 백성의 귀에 고하여 이르기를 누구든지 두려워서 떠는 자여든 길르앗 산에서 떠나 돌아가라 하라 하시니 이에 돌아간 백성이 이만 이천 명이요 남은 자가 일만 명이었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일만 명만 남았음에도 너무 많다고 더 돌려보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결국 남은 병사가 3백 명이었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기드온의 순종과 백성들의 순종을 엿볼 수 있습니다.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그 누가 12만 명의 대군과 전쟁하러 나가면서 3백 명의 용사를 거느릴 사람이 있겠습니까? 지도자 기드온도 대단하지만 그 지도자를 따를 3백의 용사들로 대단하다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용사가 적다면 그만큼 죽을 수 있는 위험 부담도 크기 마련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을 순종하였고 그들의 지도자를 순종하였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여호와 살롬"의 기적을 만드는 놀라운 비밀이었던 것입니다. 이 사건을 보면서 오늘날 우리들은 현실을 직시해 보기를 원합니다. 과연 오늘 우리는 이렇게 지도하는 지도자라도 순종하고 따를 수 있는 믿음이 과연 있을까요? 아니면 빡빡 기어오르면서 "목사님, 몰라도 너무 모릅니다."고 난리난리 칠 것입니까? 부족해 보이고 무능해 보여도 우리들은 우리들의 지도자를 하나님께서 세워 주신 주권을 믿고 순종하고 따르는 미덕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이기고 지는 것이 사람에게 있지 않고 하늘의 하나님께 있음을 확신하고 말입니다. 그렇게 하자니 한 가지 중요한 결단을 해야 합니다. 기드온은 이렇게 전장에 나가기 전에 한 가지 철저하게 결단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과감하게 우상을 제거하는 것이었습니다.

(삿6:27-30)

이에 기드온이 종 열을 데리고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 행하되 아비의 가족과 그 성읍 사람들을 두려워하므로 이 일을 감히 백주에 행하지 못하고 밤에 행하니라 성읍 사람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본즉 바알의 단이 훼파되었으며 단 곁의 아세라가 찍혔고 새로 쌓은 단 위에 그 둘째 수소를 드렸는지라 서로 물어 가로되 이것이 누구의 소위인고 하고 그들이 캐어 물은 후에 가로되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이를 행하였도다 하고 성읍 사람들이 요아스에게 이르되 네 아들을 끌어내라 그는 당연히 죽을지니 이는 바알의 단을 훼파하고 단 곁의 아세라를 찍었음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 일이 얼마나 중대하고 위험한 것인지를 그 주민들의 아우성치는 소리를 들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기드온을 잡아 죽이겠다고 아우성 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드온은 부모님과 조상들과 마을 사람들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섬기는 우상들을 이렇게도 과감하게 때려 부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드온의 이름을 여룹바알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이는 바울의 단을 때려 부수었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우리들의 관습과 이성과 지성을 십자가에 못 박고 오로지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결단할 때 비로소 순종 할 수 있는 능력을 공급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렇게 될 때 다시는 미디안과 같은 강력한 세력들이 평안을 깨뜨리고 공격해 오는 아픔에서 해방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여호와 살롬"의 평강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삿8:28)

미디안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복종하여 다시는 그 머리를 들지 못하였으므로 기드온의 사는 날 동안 사십 년에 그 땅이 태평하였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지난 주간 화요일(7월 14일) 밤 9시 경에 남자친구와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신 한 여자대학생(21살)이 만취상태에서 포장마차를 나와 수원역 부근 길에 쓰러져 잠이 들었습니다. 그때 46살의 한 남성이 나타나 남자를 깨워서 "네 여자 친구가 토했으니 물티슈를 사오라"고 하자 일어나 물티슈를 사오니 여자 친구도 남자도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 친구는 이튿날 인근 야산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46살의 범인은 스스로 자살을 한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어떤 부모가 그 나이게 술에 만취되어 길바닥에서 주정뱅이처럼 잠드는 딸이 되기를 원했겠습니까? 분별력 없이 부모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제 마음대로 인생을 살아가게 되면 이렇게도 비참하고 끔찍한 비극을 낳게 되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평생을 고통가운데서 살아가게 되겠습니까? 그 남자친구나 부모는 아마도 정상적인 평안을 결코 누리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평안한 삶은 소중한 대가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저절로 부자 되는 사람도 없고 저절로 태평성대를 누리는 사람도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심은 만큼 거두고 하나님을 섬기는 만큼 평안을 누린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기드온이 누리는 "여호와 살롬"의 축복 역시 저절로 그냥 임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시대를 인식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응답하며 그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믿고 순종하고 일어날 때 평안과 축복이 주어졌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이와 같은 역사적인 사건을 통하여서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죄악을 버리고 하나님을 부르심에 순종하여 기드온과 같이 담대하게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들을 괴롭히는 미디안을 과감하게 몰아내고 이 땅에 여호와의 살롬이 지배할 수 있도록 신선한 변화를 만들어 가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은 결코 나만을 위해 사는 욕심과 세상적인 깃발 아래서는 찾아올 수 없는 기적이기 때문입니다. 모쪼록 오늘 복되고 귀한 날 하나님의 집으로 올라와 거룩한 아버지의 예배자로 구별된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은 기드온과 같은 용기와 순종으로 날마다 평강의 축복을 누리시기를 소망합니다. 말씀대로 순종하여 여호와 살롬의 기적을 날마다 이루시고 또한 사랑하는 자녀손들에게 두고두고 유산하는 진정 복된 심령들이 되시기를 좋으신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 멘

주후 2015년 7월 19일

주일 낮 예배 설교 말씀에서

Add comment


Security code
Refresh